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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복지국가 담론
"현대자동차 가서 농민들 보상금 내라고 하면 줄까? 삼성전자 가서 제약 회사에 보상하라면 내놓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희생당하는 분야의 사람들을 보장할 수 있는 일괄적인 장치를 만들어줘야 최악의 상황만을 면할 수 있다. 그 장치가 바로 복지 국가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320025351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묘하게 2012년 새누리당 선거공약과 1961년 독일 사민당 선거플래카드와 겹친다.
그리고 여기 진보넷 hongsili님의 „이번 총선과 대선을 지나고 나면 '일단' 87년 체제는 문을 닫지 않을까 싶다.“라는 예견이 오버랩된다.
독일 노동운동에 뿌리한 독일 사민당이 1961년 총선에서 „복지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1969/1972년 정권교체의 바탕을 깔았다.
한국 2012.4.11 총선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겠지만,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복지국가“로 귀결될 것 같다는 느낌을 뿌리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박근혜의 몫으로 돌아갈 확율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1987년 노동자세력을 정치화했다는 자칭 좌파는 무능을 자인하고 깃발을 내리고 사라져야 겠다.
근데, 총선.대선을 넘어 한국의 복지국가 담론이 지속될 수 있을까?
2. 독일 신자유주의의 불평등 담론
주지하다시피 70년대 서구의 제국주의적 경제성장이 석유파동 등으로 공황에 빠져 복지국가모델의 전제가 되는 경제성장이 제자리 걸음하고 구조적 실업층이 형성되고 물가는 지속 상승하자 복지국가모델이 전면 비판을 받고 신자유주의적 메커니즘이 도입되었다. 복지국가(평등) 담론이 자유담론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서독 주요 정당의 1976년 총선 플래카드는 이랬다.
기민당: 사회주의 대신 자유 사민당: 사회안전을 통한 자유증대 자민당: 능력을 택하라
복지국가모델 비판으로 여론의 주도권을 장악한 독일 신자유주의자들은 1982/3년 기민/기사연합/자민당 연정으로 차기 정권을 창출하고 1998년 사민당/녹색당 연정하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이르기까지 복지국가모델의 다양한 요소를 폐지하고 신자유주의적 요소로 대체했다. 그러나 사민당 슈뢰더 총리의 아젠다 2010 개혁은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2005년 흑.적 연정에 의해서 마무리되었다. 아젠다 2010 반대세력이 사민당을 탈당하고 일부 노동자평의회 세력과 함께 „노동과 사회정의 선거대안“(WASG)이란 당을 만들고 이어 민주사회당과 합당하여 좌파당을 결성하게 됨으로써 슈뢰더 총리가 지지기반을 상실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민당의 분열로 일련의 주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고 그 결과 독일 상원에서 다수를 차지한 야당이 여당의 입법활동을 봉쇄하자 슈뢰더는 „건설적 불신임“을 악용해 연방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치렀는데 결국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이 연정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2009년 총선이 실시되었다.
근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질 거라는 예상이 적중하지 않았다. 사민당은 예상했던 데로 무려 11.2% 포이트를 상실하고 23%로 떨어져 국민정당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걸맞지 않는 정당이 되어버렸다. 반면 득표율이 10% 미만이었던 신자유주의 순정파 자민당은 14.6% (4.7% 포인트 상승)를 득표하여 기민/기사연합과 연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사민당은 자신을 배제한 연정구성 불가능화라는 전략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지속으로 신자유주의파에 대한 지지가 와해되면서 자민당 지지율은 2%정도로 떨어지고 [일본 원전사고/주민의 참여민주주의 운동 고조 등으로 ] 주차원에서 녹색당이 정권을 창출하고, 해적당이 베를린 의회에 입성하는 등 정치판도는 좌파진영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3. 신자유주의의 자유 담론 – 가우크
이런 상황에서 가우크의 자유 담론이 등장한다. 복지사회 개편을 앞두고 70년대 중반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우선 가우크가 대통령이 된 배경을 살펴보자.
호르스트 쾰러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국제통화기금 총재 출신이며 재무부 차관을 지냈던 호르스트 쾰러는 2004년 당시 자민당 당수였던 기도 베스터벨레가 만든 대통령 후보였다. 베스터벨레의 부엌에서 메르켈과 베스터벨레가 회동하고 차기 정권 창출의 신호탄으로 호르스트 쾰러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해진다.
독일 대통령은 말 외 다른 힘이 없다. 호르스트 쾰러는 2005.3.15 „자유의 질서“(„Die Ordnung der Freiheit“)란 제목의 연설에서 일자리 창출을 제1정책으로 책정할 것을 요구하는 등 신자유주의 요구에 부응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해있는 노동시장에 독일에서는 지금 고용창출에 우선권을 주는 규정이 필요하다. 경쟁력 있는 일자리 창출과 보장에 기여하는 일이 행해져야 한다. 이것에 반하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 다른 목적들에 기여하는 것은, 그것들이 아무리 바람직한 것들일지라도, 나중에 할 일이다.“1
그러나 메르켈+베스터벨레가 꿈꾸었던 순수 신자유주의 프로그램(기민당 라이프찌히 르로그램)에 근거한 흑.황연정 구성은 실패로 돌아갔다.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의외로 – 슈뢰더의 막가파적인 도전에 힘입어서? – 분투하여 기민/기사연합과 비슷하게 득표하고 (35.2% 대 34.2%) 자민당이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9.8%에 머물러 흑황연정을 구성할 수 없었다. 반면,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 등 이른바 좌파진영은 과반수를 넘었지만 사민당이 좌파당과의 연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결국 메르켈을 총리로 하는 흑.적 연정이 구성되었다.
2009년 총선 후 드디어 흑.황 연정이 구성되고 , 2009.7.1호르스트 쾰러는 재임했으나
2010.5.31 느닷없이 사임했다. 여기엔 근본적으로는 메르켈이 순수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할 거라는 쾰러의 오산이 원인이었다. 메르겔은 2005년 총선에서 복지에 대한 독일주민의 끈끈한 기반을 확인하고, 라이프찌히 프로그램을 회수하고 사민당에 가까운 정책을 편다. 기민당의 사민당화라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르스트 쾰러의 사임에는 말조심을 하지 않은 것이 불씨가 되었다.
2010.5.22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독일 파병군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이취란트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해버렸다.
„나는 [해외 파병관련]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단순하게 이런 파병의 목적들이 본래 무엇인지에 관한 의견을 우리 사회가 서로 교환하고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다. (…) 우리는 거기서 독일의 안전을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연맹국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다른 국가들과 유엔의 위임에 의거하여, 유엔 결의에 의거하여 싸우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해외파병이 독일에서 반복해서 회의적으로까지 토론되는 것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독일 사회는 지금 전반적으로, 광범위한 차원에서, 파병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같은 크기의 수출위주 국가가,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가 여차하면, 긴급한 상황에서는 독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인 개입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알아야 함을 이해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예컨대 자유로운 무역루트를 지키고 무역을 통해서 일자리와 소득을 확보하는 기회에 틀림없이 부정적으로 다가 올 지역 불안정을 저지하는 일이다. 이런 것들이 다 토론되어야 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그다지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2
입 앞에 떨어진 먹이었다. 괴팅엔 대학 시절 „공산주의 연맹“ 회원이었고, „좌파[경향이 있는] 녹색당원“이 아니라 „녹색당에 있는 좌파“라는 (슈피겔) 평을 받는 녹색당 원내대표 트리틴이 호르스트 쾰러가 „기본법에 발을 내딛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의 칼을 날린 것이 계기가 되었고, 기민/기사연합, 자민당, 특히 메르켈의 어정쩡한 방어에 못이겨 쾰러는 끝내 자진 퇴임하였다.
메르켈은 크리스티안 불프를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사민당/녹색당은 가우크를 맞세웠다. 지금와서는 다들 „내가 가우크를 추대했다“라고 떠들지만 사실 가우크는 전술적으로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 트리틴이 만든 작품이다. 가우크는 트리틴이 제일 먼저 내놓고 녹색당을 설득시키고 사민당에 제안한 후보였다. 정치적 성향상 자민당과 기민/기사연합에 마땅한 가우크를 녹색당이 추대하여 메르켈 여권내 균열을 시도한 것이었다.
크리스티안 불프는 어떻게 보면 출신적으로 사민당에 더 가깝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한 홀어머니를 돌보면서 어렵게 자란 사람이다. 니데 작센주 총리시 정책도 사민당에 더 가까웠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깡 보수 빌트의 집중 공격을 받고 결국 사임하게 되었다. 뇌물수수가 문제가 되었지만… 호르스크 쾰러가 참말을 해서 사임하게 되었다면 크리스티안 불프는 뭔가를 숨긴다는 추궁을 받고 사임하게 되었다.
음모론을 주장할 순 없지만 크리스티안 불프에서 가우크로 이어지는 대통령 교체에서 일정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엿보인다.
자본주의 위기로 갈팡질팡하는, 복지국가레짐하에 증대된 이른바 중산층에게 '정신적 지주'를 주겠다는 프로젝트가 아닌가 한다. 물질적 복지와 함께 좋은 일자리, 승진, 좋은 교육 등 이른바 „positional goods“가 이제 소수에게만 제공되는 사회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치열하게 경쟁하라는 자유를 말하는 프로젝트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지난 3. 18일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 가우크가 한 연설에서 보았듯이 눈가리기 과거에 눈을 맞추고 있는 프로젝트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요일인가“에 1990.3.18 구동독 총선을 회상한다. 독일이 지금 자유가 없어서 선거를 못하는 국가인가? 민주주의 과거를 제대로 회상하려면 1848.3.18 독일 첫 의회를 회상할 일이지.
4. 새누리당이 복지국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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