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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본인확인제 위헌결정 이후로도 방통위의 계속되는 주민번호 수집 및 사용 정책에 대해 진정

 

 
http://www.etnews.com/news/contents/internet/2636273_1488.html
위헌 소지 인터넷 규제 아직도 곳곳에... (전자신문, 2012.08.26 한세희기자)
인터넷실명제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사라졌지만 신분을 낱낱이 밝혀야 하는 각종 규제는 여전히 남았다. 공직선거법과 청소년보호법, 게임산업진흥법 등 이용자 신상 등록을 요구하는 각종 규제가 장본인이다. 인터넷에서 시시때때로 자기 신분증을 보여야 하는 `온라인 불심검문`이 계속되는 셈이다. 위헌 소지는 물론이고 네티즌 불편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선거 기간 중 인터넷 언론 게시판에 댓글을 달 때 실명 확인을 거치도록 한 공직선거법 82조 6항이 대표적이다. 일반 게시판에 글을 쓸 때 본인 확인은 필요 없지만, 선거 기간이 되면 다시 본인 확인을 받아야 한다. 4월 총선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계정으로 댓글을 다는 `소셜 댓글`도 실명 인증 대상이라고 밝혔다.
해외 SNS를 통한 의사 표현엔 제약이 없다. SNS 선거 운동을 제한한 공직선거법 규정도 작년 한정 위헌 판정을 받았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에는 족쇄를 채우며 사용자를 해외 서비스로 보내는 꼴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재 판결을 계기로 공직선거법 실명제 조항의 재검토 계획을 밝혔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 접근을 위한 본인 확인을 강화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도 다음 달 시행된다. 공인인증서나 아이핀 등으로 실제 연령까지 확인해야 해 실질적인 `완전 실명제`라는 지적이다. 청소년의 심야 시간 온라인 게임 이용 금지, 이른바 셧다운제를 담은 청소년보호법과 게임산업진흥법도 사용자에 연령 정보를 요구한다. 실질적 본인 확인이다. 최민식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인터넷 댓글 하나에 대한 제약이 풀렸을 뿐, 본인 확인 규제는 인터넷 전반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인터넷 규제가 인터넷실명제 위헌 판결로 영향을 받을지도 주목된다. 여성가족부는 “헌재가 글 쓸 때 본인 확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과 게임을 하기 위한 본인 인증 절차는 무관하다”는 시각이다.
헌재가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강조했고 입법 목적과 법의 실효성 사이 균형, 해외 서비스와의 경쟁 상황 등을 따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실효성 없는 규제를 밀어붙이기 힘들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태언 행복마루 변호사는 “게임 셧다운 등 다른 인터넷 규제 법안의 입법 목적과 표현의 자유 등 이로 인해 제한되는 가치의 균형을 따지는 것이 핵심”이라며 “가정이나 개인의 책임을 국가나 기업에 지우는 과잉 규제는 문제”라고 말했다.
권헌영 광운대 과학기술법학과 교수는 “인터넷실명제 위헌 결정은 다른 인터넷 규제 법 판단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2002년 전기통신사업법 불온 통신 조항 위헌 판결에서 이번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까지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방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2796.html
인터넷 ‘민증 까’ 시절이여, 안녕 (한겨레21 2012.09.03 제926호, 김남일 기자)
[기획] 주민번호를 둥둥 떠다니게 한 ‘인터넷 실명제’ 위헌판결
사고 낸 KT 등은 여전히 주민번호 수집, 주민번호 대체하는 ‘주민번호식 돌려막기’는 한계 역력
주민등록번호가 최초로 ‘유출’된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1968년 11월2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자하동사무소에 부인 육영수씨와 함께 나온 박 대통령은 정종실 자하동장에게서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받아든다. 전국에서 처음, 제1호 발급이었다. 박 대통령은 사진기자를 향해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쳐들었다. 이날치 신문은 박 대통령 주민등록증 번호를 이렇게 전한다. 110101-100001. 육영수씨는 110101-200002. 정일권 국무총리도 이틀 뒤 서울 성동구 충현동에서 주민등록번호 110405-100001을 부여받는다.
스스로 주민번호 ‘유출’한 박정희
당시 숫자 12개로 이뤄진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이 들어가도록 1975년에 일제 갱신된 지금의 13자리 주민등록번호와 구성 방식이 달랐다. 앞쪽 6자리는 지역번호, 뒤쪽 6자리에는 성별 1자리, 개인 일련번호 5자리가 부여됐다.
2006년 7월12일치 <중앙일보>에 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주민등록번호가 그대로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날 한나라당 새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렸는데, 투표를 위해 신분을 확인하는 박근혜 후보의 주민등록번호 520202-2××××××가 투표장 컴퓨터 모니터에 떴다. 사진기자가 이 장면을 찍었고, 모자이크 처리 없이 신문지면에 그대로 실렸다.
아버지와 딸의 주민등록번호 모두 신문에 실렸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아버지 박정희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스스로 공표하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번호 하나로 관리되는 세상이 왔음을 알렸다면, 38년 뒤 그 딸은 아버지 시대가 주조해낸 주민등록번호 유출에 당혹해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거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할 간 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는 인구 동태 파악, 신원 확인과 간첩 색출을 위해 주로 쓰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건당 30원에 주민등록번호가 팔리는 세상도 아니었고, 도용당하면 나도 모르는 통장이 개설되거나 돈이 빠져나가는 세상도 아니었다.
지난 8월23일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이용해 표현의 자유를 손쉽게 억압해온 ‘인터넷 실명제’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관 8명 전원 일치(1자리 공석) 위헌 결정에 따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규정한 조항은 8월23일부터 즉각 효력을 상실했다. 참여정부 막바지인 2007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인터넷 실명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으로 본인 확인을 거쳐야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명예훼손 등 ‘불법 정보’를 걸러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촛불시위로 홍역을 치른 뒤, 이듬해 4월부터 하루 방문자 수 30만 명 이상이던 인터넷 실명제 적용 대상 사이트 기준을 10만 명으로 크게 낮추기도 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시행된 탓에 외국 IT 업계의 조롱 대상이 됐다. 실효성도 떨어졌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폭발적으로 성장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수집할 이유 없는데 수집, 전체의 92.5%
이번 위헌 결정은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여기에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대목이 자리하고 있다. 헌재는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는 모든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 정보를 수집하여 장기간 보관하도록 함으로써 본래의 입법 목적과 관계없이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에 놓이게 하고 다른 목적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으로 공지한 인터넷 웹사이트 수는 2007년 35개에서 2011년에는 146개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사이트가 대상이니, 사실상 모든 주요 사이트에 본인확인제를 통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요구해온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위헌 결정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전세계 인터넷에 이미 유출됐다”며 “정부와 국회는 게임 실명제 등 정보통신망법 외 다른 법률에 산재해 있는 인터넷 실명제를 폐지하는 법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위헌 결정이 나오기 닷새 전인 지난 8월18일부터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는 것이 금지됐다.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한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판촉·마케팅을 목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이용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제한됐다. 네이버·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 업체 등은 쌓아놓고 있는 회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2년 안에 모두 파기해야 한다. 개정된 법은 실명 확인을 해야 할 때는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개인식별번호(아이핀), 공인인증서, 휴대전화 등 대체 인증 수단을 사용하도록 했다. 계도 기간(6개월)이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과 함께 주민등록번호 대량 유출을 초래했던 ‘거점’들이 뒤늦게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를 보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웹사이트는 32만 개나 된다. 이 가운데 수집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이트가 전체의 92.5%인 29만6천 개에 달한다. 정부도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부추긴다. 633개 법령이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허용(2012년 6월 기준)하고 있다. 8141개 정부 민원서식 가운데 3156개(38.7%) 서식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2011년 11월 기준)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주민등록번호가 둥둥 떠다니는 셈이다. 불필요한 주민등록번호 수집은 관리 소홀과 유출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포털 등은 수집 정보 2년 안에 파기해야
지난 7월 이동통신업체 KT 가입자 870만 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해킹으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SK컴즈에서 운영하는 네이트·싸이월드 가입자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밖으로 새나갔다.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게임업체 넥슨도 1320만 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유출시켰다. 2008년에는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1863만 명에 달하는 이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다. 큼직한 개인정보 유출을 산술적으로 더하면 피해자는 7500만 명이 넘는다. 중복 가입자와 일부 암호화된 정보 등을 고려하더라도 전체 인구 5천만 명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은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누군가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살아야 한다. ‘고유번호=특정 개인’이라는,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본인 확인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선 운동을 하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활동가는 “일단 정부가 주민등록번호 사용 금지를 전제로 한 프레임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예외를 두지 말고 민간에서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전면 금지해야 하는데, 개정법은 여전히 대규모 사업자들의 수집·이용은 예외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낸 KT를 포함한 이동통신사업자는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허용된다. 장 활동가는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우리 정부에 권고한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유엔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주민등록제도를 재검토하고 주민등록번호 요구를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엄격히 필요한 경우로 제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주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정 목적으로만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 민간 부문에서의 수집·이용은 모두 ‘근절’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번호 유출 피해자들이 번호 변경을 요구하자 “수십 년간 사용해온 자동차 면허, 부동산 등기, 예금, 보험, 직장 등 각종 공공장부의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필요하다”며 일절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출에 따른 오·남용 문제 해결을 위해 현행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유지하되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증 발행번호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등록번호 대신 발행번호를 사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5월 행정안전부의 이런 방침을 근거로 주민등록번호 유출 피해자들이 낸 번호 변경 소송을 기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8월23일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원화 방안’에 대해 “지난 18대 국회가 끝나 관련 법안도 함께 임기 만료 폐기됐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이원화 방안 도입 여부도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 ‘돌려막기식’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인인증서, 휴대전화, 아이핀은 모두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또 다른 본인신분확인증을 발급받아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이미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도용 위험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지난 6월까지 533만9천여 건이 발급된 아이핀의 경우 민간 신용정보업체들이 발급을 대행한다. 민간업체에 주민등록번호를 몰아주는 것으로, 또 다른 대규모 유출 우려를 낳는다.
“도대체 왜” 1965년부터의 우려
번호로 관리되는 세상에 대한 불안은 주민등록증 도입이 논의되던 반세기 전부터 있었다. “인구 동태의 파악, 간첩의 은신 방지가 주민등록제를 새로 만들려는 근본 목적이라고 그럴싸한 구실을 내세웠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 가운데서 하나도 납득되는 것이 없다. 먼저 전자는, 지금도 전입신고, 퇴거신고제가 각 동사무소마다 정해 있으니 그것으로 인구의 이동을 알 수 있는 일. 다음에 후자는, 원래 간첩들의 신분증 위조 방법이란 기기묘묘하다. …더욱이 한 술을 더 뜬 것은 지문등록이란 괴상망측한 것까지 태동 중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국민을 요시찰인 또는 우범자로 다루려는 것 같은 극히 불쾌한 인상, 심하게 공포심까지 갖게 한다.”(<동아일보> 1965년 12월8일)
시인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번호를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번호들아.’ 내 것이지만 더 이상 내 것으로 남아 있지 않은 주민등록번호 유출을 이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13자리 숫자 바깥을 상상할 때가 됐다. ‘민증 까보자’는 식의 본인 확인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는 말이다.
  
http://act.jinbo.net/drupal/node/7124
방통위의 계속되는 주민번호 수집 및 사용 정책에 대해 진정 (2012년 8월 28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헌재의 본인확인제 위헌결정 이후로도 방통위의 계속되는 주민번호 수집 및 사용 정책에 대해 국가인권위와 개인정보보호위에 권고 요청
- 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제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본인확인제에 의하더라도 가해자가 주민등록번호와 명의를 도용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움”을 지적하며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제가 본인확인의 입법목적 달성에 실패하였다고 진단하였습니다. 또한 “본인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의 노출에 따른 규제나 처벌 등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현재 주로 이용되고 있는 신용정보회사에 의한 게시판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에 의한 본인확인은,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을 수 없는 외국인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재외국민에 대하여 게시판에의 정보 게시를 봉쇄함으로써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에 이르고 있다”고 하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본인확인업무의 문제점 또한 명확히 적시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는 헌재의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본인확인을 위해 이를 유지한다고 해도 불법은 아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본인확인제가 익명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으며, 주민번호 등 본인확인정보 보관은 게시판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왜곡하는 해석입니다. 
- 특히 행정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인확인기관 지정 권한을 이용하여 법상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신용정보업체는 물론 KT와 같은 이동통신사 등 특정 업종의 주민번호 수집과 사용을 계속하여 감싸고 도는 것은 주민번호의 수집과 사용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입법 취지를 왜곡하는 행태임은 물론, 법이 행정부처에게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는 위헌적 월권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 이에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오늘 헌재의 본인확인제 위헌결정 이후로도 방통위의 계속되는 주민번호 수집 및 사용 정책에 대해 국가인권위와 개인정보보호위에 권고 요청을 접수하였습니다.
  
<첨부> 본인확인 등 주민번호 수집 및 사용 정책에 대한 건의 (2012년 8월 28일, 진보네트워크센터)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3조의2 내지 제23조의4에 대하여 개선 권고를 하여 주실 것을 건의합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대하여, 개인정보보호법 제8조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3조의2 내지 제23조의4에 대하여 개선 의견을 의결하여 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원 인
2011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운영하는 네이트와 싸이월드에서 약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데 이어 올해 KT에서도 8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등 최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로부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고 주민번호 보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이 법에 의해 주민번호 수집 및 사용이 제한되는 대상으로, 대규모 유출 사고를 일으킨 KT 등 이동통신사와 신용정보업체를 제외시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휴대전화와 아이핀이 본인 인증에 사용된다는 이유에서 이들 업체들을 본인확인기관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23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제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본인확인 업무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특정 업체들에 주민번호 수집과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위헌적입니다. 특히 이동통신사가 휴대전화 개통과 사용을 위하여 고객의 주민번호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정당성과 법률적 근거가 없는 사적 행위인 관계로, 이를 근거로 정부가 이동통신사를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하고, 같은 이유로 또다시 주민번호 사용 제한의 법적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자의적인 법집행이며 논리의 악순환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인확인기관을 자의적으로 지정하고 이를 통해 법상 의무를 회피할 수 있도록 인정한 정보통신망법 제23조의3 내지 제23조의4 및 제23조의2 제1항 제1호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의적 기준으로 고시를 발표하고 이를 통해 법상 의무를 회피할 수 있도록 인정한 정보통신망법 제23조의2 제1항 제3호 또한 폐지되어야 합니다.
관련 법령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3조의2(주민등록번호의 사용 제한) 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이용할 수 없다.
1. 제23조의3에 따라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받은 경우
2. 법령에서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허용하는 경우
3. 영업상 목적을 위하여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이 불가피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고시하는 경우
② 제1항 제2호 또는 제3호에 따라 주민등록번호를 수집·이용할 수 있는 경우에도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본인을 확인하는 방법(이하 "대체수단"이라 한다)을 제공하여야 한다.
제23조의3(본인확인기관의 지정 등) ① 방송통신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사하여 대체수단의 개발·제공·관리 업무(이하 "본인확인업무"라 한다)를 안전하고 신뢰성 있게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1. 본인확인업무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물리적·기술적·관리적 조치계획
2. 본인확인업무의 수행을 위한 기술적·재정적 능력
3. 본인확인업무 관련 설비규모의 적정성
② 본인확인기관이 본인확인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휴지하고자 하는 때에는 휴지기간을 정하여 휴지하고자 하는 날의 30일 전까지 이를 이용자에게 통보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여야 한다. 이 경우 휴지기간은 6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③ 본인확인기관이 본인확인업무를 폐지하고자 하는 때에는 폐지하고자 하는 날의 60일 전까지 이를 이용자에게 통보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여야 한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심사사항별 세부 심사기준·지정절차 및 휴지·폐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23조의4(본인확인업무의 정지 및 지정취소) ① 방송통신위원회는 본인확인기관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본인확인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명하거나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다만, 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때에는 그 지정을 취소하여야 한다.
1.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본인확인기관의 지정을 받은 경우
2. 본인확인업무의 정지명령을 받은 자가 그 명령을 위반하여 업무를 정지하지 아니한 경우
3. 지정받은 날부터 6개월 이내에 본인확인업무를 개시하지 아니하거나 6개월 이상 계속하여 본인확인업무를 휴지한 경우
4. 제23조의3제4항에 따른 지정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
② 제1항에 따른 처분의 기준, 절차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 유
□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 2008년 옥션에서 약 1,800만 명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데 이어, 2011년에는 SK컴즈에서 운영하는 네이트와 싸이월드에서 약 3,500만 명이, 초중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넥슨의 게임사이트 메이플스토리에서 1,300만 명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는 등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올해인 2012년에도 KT에서 8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등 최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로부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가 약 5천만 명이고 경제활동인구가 약 2,500만명임을 감안하였을 때, 국민 대다수의 주민등록번호가 이미 유출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처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계속되는 원인으로는, 주민등록번호를 식별자로 한 온/오프라인 공공/민간 서비스의 증가와 그에 따른 사회적 이득이 증가해옴에 따라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자 하는 합법적/불법적 욕구 또한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 꼽힙니다.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명의도용이나 보이스피싱 등 2차 피해가 급증하여 사회 문제가 되어 왔고, 보안업계는 대규모 유출 사태 이후 주민등록번호를 식별자로 한 본인확인의 효용성이 소멸하였음을 경고해 왔습니다.
○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3일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5 제1항 제2호, 같은 법 시행령 제29조, 제3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본인확인제에 의하더라도 가해자가 주민등록번호와 명의를 도용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움”을 지적하며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제가 본인확인의 입법목적 달성에 실패하였다고 진단하였습니다. 또한 “본인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의 노출에 따른 규제나 처벌 등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현재 주로 이용되고 있는 신용정보회사에 의한 게시판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에 의한 본인확인은,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을 수 없는 외국인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재외국민에 대하여 게시판에의 정보 게시를 봉쇄함으로써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에 이르고 있다”고 하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본인확인업무의 문제점 또한 명확히 적시하고 있습니다.
□ 정부와 국회에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과 사용을 제한하려는 목적으로 입법이 이루어졌습니다.
○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계속된 후로, 범정부적으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과 이용을 제한하는 법제도 개선이 추진되어 왔습니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상에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나 이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미 보유 중인 주민등록번호도 2년 이내에 파기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을 개정 시행하고 있습니다(제23조의2). 다만 ①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받거나, ② 법령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을 허용하는 경우 ③ 영업목적상 주민등록번호 이용이 불가피하여 방통위가 고시하는 경우 이 법의 예외로 두었습니다.
○ 이 조항의 시행으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주민번호 수집과 이용에 대한 강력한 규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 이와 같은 입법 조치는 지난 2011년 9월 제정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원칙적으로 고유식별정보의 처리를 제한하도록 규정한 조항(개인정보보호법 제24조)이 신설됨에 따라 기존에는 단지 ‘주민등록번호 외의 회원가입 방법’만을 규정하였던 정보통신망법상의 조항 또한 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개정한 측면이 있습니다.
□ 그러나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수요가 큰 업종에 대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법상 의무에서 예외를 인정한 데 대한 국민적 불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 개정 조항(정보통신망법 제23조의2)이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의적으로 본인확인기관 지정(제1항 제1호)과 고시(동항 제3호)를 통하여 법상 의무에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한데 따른 것입니다. 이는 행정기관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을 위헌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하여 이 법의 입법 취지를 비롯하여 개인정보보호법상 고유식별정보의 처리 제한 규정에도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 본인확인기관 예외에 있어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제23조의2 제1항 제1호).
○ 방송통신위원회는 헌재의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본인확인을 위해 이를 유지한다고 해도 불법은 아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본인확인제가 익명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으며, 주민번호 등 본인확인정보 보관은 게시판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왜곡하는 해석입니다.
- 헌재의 결정 이후 민간 차원에서 본인확인제를 시행하더라도 국민들의 익명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고, 특히 본인확인을 이유로 주민번호가 수집사용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이야 말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책무가 되어야 합니다.
- 특히 행정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인확인기관 지정 권한을 이용하여 법상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특정 업종의 주민번호의 수집과 사용을 계속하여 감싸고 도는 것은 주민번호의 수집과 사용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입법 취지를 왜곡하는 행태임은 물론, 법이 행정부처에게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는 위헌적 월권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 I-PIN을 발급하는 신용정보업체들을 법상 의무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으로 온라인으로는 I-PIN 등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I-PIN은 이를 발급하는 3개 민간 신용정보업체가 이 제도의 집행을 위해 국민들로부터 주민등록번호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본인확인용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 그러나 이 업체들이 본인확인용으로 사용하는 이름/주민등록번호 데이터베이스의 합법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 또한 이들 신용정보업체들은 공공정책으로 확보한 본인확인 정보들을 자사 데이터베이스로의 신규 편입 및 이용, 그리고 유료 가입이력관리 등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 가장 큰 문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KT 등 이동통신사를 이 법에서 예외적으로 주민번호 수집 및 사용을 허용한 것입니다. 휴대전화가 본인 인증에 사용된다는 이유에서 이들 기관을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동통신사가 휴대전화 개통과 사용을 위하여 고객의 주민번호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정당성과 법률적 근거가 없는 사적 행위입니다.
- 이들 통신사가 고객의 주민번호를 수집 및 이용하는 통신 실명제를 운영하는 것은 채권추심수단 확보를 위한 사적 관행일 뿐입니다.
- 실제로 이동통신사들은 가족요금할인이라는 명목 하에 가족 중 1인에게 집중하여 명의 변경을 하도록 권장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본인 명의가 아닌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국민이 상당수에 이릅니다. 결국 본인이 원할 경우 본인인증용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주민번호를 제공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휴대전화 명의 설정은 이용자의 사적 선택권의 문제일 뿐입니다.
- 또한 얼마전 KT의 870만 명 이동통신 고객정보 유출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이동통신사의 주민번호 수집과 사용 관행은 개인정보에 대한 대규모 유출과 오남용을 조장할 뿐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고유식별정보의 처리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개인정보보호법 제24조).
- 따라서, 휴대전화가 모두 본인 명의라는 잘못된 전제 하에 정부가 이동통신사를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하고, 같은 이유로 또다시 주민번호 사용 제한의 법적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자의적인 법집행이며 논리의 악순환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국민 대다수의 주민등록번호가 이미 유출된 상황에서 정부 부처가 본인확인수단으로 휴대전화를 권장하는 것은 대포폰 등 명의 도용과 이를 위한 주민번호 유출을 오히려 정책적으로 조장할 위험이 있습니다.
○ 설령 본인확인기관의 지정 제도의 공익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언상의 ‘본인확인’이란, 원칙적으로 대면에 의해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의미합니다. 이때 대면으로 본인을 확인한 후 식별번호를 부여하더라도 본인확인기관에서 고유로 부여하는 식별번호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본인확인기관이 주민번호를 반드시 수집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 이미 대규모로 성명, 주민번호, 휴대전화 번호가 유출된 상황에서, 성명, 주민번호, 휴대전화 번호를 온라인상으로 대조하는 제도는 본인확인 기능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 한편, 고시에 의한 예외에 있어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제23조의2 제1항 제3호).
- 보험사의 경우 금융위원회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이 업종을 이 법의 예외로 인정하였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 그러나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이 불가피한” 사업자를 행정부처가 정하게 하는 것은 주민번호 수집/이용의 문호개방여부를 행정기관에게 허용하는 것으로서 주민번호 수집과 사용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려는 입법 취지를 형해화하고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인터넷 본인확인제가 위헌인 이상,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인확인기관을 자의적으로 지정하고 이를 통해 법상 의무를 회피할 수 있도록 인정한 정보통신망법 제23조의3 내지 제23조의4 및 제23조의2 제1항 제1호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의적 기준으로 고시를 발표하고 이를 통해 법상 의무를 회피할 수 있도록 인정한 정보통신망법 제23조의2 제1항 제3호 또한 폐지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행정기관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으로부터 주민번호 수집과 사용을 제한하고자 하는 입법취지를 살리는 길이며 주민번호 유출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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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mt.co.kr/mtview.php?no=2012082115054567960
9월부터 '이름+주민번호' 실명확인 사라진다 (머니투데이 성연광 기자, 2012.08.22 05:00)
'신용평가기관' 주민번호실명제 확인 조기 중단···"포털 수집 오해·혼란 막는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민번호)로 본인임을 확인해주던 신용평가기관의 실명확인 서비스가 내달 중 완전히 사라진다. '이름+주민번호' 대신 '이름+생년월일+이동전화번호', '이름+생년월일+주소', '이름+생년월일+신용카드번호' 등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21일 방송통신위원회와 업계에 따르면, 포털, 게임 등 주요 웹사이트에서 주민번호를 수집하는 대신 이용해왔던 신용평가기관의 실명확인 서비스가 내달부터 이같이 개편될 예정이다.
이 서비스는 포털, 게임 등 웹사이트 공간에서 이용자가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신용평가기관이 실시간으로 본인임을 확인해주는 방식이다. 이는 인터넷업체가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굳이 저장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 때문에 포털, 게임은 물론 공공기관 사이트에서조차 보편적으로 활용돼왔다.
NICE신용평가정보, 서울신용평가정보, 코리아크레딧뷰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지난 18일부터 인터넷 공간에서 주민번호 수집과 활용을 금지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효됐지만 유예기간이 내년 2월 18일이라는 점을 감안, 그때까지 이 서비스를 지속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인터넷 기업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다는 오해가 발생하자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 이 서비스 조기 폐지를 유도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 온라인 기업들과 신용평가기관들간 협의 중이며, 이르면 다음달부터 주민번호 대신 휴대폰이나 생년월일, 주소 등 매칭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규 회원가입 시 일반적인 본인확인은 자체 휴대폰인증을 주로 활용하되 셧다운제처럼 연령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만 신용평가기관이 제공하는 휴대폰 인증기반의 실명확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식으로 구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20824155112
방통위 “인터넷실명제 유지해도 불법 아니다” (지디넷코리아, 김태진 기자, 2012.08.24 / PM 03:51)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는 일정 요건을 갖춘 사업자에게 일정 의무를 부여했던 것이다. 본인확인을 위해 이를 유지한다고 해도 불법은 아니다.”
박재문 방송통신위원회 네트워크정책국장은 24일 브리핑에서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이같이 말하고, 유지 유무에 대한 판단은 사업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이는 포털 등이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자체가 위헌이 아니라, 이를 정부가 사업자에게 의무화시킨 것을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국장은 “인터넷실명제를 유지하는 법이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본인확인 절차를 유지하라고 할 수 없고 본인확인을 위한 규정은 사업자가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라며 “즉, 헌재 판결의 대상은 정부가 주요 온라인 게시판에 본인확인을 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는 규제에 대한 법률의 효력이 상실된 것이고 의무화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국장은 “전 세계 어디에도 본인확인을 하는 사업자를 위법하다고 보는 국가는 없다”며 “때문에 본인확인이 위법도 아니며 회원가입 절차에 중복가입 등을 위해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사이트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방통위가 언급한 ‘사업자 자율에 맡기겠다’는 의미가 위헌 결정에 따라 인터넷실명제를 폐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가 이를 적용하든 안 하든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다만, 박 국장은 “그렇다고 정부가 사업자에게 의무가 아닌 자율적으로 하도록 권장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자율을 결정하는데 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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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68605
통신사 '주민번호 수집' 허용 논란... 해킹 사고와 무관? (오마이뉴스, 12.08.17 11:51 l 김시연(staright))
방통위, '휴대폰 인증 업체' 예외 인정... 시민단체 "사생활 침해" 반발
오는 18일부터 인터넷상 주민번호 수집과 이용이 금지되는 가운데 '휴대폰 인증' 사업자인 이동통신사는 제외하기로 해 시민단체에서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말 870만 고객들의 주민번호, 휴대폰 번호 등 개인정보를 대량 유출한 KT도 대상에 포함돼 논란이 될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계철)는 17일 지난해 12월 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 18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인터넷 상에서 주민번호 수집과 이용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 거래, 전자상거래 등 법률로 정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포털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민번호 신규 수집을 전면 금지된다. 기존에 수집된 주민번호도 2년 안에 모두 없애야 한다. 방통위에 따르면 국내 웹사이트 180만여 개 중 주민번호를 수집하는 곳은 32만 개에 이르고 이가운데 92.5%인 29만6000개는 주민번호 수집이 불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통위는 현재 폐기를 추진 중인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와 게임 셧다운제 등 본인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도 주민번호 대신 아이핀, 휴대폰,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등 대체수단을 쓰도록 했다. 특히 2011년 현재 가입자가 5250만 명에 이르는 휴대폰 인증을 가장 유력한 대체 수단으로 꼽고 있다.
이를 위해 방통위는 휴대폰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이통사들도 아이핀 발급기관과 마찬가지로 본인인증기관으로 지정해 주민번호 수집과 이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이통사들은 법적 근거도 없이 가입자 주민번호를 관행적으로 수집해 왔는데 정부가 이를 사실상 인정해 주는 셈이다.
김광수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휴대폰 인증을 하려면 먼저 본인 확인이 필요한데 현재 이통사가 주민번호를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바뀐 고시에 따라 이통사에서 본인확인기관으로 신청해 보안 심사를 통과하면 신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유출 사고를 일으킨 KT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김 과장은 "KT 영업시스템은 몇천 개 대리점과 연결돼 있어 보안상 허점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본인확인시스템과는 별개"라면서 "이통3사가 같이 지정을 받아야지 SKT, LG유플러스 가입자만 본인 확인이 가능한 것도 문제"라며 동시 지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동안 사생활 침해를 들어 이통사 주민번호 수집을 반대해온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윤철한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국장은 이날 "휴대폰 인증, 신용카드 등 대체수단은 결제기능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유출되면 주민번호보다 더 큰 피해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면서 "금융거래를 제외하더라도 인터넷실명제, 셧다운제 등 실명확인제도를 폐기해 본인인증제도를 없애는 게 근본적 대책"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실련은 KT 개인정보유출 사고 직후에도 "그동안 이통사들은 고객관리 편의성, 후불제 요금의 채권추심수단 확보를 위해 관행적으로 주민번호를 수집해 왔다"면서 "실명폰과 위치정보가 결합되어 프라이버시 침해,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법적 근거 없는 주민등록번호의 수집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역시 "휴대폰 인증 자체가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면서 "본인이 이용할 의사가 없는데도 휴대폰 인증을 이유로 이통사들의 주민번호 수집을 정당화하는 건 법적 근거도 없고 개인정보보호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방통위에서 '대포폰' 차단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데 대해서도 전 이사는 "선불제가 보편화된 전 세계를 놓고 보면 대포폰이 정상이고 실명폰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면서 "단말기와 이용자 본인 정체성이 일치하면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성이 큰데 스마트폰으로 더 정교한 위치 확인이 가능해져 신체 위험성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2081702010351785001
내일부터 주민번호 수집 전면금지 (디지털타임스, 신동규기자, 2012-08-16 19:50)
금융-의료 등은 제외…기업들 가이드라인 놓고 혼란 예상
오는 18일부터 인터넷을 통한 신규 주민번호의 수집이 전면 금지된다. 하지만 정부가 인터넷상의 주민번호 수집행위를 놓고 산업별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기업들이 주민번호 운용 정책을 놓고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통망법)이 개정됨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고시한 일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를 제외하고는 인터넷상 신규 주민번호 수집이 금지된다.
방통위는 오는 18일부터 6개월간 계도기간을 두고 정통망법 개정안을 집중 계도할 방침이다. 이를 어기고 주민번호를 수집할 경우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또 업체들은 기존에 수집했던 주민번호도 향후 2년 내에 스스로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금융권 등 영업상 필수적으로 주민번호가 필요한 업종에 대해서는 주민번호 수집 및 이용을 허용한다는 방침이어서 업계에서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
김광수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방통위는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통해 금융기관, 신용카드회사, 보험회사는 금융실명거래법 등에 의해 주민번호를 수집하고 영업을 할 수 있다"면서 "금융 이외에도 의료 분야 등 산업을 규율하고 있는 다른 법률에서 주민번호를 요구하고 있는 경우에는 망법 개정안의 예외사항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과 연계 마케팅을 하고 있는 업체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주민번호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주민번호를 둘러싼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현재 망법뿐 아니라 각종 시행령과 고시, 조례 등에도 주민번호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만큼 각 주체가 주민번호 수집을 둘러싼 해석을 놓고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면서 "방통위가 주민번호의 수집근거나 이용범위 등에 대해 각 부처-기관과 연계해 세부적인 이용범위의 가이드라인을 정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주민번호의 대체수단으로 제시한 `아이핀'이 수년째 정착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경호 교수는 "`주민번호 대체수단'이라는 표현을 쓰다보니 꼭 새로운 숫자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인터넷상에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개인 유일성 식별도구'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해주고 기업이나 기관에서 각 상황에 맞는 편리한 식별도구를 채택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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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서평

 

http://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921151037
거대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응답하라, 희망이여!" (프레시안, 심보선 시인, 2012-09-21 오후 6:42:20)
[사회학을 전복한 사회학자]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대학 시절에 읽은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기억하는 구절은 당연히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이다. 그런데 "모든 단단한 것들이 허공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는, 다소 시적이고 음울한 구절이 <공산당 선언>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 구절을 가져와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의 근거로 사용할 때까지 말이다. 바우만에 의해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를 선포하는 와중에 은근슬쩍 유동하는 근대라는 디스토피아를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로 탈바꿈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이제 세계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돌입했다. 소비 사회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래하면서 조직, 경제, 문화, 인간관계 등 여러 사회적 영역에서 그것들을 지탱해주던 '단단한' 규범, 자원, 이해관계, 감정들의 토대는 허물어졌다. 사랑이건, 공동체건, 세계관이건, 소유물이건, 직업이건 간에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until further notice)"만 유효할 뿐이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개인은 온갖 구속과 한계로부터 해방되어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우만은 이런 선택의 자유란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고 말한다. 집단과 전통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삶 전체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홀로 나아가는 개인의 발아래서 유동하는 세계는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바우만은 선택의 자유를 다음과 같은 처지에 비유한다. "얇은 빙판 위의 스케이터가 얼음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는 스케이트를 더 빠른 속도로 지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는 스케이터의 스케이팅을 자유 의지의 발현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현재와 무엇이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지난한 노력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표면적인 것, 더 즉각적인 것에 몰두한다. 그것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부담 없는 임시 정박지와 같다. 예를 들어 살아갈수록 정작 속내를 털어 놓을 만한 친구의 숫자는 줄어드는데 트위터의 팔로워와 페이스북의 친구가 늘어가는 것에 우리는 흐뭇해한다. 하지만 이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리트윗'과 '좋아요' 버튼을 클릭할 때, 우리는 수백, 수천 명과 소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때의 소통이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의 연쇄에 하나의 고리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유사 소통'의 폐쇄 회로에 갇힌 상태에서 불만족으로의 급락을 다시 만족으로 끌어올리는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예전보다 더, 더, 더 많은 클릭을 주고받는 일 뿐이다(주식 시장에서 개미들이 보이는 기민함처럼). 그리고 이런 클릭질의 교환이 결코 끝을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결책은 언제나 임시적일 뿐 본질적으로 무용하고 심지어 더 해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상실한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31쪽)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을 다양한 테마를 통해 변주하면서 현대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불확실성의 문제를 꾸준히 분석해왔다. 지금까지 나온 그의 책들이 다분히 학술적이었다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 펴냄)은 그가 <여성들을 위한 라 레푸블리카>라는 주간지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 동안 두 주마다 써서 보낸 서간체 형식의 에세이를 모아서 엮은 책이다. 원래 책 제목은 "유동하는 근대 세계로부터 온 44통의 편지"이다. 말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내는 44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지금까지 나온 바우만의 책들을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간추리고 요약하여 소개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많은 주장들이 기존의 책들에서 이미 개진된 것들이라 내용이 그리 새롭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번 책은 "사회학적 글쓰기"라는 견지에서 몇 가지 흥미를 끄는 부분들이 있다.
바우만은 이 책에서 인터넷, 테크놀로지, 청년 세대, 소비 문화, 실업, 인종, 도시, 이주 등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그 폭넓은 쟁점들을 해석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유동하는 근대 사회에서 인간이 처한 곤경이다. 공동체로부터 뿌리 뽑혀 네트워크 사회에 내던져진 개인이 직면하는 불확실성,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임시적 해결책들이 야기하는 부작용을 바우만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집요하게, 일관되게 파고들고 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바우만의 능력이다. 정말이지 그는 '르네상스 맨'이라 불릴 만하다. 책에는 사회과학을 비롯해 다양한 인접 학문의 연구들뿐만 아니라, 문학, 동화, 영화, 신문과 잡지의 기사, 하다못해 시중에 나도는 농담까지 등장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바우만 같은 '문화 잡식/포식가' 사회학자를 보지 못했다. 또한 바우만처럼 자신이 섭취한 비학술적 텍스트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학술적 주장을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사회학자는 더더욱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바우만은 '행복을 홀로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비판할 때나, 버락 오바마의 성공 신화를 비판할 때, 동일하게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에 나오는 일화를 원용한다. 그는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사회 구조가 야기한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려는 일체의 노력은 "자신의 가발을 길게 늘어뜨려 잡아당겨서 스스로 습지에서 빠져 나오는 바론 뮌하우젠의 허풍스럽고 황당한 솜씨를 되풀이하는"(186쪽)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 일화는 사회적 질병을 개인만의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무용할 뿐만 아니라 더 해악적이라는 그의 주장에 매우 적절한 비유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집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바우만은 집단적 해결책의 구체적인 조건과 전략을 밝히지 않는다.
바우만은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정부의 통제를 넘어서는 자본의 전횡으로부터 혜택을 입은 소수의 글로벌 엘리트만이 자유와 안전을 확보하고 나머지 대다수 인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 회복 불가능한 궁핍, 치유 불가능한 불안에 치명적으로 노출됐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바우만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지극히 원론적이다. 그는 위기에 처한 인류의 연대를 강조하며, 또한 자본에 대한 전 지구적인 법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개체화되고 파편화된 삶에 결박된 개인들 사이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하며, 전 지구적인 사법 제도는 어떻게 설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정치적 조직화나 중범위 수준에서의 집합 행동에 대해서도 바우만은 일관되게 입을 다물어 왔고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 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바우만은 편지라는 형식을 취한 이 책에서 사회학자가 내놓은 일반적 해결책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가능성, 즉 '우리'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탄생할 수 있는 실존적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에세이는 마지막 두 편의 편지, '운명과 성격'과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이다. 이 두 에세이에서 바우만은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 유동하는 근대 세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독자들에게 시사한다.
흔히 사회학자가 무비판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어 '국론'이라는 말이 그렇다. 국가 전체에 통일된 의견이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에 대해 사회학자라면 반드시 비판적 거리를 둬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사회학자가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인 내면의 수수께끼 같은 자질과 속성이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학의 주요 전제, 즉 사회 구조가 허락하는 가능성의 한계 안에서 행위자의 동기나 행태가 결정된다는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우만은 '영혼'이란 말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성격'이란 용어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성격으로 인한 선택은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일반적인 선택과는 사뭇 다르다.
바우만은 '운명과 성격'에서 네차마 텍의 <빛이 어둠을 가를 때>라는 책을 소개한다. 텍은 홀로코스트의 와중에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남을 도우려 했던 사람들에게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어떤 공통적 요인도 찾을 수 없었다. 사회적 환경, 계급, 교육 수준, 재산, 종교적 신념, 정치적인 조직체, 모든 변수들이 그들의 도덕적 선택과 상관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설명은 단 하나다. 그들의 성격이 "통계적인 확률"을 거스르면서, 모종의 자연스러운 속성의 발현으로 도덕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때 성격은 "체념하는 듯 수용하는 태도와 상황이라는 그 전능한 힘을 거역하겠다는 대담한 결단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고 바우만은 주장한다(380쪽).
여기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원문에서 성격은 '캐릭터(character)'이다. 바우만은 캐릭터라는 용어를 "인간은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라고 말하는 맥락에서 꺼내든다. 이때 캐릭터란 용어는 인생이라는 작품의 창작자이자 등장인물인 인간 행위자 자신을 고유한 개성과 품성을 지닌 인격체로 바라보자는 제안을 내포한다. 성격은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캐릭터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없기에 성격이라는 번역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바우만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성격이 좋은 사람이 도덕적 선택을 한다"는 식의 주장이 아닌 것이다.
나는 행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바우만의 캐릭터 개념을 '자리'라는 개념으로 보완하고 싶다. 달리 말하면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표현과 변화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용소의 간수들, 혹은 농성 중인 노동자와 철거민을 퇴거시키라고 명령 받은 용역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대부분은 인간적 존엄과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이들을 물리적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라도 수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에 '자리를 바꿔서' 피수용자들이나 노동자나 철거민과 '함께' 대화, 식사, 생활을 나누는 경험을 가진다면 그 다음부터 그들은 상부로부터 내려온 진압 명령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그동안 마지못해서 소극적으로 명령을 따랐던 이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더 자신의 양심과 인격에 부합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우만이 말하는 캐릭터, 영웅적 결단과 체념적 수용 사이에 자리를 잡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는 성격이라는 개념은 내가 최근에 친구에게서 들은 또 다른 책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그 책은 에바 포겔만이라는 학자가 쓴 <양심과 용기>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텍의 경우와 유사하게 나치 시대에 위험을 감수하며 타인들을 도왔던 사람들이 소개돼 있다. 포겔만은 이들의 행동을 '선의 평범성'(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표현하는데 쓴 '악의 평범성'과 대조되는)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그들은 어떤 영웅적 희생의식과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저 자기 본성에 맞는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그들에게 선행은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필연적인 행동이었다.
텍과 포겔만의 이야기는 또 다른 수용소 이야기와 만난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는 나치 치하의 수용소에서 상반되는 두 사람을 만나서 혼란에 빠진다. 한 사람은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영웅적 인간인 슈타인라우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용소에 너무나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결함투성이의 인간 엘리아스이다. 그 둘을 보며 프리모 레비는 질문한다.
"이 복잡한 암흑 세계와 대면한 나의 생각들은 혼란스럽다. (슈타인라우프처럼) 정말 체계를 세워서 그것을 실천해야 할까? 아니면 (엘리아스처럼) 체계가 없는 것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나을까?" (<이것이 인간인가>(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58쪽, 괄호 안은 필자)
바우만은 이 책의 마지막 편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에서 카뮈의 시시포스 이야기를 빌려와 레비의 질문에 답을 한다. 슈타인라우프와 엘리아스의 중간에 있는 어떤 성격의 사람들은, 즉 어떤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자기 실존의 그 철저한 부조리에 직면해 있었던 시시포스의 곤경일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 (아무리 지독히도 아주 작은 공간일지라도) 프로메테우스가 발을 들여놓아도 될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는 법"(387쪽)임을, "수용하는 저 행위 자체가 반항으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388쪽)할 수 있음을, 그렇게 '나'의 반항이 '우리'의 존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역사 속에서 입증해 왔다.
사실 바우만은 마지막 편지에서 사회학적 규약을 어기고 있다. 그는 카뮈에 기대어 "반란과 혁명, 자유를 향한 노력들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에 필연적인 측면들이라고"(389쪽)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일종의 '인간 본성론'을 역설할 때 바우만이 행하는 사회학에 대한 약속 위반이야말로 현대의 사회학자가 처한 곤경을 넘어서는 하나의 경로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우만의 글이 수용소와 반항하는 인간으로 끝을 맺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용소화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수용소의 구조 분석이 어떤 효용과 가치를 갖는가? 인간들이 겉으로는 가볍고 유연해 보이는 사회 구조에 옴짝달싹 못하게 예속되어 있으며, 그들이 보여주는 역동성이란 기껏해야 폐쇄 회로 안에서 맴돌고 있는 사회적 원자의 적응 능력에서 기인한다는 빤한 사실을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여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질책하며 일군의 현실주의 사회학자들은 수용소의 통치 영역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능력 있는 전문가임을 자처하며 수용소의 정책을 개선하고 수용소에 갇힌 인간들을 비참으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이 약속은 통치 영역으로 떠났던 사회학자들이 패잔병처럼 처진 어깨로 수용소의 숙소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아오지 않는다면 유능한 테크노크라트가 되어 통치자 못지않은 통치 기술을 과거에 함께 했던 동료들과 피지배자들을 향해 휘두르는 순간 산산이 깨지게 된다.
이때 바우만과 같은 어떤 사회학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암묵적인 약속 하에 외면했던 것들, 평범한 인간들과 사물들, 그것들의 희미한 신호와 움직임, 혹은 갑작스런 분출과 반항에 주목한다. 소위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아웃라이어'로 불렸던 것들, 평균값을 왜곡하는 값으로 도표 상에서 강제로 지워지고 추방됐던 것들, 이제 그것들로부터 은밀히 건네진 편지들을 읽고 그것에 일일이 장문의 답장을 쓰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사회학적 상상력은 출발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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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750.html
외로울 틈조차 없는 세계 (한겨레21 2012.08.27 제925호, 오승훈 기자)
[출판] 끊임없이 온라인에 연결돼 있지만 불안 느끼는 우리 시대 삶의 위기…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우리는 스마트폰 노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카페에서 연인과 함께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온라인상에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고 인터넷 서핑을 한다. 친구를 만나서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도대체 왜 만난 것일까? 트위터 팔로어가 늘어날수록 한편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왜일까? 실제 흐르는 시간과 같은 시간을 일컫는 실시간(實時間)은, 이런 의미에서 실시간(失時間)인지도 모르겠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자발적 선택으로 말살한 프라이버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비단 시간만은 아니다. 인터넷, 트위터나 페이스북,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속을 시도하는 우리는 외로울 틈조차 없다. 알랭 투렌과 더불어 현대 유럽 사상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펴냄)에서 우리가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동안 외로움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온라인으로 늘 연결돼 있는 “당신은 즐겁게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창밖을 응시하면서 당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상상해보는 일을 점점 덜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과 아주 가까운 주변에 있는 진짜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도 점점 덜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멀리 있는 친구들이 접속하려고 버튼을 클릭해올 때 과연 누가 정작 가족과 이야기하기를 원하겠는가.”
우리가 놓친 그 고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다. 다시 말해, 고독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인 셈이다. 홀로 외로움을 건너온 사람만이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듯이.
밀실의 고독 대신 유리벽 속의 삶을 사는 대중에게 비밀이 있을 수 없다. 무심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며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익명의 대중에게 중계한다. 그 과정에서 사적 비밀이 서식할 수 있는 시공은 지워진다. 비밀이 사라진 사적 공간은 프라이버시를 위협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유일하고,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주권이 유지되는 지대이자, 바로 그처럼 주권을 지닌 사람들의 왕국”인 프라이버시가, 권력이 아닌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말살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프라이버시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로 직결되고 이는 바우만이 개념화한 ‘유동하는 근대 세계’(liquid modern world)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1980년대 초까지 정통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갈등을 중점 연구했던 바우만의 문제의식은 1990년대부터 탈근대로 옮아왔다. 사회주의가 탈근대의 기획이 아니라, 또 하나의 근대화 프로젝트였다는 그의 대표적 언설은 마르크스주의자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이동해온 그의 지적 궤적을 대변한다. 64살 때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근대성과 홀로코스트>(1989)라는 책은 그 정점에 자리한다. 아도르노의 영향이 또렷했던 그 책에서,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를 근대성의 산물로 이해했다. 2000년대에는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제도·풍속·도덕이 해체돼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용어인 ‘유동하는 근대 세계’ 시리즈로 또 한 번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바우만은 인류가 고체처럼 견고한 사회를 지나 ‘유동하는(액체적) 근대’를 지나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부정적 개념을 대체할 제2의 근대 개념으로 이를 창안했다.
‘시시포스’ 아닌 ‘프로메테우스’를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앗아간 유동하는 근대에서, 사람들은 인간적인 유대를 잃고 부박한 관계 속에서 외로워한다. 그 허기를 달래고자 사람들은 소비를 한다. 그러나 쇼핑도 우릴 구원하진 못한다. “풍족할 수 있을 만큼만 날마다 물건들을 제조해서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날마다 물건들을 내다 버리는” 우리는 사물과의 유대나 정서적인 만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바우만은 쓸쓸하게 말한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가 추구하는 진정한 열정”은 “무엇인가를 없애고 처리하면서 쓰레기처럼 버리고 폐기하는 즐거움이다”.
과연 유동하는 근대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걸까?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가 강요한 굴레에 과감히 저항하려면 자신과 마주하는 일을 넘어 타인의 고통과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홀로 무겁게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가 아니라, 타인들의 비참에 맞서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글의 제목,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처럼.
악의 평범성, 세대 간의 대화, 인스턴트 섹스, 유행, 건강 불평등, 신종플루, 경제 불황 등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44가지 문젯거리를 편지 형식에 푼 이 책은, 불확실한 안개 속 세상을 비추는 한 석학의 통찰로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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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H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 서평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005115002
"노동 운동은 망했어!" "아니, 이제 시작!" (프레시안, 양솔규 진보신당 경남도당 당원, 2012-10-05 오후 6:57:36)
[프레시안 books] G. D. H. 콜의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 지음, 김철수 옮김, 장석준 감수, 책세상 펴냄)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장(場)에는 '전설'로 불리는 사람이나 작품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신비주의'적이며 관음증의 욕망을 배가시킨다. 영국의 역사학자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 역시 그러했다. 수많은 역사책들의 문헌 해제에 자주 등장하는 이 요상한 이름의 역사가는 그러나 '참고 문헌'을 벗어나 자신의 진면목을 알몸 그대로 드러내는 기회를 한국에서만큼은 좀처럼 잡지 못했다.
오래된 저서의 일부만이 번역되어 있고(<사회주의 사상사Ⅰ>(1987년)),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가 펴낸 <마르크스주의자들>(한길사 펴냄, 1982년)에 단편적인 글 하나가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이 책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 역시 1980년에 선보였다가 사라진 지 오래다. 오죽하면 몸이 달아오른 이 번역본의 감수자 장석준은 출간되지도 않은 책에 대한 서평을 2월에 썼겠는가?
돌이켜보면, 콜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톰슨이 1963년에 발간한 기념비적 저서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창비 펴냄) 역시 출간된 지 37년이 지난 2000년에 번역되었고, 콜의 선배들이었던 페이비언주의자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 부부의 1920년 저작 <영국 노동조합 운동사>는 무려 70년이 지난 1990년에 겨우 번역되었다.
한국의 지적 풍토는 냄비와 같아서, 유행에 따라 쉽게 불붙었다 꺼진다고들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바람이 한 번 불었다가, 포스트주의 바람이 한 번 불고, 비판 이론은 한 물 가고, 발전주의 이론이 훑고 간다. 한 번 바람이 불 때 주요 저작이 전부 소개되면 좋겠지만, 바람의 주기는 그러기에는 너무 짧다.
무슨무슨 주의와 분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자기 분야를 진득하게 소개하는 학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밀턴 프리드먼이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꾸준히 소개하고 한국 사회에 적용하고 있는 뉴라이트 자유기업원이 그래도 낫다고 해야 하나?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 특히나 노동 운동사, 사회 운동사는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맞이한 깜짝 특수가 지나간 후 때 이른 조락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나마 영국의 경우에는 톰슨과 웹 부부의 책, 고세훈의 <영국노동당사>(나남출판 펴냄) 등 몇 권 책이 번역되어 나와 있지만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미국 등 서구의 주요 노동 운동의 역사와 시스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너무 없다. 서구 이외의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의 번역을 계기로 콜의 다른 저서, 예를 들어 <협동조합의 한 세기>, <길드 사회주의 재론>, <일반 노조의 시도> 등도 번역되었으면 좋겠고, 아돌프 스터름탈의 책과 같이 세계 노동 운동사의 지적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대체 노동조합 내셔널센터의 자원은 다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목마른 사슴들은 많은 듯한데, 정작 자기 먹을 우물 팔 시간과 여력은 없는 것일까?
아돌프 스터름탈이 쓴 명저 <유럽 노동 운동의 비극>(황인평(황광우) 옮김, 풀빛 펴냄, 1983년)의 문헌 해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국 노동 운동에 관한 '가장 간결한' 역사는 G. D. H. Cole의 <A Short History of the British Working Class Movement>."
그 '간결한' 책이 바로 이번에 재출간된 765쪽짜리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이다. 결코 '간결'하지 않으나 '간결하다'고 소개되는 이 책에는 절대로 '간결'하지 않은 영국 노동 운동의 지난한 투쟁과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산업 혁명, 차티스트 운동과 1848년 세계 혁명, 1880년대의 사회주의 운동의 분출, TUC(British Trades Union Congress)와 노동당의 창당과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과 짧은 전간기 등, 숨가쁘게 달려온 노동 운동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선두 주자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속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영국 노동 운동의 온건함과는 다른 격렬함과 혁명적 열기도 있다. 또 경제 투쟁이 가로 막혔을 때, 정치 투쟁의 외피를 두른 차티스트 운동이나, 반대로 노동 정치가 효력이 없자 경제 투쟁으로 전환하는 노동자들의 '본능적 기민함'은 가히 19세기 '집단 지성'의 힘을 보는 듯하다.
콜은 영국 노동 계급 운동을 굵직한 사건들을 경계로 해서 몇 개의 시기로 나눈다. 그 기준은 자본주의의 성격 변화와 이에 맞춰 달라져 온 노동 운동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먼저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쳐 1848년으로 이어지는 1단계이다. 이 시기는 "과거를 회고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장래를 기대한 만큼이나 과거를 회고"하는 시기였다. 말하자면, "노동 운동은 힘이 너무 미약했던 반면에 자본주의의 상승하는 힘은 너무나 강했던" 시기였다.
콜은 이러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압축한다.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 차티스트 운동에 이르기까지, 차티스트 운동을 포함하여 모든 노동 계급의 운동은 농민 운동이었다."(177쪽) 미국의 사회학자 비버리 실버 식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거대하고 격렬한 소요를 '폴라니식 노동 소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상승하는 힘'은 곧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중기라 일컬어지는 2단계를 지배한다. 1848년부터 1880년에 이르는 2단계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황금 시대'였다. 이 시기에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견고하게 발전하고, 운동은 온건화된다.
3단계는 1880년대에 사회주의의 교리가 노동 계급에 폭넓게 수용되면서 시작된다. 노동 운동은 점점 더 미숙련 노동자층에게 받아들여지고, 점차 노동 정치 운동의 독자성이 발현된다. 러시아 혁명과 양차 대전 시기인 4단계에 와서 영국 노동 운동은 일국 차원에서 벗어나 국제화되기 시작한다. 또 전쟁이 가져온 기술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노동 계급 내부의 막대한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의 전면적 등장과, 미숙련 노동의 전면화가 이에 해당한다.
자본주의 전 시기에 걸쳐 영국 노동 운동은 자신의 '연합적 힘'(에릭 올린 라이트)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왔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힘이 항상 노동 계급의 승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가령 1926년 총파업의 패배와 1931년 2차 노동당 정부의 붕괴와 이어진 선거 패배는 비록 금본위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지만, '연합적 힘'이 자신의 목적을 정교히 하지 못한 탓인 것도 분명했다.
수사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외칠 수는 있으나, 노동 운동의 몸통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에 맞춰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2차 노동당 정부를 스스로 붕괴시키고 노동당을 탈당한 램지 맥도널드와 필립 스노든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거부하고 고전적 자유주의를 고수하고자 한 단순한 반동적 대행자에 불과했을 뿐이다.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자신의 '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모든 나라, 모든 시기의 노동 운동의 과제일 것이다.
페이비언주의는 영국의 사회주의의 대명사이다. 이 사상은 영국 노동당을 넘어 영국 국가와 사회 제도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 부부, 버나드 쇼를 비롯한 페이비언들은 존 케인스, 윌리엄 베버리지 등과 폭넓게 교우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영국식 판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영국 사회주의자들에게 페이비언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숙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콜은 <페이비언 사회주의>라는 책을 낸 바 있으며, 에릭 홉스봄의 박사 논문도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이었다. 콜의 부인인 마거릿 콜은 <베아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 전기를 썼다.
콜에 대해 '페이비언의 재갈'을 문 '볼셰비키의 영혼'이라고 한다.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에는 '볼셰비키의 영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페이비언의 구심력에서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언급들을 제시한다. 사회주의의 불가피성 못지않게 점진주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의 '직접 행동'과 '혁명적 열기'를 배격한다.
웹 부부와 쇼와 같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로 이어질 것이라 봤다. 그들에게 의회 민주주의는 필수적이었고, 점진주의와 합헌주의는 당연한 구성물이었다. 그래서 콜은 페이비언협회에 대해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자유롭게 사유하는 단체"라고 말한 바 있다.
콜은 페이비언들과는 다르게 미국으로부터 역수입된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이나, 생디칼리즘, 길드 사회주의를 중요하게 다룬다. 콜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끄는 권력이 위치하는 곳을 산업 현장에서 찾았다. 따라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노동 정치 운동 뿐만 아니라,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주체들이 참여하는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운동이 필수적인 것이다.
콜은 페이비언의 엘리트주의 역시 넘어서고자 했다. '물처럼 차가운 시드니 웹'과는 달리 콜의 가슴은 불처럼 뜨거웠으며, '방만 깨끗이 청소'하고자 한 게 아니라, '영혼의 창문을 열고자' 했다. 콜은 영국 사회주의에 짙게 스며든 그 페이비언주의를 넘어서고자 한 것이었다.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는 그래서 "노동조합이란 임금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 생활 제 조건을 유지 또는 개선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항상적(恒常的)인 단체"라고 정의한 웹 부부의 <영국 노동조합 운동사>와는 다르다. 웹 부부에게 노동조합은 그 성격상 경제주의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하지만 콜은 "노동 운동은 노동조합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자기 신뢰와 단결을 배우는 학교"로 본다. "본질적으로 노동 계급의 정치 조직은 노동조합 운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콜은 영국 노동 운동을 노동조합 운동에 한정시키지 않는다. 노동 정치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 역시 노동 운동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협동조합 운동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콜은 "세 날개"(674쪽)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서술에 있어서는 "양 날개"에 치중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실에서의 협동조합 운동은 발전 과정에서 변혁성이 거세되고 독립성이 강화되면서 '양 날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협동조합 운동을 경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공통의 필요에서 발생했으며 동일한 계급에 의존"하지만 "그들의 이념과 열망을 각기 다른 입장에서 표현하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힘'의 중요한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콜에게 있어 세 날개는 "분리할 수 없는 한 줄기의 운동"(23쪽)이다.
콜의 책은 톰슨의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과 같은 명확한 역사 이론을 토대로 집필된 역사서는 아니다.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진 영국 노동 운동에 대해 1789년 이후부터 1947년 무렵까지 전반적으로 평이하게 서술한 통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역사 비전공자들이 보기에는 콜의 책이 훨씬 쉽다. 웹 부부와 톰슨에 비해 더 긴 시기와 더 많은 주제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콜의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읽다보면, 톰슨이 상정한 '노동 계급 형성'의 시기인 1780~1832년이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톰슨은 영국의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진 하나의 계급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 시기를 대략 1780~1832년으로 보고 있고, 자신의 저서도 그 시기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콜이 묘사한 이 시기 노동 계급은 '낡은 정신'을 간직한 과거의 계급에 불과하며, 톰슨이 마지막으로 다루었던 1832년의 선거법 개정의 결과도 "오히려 노동자들은 선거권을 빼앗겼고 주인이 정치권력을 단단히 거머쥐었"다고 본다. 영국의 역사가 홉스봄 역시, "톰슨이 영국 사회에 노동 계급이 등장한 시기를 19세기 초로 설정한 것은 옳았"지만 "노동 계급은 톰슨의 책이 이야기를 끝맺은 지 한참 후까지도 실질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홉스봄은 콜이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시기, 즉 "'전통적인' 노동 계급이 출현한 시기가 1880년대 훨씬 이전이 아니라, 그 다음 20~30년 사이"였다고 보는 것이다.
홉스봄의 말대로 노동자 대중들은 활동가들의 의식과는 다르며 활동가들의 기대에 맞추어 살지 않는다. 영국 노동 운동이 위기에 봉착하고, 사회주의자들이 때때로 절망적인 상황을 개탄할 때, 노동 운동의 지도자들이 두려움 속에서 노동 계급을 '지도'와 '통제'에 가두고자 할 때 오히려 영국 노동 계급은 다른 '길'을 만들었고, 다른 '성격'을 창조했으며 무엇보다 '용기'를 내었다.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고, 때때로 이기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태도와 선택을 토대로 해서 사회주의도, 창조적이고 전복적인 에너지도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결코 간략하지 않은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에는 승리의 영광도, 패배가 남긴 상처도 모두 들어 있다. 하지만 상처는 교훈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길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몸으로 체화시켜 켜켜이 쌓아 온 영국 노동 운동의 우여곡절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오래된 콜의 저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우리가 바라보는 시간의 지평을 더 넓게 잡는 교정의 기회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이 '시간 지평'의 교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는 절망벽'에 대해 '낙관적 태도'로 마주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한국의 노동자 정치 운동이 좌초한 것으로 보이고, 노동 운동의 상급 조직들은 계급 조직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포기한 듯이 보이며, 현장의 열정과 에너지는 소진한 것처럼 보이는 현재. 당이든, 노동조합이든, 협동조합이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운동이 단 한 번도 자신의 '장기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수립하고, 실천해 본 적이 없는 '전략 부재'의 한국 노동 운동의 역사.
그러니까 '집단적 행동'으로서의 운동은 없고, 분파 운동과 고립된 싸움과 패배로 점철되어 생긴 아픈 상처가 남은 몸. 노동 계급의 보편적 의제인 '노동 시간 단축'과 '교대제' 문제조차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사가 비공인의 패턴 교섭(pattern bargaining)으로 해결해 버리고 마는, 비정규직 문제 역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이 과도한 대리전을 치르면서 총자본의 탄압이 집중되고 노동의 연대는 기업의 벽에 가로막히고 마는, 그래서 노동 시장의 안과 밖 양쪽 모두 현대자동차 사측이 주도하는 현대 공화국, 삼성 공화국, 자본주의 공화국의 극단적 노동 배제의 시대에 전망은 어디에 있으며, 희망의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게 되지만 말이다.
운전을 할 때 시야를 어디에 두느냐가 운행 안전에 매우 중요하다. 너무 가깝게 시야를 두게 되면, 굴러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보이고 위험해 보이기 마련이다. 콜의 저작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인식 지평을 좀 더 넓고 멀리 둔다면, 비록 한국 노동 운동이 마주한 현실이 척박해 보이고, 조급해지는 마음을 조금은 더 정교하고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흔히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라고 말한다. 기나긴 자본주의 역사만큼이나 긴 영국의 노동 운동의 역사가 우리를 위로해 주는 방식은 아래의 영화 대사와 같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도저한 낙관이었다. "결국 다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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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추종하는 빨갱이? 좌파 살길은 '녹색'뿐! (프레시안,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2012-02-03 오후 6:09:05)
[장석준의 '적록 서재'] G. D. H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파산 금융사들을 사실상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하자 공화당 진영에서는 "이것은 금융 사회주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조지 부시)이 네오콘 공화당원이고 재무장관(헨리 폴슨)이 월가의 은행가인데도 이들의 위기 처방에는 "사회주의"라는 딱지가 붙었다. 20년 전 사망을 선고받은 '사회주의'가 투기로 돈을 날린 백만장자들의 생명줄로 참으로 기이하게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정부의 은행 구제 조치를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둔 것은 국가의 경제 개입이다. 이들에게는 사적 자본이나 시장 경쟁에 맡겨야 할 일에 국가 기구가 나서는 것이 곧 '사회주의'다. 즉,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그냥 '국가주의'라고 해도 상관없는 물건이다.
꼭 미국의 골수 공화당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구 위 대다수 생활인의 상식 속에서 '사회주의'는 곧 '국가주의'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남한 사람은 국가 최고 권력자를 예배 대상으로 삼는 이웃 체제를 떠올릴 것이고, 중국 사람은 공산당 국가 관료의 훈시를 연상할 것이다. 또 동유럽 사람은 20여 년 전 일당 독재 시절을 기억할 것이며, 서유럽 사람은 아직 남아 있는 복지 국가의 여러 법제들을 떠올릴 것이다. 공통의 열쇳말은 결국 '국가'다.
물론 지난 30여 년간 인류 사회의 풍향계가 지나치게 '시장' 쪽으로 쏠려 있었기에 요즘은 이런 식의 '사회주의', 즉 '국가주의'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서구 신자유주의 비판자 가운데는 과거 한국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스탈린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시장이 결합된 중국 모델이 비슷한 시각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일 수는 없다. 시장주의, 국가주의 모두 우리가 깨어나야 할 악몽들이다. 은행가들이 지배하는 체제만큼이나 정치국원이 지배하는 체제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이토록 무소불위의 지배력을 갖게 된 것도 그 전의 중앙 집권형 계획이나 복지 관료제의 경험들이 결코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시장주의는 이러한 국가주의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연료 삼아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이다.
'국가'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 길드 사회주의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상식에 반하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사회주의가 과연 국가주의일 뿐인 것인가? 사회주의의 그 '사회'가 '국가'로 대체되거나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 애당초 사회주의자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회주의 운동이 그런 걸 실현하자고 분투했던 것일까?
정색을 하고 들여다보면, 금세 전혀 다른 그림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마르크스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가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에서 궁극적인 이상으로 내세운 것은 '자유인들의 연합'이었다. 이 '연합(association)'은 자본주의 기업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가 관료 기구도 아니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굳이 '연합'이란 말을 쓴 것은 바로 이 두 지배적인 조직 형태와는 다른, 삶의 조직화 형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비롯한 1세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에 '국가주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은 '사회'주의이든가 아니면 '코뮌(commune)'주의('공산주의'로 불만족스럽게 번역되는)였다. 여기에서 '사회'와 '코뮌'은 모두 <공산당 선언> 속의 '연합'과 비슷한 함의를 지닌다. 미래의 주역은 '사회'나 그 미래형인 '코뮌'이지 '국가'는 아니다. 비록 사회가 때로 국가를 통해 대변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독자적인 실체다.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맥락에서 '사회'를 강조한 사상가는 칼 폴라니다.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길 펴냄)에서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허구의 장막을 뚫고 점차 그 육중한 실체를 드러내는 주인공이 바로 이 '사회'다. 그런데 폴라니는 이러한 '사회'의 발견을 오롯이 한 선구적 사상가이자 실천가의 공적으로 돌린다. 그는 클로드 생시몽, 샤를 푸리에와 함께 흔히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세 거장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로버트 오언이다.
"그 누구보다도 산업 사회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이는 로버트 오언이었다. 그는 국가와 사회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고드윈처럼 국가에 대해서 편견을 품는 일도 없었지만 그것이 수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는 법도 없었다.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을 피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개입이라면 얼마든지 국가에 기대했지만, 사회를 조직하는 일 자체를 국가에 기대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국가라는 정치적 메커니즘도, 또 기계라는 기술적 도구도 가장 핵심적인 현상이 무엇인지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 핵심적인 현상이란 바로 사회라는 것이었다." (<거대한 전환> 366쪽)
그런데 폴라니만큼이나 이런 측면에서 오언에 주목한 또 다른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가 있다. 그는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경제학자이고 정치, 사회학자이며 역사가인 (그리고 심지어는 추리 소설 작가이기도 했던)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 1889~1959년)이다.
콜은 '길드 사회주의'의 주창자였다. 우리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김명환의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 : 길드 사회주의>(혜안 펴냄)가 유일한 우리말 소개서다!), 길드 사회주의는 폴라니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안토니오 그람시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같은 당대 일급 사회주의자, 노동 운동가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유럽 대륙에서 노동자 평의회를 중심에 놓고 혁명을 바라보던 로자 룩셈부르크, 구스타프 란다우어 등의 흐름을 영국의 풍토에서 전개한 이들이 콜을 비롯한 길드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길드 사회주의는 한 마디로 사회가 (국가가 아니라) 길드들(guilds)로 실체화되는 사회주의다. '길드'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좀 낯설다. 아마 인터넷 게임을 즐겨 하는 분들에게나 귀에 익을 것이다. 이것은 본래 서구 중세의 수공업자 조합을 일컫는 말이다.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기업과 구별되며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조합과도 다른 '생산자 조합'을 가리키기 위해 이 '길드'라는 오래된 단어를 재활용했다.
콜의 경우, 필요한 것은 생산자 조합만이 아니었다. 소비자 조합도 중요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길드들을 통해 대중의 이해가 조직으로 실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콜의 길드 사회주의에서 경제 전반을 조절하는 것은 국가 기구가 아니라 이들 길드 사이의 협력과 협상이다. 기존의 국가 기구는 오히려 이제까지의 그 배타적인 권력 중 상당 부분을 길드와 같은 자발적 결사체들에 이양해야만 한다.
콜의 길드 사회주의가 의도한 것은 로버트 오언이 발견한 '사회'의 의미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회주의였다. 이후의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가 지향한 사회주의가 대체로 '국가 중심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면, 콜의 이상은 '사회 중심 사회주의'였다. 국가 기구라는 단일한 대리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결사체들로 실체화된 역동적 사회 자체가 주역이 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또한 '다원적 사회주의'이자 '복합적 사회주의'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마치 시장/국가의 이분법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정말 시장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 인류 역사의 숙명인 것일까? 시장주의 아니면 그 대안은 국가주의뿐이며 따라서 불만이 있더라도 시장의 자유에 만족하라는 서구 경제학자의 협박이나 아니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화 모델을 받아들이라는 중국 공산당 관변 학자의 궤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오언과 콜을 비롯한 고전 사회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사회 중심 사회주의', 좀 더 정확히 말해 본래의 사회주의는 이 답답한 이분법의 세계를 거부한다. 전복되어야 할 것은 진짜 주인공이 주인공으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시장/국가의 이항 대립 세계 그 자체다. '사회'를 육화(肉化)하라! '사회'의 능력을 배양하라! '사회'에 권력을!―애초 모든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메시지, 그리고 다름 아닌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영국 노동 운동사>로 읽는 콜의 메시지
안타깝게도 콜의 수많은 저작들 중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얼마 안 된다. 특히 길드 사회주의를 직접 다룬 저작들은 소개된 적이 없다. 다만 그가 만년에 집필한 역사서들 중에 번역된 것이 조금 있다. <영국 노동 운동사>(김철수·김천우 옮김, 광민사 펴냄, 1980년)도 그 중 하나다.
콜은 역사가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방대한 분량의 <사회주의 사상사>(국내에는 1권만 번역돼 나왔다. <사회주의 사상사 1>(이방석 옮김, 신서원 펴냄, 1992년))는 제2차 세계 대전 무렵까지 전 세계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에 대한 정리로는 독보적인 저작이다. 그밖에도 그는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때로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때로는 노동조합 혹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여러 저작을 통해 다뤘다. 또 자신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로버트 오언이나 차티스트 운동가들에 대한 전기도 집필했다.
콜이 자신의 독창적 사상을 직설적으로 풀어낸 저작을 우리말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우리는 <영국 노동 운동사>를 통해 그의 문제의식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콜은 단지 냉정한 사가(史家)의 자세만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는 영국 노동 운동의 참여자 중 한 사람으로서 역사 서술 안에 논쟁적 평가를 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국 노동 운동사> 안에서 길드 사회주의 시절부터 쭉 이어지는 콜의 사상의 편린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을 읽는 이중의 즐거움이다. 사실 노동 운동의 발전 정도에 비해 국내에는 외국 노동 운동의 역사가 풍부히 소개되어 있지 못하다. 서점에든 도서관에든 각 국 노동 운동사 관련 책자가 별로 없다. 따라서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는 가장 긴 산업 자본주의의 역사를 지닌 나라의 노동 운동에 대한 거의 유일한 우리말 읽을거리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독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이에 더해 영국 노동 운동을 쟁점 삼아 사상가 콜과도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한국의 노동자나 진보적 독자라면 가장 먼저 놀랄 것은 이 책이 '영국 노동 운동사'이되 '영국 노동조합 운동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상식에 따른다면, '노동 운동'은 곧 '노동조합 운동'이다. 좁은 의미의 '노동조합 운동', 즉 작업 현장의 노동자 조직화와 경제 투쟁 그리고 단체 협상이다.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것은 그런 의미의 노동조합 운동의 범위를 넘어선다. 노동자 정치 운동을 다루고, 생산 및 소비 협동조합을 다룬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상호부조 조직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는 노동조합보다도 정치 운동이나 협동조합이 더 중요한 배역을 맡는다. 실제로 영국 노동 운동이 그렇게 발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발전의 전체상을 애써 강조하려는 콜의 시각이 책 전반에 뚜렷이 새겨져 있는 탓도 크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동 운동의 여러 부문이 결코 서로 다른 주체들의 분업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동일한 노동자들이 어떤 때는 노동조합의 투사로 나서기도 했고 어떤 경우는 차티스트 운동의 활동가가 되기도 했으며 협동조합의 선구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들은 한 운동의 여러 얼굴들이었다.
영국 노동 운동의 초기 단계에 노동 운동의 이러한 성격을 상징하던 인물이 위에서 언급한 로버트 오언이다. 오언의 평전을 따로 쓰기도 했던 콜은 <영국 노동 운동사>에서도 그를 중요한 비중으로 다룬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영국 노동 운동의 여러 중요한 장면들에 마주하게 된다.
가령 오언의 영향 아래 추진된 일반 노동조합 운동이 그러한 사례다. 직업별 노동조합 특유의 분파주의에 찌들었다는 영국 노동 운동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는 사뭇 달리 이 당시 영국 노동 운동은 20세기 초의 산업 노동조합처럼 최대 다수 노동자의 조직화를 원칙으로 일반 노동조합(general union)을 건설하려 했다. 그 시도는 1834년 전국노동조합대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의 건설로 결실을 맺었다. 아쉽게도 이후 직업별 노동조합의 원심력에 다시 길을 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노동조합이자 동시에 오언적 사회주의의 실험장이기도 했던 1830년대의 건축노동자조합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건축노동자조합은 건설업의 모든 숙련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도급을 독점하려 했다. 이를 통해 십장들(현대식으로 말하면, 파견 업체)의 중간 착취를 배체하려 했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소득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건설업 방면의 생산자 조합, 즉 '길드'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포부는 분명히 있었다. 역시 채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초기 영국 노동 운동에서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제 조직 그리고 정치 운동은 서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은 채로 거대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 얽혀가며 노동 계급의 '사회'를 구성하고 실체화해갔던 것이다.
콜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처럼, 오히려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와 노동조합이 체제 내 시민권을 확보하면서 이런 전통이 다분히 퇴색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한국 노동 운동에 비해 한층 다채로운 모습이 유지된다. 가령 소비 협동조합이 여전히 활기를 띠며 상당한 규모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콜과 함께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읽어내려 가면서 우리는 노동 운동의 과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21세기 한국 노동 운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새롭게 성찰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높여서 임금을 더 받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노동자 정당의 의석을 늘리거나 제도 권력에 참여하는 것만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더 중요한 다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들일지 모른다. 풀뿌리 노동 대중의 '사회'를 만들고 거기에 형체들을 부여하며 그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일, 이것이 노동 운동의 필생의 과제일 것이다.
노동 운동의 '녹색화'의 의미
1987년 민주화 투쟁과 함께 등장한 민주 노동조합 운동도 이미 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민주 노동조합 운동 1세대가 벌써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노동 대중의 '사회'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 실체가 모호하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상층의 교섭이나 가끔의 파업 때에만 눈에 띠는 기업별 노동조합들뿐이다.
이 땅에도 또 다른 형태의 자생적 대중 조직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 시대부터 협동조합들이 있었고, 전통적인 계에서 발전한 공제 조직들도 있었다. 한데 이것이 1차로는 해방 공간의 좌파 탄압 과정에서, 2차로는 박정희식 산업화 과정에서 박멸되고 말았다. 흔히들 새마을운동이 그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자생적 결사체들마저 국가 권력 망 안에 모두 흡수되었다.
요즘은 주로 생태 운동 쪽에서 협동조합이나 대안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노동 운동은 노동조합, 협동조합은 녹색 운동' 식의 도식이 상식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건강한 상식은 아니다. <영국 노동 운동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협동조합이나 대안 공동체는 노동 운동의 또 다른 얼굴들이다. 단지, 한국의 노동 운동이 이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 운동을 비롯한 전통 좌파 진영은 분명 '녹색화'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환경 의제를 좀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풀뿌리 '사회'의 재건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좀 더 근본적인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노동 운동 태동기의 그 생명력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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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카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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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응답하라(톰 하트만)/민주주의는 가능한가(로널드 드워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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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투표/모바일투표 관련 글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20916021748&subctg1=&subctg2=&OutUrl=naver
‘선거혁명’이라던 모바일투표 존폐위기 (세계일보, 김예진 기자, 2012.09.16 18:30:36)       
관리 부실로 흥행 찬물 ‘최악’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의 모바일투표는 최초 도입 5년 만에 ‘최악의 투표’라는 평가를 남겼다. 김두관 후보가 16일 “모바일투표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선거혁명’이라고 불린 모바일투표는 처음 도입된 2007년 대선경선에서 흥행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민심과 당심을 조화시키고 젊은층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해 “문화인류사적 진화”(문성근 전 대표대행)라는 칭송이 이어졌다. 지난해 이해찬, 문재인 등 장외의 친노(친노무현)계가 정당혁신단체 ‘혁신과 통합’을 만들어 합당하면서 모바일투표가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2012년 대선 경선 모바일투표는 혁신 없는 기교의 한계와 관리 부실 문제로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모바일투표 관리의 핵심은 명부관리다. 명부관리업체 선정부터 명부 폐기까지 철저해야 그 결과가 신뢰를 받는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촉발시킨 것도 명부관리였다. 특정인이 선거인 명부와 투표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우호성향의 당원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자파 후보 당선을 도왔다는 사실이 진상조사에서 밝혀졌다. 명부관리업체를 공정하게 뽑기 위해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박선숙 선거관리위원장이 업체를 공개입찰했다.
이번 선거에서 당의 명부관리는 엉망이었다. 수의계약 입찰, 명부관리업체 P&C 대표 형의 문재인 캠프 특보 합류, 문 후보 측의 전화투표 독려팀 운영 등 각종 논란 거리가 튀어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P&C는 정규직원이 2, 3명에 불과한, 제1야당의 대선경선을 치르기엔 영세한 회사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결국 비문 진영의 제기로 시작된 첫 검증에서 P&C 관계자 개인 PC에 명부가 엑셀파일 형태로 저장됐고, 명부에 접근한 흔적을 남기는 프로그램(접속로그히스토리) 설치를 아예 하지 않은 사실 등이 드러났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 소지가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손 후보 측이 이 사실을 사전 공개했다는 이유로 당 선관위는 검증을 중단했고, 첫 검증이 마지막 검증이 됐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552637.html
[논쟁] 모바일투표,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2012.09.20 19:42)
한국 정치에 새 장을 열겠다며 정치권에서 야심차게 도입한 모바일투표가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최근에 끝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시스템 오류 등의 문제가 불거져 파행을 빚었는가 하면, 통합진보당에선 모바일투표 부정이 결국 분당으로 이어졌다. 정당 체제의 한계를 짚으며 시민들의 참여를 중시하는 쪽은 모바일투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한편에선 대표성 담보가 어렵고 민심 왜곡의 가능성이 높다는 부정론도 만만찮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정치참여 확대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모바일투표는 국민 참여 높여 대의민주주의 실현에 큰 도움
미비점 있으나 버릴 제도 아냐

인터넷 뉴스 검색창에 ‘모바일투표’란 키워드를 넣으면 “논란”, “갈등”, “의혹” 같은 부정적 의미의 제목들만 화면 가득 떠오른다. 그럴 만도 하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 내내 모바일투표는 계속 말썽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끝내 분당 사태로 치달은 통합진보당 내분의 단초 역시 모바일투표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이래저래 모바일투표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듯싶다.
그런데 예전 기사들을 살펴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시민 참여”, “유권자 혁명”, “선거문화의 새 지평” 같은 화려한 단어들로 장식된 기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사실 모바일투표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굳이 달라졌다면 기대에서 우려로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많이 옮겨갔다는 것쯤이다.
흔히 제기되는 모바일투표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술적 차원에서의 문제다. 일단 해킹 위험이나 투표 결과 조작 가능성이 제기된다. 본인 확인 절차의 미흡으로 신원 도용이나 표 매수 등을 통한 대리투표가 횡행해 직접선거, 비밀선거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타당하고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보안 강화, 서버 분산, 투표 데이터 암호화 등의 조처로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번거롭더라도 좀더 까다롭게 본인 인증 절차를 밟게 하는 방법도 강구할 수 있다. 기술의 문제는 기술로 극복하면 된다.
둘째는 운영상의 문제다. 자동응답(ARS) 방식이나 선거인단 명부 관리를 둘러싼 논란 같은 것들이다.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 경쟁으로 치러진 신종 조직선거라거나, 후보자 정견 발표도 다 끝나기 전에 투표가 이뤄지는 사실상 ‘묻지마 인기투표’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말 그대로 허술한 운영에서 발생한 시행착오일 뿐 모바일투표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투표를 이렇게 엉망으로 운영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모바일투표가 표적이 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결함에 대한 지적이 있다. 모바일 표심이 당원의 의사를 압도하는 바람에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리며, 모바일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인층이나 소외계층이 배제된 채 특정 집단의 표심만 과대 대표되어 대의민주정치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최장집 교수는 모바일투표를 두고 “나쁜 의미에서 혁명적인 변화”라는 혹평까지 남겼다. 동의할 수 없다. 만약 당원의 의사와 모바일로 대변되는 민심이 크게 다르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당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심각한 징후일 것이다. 또 현장투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다 대표 문제는 모바일투표 영역에만 국한될 뿐 전체 표심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시민 참여, 특히 젊은층의 정치 참여를 높임으로써 허약해지고 있는 대의민주정치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물론 모바일투표에 대한 이런저런 지적들은 겸허하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바일투표에 덜컥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은 경솔하다. 모바일투표는 보완하고 개선해서 발전시켜야 할 참여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산이지, 함부로 내팽개쳐 버릴 애물단지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성에 문제 있고 민의 왜곡될 수도 (김성수 인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령층 접근 상대적으로 어렵고 농어촌지역 소외시킬 위험성 커 교묘한 동원정치도 막기 어렵다
민주통합당의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은 당원과 일반 유권자의 차이를 두지 않은 100% 완전국민참여 경선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완전국민참여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수단은 모바일투표 하나뿐이었는데, 그 위험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부족했다. 우선 지역별·연령별 인구편차가 고려되지 않아서 공정성에 큰 문제가 있었다.
또 모바일투표 도중에 전화를 끊으면 무효로 처리되는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자 격한 시비 끝에 경선 보이콧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고, 대의원투표 현장에서는 지지자들끼리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오픈프라이머리는 본래의 목적인 국민의 뜻을 공정하게 반영하지 못했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지난 총선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미 선거인단 인터넷·모바일 대리접수, 모바일투표 조작 가능성 등이 노출됐고, 인터넷 부정투표 파문으로 통합진보당은 결국 분당까지 가게 됐다. 진보 성향의 원로 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지난 6월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모바일투표에 대해 “난센스에 가까운 제도”라며 “한국 정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바일투표는 모바일 친숙도가 낮거나 휴대전화가 없는 고령층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고, 농어촌 지역을 소외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또 특정 세력이 모바일투표단을 동원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모바일투표에 대해 철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선거인단으로 200만명 이상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모집된 모바일선거인단은 80만명이었고 투표율은 약 67%에 그쳤다. 54만명가량이 모바일투표에 참여했으니 어느 후보든 27만표 이상만 모바일투표에서 확보하면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 특정 정치세력이 30만명만 확실히 동원하면 경선 판세를 장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원래 정당은 당비를 내는 기간 당원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당원이나 대의원들에게만 결정 권한을 주었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국민 여론을 반영하기 위해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는 폭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선거 전공 학자 및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의원의 표와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결정하는 것에 관해서도 숱한 난제가 있다고 한다.
선거에 모바일투표를 일부 도입하자는 의견은 더 위험하다. 당내 경선만 보더라도 명부 관리 부실과 기술적 불완전함은 물론이고 그 어떤 제도적 예방책도 보이지 않는 정치세력의 교묘한 조작을 방지할 수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본인인증 과정에서 해킹이나 테러에 의한 전산망 장애 등이 발생할 경우 나라가 뒤흔들릴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임을 지적해 둔다.
모바일투표에 참여한 선의의 민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불법으로 모집되거나 특정 정치세력이 모바일 표심으로 포장될 경우 민심을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큰 점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실시간 접속, 순간적 판단의 편의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을 뽑는 일이 텔레비전의 오디션 프로는 아니지 않은가? 정당들은 국민 불신을 해소하고 민심을 반영할 치밀한 기제를 고안해내야 하고, 유권자들은 깊은 고뇌 끝에 투표소에서 책임감 있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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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829144257
"모바일투표, 공정성 논란보다 더 큰 문제는…" (프레시안,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2012-08-30 오전 10:57:41)
[기고] 모바일투표의 모순과 민주당 진정성의 위기
모바일투표 파문과 그에 대한 비판들

지난 주말 민주통합당의 제주·울산 경선에서, 모바일투표 공정성 시비로 소위 비문(非文) 후보들이 불복해 큰 파문이 일었다. 이후 로그파일 검증 등을 통해 실제 문제가 있었던 사례는 크지 않음이 밝혀졌고 이후 문제점을 보완하는 선에서 미봉됐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러한 타협은 불가피하고 이제 와서 투표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이번 파문을 계기로 드러난 모바일투표의 문제점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전화 자동응답(ARS)식 조사 방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중간 중단자' 문제에 대한 대비도 없이 선거를 시작한 무모함도 놀랍지만, 이로 인해 문제가 된 케이스가 실제의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되려 떳떳하게 주장하는 것은 더욱 놀랍다. 투표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는지는 2차적 문제다. 이 투표 제도가 민주주의 원리라는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지난 4.11 총선 서울 관악을 지역구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이정희 후보 측이 운동원들에게 거짓 응답을 유도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선 여론조사에 "부정한 방식으로 조사결과를 왜곡하려 했던" 시도 자체가 문제임에도 '실제 투표결과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다'고 합리화했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이 과정에서 모바일투표와 관련, 지인들의 개인정보와 휴대전화로 1인1표 이상을 행사할 수 있다거나(보통/평등선거 원칙 위반), 대신 투표할 수 있다거나(직접선거 원칙 위반), 일상공간에서 노출된 상황에서 투표를 하기 때문에 비밀투표의 원칙까지 위반할 수 있다는 비판은 충분히 제기됐다.
간과된 문제 : 심각한 디지털 디바이드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바일투표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정보화 격차를 전제로 한 투표제도라는 점 때문이다.
이 제도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휴대전화 보유 대수가 늘어나 1인당 평균 1대 이상씩 보급됐기에 모바일투표의 조건이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1 인터넷 이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휴대전화 보급/이용률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60대의 경우 여전히 보유 및 이용률이 다른 세대에 비해 25%포인트나 낮다.
또한 실질적으로는 소위 'IT 울렁증'이 진입장벽이 된다. 모바일투표에 자유자재로 참여하려면 일정한 정보통신기술(IT)의 활용도, 숙련도가 필요하다. 정보화 활용도의 격차를 살펴보면, 위의 조사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는 비율은 20대에서도 절반에 못 미치는 43.6%다. 하지만 30대에서는 41.6%, 40대 33.0%, 50대 11.4%, 60대 8.3%로 세대 간 정보화 격차가 큼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이동전화로 SNS를 이용하는 비율은 20대에서조차 7.6%에 불과하다. 또 스마트폰의 경우에는 더더욱 보유/이용이 용이하지 못한 계층이 있다. 휴대전화를 보유하지 못하거나 전화 받고 문자 받는 이상의 정보화 활동을 하지 못하는 층은 모바일 투표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
모바일투표와 정치적 배제(political exclusion)
그들이 누굴까? 주로 저소득층과 고연령층(이른바 '5060세대')다. '1대99'이니 하면서 못 가진 자를 대변한다고 하는 야당에서 빈곤층, 저소득층이 체계적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큰 제도를 이렇다 할 보완책도 없이 진행한다. 이들의 눈에는 야당 전당대회가 자신들의 잔치일까, 그들만의 잔치로 보일까?
일부에서 '저소득층=고연령층=보수층'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추가 분석과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물론 빈곤층·저소득층 중에 고연령층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급과 세대가 완전히 중첩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정당지지에서는 젊은 저소득층에서 여당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높고 야당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도 최근 발견되고 있다.
백 번 양보해서 5060세대가 저소득층이고 그들이 보수적이라는 가설을 수용한다고 하면 야당과 진보진영은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소홀해도 될까? 이는 규범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실적인 표 계산 차원에서도 미련한 짓이다.
최근 한 보고서에 쓴 바 있지만 현재 5060세대가 전체 선거인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8.5%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의 선거인 구성비 29.2%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늘어났다. 5060세대에 569만 표가 새로 생긴 셈이다. 반면 '2030세대'는 10년 전 48.3%에서 현재 38.6%로 10%포인트, 약 138만 표 정도 줄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10년이 더 지나면 50대 이상 연령층이 유권자의 50%를 넘어설 수도 있다. 소위 '중위수 유권자'가 50대가 되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현재의 50대는 10년 전에는 40대였고, 당시 대선에서 노무현 대 이회창 지지 비율이 5:5로 나왔던 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0년 지난 지금 그들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보다 박근혜 후보를 15%~20%포인트 더 지지한다. 안철수 원장 대신 문재인 후보를 대입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왜 변했을까?
왜 그럴까? 보통 연령효과(aging effect)를 얘기한다. '나이 들면 보수화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그것 뿐일까? 나이가 들면 '보수 호르몬'이 늘어날까? 필자는 2002년 이후 손쉽게 '자기 지지층 결집시키기' 전략으로 일관했던 야당 선거전략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모바일투표는 그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선거전략을 보면 거의 청년대책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원장의 책에서도 노인 문제는 보살핌의 문제, 잔여적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회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나이 60이 넘으면 허리가 굽고 환갑잔치를 했다. 지금 60대가 노인인가? 최근에는 결혼도 늦어지고 자녀도 늦게 얻는 경향이 많아져, 50~60이면 은퇴 연령이 아니라 부양가족을 가질 확률이 훨씬 높아진 중견세대가 되는 셈이다. 소위 고령화 효과다.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청년실업대책과 장년실업대책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어본 결과 6:4 정도로 '장년실업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청년세대에서는 물론 청년실업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장년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청년들에게도, 자신의 일자리 역시 중요하지만 가장인 아버지·어머니 문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연금수령 연령은 높아지고 평균수명은 늘어난다. 청년/장년 대책 중 청년대책 우선으로만 갈 수는 없는 사회구조다.
야권/진보진영의 2030세대 편중 현상은 최근 급격히 강화됐다. 노무현은 50대에서 40%, 60대에서 34.9%의 지지를 받았다. 현재의 안철수는 5060세대에서 30% 이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양극화를 얘기하면서 스스로 양극화를 전제로 한 특정집단을 배제하는 전략을 추진하는 모순. 자신들의 정책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배제하지 않는지, 그렇다면 어떤 보완책이나 대안이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5060을 배제하는 것이 정의인가? 공정인가? 저소득층을 배제하는 선거제도를 가진 정당이 양극화 해소를 외치면 진정성이 느껴지겠는가?
남는 과제
현실적으로, 현재의 민주당 경선은 이 제도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나온다면 그와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도 경선 룰은 또 한번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아니, 이번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대선이 아닌 이상 지속적으로 경선제도 문제, 특히 모바일투표 문제는 중요한 이슈다. 단순한 선거제도 차원에서의 공정성 확보 방안을 넘어 야권과 진보진영 전체의 사회 인식과 선거전략 전반을 재검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왜 민주당 경선이 '2부 리그'라고 조롱받는 상황까지 왔는가? 안철수 원장과 야권이 단합해도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들은 왜 높아지는가? 야당과 진보세력이 그렇게도 강조해 온 '진정성의 위기'에 그 주된 이유가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831010332233180020
모바일 1표 = 투표소 1표… ‘편차 큰 여론조사’ 함정 (문화일보, 김성훈·김병채·민병기 기자, 2012년 08월 31일(金))
민주당 경선파행 불러온 모바일 투표의 ‘虛와 實’ 
모바일 투표는 현재 진행 중인 민주통합당(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화를 받고 안내멘트에 따라 번호만 누르면 되는 편리함 때문에 선거인단 중에서 모바일 투표로 참여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모바일 투표는 대리투표의 위험성과 특정 집단이 과다 대표되는 문제점 등 한계도 뚜렷하다. 특히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는 모바일 투표의 선거관리 공정성을 둘러싼 잡음으로 이틀간 경선일정에 파행이 빚어지기도 했다.
1. 모바일 투표란 무엇인가
모바일 투표는 쉽게 말해 휴대전화로 투표하는 것이다. 사전에 모바일 투표를 신청한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전화를 걸게 되고, 전화를 받은 선거인단은 주민등록번호 뒷부분 7자리 숫자를 입력해 본인 인증을 거친 뒤, 전화 안내멘트에 따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기호를 입력하면 된다. 민주당이 실시하는 모바일 투표는 인터넷 투표와는 다르다. 인터넷 투표는 컴퓨터를 이용해 투표 홈페이지에 접속, 인증을 거쳐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통합진보당(진보당)에서 시행하는 인터넷 투표의 경우 지난 ‘4·11 국회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중복 IP 투표가 무더기로 발견돼 문제가 됐다. 민주당 경선은 재외국민 선거인단만을 대상으로 하며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발송한 투표안내 이메일을 통해서만 투표 페이지 접속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2. 모바일 투표의 역사와 외국사례
모바일 투표는 지난 2007년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처음 도입됐다. 당시 모바일 선거인단 규모는 전체 190만여 명 가운데 23만8000명 정도였다. 모바일 투표가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지난 1월15일 민주당 당 대표 경선이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일반화된데다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정치권 불신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민주당은 이후 지난 총선 후보자 경선, ‘6·9 전당대회’ 등에서도 모바일 투표를 실시했다.
새누리당은 모바일 투표가 아직 부작용이 많다고 보고 당내 선거에서 도입하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아직까지 모바일 투표를 도입한 나라가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스웨덴의 우편투표 제도 등이 우리나라 모바일 투표와 유사하다는 주장도 있다.
3. 모바일 투표의 장점은
모바일 투표는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쉽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어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전통적인 투표와 달리 투표용지부터 투표함과 투표소가 아예 필요없고 투표소까지 가는 수고도 줄어든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국민 거의 대부분이 소지하고 있는 모바일 기기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면 가상공간인 웹상에서 실시간 집계된다. 자연스레 보다 많은 유권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고 선거 비용도 절감된다.
현장 투표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는 ‘동원투표’나 조직 동원에 따른 ‘금품선거’ 같은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모바일에 친숙한 2030세대의 참여도가 높아지는 것도 모바일 투표의 주요 도입 이유 중 하나다. 투표율이 낮은 ‘2030 세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모바일 투표는 시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4. 선거인단 모집은 어떻게 하나
민주당은 8월8일부터 대선 후보 선출 당내 경선에 참여할 선거인단을 모집 중이다. 선거인단 모집은 9월4일까지 총 28일간 이어진다. 모바일 투표를 희망하는 경우 콜센터와 인터넷을 통한 접수가 가능하다. 콜센터 접수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콜센터(1688-2000)에 전화를 걸어 인증번호를 받은 뒤 선거인단에 등록하는 방식이다.
인터넷 접수는 민주당 홈페이지(minjoo.co.kr)나 선거인단 신청 사이트(http;//2012win.kr)로 접속한 뒤 공인인증 절차를 거쳐 등록하면 된다. 일반 유권자는 선거인단 등록 시 모바일투표와 투표소 투표 중 선호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지만, 중앙당이나 시도당을 방문해 서류 접수를 한 경우는 투표소 투표를 신청한 것으로 간주된다. 대의원은 순회경선 당일 경선장소에서의 현장투표만 허용된다.
5. 민주당 경선서 모바일 투표의 비중은
이번 대선 후보 경선에서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한 민주당은 모바일 투표의 비중을 ‘반영비율 몇%’ 식으로 정해놓지 않았다. 당규 16호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규정’ 42조2항은 ‘투표는 모든 선거인 공히 1인 1표 단순다수제로 하며, 투표결과를 보정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의원 대상 전국 순회경선 투표든, 당원 및 일반국민 대상 모바일투표 및 투표소 투표든 이론상 비중은 똑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모바일 투표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25일 제주 경선 투표자 2만102명 가운데 모바일 투표자는 1만9345명(96.2%)이었다. 26일 울산 경선에서는 투표자 9508명 중 9098명(95.7%)이, 28일 강원 경선에서는 투표자 6187명 중 5545명(89.6%)이 모바일 투표자였다. 경선 초반 3연전 투표자 3만5797명 가운데 3만3388명(94.9%)이 모바일 투표를 선택한 셈이어서, 민주당 경선은 전적으로 모바일 투표 결과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6. 모바일 투표가 논란이 된 이유는
민주당 경선 모바일투표는 자동응답전화(ARS)로 선거인단에 전화를 걸어 투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기호 순서대로 후보 이름을 불러주고, 후보 이름을 모두 들은 다음에 유권자가 번호를 선택해야 유효투표로 인정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기호 1~3번인 정세균·김두관·손학규 후보 진영에서 중간에 번호를 미리 누르고 전화를 끊어 무효 처리된 표가 많다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이들은 기호 4번인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경우, 이름을 다 듣고 투표할 수밖에 없어 프로그램 설계가 문 후보에게 유리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울산 경선에서 파행이 빚어지자, 당 선관위는 지도부와 각 캠프와의 협의를 거쳐 제주 경선에서 중간에 전화를 끊어 무효처리된 599명에게 재투표 기회를 부여하고 앞으로는 중간에 전화를 끊더라도 유효표가 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물러서 사태를 봉합했다.
7. 로그파일이란
민주당의 대선 후보 순회 경선 제주 지역 투표 불공정 논란은 당 선관위가 로그파일(Log file)을 분석해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일단락됐다. 로그파일은 장애로부터의 복원(recovery)에 필요한 정보(로그 데이터)를 수집해 기록하는 파일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컴퓨터 시스템의 모든 사용 내역을 기록하고 있는 파일을 말하는 것으로, 항공기의 운항 내역을 기록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당 선관위는 로그파일을 공개, 재검표를 통해 모바일 투표 시스템상 중도에 전화를 끊어 기권으로 처리된 숫자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선관위의 로그파일 공개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로그파일은 PC에 누가 접속해서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8. 현장 투표와 괴리, 왜 큰가
초반 3연전에서 1위 문재인 후보는 득표율 55.3%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순회경선 현장에서 이뤄지는 민주당 대의원들의 표심은 다르다. 3개 지역 합계 대의원 투표에서는 손 후보가 201표로 1위, 김두관 후보가 152표로 2위이며 문 후보는 124표로 3위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괴리는 당 대의원과 일반 국민의 입장 차이에서 기인한다. 대의원은 계파 이해관계부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후보단일화, 본선 경쟁력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전략적 판단을 하지만, 일반 국민에게 민주당 경선은 ‘인기 투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표본이 큰 여론조사’나 다를 바 없는 투표결과를 산출하게 된다.
여기에 민주당의 특이한 선거 방식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흥행을 위해 순회경선 일정마다 모바일투표 결과를 합산해 발표하다 보니, 모바일투표 선거인단은 해당지역 경선일 전날까지 미리 투표를 하게 돼 있다. 결국 후보들이 아무리 열심히 정견발표 연설을 해 봐야 표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9. 모바일 투표의 근본적 결함은
각 정당 전당대회나 국회의원 경선 등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중앙선관위에 선거 관리를 위탁하지만 선관위는 모바일 투표가 포함된 선거 위탁은 받지 않고 있다. 선관위는 “모바일 투표가 직접 선거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집이나 직장에서 투표를 할 경우 본인이 했는지 다른 사람이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선관위는 모바일 투표에 대해서는 위탁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휴대전화 소유자와 명의자의 이름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농촌 지역 노년층의 경우 자녀들이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명의도 자녀들 이름으로 하는 사례가 많아 이런 경우 참여 자체가 원천봉쇄된다. 휴대전화 조작에 능숙하지 못한 노년층은 방법을 몰라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 논란을 잠재울 대책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것과 같은 불공정 관리 논란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선관위가 경선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민주당은 ‘정당이 공직 후보 선출을 위해서 당내 경선을 할 경우에 선거인단의 지역 인증을 선관위에 요청하면 선관위는 이에 협조해야 된다’는 조항을 만들어 선관위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자료를 받아 거주지 확인을 해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모바일 투표를 해도 공정성과 신뢰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와 분위기 성숙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 2011. 국정감사 정책자료 Ⅱ
전자투표제도
□ 유권자의 투표편의 제공, 투표율 제고, 선거사무 관리의 효율성 제고 등의 목적으로 전자투표제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나 공직선거에 적용되지 않고 있음
○ 2005년 터치스크린을 개발한 이후 각종 위탁선거에서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위탁선거를 실시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은 상황임
□ 정치권을 비롯하여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공직선거에서의 전면적인 전자투표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음. 하지만 선관위에서 전자투표제를 지속적으로 준비해왔으며, 투표편의성 등의 이유로 전자투표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시범적으로 재?보궐선거에서 전자투표를 시행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공직선거에 적용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
○ 특히 재외선거 도입과 관련하여 장기적으로 전자투표의 적용과 확대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으므로 다양한 방식의 전자투표에 대한 적용 가능성이 검토되어야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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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현장> 행안위, 전자투표 도입시기 논란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2010/10/05 21:01)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전자투표를 도입 시기를 놓고 여야 의원들 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민주당 김충조 의원은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가 도입되면 예산이 3분의 1이상 절감되고 투표율도 높아지고 국민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고, 미래희망연대 윤상일 의원도 "중앙선관위가 전자투표에 적극 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은 "전자투표를 도입할 때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만의 선거문화가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점진적으로 전자투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답변에 나선 이기선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전자투표 도입에 적극 환영하지만 아직 정치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내년 4월 실시되는 재보선에서 전자투표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010 국감 보도자료-24] 투표율 제고 위해 전자투표 시범사업 조속히 도입해야 (유정현 의원 보도자료, 2010년 10월 5일)
□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유정현 의원(한, 서울 중랑갑)이 여론조사와 입법조사처 조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투표시간 연장의 즉각적인 도입과 전자투표제의 조속한 시범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힘.
   분석결과에 따르면, 투표시간의 연장, 인센티브제도, 사전투표제 등은 당장 제도를 도입해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투표시간 연장과 전자투표제도는 다른 어느 방안보다 투표율을 높이는데 효과적이고 비용이나 인력측면에서 봤을 때도 효율적인 만큼, 조속한 도입을 해야 한다고 촉구.
○ 특히 전자투표제의 경우 조사결과 찬성보다는 반대가 약간 더 많으나 시기적 도입여건상 내년 하반기만 넘어서면 최소한 몇 년간은 도입이 요원한 만큼 내년 4월에 있을 재보궐 선거에  시범 도입이 필요함.( 2012년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연말에는 대선이 있음. 전자투표는 그 동안 각종 조합장선거, 정당 경선 등에 2,740여회 정도 활용됨.)
<전자투표 외국 도입 사례>
 ○ 호주: 2001년 연방특별구 지방의회선거에서 처음 실시
    - 2001년 연방특별구 투표자의 8.3% 전자투표
    - 2004년 투표자의 13.4%로 증가
 ○ 미국: 2000년 9월 플로리다 재검표 통해 선거개혁 필요성 논의
    - 2002년 10월 조지아주  '직접기록전자투표' 시스템 도입
    - 2004년 대선 광스캐너방식과 터치스크린방식 병행 사용
 ○ 영국: 2000년은 국민대표법에 전자투표 법적 근거 마련
    - 2002년과 2003년 25개 지역선거구 전자투표 시행
 ○ 스위스: 2000년 연방정부의 지원 아래 제네바, 노이엔부르크, 취리히의 3개 캔톤(Canton)이 전자투표실험 참여
 ○ 일본: 2001년 전자투표법안을 공직선거법 특례법으로 통과시킴.
    - 2002년 6월 오카야마현 니이시(新見)시 전자투표 실시
    - 2004년 7월에는 참의원선거 전자투표 시범 도입

□ 유정현 의원은“이번 여론조사와 입법조사처 분석결과 투표시간 연장의 즉각적인 도입과 전자투표제의 조속한 시범 도입이 필요하다.”며 “ 투표시간 연장은 2-3시간을, 전자투표제는  결과예측이 오차범위 내에서 가능한 지역 즉, 호남과 영남 지역 2곳 정도를 지정해 시범 전자투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힘.
○ 특히 유 의원은 “전자투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으나 전자투표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투표참여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고 투표의 편의성을 다른 어떤 투표방식보다도 제고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며 “특히 세계적 IT강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기술적인 문제, 인프라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이미 실용화되어 있는 전자투표를 시범도입 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힘.

[보도자료_20101005_2010국감(24)_투표율_제고_위해_전자투표_시범사업_조속히_도입해야.hwp (873.00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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