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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냈다

특검판정하러갔다가 화냈다.

얼굴을 찡그리고 목소리를 높히고 지시적으로 말했다.

사실 그렇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후임자와 전공의 보라고 화를 좀 더 냈다.

이게 마지막이기를 빈다.

 

화낸 이유는 비직업성 난청으로 청력검사를 다시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우리 과 직원들이 판정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멀리 예산에서 오도록 해서 검사를 했는데,  검진팀장불러다가  물어보니 그 과정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과거 폐기능 저하자를 모욕감을 주어 퇴사시키려 했던 곳이고 이번에 문제가 된 수검자는 명백한 비직업성 난청으로 더 검사할 필요도, 치료할 필요도 없는 경우였는데 최근 입사자였다. 

 

재검이라는 것이 어떤 곳에서는 건강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낳은 현실을 직원들이 알기를 바랬기 때문에 화를 냈다.  심한 경우는 재검받으로 오는 데 드는 비용, 일당 과 차비(보통은 택시를 타야하기에 몇 만원씩 든다), 약 10만원을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한달에 돈 백만원 받는 사람들이 불필요한 검사때문에 10만원을 지출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거기다가 문제있는 사람으로 찍히기까지 한다면!

 

실수한 직원에게 사건의 경위, 무엇이 문제인지, 재발방지를 위한 대안, 이렇게 에이포 용지 한쪽 분량으로 써서 과내 게시판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화내는 거 힘들다. 

 



좀처럼 화내는 모습을 못 보았다고 도대체 언제 화를 내냐 물은 적이 있는데, 

아마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았으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7월은 직업병 유소견자 판정이 많이 나오는 달이다.

각종 재검이 마무리되고 판정에 올라오는 챠트들은 하나같이 두껍고(검사용지가 많이 붙어있으니까), 복잡하다.  골치가 아프다.

 

오늘도 어느 회사에서 소음성 난청 유소견자 판정에 대해서 할 말 있다고 찾아왔다.

지난번 후각기능저하에 대해서 좀 깍아달라고 사정했던 곳이다.

우리랑 특검 처음 하다보니 이렇게 전화하고 찾아오면 뭔가 좀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직업병 유소견자 판정을 내릴 때마다 각 회사의 담당자들 얼굴이 떠오른다.

말 한 마디 잘 못 쓰면 즉각 비수가 되어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  

긴장을 할 수 밖에 없다.  

 

판정할 때 우리 과의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띄게 된다.

단순한 실수, 장비의 문제, 기술적 질의 문제......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직원들 불러서 물어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안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직원들의 답변은 어쩔 수 없었다가 주를 이룬다.

그 문제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이런 실수가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  

모두들 말한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한동안 지쳐서 말 안하고 넘어가면 문제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니 말을 안 할 수 없다.

 

그래서 판정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끝내고 나오는데 산업위생사 선생님이

직업성 천식 두 건의 원인를 찾기 위해 작업장 방문일정을 잡으라고 했는데 아직 안 잡았다고 한다.  사전미팅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썰렁하게, "잡으세요,  가서 해결합시다" 답변하고 돌아섰다.

 

오~ 이런 긴장에서 당분간 해방된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행정계장님이 직원들이 나떠난다고 밥사준다고 7월 3주경에 일정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회식알레르기가 있는 뻐꾸기, 그건 받아야 할 잔이기에 싫다고는 못했지만 그냥 차나 한 잔 했으면 싶다. 

 

후임자는 나보다 덜 힘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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