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주노동자 진료 소감

  일요일인 오늘, 옛날에는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회'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주 노동자 건강협회'(?)라고 하는 단체가 주관하는 이주 노동자 진료에 참여했다. 이 사업은 행자부에서 돈을 대는 것으로 사년전인가 오년전에 시작되었고, 전국 각 지역을 돌면서 아주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진단과 진료활동을 하는 것이다. 천안차례가 된 것이다. 사실 이 단체에 대한 인상은 별로 좋지 않은데 옛날에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가 있었던 성수공단에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노선의 문제도 관여했다는 설이 있어 찜찜.



  이렇게 한 번 일회성 행사를 하는 것이 이주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은 있지만,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그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무료진료에서 뿌리는 약을 보관했다가 필요한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어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이런 식의 자가 투약이 바람직한가를 떠나서 그들은 이렇게 약을 보관해 두는 것만으로 안심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심각한 질병이 의심되는 사람한테는 전문과 진료의뢰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행사를 통해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게 소중한 것이리라.

 

  오늘 있었던 일과 느낀 점을 적는다.

 

#1. 경도 고혈압과 당뇨병이 의심되는 러시아 남자, 금연, 절주, 운동, 저염식이, 저지방식이등  생활습관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는데 통역을 담당한 러시아 출신 선교사 왈, " 이 사람은 술은 안 마신다. 얼마전까지 마약 중독자였다." 그 사람 팔뚝의 문신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그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내 이야기가 핵심을 비껴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여간........

 

#2. 미등록 이주 노동자중에 고혈압, 고지혈중, 당뇨병 등의 질병이 있을 때 의뢰할 곳이 없다. 오늘 참가한 단체중 무슨 교회랑 이주 노동자 센터에서 미국교포인 소화기 내과 의사가 매주 진찰도 하고 약도 무료로 나누어준다고 하긴 하는데........그 자신이 이주 노동자로 살았던(맞나?) 그 선생님은 약 보따리를 가지고 와서 매주 열명정도 진료를 하신다고 한다. 교회에 가고 싶지 않은 이주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이주 노동자 건강협회랑 충남 노동자 건강지기랑 잘 의논해서 진료소를 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약값을 충당하려면 어떤 형식이든 지원없이는 어렵다.

 

#3.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전도사와의 대화

    얼마전 노말헥산에 의한 말초신경병증 기사와 거의 똑같은 사례를 경험하여 우리 병원에 왔었다고 한다. 노과장이 만난 것 같은데 상당히 불쾌했었다고 말했다. '으잉? 노과장처럼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사람한테 불쾌감을 느꼈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이 원했던 것은 그 증상이 바로 그 질병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와 진단이었고, 노과장이 말한 것은 그 물질이 노말헥산인지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나 보다.

   전도사는 노과장이 말을 많이 했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같이 간 환자들은 의료보험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불만. 뭔가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그 때 왔었던 환자는 직장을 옮겼으나 남은 사람들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환자는 8월에 출국예정이기 때문에 이직한 뒤에 나 몰라라 하고 남은 사람들과는 연락을 할 수 없단다. 이직한 환자에 대해서 건강평가가 필요하니 다시 접촉하고 연락하기로 했다. 노말헥산에 의한 말초신경병증이라면 10명중 한명정도는 끝내 회복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전도사는 이주 노동자들이 건강을 소홀하게 생각하다가 결국 죽는 경우도 왕왕 본다며 걱정했다. 감기를 한두달 끌다가 폐렴으로, 폐렴이 패혈증으로....... 이렇게 죽는 것이다.

 

#4. 무력한 말-"작업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가슴이 아픈 남자가 20Kg까지 50박스씩 빠렛트에 6단 적재한다고 하길래 4단적재하면 증상이 좀 좋아질 수 있다고 하자 손을 내젓는다.  창문도 없는 밀폐된 방에서 어떤 호흡용 보호구도 지급받지 못하고 무슨 용접을 하는 중국 남자에게 환기를 철저히 하고 마스크를 달라고 해야 한다고 하자 인상을 쓴다. 사업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혹시 사업주가 인정이 많은 사람이면 이걸 주라고 하자 둘러 선 사람들이 웃으면서 '나빠요, 나빠' 한다.

 

#5. 이주노동자 센터 상근자와의 대화

   끝나고 저녁 먹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상근자였다. 4년차란다. 들어보니 천안 아산지역에는 만 오천명 정도의 이주노동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건강문제는 뇌졸증과 우울증이란다. 따뜻한 나라에 살다가 추운 나라에 와서 그런지 가을철이면 뇌졸증 환자가 늘어난다고 하고, 자살이 작년에만 열건이란다. 자살과 관련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전 KTX 역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던 남자를 역무원이 붙잡았는데 조회를 해보니 등록 노동자여서 그냥 보냈다고 한다. 그는그 다음에 천안역으로 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국 죽었다. 사업주는 그가 며칠째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몰랐고 경찰은 그가 등록 노동자이기 때문에 사건을 종료했다. 마치 찬드라 이야기인 것처럼, 각자가 분절화된 자기 역할만 하고 끝낸 것이다.  

 사업장 방문을 할 때도 정신건강문제를 지닌 이주 노동자들을 가끔 본다. 이들에겐 약이 필요한게 아니고 친구와 놀이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이들이 주말에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쁜 물 들까봐. 그렇지 않더라도 이들에게 권할 만한 놀이 프로그램이 없다. 서울만 해도 한글교실, 컴퓨터 교실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여기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접근 자체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6. 아름다운 사람들 

  오늘 진료팀은 급조되었다. 약사는 천안시 약사회원중 교회다니는 사람 2명, 의사는  우리 병원 전공의 3명과 나, 안내는 충남 노동자 건강지기, 천안 외국인 노동자 교회, 천안 이주노동자 센타 등등. 오늘은 영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러시아어 통역지원이 있었다. 한국 외국어대 친구들과 교회사람들이 그 일을 했다. 휴일을 반납하고 나온 그 친구들이 어찌나 예쁘게 보이던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들은 외국어 전공자가 아니고 정외과란다. 허걱.  외대 학생들은 올해 이주노동자 봉사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앞으로 우리 사업장 방문에서 지원이 필요하면 방학때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히히. 고대했던 일이다.

 

#7. 반성

   준비를 좀 해서 갔더라면 이주 노동자들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대부분 요통과 어깨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작업관리와 예방체조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그림 자료를 준비해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주 노동자 협회의 진료역사도 오래되었으니 어느정도 세팅이 되었을 거다. 누군가 준비했겠지' 하고 맨 손으로 갔다. 막상 가보니 청진기가 없어 병원에서 공수해와야 했다. 쩝.  

 

#8. 기특한 우리 아이들

    두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돗자리, 책, 장난감, 물, 과자를 준비했다. '엄마가 일할 동안 얌전히 놀고 있어라'. 아이들은 훌륭했다. 놀기만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소변검사를 하기 위해서 가야하는 화장실이 어디인지 안내하는 일도 조금 거들었다.  짐 정리할 때도 좀 거들고.... 옛날에는 어디 데리고 가면 엄청 보챘는데 오늘은 알아서 잘 놀았다. 다 컸다. ㅋㅋ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