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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옛날, 그니까 통신과 교통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대에, 그니까 불과 몇 10년 전에, 동국(同國)이 아닌 이국(異國) - 내 나라가 있나? - 에 사는 사람들은 두고 온 것에 대한 서러움이 컸다.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이젠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한국을 드나들 수 있지만, 가버린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어버이날 예배에는 옛날이면 할머니라 불릴 나이에 들어선 여성들이 훌쩍거린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작한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의 음률이 단절되는 틈에 훌쩍거림과 흐느낌이 들어서 박자를 이어간다.
커튼을 치지 않고 산다. 근데 보름달이 뜨면 커튼을 치기에 바쁘다. 짝지가 보면 또 발동을 걸 거여서 그런다. ‘달아, 달아 너는 좋겠다. 너는 내 강아지 볼 수 있어서 좋겠다.’ 가지 말라고 사정했지만 다다를 수 없는 먼 곳으로 가 버린 철부지 딸아이가 보고 싶어서 딸아이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달을 부러워했던 어머니. 그 그리움이 보름달에 붙어서 이젠 짝지를 찾아온다.
발동이 걸리면 한 두 시간 간다. 옛날 시골에서 타작에 사용했던 발동기의 소리다. 처음엔 느릿느릿 시작했다가 한번 발동이 걸리면 그칠 줄 모른다. 어린아이가 되어 엄마를 찾는다. 어린아이의 울음이다. 엄마 얼굴을 한번만 봤으면, 한번만 만져 봤으면.
어쩌다 한번 찾아온 딸아이를 다시 보내면서 뒷골목에서 발을 띠지 못하셨던 어머니. 이젠 나에게도 어머니의 그리움과 뒷골목에서 서성거리시던 모습이 보름달에 붙어있다.
은혜.
하산하는 인생의 길어 접어들고 나서 어렴풋이 은혜가 뭔지 깨달았다. 언젠가 아버지와 불똥 튀기는 언쟁을 하는 중 “니가 내 x에서 떨어져서 그렇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뭣 땜에 언쟁을 했는지는 까마득하지만 너무나 적나라한 표현에 말문이 콱 막혀버린 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자기, 자기실현, 내가 나로부터 나온다는 담론이 횡행하는 시대에 내가 나로부터 나오지 않고 타자로부터 나왔다는 아버지의 적나라한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기원이 ‘나’에 있지 않고 타자에 있다는 것.
나를 만들어준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은혜가 뭔지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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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정이 어떠한 사회적 형태를 취하든 간에 생산과정은 연속되어져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한 주기가 끝나면 다시 [지난 생산과정의] 똑같은 단계를 처음부터 다시 두로 통과해야만 한다. 사회가 소비하기를 중단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바와 같이 사회가 생산하기를 멈춘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생산과정을 그 재개의 끊임없는 연관성과 지속적인 흐름 안에서 눈여겨보면 모든 사회적 생산과정은 동시에 재생산과정(=출발상태의 복구)이기도 하다.(마르크스 《자본론》Ⅰ권 23장, 591) („Welches immer die gesellschaftliche Form des Produktionsprozesses, er muss kontinuierlich sein oder periodisch stets von neuem dieselben Stadien durchlaufen. So wenig eine Gesellschaft aufhören kann zu konsumieren, so wenig kann sie aufhören zu produzieren. In einem stetigen Zusammenhang und dem beständigen Fluss seiner Erneuerung betrachtet, ist jeder gesellschaftlicher Produktionsprozess daher zugleich Reproduktionsprozess (= Wiederherstellung des Ausgangs-zustandes).“)사회적 재생산을 따로 하여 ‘은혜’로 보는 ‘정치신학 비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사회적 재생산을 ‘보이지 않는 손’이 베푸는 ‘은혜’로 보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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