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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교섭 외면할 시 충북도와 전면투쟁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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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교섭 외면할 시 충북도와 전면투쟁 할 것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노정교섭 촉구 기자회견 열어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21일 본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충북도가 노정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5-6월 집중실천 투쟁을 선포했다.

 

 

이들은 ‘일자리 만.나.지(만들기, 나누기, 지키기) 투쟁, 비정규직 문제 해결(파견 확대 반대! 비정규직 고용기간 4년 연장 반대), 최저임금 삭감 반대, 화물.덤프.레미콘.학습지교사,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노정교섭 쟁취’ 5대 요구를 밝혔다.

 

이를 위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5월 23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의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최저임금 /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5월 28일부터 6월 18일까지 매주 목요일 성안길에서 집중 선전전을 전개하고, 6월 25일 최저임금 비정규직법 개악저지 충북 결의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충북도청에 도민의 행복추구권과 실업자의 인간존엄권, 건설일용 노동자의 노동권리 보장을 촉구한 바 있다. 충북도청은 노정교섭을 요구한 지 한달여가 되가지만 감감무소식일 뿐이다. ‘노조요구 묵살지대’를 만들려하는 충북도청의 뒷짐행정에 민주노총은 분노할 뿐”이라며 “노정교섭에 대한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르쇠 노동행정’이 길어질수록 ‘노정 갈등지대’는 깊고 넓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5월과 6월 두 달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쉼없는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임을 밝히고 나아가 “노동조합 울타리 밖에 있는 실업노동자, 건설일용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해 노정교섭을 반드시 성사시킬 것임”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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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1 18:08 2009/05/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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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찰 폭력 국가 상대 승소한 사백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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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찰 폭력 국가 상대 승소한 사백기씨

 

지난 5월 16일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의 폭력이 도를 더해가는 상황에서 지난 금속노조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 투쟁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던진 돌에 오른쪽 눈을 맞아 실명한 금속노조 캄코지회 사백기 지회장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부분 승소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사백기 지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당일투쟁속보]

어떻게 부상을 당했나?

2005년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동지들의 투쟁이 본격화 됐다. 당연히 단일 노조로서 투쟁에 나섰다. 그런데 경찰의 대응이 너무 거셌다. 4월 1일 역시 정문, 북문 모두 어마어마한 병력을 풀어놨고, 맨몸으로 어깨싸움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방패와 곤봉을 동원, 짖이겼다. 북문앞에서 도저히 견딜수 없어 젊은 동지들을 중심으로 그 자리에서 사수대를 구성 전경들의 방패와 공봉을 빼앗아 맞섰다. 나 역시 당시 지회장으로서 간부들과 함께 최선두에 서서 투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눈에 엄청난 통증을 느꼈고, 피를흘리며 하나병원으로 갔다가 상처가 엄중해 충북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우안 전방출현, 홍채해리 등으로 우측 눈의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상해를 입었다.

 

소송을 걸기에 많은 부담이 있었을텐데?

명백히 공권력의 폭력에 의한 부상이었다. 경찰특공대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방패와 곤봉을 휘둘렀고, 비무장 상태인 노동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중대한 과잉진압이다. 당연히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송을 걸고 국가와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이후 경찰의 폭력진압이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이고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은 계속 국가의 폭력에 노출되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자문변호사인 홍석조 변호사에게 상담, 소송을 결심했다.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2005년 9월경 대한민국을 피고로 "피고는 원고에게 금 2억1백원 및 이에 대하여 2005. 4. 1.부터 이 사건 판결선고일까지는 연 5푼의, 그 다음날로부터 갚는 날까지는 연 2할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는 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2007년 7월 4일 청주지법 민사11부는 "국가는 사씨에게 1억6천6백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공권력의 무리한 강경진압으로 명백한 국가의 책임이지만, 30%는 불법시위를 벌인 원고에게 책임이 있어 이러한 판결을 내린 거다. 그런데 다시 정부가 항소를 했다. 그리고 2007년 11월 20일 대전고법 민사1부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화해를 권고, 변호사와 협의하여 화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법한 공권력 사용과 불법 파업에 대한 책임을 서로 50% 씩 인정, '국가가 1억1천만원을 원고에게 지급'하는 화해권고를 받아들이게 됐다.

 

결과에 만족하나?

솔직히 끝까지 가보려 했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 공권력 남용에 쐐기를 박고 싶었다. 그러나 변호사와 상의한 결과 대법까지 갈 경우 민사소송의 특성상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 확신할 수 없고, 또한 책임에 있어 조정될 가능성이 있어 대법까지 가는 것이 실효성이 없다라는 판단을 했다. 아쉽지만 절반의 승리로 마무리 했다.

 

지금 눈 상태는?

오른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뿌연 안개속에 있는 것 같다. 왼쪽눈에 만 의존하다보니 무리가 와서 왼쪽 시력 역시 계속 저하되고 있다. 망막기증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비용도 그렇고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정기적으로 치료하며 왼쪽눈을 최대한 보존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불편한 점은?

안압이 올라가면 안된다. 요즘같은 임단협 시기 신경을 많이 쓰고,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때는 눈이 너무 아프다. 안압 때문에 가끔씩 즐기던 술도 못 먹는다.

 

현재 사백기 지회장은 우안의 일부 동공괄약근의 위축으로 시력저하, 동공장애, 망막변성 등이 남아 가동능력 상실율 32%로 영구 장애 상태이다. 불법한 공권력 과잉이 한사람을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 공권력은 반성을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날뛰며 정부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불태워 죽이고, 곤봉과 방패로 토끼몰이를 하고 있다.

 

당일 사백기 지회장은 최선투에서 투쟁했다.

 

당일 이성을 상실한 공권력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가 부상을 입었다.

 

 

2005년 4월 1일 당일 폭도로 변한 공권력 충북 경찰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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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17:59 2009/05/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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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연행과정 화풀이 폭력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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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연행과정 화풀이 폭력 행사했다"

동영상 속 주인공 증언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moduma@cmedia.or.kr)

 

 

5.16 대전 노동자민중대회에서 신병이 확보된 후에도 경찰의 폭력이 계속 됐다는 증언에 이어 동영상이 발견되었다. 동영상 속 주인공이 확인된 만큼 “경찰이 연행자들에게 화풀이 성 구타를 했다”는 증언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체포 이후에도 경찰이 뒤에서 쫓아오며 계속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경은 보이지 않는다.
동영상 캡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본지가 입수한 이번 동영상에서 경찰은 이미 끌려가고 있는 남녀에게 달려들며 방패를 휘두르며 여성의 엉덩이를 군화발로 찼다. 네 다섯 명의 발길질에 끌려가는 흰색 옷의 남자가 휘청거렸으나, 부둥켜안은 남색 옷의 여자를 놓치지 않고 경찰이 끌고 가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본지는 이 동영상 속의 남녀가 바로 16일 연행되었다가 풀려난 김 순자(본지 칼럼기고가) 씨 부부임을 확인했다.

“내가 왜 앞에서 끌려나오냐?”, “후두부 맞은 뒤로 기억 안 난다”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을 본 남편 김 훈(40)씨는 “왜 내가 차량 앞쪽에서 검거당했냐?”며 김 순자 씨에게 수차례 물어볼 정도로 “버스 앞 쪽으로 끌려온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순자 씨는 “남편이 기억이 없었다고 해서 정밀검사를 받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후두부에 주먹만한 혹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엄청 빠졌다. 남편 말로는 후두부를 맞은 이후 기억이 잠깐씩 나지 않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후두부 부위는 종합격투기에서 조차도 공격이 금지된 급소다.

이어 김 씨 부부는 당일 입었던 옷을 직접 입어보이며 “동영상에 맞고 있는 사람이 우리 부부”라고 확인시켜줬다.

 

자신이 맞은 부위와 그날 입은 옷을 보여주며 동영상 속의 주인공임을 확인시켜주었다.(김 훈씨)


당시 김 씨 부부는 집회가 끝난 후 버스를 타려다가, 갑자기 나타난 경찰들에 의해 집단 폭행을 당했다.

김 씨 부부는 “버스에 오르려는데 경찰이 방패로 얼굴 부위를 연이어 찍으려고 했다. 너무 놀라서 차량 뒤편으로 도망갔는데 여기저기서 경찰들이 우릴 둘러싸더니 방패로 찍고 발로 밟았다. 남편이 나를 재빨리 안아서 보호하고 나는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경찰은 ‘야 더 밟아. 이 **들’이라면서 멈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멀리서 달려오더니 날라차기, 여경은 없었다”

이들 부부의 증언과 동영상에 의하면 경찰은 이들 부부의 신병이 확보된 후에도 차량 앞뒤로 끌고 다니며 계속해서 폭행했다.

김순자 씨는 “이송버스로 끌려가는 와중에서도 경찰은 내 엉덩이를 수차례 걷어찼으며, 멀리서 달려온 경찰들이 날라차기로 몸 곳곳을 걷어찼다. 차량 앞뒤로 끌려다니며 곤봉인지 방패인지로 계속해서 가격당했다”고 설명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김 순자 씨는 “수치스러웠고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여경을 봤느냐는 질문에 김 순자 씨는 “우리는 남자 전경들에 의해서 끌려다니고 맞았을 뿐, 여경은 못봤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대전 경찰 관계자는 “16일 집회에 여경이 배치됐긴하지만 얼만큼 배치된 건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연행 과정에 함께 배치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이후 둔산경찰서로 연행되었으며 경찰서로 가는 와중에 미란다 원칙을 고지 받았다. 당시 김 씨 부부는 “왜 우릴 연행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또 폭행당할까봐 무서워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했다. 더구나 이들이 탄 버스가 지나가는 곳마다 경찰들에게 폭행당하는 집회참가자들의 비명 소리에 이들 부부는 더욱더 “공포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는 17일 새벽 2시에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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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11:54 2009/05/2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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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대회 특수고용노동자 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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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대회 특수고용노동자 분노 폭발

 

경찰 정리집회 후 해산하는 노동자 폭력 진압


미디어충청 특별취재팀

 

‘열사의 염원’ 화물연대 총파업 만장일치 가결
“열사의 마지막 외침을 저버리지 말아 달라”


전국운수산업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박종태 열사의 한을 풀자며 총파업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16일 낮2시 대전 정부종합청사 남문광장에서 열린 조합원 총회 안건은 ‘열사투쟁 승리! 화물연대 사수를 위한 총파업 결의’ 단 하나였다.

비가 많이 내렸지만 조합원들은 우비를 입고 자리를 지켰으며, 총회는 박종태 열사의 소개와 대한통운의 투쟁 경과를 설명하면서 시작되었다.

박종태 열사 유족은 “오늘 울분을 토하러 온 게 아니라 화물연대 총파업을 결의하는 자리로 알고 있다. 우리 남편의 마지막 외침, 화물연대 노조를 우리 스스로 지켜내고, 해고된 사람들을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을 여러분들이 해야 한다. 부디 마지막 순간까지 외침을,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 달라.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총파업을 하고 승리해 달라. 그 길만이 우리 가족이 살고 여러분들이 살 수 있는 길이다.”고 부탁했다.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은 "이미 대전으로 모이기 전에 지역별로 인원을 파악하고 총회를 준비해왔다"고 전했다. 당일 화물연대는 조합원 8천명 이상이 참석. 인원의 과반수가 넘게 참석해 당일 총회에서는 따로 성원을 파악하지 않았다.

결의발언을 통해 김 본부장은 "사력을 다해 투쟁하겠다. 열사에게 승리의 꽃다발을 안겨드리겠다. 체포나 구속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는 부산지부, 경남지부, 울산지부, 포항지부, 대경지부, 전남지부, 광주지부, 대전지부, 충남지부, 제주지부 등 전국의 화물연대 15개 지부가 모두 모였다.

 



민주노총, “총파업 앞당겨보겠다”
백기완 선생님, “열사는 금호재벌과 이명박이 죽인 것”


16일 오후3시 전국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총파업을 만장일치로 가결시킨 총회가 끝난 직후 전국노동자 민중대회가 대전 정부종합청사 남문광장에서 열렸다.

민주노총 추산으로 2만 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집회에서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6월 5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을 가급적 최대한 당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임 위원장의 약속에 화물 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되어 5월27일로 총파업이 예정된 건설노조도 “광화문에 모여 한 판 싸움을 만들 것”이라며 화물연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지난 9일 저는 오늘 16일까지 이 문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투쟁을 서울로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지혜롭고 슬기롭게 기다려왔다. 그러나 정부, 금호자본, 대한통운은 지금 이 시간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모아 박종태 열사 투쟁을 승리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민조노총 임성규 위원장이 6월5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앞당겨 보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대전까지 먼 걸음에 나선 백기완 선생님은 “여기 와서 ‘우리 박종태 열사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씀을 하러 왔습니다.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금호재벌과 이명박 정부가 죽였습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람을 죽인 이명박 정부와 금호재벌은 도덕적으로 죽었다. 사람으로서도 죽었고, 인류학적으로도 죽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님




박종태 열사 유족 아내 하수진 씨는 승리하는 싸움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유족은 “승리하는 투쟁을 여러분들이 만든다면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도 참을 수 있다.”고 차분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해 집회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철도노조, 건설노조, 화물연대 등 운수노조는 공동 투쟁을 결의하기도 했다.

집회 뒤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의 지침에 따라 대전 정부종합청사에서 버스를 타고 중리 사거리까지 이동했다. 애초 지침은 정부종합청사에서부터 행진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민주노총은 계획을 변경했다.

민주노총은 현재 조합원들에게 중리사거리에서 행진을 하고 박종태 열사의 분향소가 차려진 대전중앙병원을 거쳐 대한통운까지 행진한다고 공지했다.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 달라”

박종태 열사 유족 아내 하수진 씨 발언





벚꽃이 지기 전에 이 싸움을 끝내고 아이들과 놀러가고 싶다고 남편은 말했습니다. 아직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남편은 지금 싸늘한 시신이 되었습니다. 매년 봄마다 벚꽃 필 때면 꽃들을 보러 다닐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꽃, 그 나무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아직까지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은 일체의 말이 없습니다. 경찰은 공안사건이니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시신에 칼을 대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거부하니 그 시신을 냉동시키지도 못하게 지금 경찰이 막고 있습니다. 지금 시신은, 고인은 점점 썩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그토록 염원했던 그 외침을 저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남편은 아이들의 아빠로, 저희 가족으로, 동지로 남기 위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동지에 대한 믿음을 여러분들이 져버리지 말아주세요. 여러분들이 승리하는 싸움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랬을 때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사랑했던 여러분들을 우리 가족도 믿을 수 있도록 승리하는 싸움을 만들어 주십시오.


 



민주노총은 오후 4시35분 민중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버스를 타고 대전 정부종합청사에서 중리 사거리까지 버스로 이동해 박종태 열사를 모신 중앙병원으로 간다고 발표했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고 영등포 로터리까지 버스로 이동 한 뒤 한강성심병원까지 행진한 뒤 조문하는 격이다. 이어 민주노총은 27일로 예정된 건설노조 총파업 날 서울에서 모일 것을 호소했다.

저녁6시20분경 민중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의 경찰 저지선을 뚫고 읍네삼거리에 위치한 대한통운까지 행진. 대한통운을 앞에 두고 전경과 대치했다. 노동자들이 중리사거리에서 대전중앙병원을 거쳐 대한통운까지 행진하는 도중 골목 곳곳까지 전경이 있었지만 박종태 열사를 목 놓아 부르며 행진하는 노동자들을 경찰은 막지 못했다.




오늘 경찰 병력은 80여개 중대, 민주노총이 집계한 집회 참가자 수는 2만 명이 넘었다.

노동자들은 행진도중 경찰뿐만 아니라 노조 간부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화물연대’라고 쓰인 방송차에 올라가 있던 노조 간부가 마이크로 “싸움을 멈추고 뒤로 와라.”고 방송하자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내가 박종태다”라고 울부짖으며 항의.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전경과 대치했다.




그 뒤 노동자에게 밀려 흩어졌던 병력은 다시 대한통운 앞으로 집결했으며, 경찰은 대한통운 정문을 전경버스를 이용해 가로로 100미터 가량 막았다. 이 시각 의료지원팀은 노동자와 전경이 대치하던 도중 5명의 노동자와 전경 한 명이 경미한 부상을, 한 명의 노동자가 눈이 다쳐 안과로 급히 이송되었다.

저녁8시20분경에는 해산하고 있던 노동자를 경찰 병력이 급습, 속속 연행했다. 그 시각 대한통운 앞에서 마무리집회를 가진 노동자들은 차량이 있는 대전중앙병원 쪽으로 삼삼오오 해산하고 있었다. 전경은 인근 식당으로 들어간 노동자들, 노조 방송차에 들어가 있는 노동자들까지 차량을 부수고 전경이 연행했다.

현재 연행자는 200여명으로 추산되었다.


 

 

16일 저녁 8시 20분경 경찰은 해산하는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이미 귀향버스에 오른 노동자들을 연행하기도 했으며 노조 방송차량을 둘러싸고 유리창을 곤봉으로 부수고 운전자를 무릎 꿇리기도 했다. 또 노동자들이 만장에 사용하고 떨어뜨린 대나무를 주워 노동자들에게 휘두르는 모습이 목격됐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인근 식당까지 쫓아 들어가거나 주변 상가 지하로 내려간 노동자들을 쫓아 내려가기도 했다. 또 시내버스에 오른 노동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시내버스 유리를 부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해산한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와 차량들을 주변 도로와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세우고 연행하기도해 대규모 연행자가 발생했다.

또 경찰은 진압과 연행에 나서며 시위대 중간에서 토끼몰이 식으로 연행하기도 했다.

23시 현재 경찰은 376명 연행 부상자 45명이며 방송차 12대를 압수했고 화물연대 지도부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발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시위중 당일 연행자 수 최고 기록을 보이는 오늘 경찰의 연행 과정에 대해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혼식장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목격했다는 한 시민은 “경찰들이 흥분해서 앞뒤 못 가리는 것 같았어요. 아무나 잡아갔죠.”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인도에서 연행 광경을 목격했다는 또 다른 시민은 “한 사람이 연행되며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나 시민들을 방패로 위협했어요. 인도에 있던 몇 사람이 달려들어 경찰들에게 ‘이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항의하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거리를 지나가며 “사람을 저런 식으로 때리면서 데리고 가는 나쁜 사람들이 다 있냐.”고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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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7 11:06 2009/05/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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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압살 공안탄압 분쇄 충북 대책위 구성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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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압살 공안탄압 분쇄 충북 대책위 구성돼

 

구속자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범민련 관련자 6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10일 발부되었다. 이중 윤주형 전농 충북도연맹 조직국장, 장민경 6.15 충북본부 집행위원장, 오순완 사무국장은 충북지역에서 농민운동과 민간통일운동을 공개적으로 주도적해온 이들이다.

이에 민주노총과 전농,  통일청년회 등 35개 시민사회단체가 '민주주의 압살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충북지역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결성, 이후 투쟁계획을 공포하는 기자회견을 5월 11일(월) 오후 2시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진행했다.

 

기자회견장에는 30여명의 단체회원들과 구속된 3인의 부모님이 참석하였으며, 신장호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번 구속사태가 6.15 합의정신을 위반하고 공안탄압으로 난국을 돌파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꼼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을 대표해 참석한 오순완 사무국장의 아버지 오장근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나는 이 자리에 딸아이를 선처해 달라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이 정부에 경고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연행 당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들은 스스로 경찰임을 밝힌 바도 없다. 살인을 한 것도 아닌데 새벽 6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와 강압적으로 우리 아이를 찾았다. 이과정에서 아이의 70이 넘은 엄마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지금도 그때의 충격으로 아이의 엄마는 거동을 못하고 몸져 누워있다. 또한 딸내미를 그렇게 보내고 내가 어찌 밥을 먹겠냐며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이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제한몸 바친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냐?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대책위원회 이윤석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6.15 평화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공안정국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며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을 무시한 체 막가파식 일방통행만을 해왔던 이명박 정부에 맞서 다시 투쟁의 불을 지필 것"과 이를 위해 "종교계, 민중사회단체,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뜻과 의지를 모아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폭로하고 공안탄압을 분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민간 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대책위는 향후 국정원 앞 1인시위, 참가단체별 플랑걸기, 14일(목) 국정원 앞 저녁 7시 촛불집회 등 투쟁의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편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5월 8일 성명을 발표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국민들이 저항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속에서 군사정권식 공안통치로 전환'하려는 일련의 조치속에 이번 사태가 발생했음을 밝히고 '정치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폐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한 바있다. 또한 '지난 5월 1일 노동절 평화시위에 대해 본부장을 비롯한 5명의 간부에게 경찰의 소환장이 날아왔다'며 '이 역시 공안탄압의 일환'이라고 규정, '충북지역 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공안탄압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의 최선두에 설 것'을 밝힌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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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6:52 2009/05/1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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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부진인력관리 프로그램 퇴출시킬때까지 투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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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부진인력관리 프로그램 퇴출시킬때까지 투쟁할 것

 

12일 복직하는 KT해고자 한미희 동지 인터뷰

 

지난 5월 9일 故박종태 열사 투쟁의 현장에서 한미희 동지를 만났다. 하루 종일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투쟁을 하고 지친 몸이지만 흔쾌히 간단하지만 인터뷰에 임해줬다.

 

 

의외의 복직명령이다. 현재 기분은 어떤가?

당연히 이겨서 복직될 줄 알았다. '복직 아니면 죽음이다' 라는 각오로 투쟁을 해왔다. 이땅에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기 때문에 당연히 복직되었다.

옳다고 해서 시작했으니 왕따 퇴출프로그램이 뿌리 뽑힐때 까지 투쟁할 것이다.

 

다음주 화요일 (7월 12일) 출근이다. 부담은?

당연히 부담이 된다. 또다시 조직적 왕따가 진행될 것이고, 직원들 역시 나를 전에 보다 더 쳐다보지도 못할 것이다. 사실 그런 직원들의 시선이 많이 부담된다. 또한 나에게 직접 고통을 주었던 그 이전의 상사들과 같이 근무를 해야 한 다는 것도 상당히 부담은 된다. 그렇지만 승리해서 들어가는 만큼 그런 시선들, 부담들 훌 훌 털고 당당히 일할 것이다.

 

복직 이후 어떤 각오로 일하겠나?

어렵게 투쟁해서 쟁취한 복직이니만큼 소신껏 열심히 일하겠다. 그리고 이 KT에서 끝까지 투쟁하며 당당히 일해서 내 진가를 보여줄 것이다.

 

오랜시간동안 투쟁했는데 주변의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후배 동지들의 헌신적인 연대 덕분이다. 투쟁을 하면서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동지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게 되었다. 동지들의 연대가 헛되지 않게 KT에서 열심히 일하고 , 동지들과 같이 연대하고, 그리고 꼭 '부진인력관리 프로그램'을 이 KT에서 완전히 퇴출 시킬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

 

반년여의 투쟁. 그 기나긴 고난의 투쟁을 끝내고 한미희 동지는 다시 KT로 돌아간다.

그러나 KT자본이 '쿡'하는 순간 문화가, 세상이 바뀐다는 광고처럼 노동자를 '이윤추구를 위한 부품'이 아닌 '경영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의식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한미희 동지의 복직이 KT자본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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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1:44 2009/05/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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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열사 추모결의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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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열사 추모결의대회 열려

“화물노동자 총파업 투쟁 반드시 사수”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

 

[1신: 오후 2:30]“살려내라 살려내라 박종태를 살려내라”
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 결의대회 참가자 5천 명 이상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철폐, 노동탄압 중단, 운송료 삭감 중단, 해고자 원직복직, 고 박종태 열사 대책위원회’는 9일 오후 2시부터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5천명 이상의 노동자, 시민, 학생들이 모여 대한통운 앞 도로를 가득 채웠다. 대책위는 “전국에서 동지들이 달려오느라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히며, 고 박종태 동지가 즐겨 부른 민들레 처럼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이 어깨를 서로 걸고 민들레 처럼을 부르고 있는 시간, 경찰 병력들은 모의 진압을 진행하고 있었다. 집회 주변은 서울과 경기 등 전국에서 모인 약 8천 이상의 경찰 병력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고, 이중 대한통운 정문 내에 위치한 병력은 입구를 막은 버스 뒤에서 모의 진압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참가자들은 “살려내라, 살려내라. 박종태를 살려내라”며 오늘 투쟁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오후 2시 30분, 민중의례를 시작으로 결의대회가 시작되었다.
한편, 지난 6일 연행된 화물연대 광주, 충남 지역의 두 조합원은 7일 열린 영장실질심사결과 구속 되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2신: 오후 5:00]“고인의 유서대로 악착같이 싸워주세요”
화물연대 16일 총파업 결의 총회 지침 발표


“여보,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있어”
고 박종태 지회장 미망인 “고개 숙이지 마세요. 죄인은 대한통운”


고 박종태 지회장의 미망인이 편지를 읽고 있다. 용산 참사 유족들이 미망인의 낭독을 듣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집회에 참가한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고 이상림 씨 며느리 정영신 씨는 “저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자 동지가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서민이 없으면 저 건물은 어떻게 세워지며 이 나라는 어떻게 돌아가냐”고 운을 떼며 “이 정부는 노동자와 서민을 모두 없애야만 직성이 풀리냐”고 반문했다. 이어 “용산 참사가 100일이 넘었건만 아직도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으며, 고인들 역시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여기 계신 분들이 이제 더 이상 고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 박종태 지회장 미망인 하수진 씨가 검은 상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마음이 떨려 써온 글로 인사를 대신한다는 수진 씨가 크게 숨을 들이셨다.

“여보 오랜만에 불러보네. 우리 아이들처럼 나는 아직까지 실감이 안나. 병원에 걸린 사진을 보면 당신이 튀어나올 것 같아...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지금 보게 되어서 늦었지만 당신 좋은 사람이었다는 거...”

“여보, 아직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걱정하지마. 나 아직 잘 견디고 있고 당신이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어. 당신이 정말 만족하며 편안한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 간직하고 기억하도록, 당신이 가는 길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당신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갈게.”

수진 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문 입술 위로 수진 씨의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수진 씨는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수진 씨는 “한 가정의 가장을 궁지로 몰아넣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밥줄을 끊어 놓는다는 등 길가에서 비키라는 등 헛소리를 하는 저들이 인간입니까, 사람을 죽여 놓고도 잘못 없다는 대한통운, 금호자본은 누구를 위해 아름다운 기업이냐”고 소리쳤다.

이어 “남편이 사랑했던 대한통운, 화물연대 조합원들 죄인처럼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죄인은 저 뒤에 뻔뻔히 버티고 있는 대한통운입니다. 싸워주십쇼. 고인의 유서대로 악착같이 싸워주십쇼. 남아있는 우리 가족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수진 씨의 외침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참가자들은 고개를 들고 “열사의 이어 받아 끝까지 싸우자”고 외쳤다. 무대를 내려간 수진 씨는 한참을 울며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을 바라보았다.

 

참가자들이 눈물을 터뜨리자, 오만근 조합원이 "투쟁 승리 후에 맘껏 울고 지금은 울지 말라"고 외쳤다.


“종태야, 빨리 와. 그렇게 기다리던 동지들이 지금 이 도로를 꽉 채웠어”

박종태 지회장의 발냄새가 그립다 말하는 화물연대 광주지부 오만근 조합원은 참가자들에게 “나는 그 사람이 가정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매일 집회 가고, 한밤 중에 깨어나 옆을 보면 웅크리고 자던 박 지회장, 그 사람이 내게 ‘형 나 양말 두 켤레 만 빌려 줘’라고 말해 그거 쥐어준 게 마지막 이었다”며 “우리가 지회장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종태, 너는 모르지? 우린 종태 너를 기다렸단 말야”라고 소리쳤다.

또 “종태 지회장 네가 그렇게 힘들었으면 ‘형 나 고민있어’라고 말하지, 우리에게 말하지, 왜 그 무거운 짐 너 혼자 지고 갔니. 나는 아직도 네가 저 아카시아 숲 속에서 우리 투쟁하는 모습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자꾸만 그 곳을 바라보게 돼”라며 박종태 지회장이 혼자 짊어진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이어 “기다렸다. 우리 외롭게 싸웠다. 박종태 지회장 빨리 와. 지회장이 그렇게 기다리던 동지들이 지금 이 도로를 꽉 채웠어. 보이지? 빨리 오란 말이야”라며 아카시아 숲을 향해 소리쳤다. 또 손짓했다.

참가자들이 눈물을 터뜨리자, 오 조합원은 “지금은 울 때 아니다. 추모할 때가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승리하지 못하면 추모할 수 없다. 승리하지 않으면 눈물을 보여선 안된다. 승리한 뒤에 그 때 지회장 얼굴 바라보며 맘껏 울고 추모하겠다”고 강조했다.

“종태야, 빨리 와. 그렇게 기다리던 동지들이 지금 이 도로를 꽉 채웠어”,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화물연대 본부장, 16일 총파업 결의 긴급총회 소집 투쟁지침 발표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은 “울지 안으려고 수백 번도 어금니를 더 깨물어 본다. 2003년 4월30일, 저는 화물연대 포항지부장으로 사랑하던 고 박성준 동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해 5월 우리 노동자들의 처절함을 알려내고자 한 총파업에서 고귀한 목숨을 또 잃었다”고 침통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어 “정말 알량한 유로 보조금을 도저히 생활고가 어려워 세금을 납부 못한 화물노동자다. 최소한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 최소한 내 자식이 학교생활에서 최소의 조건을 갖출 수 있는 상황은 지켜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이날 집회에서 김 본부장은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처음으로 투쟁지침을 발표했다. 김 본부장이 “지침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조합원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오는 16일 긴급총회를 이 자리에서 소집하겠다. 안건은 총파업 결의 건”이라 밝히자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김 본부장은 “조합원들이 결의해 준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전술을 통해 대한민국을 멈추어 버리겠다.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이후 참가자들은 고 박종태 지회장이 숨진 아카시아 숲 속에서 상징 의식을 마친 뒤, 고인이 안치되어 있는 대전 중앙병원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3신: 오후 6:30]“화물노동자 총파업 투쟁 반드시 사수”

 

행진하는 참가자들과 이를 막고 있는 경찰/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결의대회 이후 박종태 열사 대책위와 화물연대 광주지부 조합원들은 고인이 발견된 아카시아 숲으로 올라갔다. 그 곳엔 무장한 경찰 병력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를 본 대책위는 “나가! 당신들이 사람이면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나가라고”라며 소리를 질렀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경찰 병력이 뒤로 빠진 뒤, 대책위들은 고 박종태 지회장이 목을 맨 나뭇가지에 투쟁 소원지를 묶었다. 소원지를 묶던 조합원 한 명이 나무를 붙잡고 흐느꼈다. “종태야, 종태야, 종태야.”

이들이 소원지를 묶는 상징의식을 진행하는 동안에 도로에 있던 참가자들은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 박종태 지회장의 사진을 선두로 만장을 세우며 행진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순간, 집회 대오 뒤쪽에서 경찰 병력과 참가자들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화물연대 조합원 두 명이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광주지부 목포지회로 확인된 2명의 조합원 중 한 명은 눈 주변에 부상을 입었고, 다른 한 명은 머리를 다쳤다. 이들은 긴급히 대전 중앙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치료를 받았다. 머리를 다친 조합원은 머리 부위를 세 바늘 꿰매고 나왔으나, 눈 가를 다친 조합원은 부상이 심해 충남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노동자, 그 옆에서 돌을 던지지 말라고 만류하는 노동자 /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이날 참가자들은 순조롭게 고 박종태 지회장이 머물고 있는 대전 중앙병원까지 행진을 마쳤다.

68개 중대로 꾸려진 경찰 병력은 집회 참가자들과 무리한 싸움을 하지 않았으나, 대한통운 주변과 중앙병원 앞 도로를 포위하고 참가자들의 행진을 막았다. 7천여명의 참가자들은 “경찰은 부끄러움도 모르냐, 사람이라면 비키라”고 외쳤으나, 병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무대 근처에 머물던 몇몇 조합원들이 만장으로 경찰 버스를 내리치며 항의 했다.

참가자들은 “16일 화물연대 총회를 다 같이 지켜보고, 만약 이날 화물 노동자들에게 탄압이 진행된다면 우리가 막겠다”고 다짐했다. 또 “고 박종태 동지의 한을 풀고 편안히 눈 감을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빈소 앞에 붙여진 선전물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한 시민이 고 박종태 지회장이 남긴 유서를 읽고 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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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0:52 2009/05/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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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교통 차고지 문제 해결 위해 천막농성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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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교통 차고지 문제 해결 위해 천막농성 돌입

 

주택공사 측 대안제시 없이 “강제철거는 않겠다”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이 주택공사의 막개발에 차고지가 편입되어 정상화의 발목을 잡혔다. 4년여 전 구성원이 임금체불까지 감수하며 경영정상화를 위해 고분군투, 겨우 정상화를 코앞에 앞둔 상황에서 대체 차고지 등 대안이 없이 주공이 택지개발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어 위기에 처했다.

 

 

7일 오후 3시 우진교통은 김재수 대표 및 홍순국 노조위원장이 함께 주택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우진교통은 기자회견문에서 "청주시가 중재한 대책회의에서 주공은 강제수용이나 철거는 없다고 했지만 실질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못했다"며 "이대로 간다면 차고지는 법과 규정 준수라는 미명 하에 주택공사에 강제수용 당할 것"이라며 "차고지가 없어지면 시내버스운송면허가 취소되고 회사는 없어지게 된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 차고지 존치를 위해 수십억원에 이르는 개발부담금을 내라는 것은 한마디로 '나가라'는 것이고, 그렇다고 보상비를 받고 대체부지를 마련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재수 대표는 이어 열린 결의대회에서 “이번 싸움은 우진교통의 싸움이 아니다. 거대 공룡기업과 중소기업의 싸움이자, 개발자본의 이윤추구에 맞선 생존권 싸움이다. 돈줄과 밥줄의 싸움이기에 반드시 밥줄이 이겨야 한다. 모든 우진교통의 구성원이 힘들지만 밤낮을 가리지 말고 투쟁하자. 이번 투쟁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벼랑끝 싸움이다. 승리의 확신을 갖고 동지에 대한 믿음을 갖고 투쟁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한편 기자회견에 이어 홍위원장등은 우진교통 구성원과 가족들의 탄원서를 주공 충북본부장에게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주공 본부장은 “강제수용은 없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문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이에 홍위원장은 “시간끌기 작전에 당하지 않겠다. 우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왔다. 우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해 투쟁하겠다”고 경고 했다.

 

우진교통 차고지 문제 해결은 ‘1) 택지개발 무효화, 2) 존치부담금 감면 등을 통한 현 차고지내 존치, 3) 대체 차고지 이전’ 등이나 1안을 뺀 2, 3안은 막대한 자금이 과 주공과 청주시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현재 청주시는 우진교통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중이나, 주공이 사태해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다.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이 생존의 기로에 섰다. 현재 전 구성원들은 “제2의 용산참사”를 각오하며 투쟁의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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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12:39 2009/05/0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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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故 박종태 지회장 부인 하수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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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정하는 당신이 짠하고 나타날 거 같데”

 

[인터뷰]故 박종태 지회장 부인 하수진 씨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 (moduma@cmedia.or.kr)

 

“오늘이 둘째 생일인데, 아빠의 죽음을 알렸어요. 둘째는 아직 어려서 잘 이해를 못해도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건 알아요. 첫 째는 알긴 아는데 자기가 못 받아들이고 있어요. 아빠가 장난하는 거 같고 나중에 짠하고 나타날 거 같다고…….”

“여보! 당신 곁에도 동지들이 있고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혜주와 정하가 있잖아. 너무 힘들어서 잠시 어딘가에서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을거라고 믿어"

6일 대전 중앙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만난 하수진(38. 고 박종태 씨의 부인) 씨가 아이 생일 날 아빠의 죽음을 알렸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혈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얼굴 위로 눈물이 흘렀다. 수진 씨는 조용히 눈물을 찍어냈다.

고 박종태(38) 씨는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으로 3월 16일부터 택배 노동자 78명을 집단해고 한 대한통운에 맞서 파업투쟁을 진행해 왔다. 그러다 지난 4월 29일 아침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는 글을 남기고 사라진 뒤, 30일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조직을 사수할 수 있다면, 투쟁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면 바쳐야지요. 무엇이든지..”라며 자신의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남겼다.

수진 씨는 “별 일이 아니길 바라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하고. 왜 네가 꼭 그래야만 했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조합원들에게 남긴 글이나 인터넷에 올라온 글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길 바랬어요. 혹시 아이들 이야기 하면 마음 돌리지 않을까 해서” 글도 남겼다.

수진 씨는 “여보! 당신 곁에도 동지들이 있고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혜주와 정하가 있잖아. 너무 힘들어서 잠시 어딘가에서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을거라고 믿어”라고 말하며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단다.

그러나 박 지회장은 그로부터 3일 후 대한통운이 마주 보이는 야산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수진 씨는 10살, 7살의 두 남매에게는 차마 아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다가 7살 아들의 생일인 6일, 아빠의 죽음을 알렸다.

 

"당신은 내 친구였어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 내가 아플 때, 어렵게 투쟁할 때, 길을 잘못 가거나 힘들어 할 때,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소중한 친구 말야. 잘나가지도 못한 나에게 당신은 항상 힘이 되고 의지할 등받이였어"


한 조문객이 커피와 맥주를 한 캔씩 따서 박 지회장의 영정 사진 옆에 올려놓았다. 이를 본 수진 씨가 “커피는 잘 모르겠는데, 술 참 좋아했어요. 사람도 좋아하고”라며 또 다시 눈물이 맺힌 눈가를 찍어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학교 다른 동아리에서 만났지만, 동갑이라서 자주 보다보니 친해져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는 수진 씨는 지금 당장이라도 두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박 씨가 들어설 것 만 같다고 한다. 웃으며 돌아와 장난이 심했지라고 말하며 할 것 같단다.

눈물과 서러움을 몸 가득 끌어안고 앉아 있던 수진 씨는 “자살로 보일수도 있지만, 사회적 타살이예요. 대한통운과 정부 그리고 경찰에게 항의의 표시를 한 거지, 자살 아니예요. 그래서 경찰 부검도 거부하고 있어요”라고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세상 원망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래도 남편은 우리 아이들을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게 하려했다는 걸 믿어요. 남편의 빈자리를 누가 대신 해주겠냐만은 우리 가족들이 이겨내야죠. 다른 분들도 아픔은 어쩔 수 없어요. 다들 이겨내야죠. 살아있는 많은 분들이 지금 함께 나누고 있는 뜻 이룰 때까지 항상 함께 해야죠.”

눈가에 눈물이 맺힌 수진 씨가 고개를 돌렸다. 수진 씨의 시선이 닿은 그 곳엔 영정사진 속의 박종태 지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 박종태 지회장이 가족에게 남긴 유서

1.
사랑하는 친구 수진에게

당신은 내 친구였어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 내가 아플 때, 어렵게 투쟁할 때, 길을 잘못 가거나 힘들어 할 때,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소중한 친구 말야.

잘나가지도 못한 나에게 당신은 항상 힘이 되고 의지할 등받이였어, 못 먹고 못 입고 맘 편히 나들이 한번 못가는 재미없는 10년 결혼 생활 견뎌줘서 고맙고 미안해... 어찌 보면 응석받이라 해도 탓하지 못할 만큼 당신 앞에선 왜 이리 작아 보이든지, 그래서 당신 앞에서 오기피우고 자존심을 세웠던 거 같네.

항상 미안하다고 하면서 또 미안하다고 해야 할 거 같애.
내 삶이 여기까지 인가봐 아니 사랑하는 당신과, 어여쁜 혜주 정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보네. 쉼 없이 걸어왔던 노동운동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희망을 만들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과 인연도 여기까지 인가보네.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 잘 놀아 주지도 못해 아빠가 안들어 오는게 좋다며 장모님을 더 찾는 정하가 아예 아빠를 영영 잊어버릴까 두려워 아빠가 없어 심심하다는 예쁜 혜주가 학교에서 기죽고 살지나 않을까 두려워.
항상 어머니 이상으로 미운 동생 뒷바라지 했던 누님이 쓰러지지 않을까, 큰형과 형수님이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까 걱정돼서 두려워.

하찮은 존재인 나의 죽음이 결국 수천만중의 한사람으로서 취급되면 안되는데...
여보 하지만 짧은 생각에, 아니 착각인지 몰라도 본부와 동지들이 이번 싸움에 개입하고 힘을 모을거라 믿어.

말이 막히네 원래 내가 말주변이 없잖아.
당신이 잘 하는데 그치..
전화하면 항상 말문이 막히는 건 나고 당신이 계속 애기 하던거 알지? 그건 그만큼 당신이 나에 대해서 관심갖고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일거야.

내 좋은점 보았다면 잊지말고 간직해줘.
혜주 정하가 눈에 밟혀 뭐라고 애기하지?
정하야, 혜주야 아빠가 없더라도 기죽지 말고 엄마가 울지 않게 늘 엄마 곁에 있어야 됀다.
엄마가 건강도 좋지 않은데 힘들지 않게 엄마 보살펴 줘야 된다.
항상 그랬지만 혜주하고 정하는 든든한 내 아이들이자 친구야.

여보 이제 가야돼.
앞뒤 안 맞는 글 몇자로 엄청난 일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십수년동안 이해해
주며 살았듯이 마지막 나의 선택을 받아 주었으면 하네.

사랑하는 수진씨 그럼 안녕

- 못난 남편 어린 친구 종태가 -...

2.
몇시나 됐을까
닭발에 소주한잔 마시는데 온 몸이 부르르 떨려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 좋은 것은 생각 안나고 나쁘게 산것만 떠올라 정말 미치겠다.
낮에 계룡산에 갔었어, 맘먹고 올라갔는데 당신한테 말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종이하고
볼펜가지고 다시 내려왔어 경찰한테 힘없이 밀리는 동지들을 지켜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보니 박종태 별거 아닌데도 지켜보는 조합원들 보니

여보 미안해! 사랑해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야
죽음의 문턱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을 나의 생애 최고의 여자요 친구였어
박종태란 못난 남편을 빨리 잊어

3.
2시 45이네
내가 맘을 잘 먹은 걸까 정말 내가 죽어서 조직이 지켜지고 쫗겨난 조합원들이 눈치 안보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조합을 잘 간수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지?
본부가 나를 일개 조합원으로 일개조합원으로만 보지 않고 최선두에서 나서겠지?

애들한테 말하고 싶은게 진짜 많은데...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 나 진짜 농장하고 싶었거든
당신은 아닌데, 나는 그랬어 평온해.
이제 안쓸거야 하고 싶은 말이 막 생각나도 참을께, 해봐야 소용없으니까.

당신 우리 애들 생각도 육체도 건강하게 키워줘, 할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주문 오는 손님들한테 보낼 닭발 열심히 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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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11:14 2009/05/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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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충북 통일단체 사무실 압수 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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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충북 통일단체 사무실 압수 수색

 

국보법 위반 범민련 유관단체로 지목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

 

7일 국정원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와 지역 사무실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한 가운데, 충북 지역에서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충북본부와 청주통일청년회 사무실을 압수 수색 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충북본부 장민경 집행위원장이 연행되고 있다


청주통일청년회 송영현 회장이 압수 품목이 적힌 서류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은 이들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범민련의 유관단체로 지목하고 핵심간부 3인을 새벽에 연행했다. 이날 연행된 이들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충북본부 장민경 집행위원장과 오순완 사무처장,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윤주형 조직국장이다. 이들은 이날 새벽 자신의 집에서 강제 연행되었다.

경찰청은 장민경 집행위원장을 동행해, 이날 오전 7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충북본부와 청주통일청년회 사무실을 전격 압수 수색했다. 수색은 오후 12시 30분까지 진행됐으며, 총 472개의 품목을 압수했다. 압수 물품은 통일 관련 단어가 들어간 문서와 사진, 수첩, 지도 등이다.

수색이 끝난 뒤 장 집행위원장이 국정원의 차량에 탑승하자, 회원들은 몸으로 격렬하게 막았으나 경찰에 의해 차량은 떠났다.

압수당한 물품을 국정원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6·15공동선언 충북본부와 청주통일청년회들이 집행위원장이 탄 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연행자가 탄 차량을 막으려는 회원을 경찰이 도로 쪽으로 끌어내고 있다.


회원들은 이날 오후 1시 청주 국정원 앞에서 충북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와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연행된 3인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4·29 재보선 참패와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에 대한 전국적 분노를 호도하려고 표적으로 삼은 것”이라고 분개했다. 이어 “군사시절의 무한권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정권을 유지하려는 이명박 정부와 국정원, 보안수사대”를 규탄했다.

청주통일청년회의 한 회원은 “사라진 국보법을 이명박이 살렸다. 어버이날이 내일 모레인데 가족이 보는 앞에서 연행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들은 오후 4시경, 변호사와 함께 연행자들의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또 충북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를 만들어 함께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집기 일체등이 사라진 사무실을 바라보고 있는 청주통일청년회 송영현 회장


충북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연행된 3인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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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11:12 2009/05/0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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