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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도 흔치 않다. 12시까지 꽉 채워서 검진하고 1시에 바로 또 검진하고 판정 다 끝내고 나니까 5시반이네. 오늘의 키워드를 포스팅 제목으로 적었다.
1. 스펙큘럼
60대초반 여성수검자였는데 나를 보더니 여자 의사라고 아주 좋아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궁금한 건강문제가 있으세요?" 물어보니 질건조증이 너무 심한테 끈적거리는 것도 싫어서 그냥 산다는 것이었는데 2년전부터는 그것때문에 부부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남편이 젊은 시절부터 왕성한 성욕을 자랑하여 매우 피곤했는데 2년전에 결국 남편을 이겨버려서 이젠 귀찮은 일이 없어서 좋다고 의기양양해하셨다. 중간크기 스펙큘럼을 넘겨받고 자궁암검사를 하려다가 작은 자극에도 쓰라리고 아프다고 하신게 기억이 나서 제일 작은 스펙큘럼으로 바꿔달라고 해서 조심조심 검사 시작. 걱정많은 뻐꾸기는 검사가 잘 안될까봐 조심스러웠는데 다행이 아주 가볍게 통증과 불편감없이 진행되었다. 오호, 상쾌한 출발. 오늘 검진이 순조로울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었다.
2. 오징어
역시 60대 여성 수검자가 교과서에 없는 이런 저런 증상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임파선이 부은 것 같은데 좀 만져보아 달라고 했다. 만져보니 별 거 없더라. 잘 들어보니 얼마전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오징어를 구워먹었는데 턱부터 목까지 부어서 괴로왔다는 이야기이다. "하나 구워먹었는데,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또 구워서 먹고, 또 구워서 먹고...."
음... 새로운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오징어를 구워먹기도 하는구나.
한참 오징어이야기를 하시더니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보여준다. 순환기내과 진료의뢰서. 목이 부어서 찾아간 일차 진료의사는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권유했다. 한쪽이 펄스가 좀 약한 것 같다고. 다시 만져보니 잘 모르겠더라. 한쪽 피부가 부으면 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들어올 때와 달리 기분좋은 표정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면서 갑자기 나도 오징어가 먹고 싶어졌다.
3. 석면
오전검진이 끝나가는데 아무런 용지도 가지지 않고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수검자들이 내 앞에 올 때는 무슨 종이든 들고 있거나 간호사가 외래챠트를 갖다주거나 해야하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건설폐기물업체 안전관리자였는데 최근 석면취급 건설노동자에 대한 검진이 의무화되어서 작업자 3명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석면이 포함된 건물해체 계약을 새로 하게 되어서 지방노동사무소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특검기관에 가서 검진을 받으면 된다는 소리를 들었고 당진에서 무작정 예약도 없이 무슨 건강진단을 받아야하는지도 모른 채 온 것이다.
건설은 특검을 하긴 해야하는데 적용이 안되고 있는 분야이다. 석면에 관한 새로운 규정은 들어본 바 없으나 정황으로 보아 일단 배치전 검진을 실시하기로 했는데 그 설명에 한 삼십분 걸렸다. 우리의 대화는 건설업 안전관리자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장되었는데. 필시 주변에 오지랖 넓은 사람들한테 전염이 되었나 보다.
멀리서 온 사람들 다시 예약하고 오라 할 수도 없고 일단 검사진행하고 오후에 다시 진찰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정확히 한 시에 외래간호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음... 건설업에 석면 특검 도입이라..... 잘 되었다.
4. 2시엔 예약된 근골격계환자가 관리자, 사업장 간호사와 함께 왔다.
작년 8월부터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외상과염으로 세 군데 병원에서 치료받고 잘 낫지 않아 큰 병원 권유받아 우리 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회사측은 공상처리를 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하여 업무관련성에 대한 자문을 구하러 온 것이다.
그런데 환자가 문진도중 마구 마구 화를 내면서 가 버렸다. 내가 작업내용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팔꿈치 통증의 업무관련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로 읽었나 본다. 차 한 잔 주면서 살살 꼬셔서 면담을 계속 했는데 병전 인성에도 문제가 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나 어쨌든 현재는 8개월을 참고 자가치료하다가 의사들이 작업중단을 권고하여 회사에 공상처리요청을 한 것이 한달전인데 이제 또 무슨 평가를 하고, 자꾸 일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잔뜩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하고 생각해보시라 하고 보냈다. 환자는 나가서도 의사한테 사측에 유리한 정보만 제공했다고 펄펄 뛰면서 싸우더라.
그러는 동안 거의 한 시간이 뚝딱 지나갔다.
5. 새 간호사를 옆에 앉히고 특검판정을 했다.
똑똑한 간호사 하나 열전공의 안 부럽다는 게 내 주장이다.
오전에 석면특검관련해서 온 외래 식구들이 허둥지둥대는 것을 보고 특별직무교육을 하기로 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특강, 유해인자평가이론과 실습 두 꼭지를 시니어 간호사한테 할당하고 나는 판정하면서 일대일 교육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 후각장애가 이리도 많단 말인가. 50%이하의 후각장애만 3건이 있었다. 게다가 천식도 3건이 있었는데 업무관련성평가를 하기에는 노출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여 추가요청을 했다. 내가 이런 오더를 낼 때 마다 직원들은 질색팔색을 한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또 설명하는 것. 새 간호사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뜨거운 하루.
참 점심시간에 새로운 멤버들과 밥을 먹었는데 아주 아주 유쾌했다. 어쩌면 나를 보고 용기를 내서 자전거를 배워볼 생각을 해보고 있는 조직병리교수와 다다음주 쯤 자전거모임을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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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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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부러워라..별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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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뻐꾸기샘에게 진단한번 받아봐야 겠어요..등쪽이 결리고 가슴 명치가 아려서 숨도 못쉴때도 있거덩요....ㅡ.ㅡ.;;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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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미야/ 젊은 여자한테 흔한 증상은 아니군요. 근처에도 좋은 선생님 많아요. 다녀오시어요.알엠/ 나도 알엠이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