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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건강

  오늘 검진갔던 곳은 공기업이다. 

검진시작전에 사업장 간호사가 와서 물어본다.  몇년전부터 투약중인 우울증 환자가 있는데 최근 조증상태로 돌변하여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내용이다.  과거 구조조정후 자살한 사례도 있어 환자에게나 기업에게나 바람직한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예를 들면 감사를 받는 중에 감사하러 온 이들에게 기업을 대표해서 일장연설을 하는 가 하면 평소 술 한 잔 안 하던 사람이 직원회식때 사장한테 술을 따라주면서 온 동네 술을 다 마시는가 하면, 종합검진받으러 갔다가 거기 여자 직원한테 스토킹을 하는 등...... 주치의를 만나서 의논해보았지만 입원치료를 해보면 어떻겠냐 정도의 답을 듣고 와서 가족을 만나보니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하며 상당히 난감해했다.

 



주치의가 입원치료를 권한다면 병가 등으로 처리해서 경과를 보는 게 좋겠다고 하자,  기업입장에서 사회적 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마냥 지켜만 볼 수 없고, 병가기간에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사고가 날까 겁도 난다고 하더라. 

 

  어려운 문제이다. 간호사를 통해 들은 정보만으로 판단해보면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자의든 타의든 퇴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뻐꾸기, 정신과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괴롭다. 질병의 원인이 개인적인 것이든 직업적인 것이든 사회구조적인 것이든 본인만큼 고통스러운 사람은 없겠지. .....

 

  좀 가라앉은 마음으로 검진을 시작했다.  대부분 건강하고 별 문제없었지만 피로, 두통, 위장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좀 있었다.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냐고 물어보니 일찍 퇴근하는 날이 8시이고 대부분 10~12시에 집에 간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상한 일이로세.  상당히 대우도 좋고 그렇게 급박한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몇 몇 사람한테는 장시간 노동의 건강영향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나중에 간호사와 이야기해보자 요즘 무슨 공기업 혁신에 대한 각종 프로젝트때문에 다들 시달리고 있고 본인도 무슨 TFT에 소속이 되어 본연의 업무도 제대로 못하면서 과로하고 있다고 한다.  음.....

 

  이상한 수검자도 있었다. 

나한테 거의 반말투로 말하면서 자기 주치의가 혈압을 못 잡아서 혼내주었다는 둥.....(지금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 간호사가 말한 사람이었을까?) 장광설을 듣는동안 그에게 할 말을 자세히 메모한 다음, 말을 끊었다. " 잘 들으세요, 혈압은...." 냉정하게 설명하고 보냈다. 

 

  8년간 잠을 잘 수 없는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고 유수한 병원에서 뚜렷한 진단을 받지 못했고(?) 약으로 증상조절하는데도 지친 50대 남자와 관절통, 신장질환, 피로 등을 호소하는 20대 여자에게 우리 동네 류마티스 내과 개원의를 소개시켜주었다.  

 

  심각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이 세트로 있으면서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40대 남자를 붙들고 긴 이야기도 했고 병원에 가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우리가 관리하는 회사가 아니라 자체 보건관리자가 있는 곳이라 추적은 불가능하겠지만 내년에 누군가 검진할 때 작년부터 혈압약도 먹고 운동도 시작했다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빈다.  검진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도 느끼고 기분도 좋아진다.  

 

  이형협심증이 의심되는 젊은 남자도 있었다.

전형적인 안정시 흉통.

흉통이 있을 때는 공포스러울정도로 아프다고 했다. 

순환기 내과 진료는 받는 게 좋겠다는 권고와 함께 그리 예후가 나쁜 병은 아닐 것이라는 위로를 함께 주었다.  사실 의사에게 정밀검사가 필요한 생명과 관계가 있는 어떤 건강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아주 심각한 일이다.

나도 어떤 검사를 받고나서 담당 의사의 표정을 살피면서 매우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 그 결과를 기다린 적이 있다.  내가 나오려는데 그 선생님이  "너무 걱정하지마" 하시는데 그 건조한 음성이 큰 위로는 되지 않았으나 그나마 안 들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남자.

부서를 보니 해외출장이 잦은 업무이다.

영업은 아니고 조사연구쪽으로.   15일간 유럽출장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가 몸이 피곤해서 혈압이 좀 높아진 것 같다고 하더라.  재미있는 업무 하신다고 하자 정색을 하고 말한다. "재미는 있지만 정말 힘들어요. "  맞아, 전에 다니던 산들어린이집 조합원중에 해외출장반, 국내업무 반 인 사람이 있었는데 불규칙한 생활때문에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이 회사 두번째 검진을 내일하면 출장검진은 끝이다. 

마지막 출장검진을 특검이 아닌 일검으로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특검은 아무래도 더 긴장하고 더 꼬치꼬치 캐묻게 되고 우울한 일들도 많은데

일검을 하다보면 사람들 살아가는 냄새를 더 진하게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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