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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이 있어도 산재보상이 어려운 사람들

 

사흘전부터 이틀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고 머리도 아프고 짜증이 많이 났는데, 어제는 아홉시부터 오늘 아침 8시까지 잘 잤다. 모처럼 기분좋은 꿈도 꾸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꿈에서 웃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은 원내검진. 아직 몸이 찌뿌둥 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오늘따라 수검자가 많은 것은 아닌데, 좀 산만하고 바빴다. 길게 이야기할 사람이 많아서 그런 듯.
 
1. 50대 여성. 20년간 식당일을 했고, 최근 3년간은 본인이 경영하면서 조리업무를 주로 했는데, 아침 7시 반에 식당에 들어가면 오후 3시반에야 나와서 잠깐 쉬고 다시 밤 10시까지 일했다 한다. 조리일을 본격적으로 한지 일 년만에 발 뒷꿈치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발 뼈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두어 번 맞은 적이 있다. 장시간 서서 일해서 생긴 병이라 하여 식당을 폐업한지 일주일째. 오늘은 건강진단을 받고 오후엔 정형외과 진료예약을 했다. 전형적인 족저근막염의 증상이고 뼈의 변형도 올 수는 있다. 이주일쯤 지난 뒤 정형외과 진료기록을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소기업 사업주는 산재보험 의무가입대상은 아니지만 원하면 임의가입을 할 수 있다. 만약 폐업을 안 했으면 산재요양신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하자 아쉬워했다. 앞으로는 오래 서서 일하는 것은 안 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서비스업종의 소기업 사업주나 노동자들이 일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건강문제와 그 예방법에 대해서 들어볼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약 30여명이 일한다는, 무슨 화인테크라는, 화학물질 제조 회사에서 특수검진을 받으러 6명이 들어왔다. 한 명은 국적이 한국이고 장비유지보수업무를 하는 젊은 남자, 나머지는 일한 지 얼마 안되는 이주노동자이다. 톨루엔과 IPA 등 유기용제, 절삭유에 노출되는 작업인데 들어보니 환기시설, 호흡용 보호구 지급 및 착용실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3년간 작업을 했다는 우리나라 국적의 젊은이는 초기에는 두통, 어지러움 등의 신경증상이 있었으나 익숙해져서 그런 증상은 없어졌지만 기억력, 집중력 저하가 있다고 했다. 신경행동검사를 하라고 하자 바빠서 못 한단다. 데리고 온 이주노동자들 챙겨서 얼른 들어가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하라고 했는데 우리 과 직원들도 바빠서 못하니 기다려야 한다는 전갈이 왔다. 결국 10가지 검사중 2가지만 검사비를 받지 않고 실시했고, 결과는 정상이었다. 신경행동기능검사는 장기간 추적검사를 해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니, 일단 증상이 있는 초기에 첫 번째 검사 결과를 남겨놓는 것이 좋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검사결과를 설명하면서, 당신은 작업환경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우리 산업위생사 방문시에 작업환경상의 문제점을 자세히 알려주고 개선을 건의할 책임이 있으니 잘 하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검진이 끝나고 그 회사 작업환경측정기록을 찾아서 보았는데, 서류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8시간 평균 노출은 괜찮다는 뜻이다. 그러나 순간 고농도 노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
 
3. 버스운전직 노동자들이 세네명 들어왔었다. 원래 출장검진을 나가는 회사인데 그날 바빠서 못한 사람들이 온 것이다. 바쁜 데 오래 기다린다고 그냥 가면 안되냐고 하는 사람이 있어 먼저 문진을 했다. 10년전부터 목 통증과 간헐적인 팔 저림 증상이 있었는데, 최근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경추 추간판 탈출증이 의심되니 MRI 검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30만원이 아까와서 못 하고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만 받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한 이학적 검사에서도 경추 추간판 탈출증이 의심된다. 특히 안전에 주의하는 작업습관이 있다고 한다. 즉, 백미러를 자주 보기 위해 목을 반복하는 동작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했다는 뜻이다. 업무관련성이 있는 질환이고 산재승인 가능성은 반반쯤 된다. 많이 아프고 필요하다 생각하면 다시 의논하러 오시라 했다.  그는 산재하면 사업주가 가만 있겠냐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일단 백미러를 아주 큰 것으로 바꾸어서 목의 동작을 줄이고 목을 늘려주는 치료(트랙션)을 꾸준히 받아보자고 했다.
 
3. 주로 석박사들이 근무하는 연구소에서 지난 번 출장검진을 못 받은 사람들이 몇 명 들어왔는데, 한 명은 소음성 난청 초기 소견이었다. 입사 1년도 안된 사람이었는데, 석사시절 소음을 많이 들으면서 실험을 했단다. 검사결과를 설명해주고 이건 치료할 수 없으니 더 나빠지지 않게 예방을 해야 하는 질병이라 하니 당황스러워하면서 낙담하는 눈치이다. 다른 한명은 흉부방사선 촬영검사결과가 언제 나오냐 묻더라. 걱정되는 건강문제가 있냐 물으니 담배를 많이 피워서 폐암이 걱정이 된단다. 지금까지 폐암의 예방에 효과적인 조기검진은 없고, 유일한 답은 금연이라 말하고 금연자료를 주면서 담배속의 발암물질에 대해서 알려주자, 무서워서 못 읽겠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결국 받아갔다.
 
4. 만 40세에 받는 생애전환기 검진을 받으러 온 여자가 있었는데, 업무상 술, 담배를 많이 해서 그런지 몸이 안 좋은 것 같다 한다. 직원을 두 명 두고 일하는 카페경영자. 음주와 간장질환에 대한 자료를 꺼내서 좀 길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소기업 사업주의 산재보험 의무가입과 업무상 음주와 관련된 건강문제는 산재보험적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을 했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음주를 최소화하고 담배를 끊는 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데 그녀도 동의.
 
중간에 비정규직 용접사 노출평가를 맡은 산업위생사가 와서 그가 일했던 것과 유사한 작업환경에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 작업환경측정을 부탁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일단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다 찾아서 정리해보자 했다. 유사한 작업에 대한 문헌, 타 기관의 작업환경측정자료 수집 등. 짐작했지만 우리나라의 산업위생학회지에 실린 용접에 관한 문헌들에는 피재자가 일했던 환경과 유사한 것은 없었다 한다.
 
한편 면담을 하러 왔던 환자는 그날 무리를 해서 일주일간 집에 누워있어야 했고 병원에 가서 수액주사도 맞았다고 한다. 살면서 했던 일들은 억지로 기억해서 답변하느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노출의 증거가 부족하니 업무관련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하는데 까지 할 수 밖에 없지. 뭐. 요청한 의무기록이 도착하는 대로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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