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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의 어려운 점

 

  오늘 검진한 곳은 작업장 내에는 심각한 유해인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나, 전체적으로 화학물질 취급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곳이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서를 읽어보니 불필요한 유기용제 노출이 방치되고 있었다. 독성이 그리 강하지 않은 유기용제라 더 소홀하게 취급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가 여러 다른 회사에 직원을 파견해서 장비를 설치, 유지, 보수 하는 일을 하는데, 문제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파견근무지에서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부서는 일단 두 개로 파악이 되었다. 발암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데, 파견근무 회사의 특정 공정에서 작업을 하면 냄새도 심하고 머리도 아프고. 어지러운 증상이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마스크만 쓸 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호흡용 보호구는 지급되지 않고 원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하청업체의 입장에서 지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상황. 일단 작업시 노출정도를 가늠할 수 있게 업무일지라도 정확하게 쓰면 좋겠다 싶었다. 그 중 일부는 소음에 노출이 되고 있었고, 경도의 난청 소견자도 두어 명 있었다. 시간을 두고 차근 차근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하지만 경험상 하청업체에서 자신의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다.
 
     장시간 노동과 마감압박에 시달리면서 근무일의 80%이상을 12시에 퇴근하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그 중 혈압이 높거나 비특이적인 증상이 여러 개 있었던 사람들과는 과로의 건강에 대한 위험을 설명하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정중하게 초과근무 거절하는 방법, 집에 가서 일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방법,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개인적인 노력 등)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무쇠인 줄 알고 일하는 경우가 많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에 허덕일 때가 많다. 최근에 검진했던 날 중 하루에 한 두명은 그런 사람을 꼭 만나게 된다.  개인의 특성 요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감의 압박이 유독 심한 하청업체의 특성이다.  원청과의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기일엄수를 해야 하니, 자연히 무리가 따른다.
 
  노트북 사용자가 많았고 어깨와 목 통증 호소자들은 어김없이 노트북을 장시간 사용하고 있었다. 작업대, 작업습관 등의 관리방법, 증상 완화를 위한 자가물리치료 등을 각각 설명했고, 내일 검진이 정리되면 사측 담당자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트북 거치대와 키보드 및 키보드 판 설치에 대해서 권고해야겠다. 권고하면 할라나 몰라. 이 회사는 보건담당자의 직급이 낮은 편이라 기대하기가 쉽지는 않다.
 
검진을 끝내고 정리하는 데 출장검진팀장이 와서 다음 주 월요일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노사간에 갈등이 있어서 한 번 연기되었던 것인데, 결국 직장폐쇄를 했다고 한다. 이러다 이 지역 민주노총 사업장 중에 남아나는 곳이 몇 군데나 될 까 싶다.
 
아이가 약간 열이 있고, 아침에 혼자서 집에 남아 있어야 해서 신경이 많이 쓰였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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