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09/10/29

 

  아침에 검진시작까지는 좋았다. 회사가 인적이 드물고 의료기관이 없는 곳에 있다 보니 수검자들의 이런저런 호소가 많아서 시간이 좀 걸렸던 점을 빼면. 검진전에 작업환경측정결과서를 검토하면서 우리 산업위생사가 신경써서 제대로 작성한 것을 보고 흐뭇했고, 출장검진팀이 검진진행이 원활하도록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 주어 고맙고 좋았다.
 
  중간에 날아온 문자메시지가 골치가 아팠다. 오늘까지 최종 연구보고서를 인쇄소에 넘겨야 하는데 발주기관의 상대역이 20가지에 달하는 수정의견을 메일로 보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출력해서 확인해보니 별 문제는 아니었고, 우리가 부주의해서 문제가 된 것들도 있었지만, 이견이 좁혀질 수 없는 연구의 중요한 흐름에 대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연구 상대역과 통화를 해서 조정을 하고 공동연구자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해놓고 오후까지 검진을 계속 하고 이제야 들어왔다. 앞으로 한 시간 내에 파일을 넘겨야 하는데, 아직까지 최종 보고서 인쇄본이 내 손에 없다.
 
   아침에 두통이 있어서 타이레놀을 하나 먹었고, 오후에도 가라앉지 않아서 한 알 더 먹었다. 연구 상대역과 통화하다가 짜증이 나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부분은 어쩔 수 없고 나머지는 법대로 하자 신경질을 냈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과학과 정책 사이에 있는 연구를 하다보면 이런 일 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고 이제는 좀 프로답게 우아하게 해결할 수도 있겠건만, 왜 그렇게 감정조절이 잘 안되는지. 그냥 확 엎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연구비 받은 거 토해내고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법적인 사항을 검토해볼 생각까지.
 
   원래 오늘은 검진이 좀 한가할 것이라 생각하고 산재관련 업무관련성 평가서 두 장을 짬짬이 쓰려고 서류 더미를 두 묶음 가지고 나갔으나 그냥 가지고 돌아왔다. 이걸 하고 집에 가야하는데, 꼼짝도 하기 싫구나.
 
   그래도 적어놓아야 할 것. 적어놓으면 안 까먹고 대처할 수 있으니까.
포장작업을 하는 여성노동자 일곱 명이 근무하는 한 부서가 있었는데, 다섯 명에서 비염과 기침이 있었다. 잘 들어보니 종이먼지를 많이 마시게 되어 발생한 만성 기관지염과 비염으로 추정이 되었지만, 한 두 명은 천식의 가능성도 있는 듯. 일단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면서 증상경과를 보고 필요하면 천식에 대한 수시건강진단을 권고할 생각.
 
   나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안 좋은 상태로 집에 가는 게 싫어서. 아이들한테 늘 피곤하고 힘든 모습을 보이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싫다고, 이대로 늘 아이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어른들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뜨끔하다. 집중해서 하는 일은 더 못하겠고, 그냥 좀 쉬다가 들어가야겠다. 으윽, 달력을 보니 내일도 일정이 꽉 찼구나. 게다가 저녁엔 회식까지, 허거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