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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화

  아침엔 매년 이맘때쯤 검진하는 대기업에 다녀왔다. 이 회사는 석달 정도 주야간 가동하면서 김치냉장고 생산에 총력을 다한 뒤 12월 말에 검진을 한다. 이곳에 와서 6시간 연속 보건교육을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한번씩 했었고 매년 검진을 하건만 그리 마음이 가는 곳은 아니다.



한 때 꽤 친했던 마음 착한 동기가 이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한 뒤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 많다고 힘들어 했었지. 그래, 그 녀석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심한 세월이다. 그 녀석과 소식이 끊긴 뒤 얼마 안되어 이 회사 파업때 침탈을 받은 사건을 신문에서 보았는데 나는 젖먹이 키우랴 병원생활하랴 정신없어 연락 한 번 못 해보았다.

 

2003년에 근골격계질환 교육하러 갔다가 회사 보건관리자랑 같은 차를 타고 서울 올라가는 길 당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는 게 참 힘든거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 날은 비가 왔던 것 같다. 날씨 탓이었을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저 지옥갈 것 같아요". 그 때 현장 노동자들이 끌려가고 난 자리에 참담한 심정으로 현장정리를 하러  들어가는데 경찰이 막길래 들고 있던 빗자루를 보여주었더니 들여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괴로와했다.

 

그는 젊은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관리직 20명중 한 명은 퇴직해야 하기에 매년 연말이면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올해는 과연 내가 살아남을 것인가 머리를 쥐어뜯는 시간이 형벌처럼 지나고 나서 동료 한 사람 나가면 안도하는 분위기를 전하면서 내가 관리자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사내커플이기 때문에 부당한 계약직 전환을 감수하고 십년째 의무실을 지키는 간호사의 조심스러움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기도 했었다.

 

2004년에 직무스트레스 예방교육을 하러 갔을 때 분임토의를 시도했는데 구조조정과 노동운동 탄압의 '생존자'들인 중년 노동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기만 해서 참 당황스러웠다. 그 때는 제품이 팔리지 않아 누가 짤릴 지 알 수 없는 암담한 시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오늘 교육은 우리한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동안 토론같은 것을 못 해보아서 자기 이야기를 할 줄 몰라서 그런거다. 앞으로 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는 말로 정리를 해 주었다. 알고보니 전임 지부장이었다. 오늘은 일반검진하는데 검진슬립에 노출유해인자에 크실렌, 노출기간 11년 이렇게 적은 사람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때 그 전임 지부장이다.

 

직무스트레스 교육이후 이 회사는 노과장이 주로 다녔다. 회사 매출은 최근 몇년간 최고를 기록했고 이번 노동조합 집행부는 '강성'이며 안전보건쪽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우리 병원에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을 받으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 보건관리자가 우리 검진팀장에게 연간 직업병 유소견자가 몇 명이나 나오는 지 슬쩍 물어보았다한다.

 

그동안 노과장은 어느 병원에서 측정하고 검진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 지만 분명하면 병원은 그에 따를 것이다, 이처럼 큰 기업에서 지역내 산업보건 기풍을 세우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뭐 이런 말로 다른 대학병원에서 그냥 하라고 타일렀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특검하면서 그 병원하고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노동자는 소음에 노출되니 특검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 그쪽에서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마찰이었던 듯.

 

삼년만에 가보니 일감이 많아 석달동안 야간근무를 불사한 노동자들은 혈압이 올라서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회사가 죽는 소리 하면서 고용을 위협하지 않고 노동조합이 힘이 있으니 삼년전보다는 나은 것 같다. 버젓한 일자리란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것인가! 뭔가 변화의 기운이 느껴지고 희망적인 마음이 든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자서전)를 읽으면서 진의 낙관을 배우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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