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백형근님의 "성을 매개로 한 여성 또는 남성의 행위가 노동일 수 있는.."에 대한 답글


현실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둘로 구별될 수가 있겠다. 하나는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에 침몰하는 접근이라고 하겠다.

 

맑스의 사상은 철저한 이데올로기비판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첫째와 같은 현실접근을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한다.

 

성매매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어떤이는 절대적이고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주 홀가분한 접근이기도 하다. 혁명이 가져다 주는 정체된 상에 기대어 성매매를 다루기 때문에 성매매의 현실을 들여다 볼 필요도 없고 그것을 서술할 필요도 없다. 혁명이 가져다 주는 절대사회상 아래 성매매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도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성매매 현실에 직시하고 거기에 침몰하는 접근은 짐이 많다. 경험세계에 들어가 법제 등 구체적인 사항을 요구하기 때문에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 요구사항이 합목적적이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이것은 성매매 현실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결론지을 일이다라는 것은 제쳐놓고라도 이런 현실적인 접근은 최악의 경우 성매매를 다루는 모든 구체적인 것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추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은 예를 들어 감옥수가 감옥에서 노동을 할 때 임금을 줘야 하는가, 줘야 하면 얼마나 줘야 하는가 하는 것과 같은 아주 보잘것없는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 예를 들어 1998.7.1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BVerfG, 2 BvR 441/90, http://www.bverfg.de/entscheidungen/rs19980701_2bvr044190.html)이 그런 내용이다. 감옥수의 시간당 임금이 당시 1.5 마르크였는데 이것이 기본법 11(“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다.”)에 명시되어 있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한 판결이다.

 

진보 또는 좌파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현실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이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