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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최소한의 관리직만 남기고 현장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우기로 유명한 어느 자동차 부품 회사. 민주노총소속의 조합원인 29명의 대기업 노동자와 4개 하청업체 약 160여명이 일하고 있다.



 계약인원이 50명이라 의사는 일년에 두 번 방문하는데, 상반기 방문은 다른 의사가 와서 보건교육을 했기에 나는 처음 가는 곳이다.  처음이긴 하지만 직원들이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한 번 갈 때 마다 스무명씩 각종 검사를 해 보고 싶어 건강상담을 하는데 쓰잘 데 없이 시간죽이러 오는 것 같기도 해서 담당 간호사가 좀 괴롭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산업위생사와 작업장 순회점검을 시작.

지은 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시설이 최첨단이고 조명도 물류회사치곤 비교적 밝다. 

그런데  소음과 먼지가 심한 작업을 맡고 있는 하청업체는 작업환경측정을 안 했고, 작업자들에겐 귀마개와 마스크가 지급되어 있지 않았다. 작업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보니 소음도 소음이지만 박스제작때 쓰는 스태플러같은 공구가 너무 무거워서 손목 아픈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하청업체 소장을 바로 만날까 하다가 일단 원청에서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지 들어보기로 하고 다른 작업으로 이동.

 

앗. 천정부근에서 뭐가 흔들 흔들 하길래 자세히 보니 지게차가 3단 적재해서 물건을 옮기도 있었다. 저러다가 쓰러지면 큰일이다 싶어 가보았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는데 그 아찔한 순간은 놓쳤다. 그렇지만 사람 키의 세 배쯤 되도록 제품박스를 쌓아놓은 것은 볼 수 있다)


 

작업자들은 공간특성상 3단 적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물론 2단씩 제품을 떠서 작업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는 예상된 답변도 덧붙였다. '안전'이 전공이 아닌 내가 보기에도 아찔한 작업이었다. 원청 담당자와 이야기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럴 때 흔히 자기들은 안전하게 작업하라고 교육했는데 작업자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한다. 표준작업대로 일해서는 그 날의 업무량을 맞출 수 없는 데 말이다.

 

작업장을 돌아보고 와서 건강상담을 하는데 주임 뱃지를 달고 있는 나이가 제법 드신 분이 있기에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그 분은 현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29명중 가장 높은 사람이었고, 입사후 20여년동안 현재 하청업체에서 하고 있는 작업들을 다 섭렵해보아서 뭐가 문제점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게차 3단 적재에 대해서 박스의 무게, 이동거리 등을 감안해서 무게중심이 안정되고 저속으로 운행하는 경우는 3단적재도 안전하다고 했다가 꼬치 꼬치 캐묻자 안 할 수 있으면 안하는 게 좋다는 식으로 한 발 물러섰다. 하청업체의 소음작업에 대해서 이사오기 전에는 꼬박꼬박 작업환경측정도 했고 청력보호구도 지급했는데 이사와서 원청 담당자도, 하청업체도 바뀌면서 제대로 이수인계가 안된 것 같다고 말을 흐렸다.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업무의 차이에 대해 질문하자 앞공정은 물품 검수가 필요하니 정규직이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평균 연령이 40대 중반을 넘고 있는 29명이 퇴사하면 그 자리가 정규직으로 채워질까?)

 

상담이 끝나고 업무브리핑하려고 원청 담당자에게 연락했더니 바빠서 못 온다고 우리가 오란다. 

기다리겠다고 하니 얼마 안되어 나타나서 하는 말, "최첨단 물류시설이라 세계 각국에서 견학을 와서 그거 안내하느라 너무 바쁘다".

우리 산업위생사가 중량물 취급 주의 표지판이 법적인 사항임을 알려주자

"알고 있고 본사 보건관리자에게 수 십개의 표지판을 받았는데 창고에 있다. 견학오는 손님 많은데 이것저것 붙여놓으면 흉하지 않나, 지금까지 선진국 사람들 포함 약 2천명이 이 공장 다녀갔는데 그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허걱(뻐꾸기 놀라는 소리),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 우연히 상담장소에 들른 정규직 노동자가 우리 업무일지를 읽어보더니," 잘 썼는데 중요한 게 하나 빠졌네, 우리는 근골격계가 문제여."

그는 원청 담당자와  말씨름을 좀 하다가 일보러 나갔다.

 

마지막에 뻐꾸기의 정리발언. "상식선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에 신경좀 써주세요"

담당자의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더니, " 상식적인거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요"

뻐꾸기,"말씀하시는 거 보니 전공이 안전이나 보건쪽 관련은 아니신 것 같네요"

담당자, "저, 법학전공입니다. 요즘 쟤네들이 저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더 잘 알아서 맨날 법 몇 조 몇조 를 들먹이는데 그나마 법 전공이라 그걸 막고 삽니다"

 

나오는데 덧붙이는 이야기, "본사 보건관리자한테 들으셨죠? 보건에 관한 사항은 회사측에만 말하고 근로자에게는 절대 하지 마십쇼, 우리 회사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어서 큰 문제거든요"

뻐꾸기, 혈압오르는 것을 참느라 목소리를 낮추고" 저희는 전문가의 직업윤리에 기초해서 일합니다" 

 

무섭다. 이제 정규직 노동자들은 멸종될 것이고 알권리나 노동자 건강권같은 말들은 역사책속에 나오는 용어가 되나 보다. 이를 어쩐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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