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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태관련 독일 언론-FAZ

현재 진행중인 일본사태관련 이런저런 논설을 찾아 다니는데, 뼈아픈 논설이 하나 있다. 독일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프랑푸르트 알게마이네 짜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의 발행인 프랑크 쉬르마허(Frank Schirrmacher)의 글이다.

 

지난 목욕일 독일 제2국영방송 ZDF의 뉴스 <Heute Journal>에서 방영된 일본사태관련10분짜리 영상보도를 극찬하는 글이다. “아포칼립스적인 [상황에나 어울리는 말들이 난무하는] 라이브 티커 앞에서 모든 집중력을 상실하고 그저 멍하게 바로 보고 있는 우리에게” 뭔가를 명료하게 해주는 보도였다는 것. 그 영상보도가 보여준 것은 다른 보도와 다를 바가 없는데, 영상에 겹치는 일본특파원 게르트 안할트(Gert Anhalt)의 잔잔한 말의 내용이 달랐다는 것.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 폐허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여주는 장면에 “그들이 예전에 일으켜 세운 나라가 이젠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더 이상 도울 수가 없게 되었다. … 이들이 바로 예전에 일본을 재건했던 세대다. 대참사가 가져다 준 폐허에서 비극적으로 그들의 생이 지금 원점으로 되돌아 가고 있다.”

 

쉬르마허는 이 코멘트가 심금을 울린다고 한다. 재앙이 이토록 크면 망가진 자기 삶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생을 지배해 왔던 논리가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게르트 안할트가 보여준 것은 우리가 어쩌면 머리로만 알고 있는, 인간의 삶이 “공기, 물, 먹을 것, 그리고 열이란 원초적인 조건”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재앙을 당한 일본사람들의 삶이 물리적으로 그런 원초적인 상황으로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앵커맨 클라우스 클레버(Klaus Kleber)의 “구조는 어떤 수단보다 더 오래된 수단, 즉 물로 한단다.”라는 코멘트는 이런 뼈아픈 통찰에 도장을 찍는 말이라는 것. 자연의 힘이 나중에 일어날 일에 절대 자신하는 기술과 함께 우리가 의지하는 것, 이념 혹은 신념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과 살아온 발자취를 몽땅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어 프랑크 쉬르마허는 이런 통찰이 그저 “분위기”로만 지나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을 라이브 티커와 실시간 동영상에 매달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법에 따라 소비하는 것을 겨누어 원전은 과도가 아니라 끝장이 나야 한다고 (“Kein Übergang, ein Ende”) 한다.

 

후쿠시마와 같은 사태와 마주하는 지금 „과도“니 „가교기술“이니 하는 것은 진부한 것이라는 것.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는지 안 하는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두려워하고,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실재하고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 지난 목요일 <heute-journal>이 이런 진리를 증명했다는 것. 즉 „실수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강제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과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일으키는 순환을 스스로 중단하여 끝장을 보는 것“이 필수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이런 실수는 업데이트나 차후보안으로 지양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에게 남은 일은 이제 원전이 „더 이상 과도가 아니라 끝장“이라고 종지부를 찍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글에 메르켈 정부가 견딜 수 있을까 한다.

 

자료출처:www.faz.net/s/RubB08CD9E6B08746679EDCF370F87A4512/Doc~E3C3F2F3178964159AC700871C7415730~ATpl~Ecommon~Sconten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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