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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월요일

 월요일 아침에 출장검진이 있으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이들 아침 차려놓고 먼저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시리얼과 우유, 과일만 주고 얘들아, 추우니까 옷 두껍게 입고 가야 한다 당부를 하고 나섰다.

 
오늘 아침 검진한 곳은 여러 가지 종류의 금속가공유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우리와 보건관리대행 계약인원이 99명인 곳이었는데 검진은 80명 조금 넘게 받았다. 99란 수치는 100명이 넘어갈 경우 의사방문이 연간 4회로 늘어나는 기준이다. 비용은 인원당 산정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지만 의사방문을 선호하는 곳은 100명이 안되어도 100명으로 계약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곳은 99명으로 계약하기도 한다.
 
쨌든 이 곳은 외국계기업으로 근골격계 질환관리가 가장 중요한 이슈이며, 노동조합과 사측 둘 다 합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고, 젊고 똑똑한 노동자들은 회사의 지원하에 헬스클럽에도 열심히 다니고, 나름대로 모범적으로 잘 해나가고 있는 곳이다. 화학물질이나 소음과 같은 유해인자도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는 관심이 덜 가는 곳 중의 하나.
 
기억해둘만한 일들
 
1. 30대 초반의 남자가 세 가지 종류의 금속가공유에 노출이 되는 데, 3년 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침이 시작되었다. 대인관계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만성 기침. 우리 병원 호흡기 내과에 가서 검사해보았지만 천식은 아니고 알레르기성 기관지염이니 약을 좀 먹어보자는 말을 들었고, 의사의 설명이 못 미더워 그냥 생각날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검사도 해 보고 약도 먹고 지낸단다. 3년 전에 내가 작업전후 폐기능 검사를 냈고, 결과는 작업전후 폐기능의 차이가 없었음, 정상‘이었다. 올해부터 금속가공유 취급자에 대해서 매년 폐기능을 검사하도록 제도가 바뀌었으니 정기 검사를 하면서 지켜보되, 우리 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 앞으로 외래를 다니면서 꾸준히 약을 먹어보자고 권했다.
 
2. 80여명 중에 여자는 딱 5명이었고, 회계업무나 일반 사무 등 주로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들어온 사람이 회계팀이었는데 어깨가 아프고 손이 저리다 했다. 이학적 검사를 해 보니 역시 전형적인 목과 어깨의 근막통 증후군이었다. 이 질환은 심한 경우에 통증이 있는 점을 누르면 팔이나 손으로 통증또는 저림이 뻗치는 증상이 있는데, 그역시 뚜렷했다. 물어보니 책상이 너무 높았다.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다하여 키보드와 마우스 판을 낮추고 핫팩을 20분간 한 뒤 스트레칭 체조를 꾸준히 하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근육주사를 좀 맞으라 했다. 주사 맞아도 되요? 하고 눈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호르몬 주사가 나쁘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필요한 주사도 잘 안 맞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뒤이어 들어온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마지막에 나타난 사업장 담당자에게 여성 노동자들의 책상을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검진이 끝나고 돌아와서 전공의 면담을 하는데 노무사가 찾아왔다고 외래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까지 쓰기로 했던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수요일에 주겠다고 했는데, 한 건 더 써달란다. 웬만하면 다른 산업의학전문의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자, 요부 추간판 탈출증으로 이미 산재요양을 했던 사람이 그 위에 또 추간판 탈출증이 생겼는데, 사측에서 중량물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업무관련성을 강하게 부정하여 사정이 어렵다 한다. 일단 자료 두고 가시라 했다.
 
날씨가 추워서 파카를 입고 왔다.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도 있고 해서 마음이 무겁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이 정도 어려운 일이 없는 사람이 있으랴 하면서도 쉽게 지치곤 한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캔디 주제가라도 부르면서 업무관련성 평가서 한 건을 처리하고 모처럼 아카데믹한 일을 좀 해야겠다.  카렌한테 보냈던 초록에 대한 답장이 왔는데, 자료를 좀 더 분석해서 수정해서 금요일까지 보내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본격적인 작업모드로 돌아가는데 여기 저기서 전화가 온다.  종합검진 판정이 밀렸으니 어떻게 좀 해달라는 검진팀장의 말을 듣고 에잇, 내가 내일 할께 하고 말해버렸다.  다들 일이 많다고 궁시렁 거리는 소리 듣느니 그냥 해버려야겠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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