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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10
    형식주의에 대한 켄 로치의 입장
    피에로
  2. 200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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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10/29
    프리즌브레이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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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10/29
    난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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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에 대한 켄 로치의 입장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만 한다. 영화는 반드시 핵심적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카메라와 카메라의 스타일이 그것이 기록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는 철저히 현실적인 내용, 말하자면, '노동자계급의 교훈적 패배의 역사' 그 자체이다. 지금껏 몇몇(왜냐하면, 스스로 좌파라 자칭하는 이들은 많지만, 엄밀히 따져서 '영화적으로' 좌파인 감독은 별로 없다.) 좌파 감독들이 영화로 투쟁하려했지만 켄 로치처럼 '투쟁'다운 투쟁을 하고 있는 감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위의 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의도적이었던 것일까? 그들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허허.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촬영중인 켄 로치와 촬영 staff들.)




투쟁하는 작가주의의 최전선 켄 로치에 바친다 ④
[필름 2.0 2006-11-09 18:50]

현재의 감독 중 가장 실천적인 사회주의 감독 켄 로치는 역사적 거울을 통해 지금 노동계급의 우울과 좌절을 토로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구의 편에 서는가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역사가의 태도! 1995년, 켄 로치가 <랜드 앤 프리덤>을 완성했을 때 세계는 논쟁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둘러싼 미학적, 문화적 담론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는 1939년 실패로 각인된 스페인 내전에 관한 배반과 분노에 대한 기록이었고, 영화가 개봉되자 스페인 극장가에서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토론이 형성되는 진풍경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려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스페인의 역사는 망각의 늪으로부터 깨어나고 있었다. 한 평자가 켄 로치에게 왜 당신의 관심이 영국 노동계급으로부터 스페인으로 이전되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의 답은 명료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역사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그것을 민중들에게로, 본연의 그들 것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 대답처럼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그가 이미 <랜드 앤 프리덤>에서 보여줬던 역사가의 시선과 태도로 다시 한 번 무심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역사적 무대는 1920년 아일랜드다. 학살과 고문, 죽음과 고통으로 넘쳐나는 그곳에서 켄 로치는 스페인 내전의 전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총을 들고 게릴라 투쟁의 한 전장으로 돌진한다. 그런 점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랜드 앤 프리덤>의 거울처럼 보인다. 전문 배우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보여주는 역사적 한 순간들은 마치 뉴스릴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해 숨이 막히고, 조바심 쳐진다. 켄 로치의 태도와 방법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게릴라 전투의 소름끼치는 순간들이 지나가면, 역시나 예의 기나긴 토론들이 벌어진다.

내부의 적! <랜드 앤 프리덤>이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적을 넘어 좌파연대 그 내부에서 발생했던 균열과 종파주의에 대해 질문하고 반성했던 작품이었던 것처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역시 그들이 지금 무엇을 위해,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질문한다. 그러나 대답은 역사적 아이러니로 돌아온다. 거대한 적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을 둘러싼 내부에서 발생한다. 한때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투쟁을 함께했던 형제들은 노선의 차이로 인해 서로를 살육하는 끔찍한 비참으로 치닫고야 만다. <랜드 앤 프리덤>의 마지막 장면이, 스페인 내전의 역사로부터 현재의 런던 시점으로 넘어와,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손녀딸이 스페인의 붉은 흙과 수건을 손에 쥐고 번쩍 쳐들며 새로운 연대와 희망을 상기시켰던 것임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보게 될 마지막 장면의 숨 막히는 암울함과 절망은 적이 당황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2000년대에 들어선 켄 로치의 영화적 행보에서 이미 목격된 것이기도 하다. 영국 철도산업 민영화 이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동료의 죽음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죄의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짓눌렀던 2001년 작 <네비게이터>나, 세상에서 버려진 빈민가 아이가 결국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여줬던 <스위트 식스틴>에서 우리는 이미 켄 로치의 비탄을 경험한 바 있다.

 

비극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이른바 신자유주의, 즉 영국의 대처리즘 그리고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주도된 레이거노믹스 등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은 전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그것은 비단 실업과 구조조정이라는 작업장의 첨예한 생존권 싸움을 넘어 우리의 일상으로 표면화되고, 문화와 가치들로 회귀한다. 이에 저항하는 문화적 표상들의 싸움은 몹시 고립되고 외로워 보인다. 거의 모든 영화들이 폭력과 쾌락과 상품가치의 스펙터클에 포획돼 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작가주의이자 좌파적 노선에 선 이들은 극히 적었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삶을 드러내는 로랑 캉테나 알랭 기로디, 그리고 유럽의 변방 벨기에에서 역시 희망 없는 노동계급의 심리적 갈등과 윤리적 고뇌를 포착하는 다르덴 형제들처럼 그들은 매우 제한적인 이름들이다. 그나마 ‘세계 영화제’라는 특수한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들의 영화를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 내부로 들어갔을 때조차도 켄 로치의 이름은 독보적이다. 물론 마이크 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노동계급의 보다 깊은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건조함과 해방구 없는 절망 그 자체를 소묘한다.

그리고 이들과 다른, 이상한 또 하나의 트렌드가 있었다. 이른바 사회적 드라마라 불릴 만한 일련의 영화들은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를 비롯해 <풀 몬티> <브래스드 오프>처럼 영국 키친 싱크의 후예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대처리즘의 폭력으로 시작된 80년대 영국사회의 비극을 유머와 로맨스라는 장르적 방식으로 흡수한다. 이중에서도 스티브 달드리의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1984년 영국 탄광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이던 바로 그 순간, 노동자들 곁에 선 증언자였다. 이 시기 켄 로치가 ‘1984년 파업에 동참한 탄광 노동자들의 노래, 시, 그리고 경험’이라는 부제의 다큐멘터리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Which side are you on?>를 연출하고 있었다면, 그는 연극 <돌이킬 수 없다 Never be the Same>로 노동자 파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바로 그러한 경험에서 탄생한 영화였다. 그러나 그가 켄 로치와 다른 점은 그 기억과 경험을 영국식 장르라는 상업적 타협으로 끌고 간다는 사실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은 탄광 출신의 소년이 성공해 화려한 발레 데뷔전을 치르는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싸움은 처절하게 패했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영국식 사회 드라마 영화들은 그 실패와 비참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적 유머와 해피엔딩으로 봉합한다. 켄 로치의 진정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단순함의 미학! 켄 로치를 폄하하는 평자들의 주요 논지는 그가 형식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허한 비판은 어느 누구보다도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자의식과 철학을 가진 그의 응답 아래 무가치해진다.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만 한다. 영화는 반드시 핵심적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카메라와 카메라의 스타일이 그것이 기록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결국 그는 1969년 <케스>를 연출하며 만난 촬영감독 크리스 멩게스와 제작자 토니 가렛 등과 더불어 ‘꾸밈없고 소박하고 진지해지기 위한 가장 단순한 프레이밍’이라는 자신의 원칙을 설정한다.

사회주의자임과 동시에 원칙주의자인 켄 로치의 이러한 실천은 일회적인 작품들로만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통해서도 하나의 실천적 궤적을 형성한다. 60년대 프리시네마 세대와 더불어 등장한 그는 지금껏 여전히 노동계급의 일상을 소묘하면서도 그 안에 배태된 사회구조의 모순과 폭력을 성찰한다. 그러한 여정이 변별점을 경유하게 되는 지점은 1995년에 연출한 <랜드 앤 프리덤>으로부터 <칼라 송> <빵과 장미> 등을 통하면서다. 영국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노동계급의 현실을 다루던 그의 카메라는 이제 스페인 내전의 역사로부터 식민지 니카라구아의 상흔으로, 그리고 첨단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의 심장부 미국으로 넘어가 외국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참여로 이어졌다. 이른바 새로운 인터내셔널리즘의 이러한 실천은 그러나 2000년대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블레어 정권의 영국에서 좌초되는 것처럼 보였다. “블레어 정권은 친미적이고 친자본적인 새로운 보수주의자”라는 그의 단언처럼,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행하는 살육을 영국이 여전히 아일랜드에 행하는 폭력으로 비유한다. 1990년에 연출한 <히든 아젠다>에 이어 두 번째로 아일랜드 문제를 전면화한 이번 작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그는 다시금 역사가 현재를 돌파하는 유일한 열쇠임을 상기한다. 그러나 돌파구 역시 단순하지 않음을 그는 안다. 그는 아마 이 영화를 연출하며 이 말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혁명에서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더욱 힘겨운 문제는 혁명의 성공 그 이후에 닥쳐올 것이다.” 그가 베스트 영화로 손꼽는 질로 폰테코르보의 <알제리 전투>에 나오는 한 혁명가의 말이다. 적은 거대한 괴물 그것만이 아니라 그것에 익숙해지고 닮아가는 우리들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정지연(영화평론가)

기사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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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로 가는 길


 

<관타나모로 가는 길>(The road to Guantanamo),

아시프는 말한다. 

"the world is not a nice place."

 

그 '처절한 진실'은 이 영화는 어떤 피비린내나고 분노어린 실화의 재현으로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 이 영화는 오직 '보여주고', '증명하며', '증언하는' 영화이다. 다큐멘터리이지만 극영화이며, 100퍼센트 진실에 의존한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파키스탄계 영국 청년 네 명이 친구의 결혼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한다. 결혼할 청년의 신부가 될 소녀가 살고 있는 곳으로 향하던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미군의 폭격을 만나게 된다. 젊고 혈기왕성하기만 한 청년들의 여행은 이때부터 비극으로 치닫는다. 미군의 공습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시에서 외국인들을 내보내는 과정을 겪으며 혼자 떨어져 실종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수백 명의 다른 포로들과 함께 탈레반의 본거지에서 연합군에게 잡힌다. 이들은 미군에 넘겨져 관타나모로 끌려가 2년이 넘는 시간을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실화다. 지금도 쿠바 관타나모에 있는 미군 수용소에는 500여명의 포로가 온갖 비인간적 대우 속에서 고통받으며 갇혀있다고 한다. 나치의 그것도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의 그 수용소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략의 부당함, 비도덕성, 잔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수년을 고문과 온갖 거짓 취조에 시달리며 갇혀있는 세 청년(한 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종된다.)은 계속해서 진실을 말하지만, 미군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얻을때까지 그 어떤 포로도 풀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2004년 750여명이나 포로가 그 안에 있었지만, 단지 10명만이 기소되었을뿐이며, 그 중 단 한명도 유죄선고를 받지 않았다. 조작된 언어가 세계를 지배한다지만 관타나모는 그 조작된 세계의 거짓과 폭력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인 것이다.

 

수용소에 갇혀있는 세 청년의 고통과 분노가 담긴 영상과 파키스탄, 영국에서의 지난 날을 보여주는 영상은 끊임없이 교차편집(inter-cut)되어 보여진다. 왜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어야하는 저 아랍인들이 저 곳에 갇혀있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과 분노를 갖지 않을 수 없도록 말이다.

 

당연히 느껴야하는 분노. 이 영화를 보고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오직 '앞으로' 내딛으며 살아가겠다는 세 청년의 마지막 말은, 좌절할 수만은 없다는 감독의 남다른 의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 세계는 친절한 곳이 아니며, 우린 분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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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영화제작의 출발

1908년 프랑스의 파테사가 [돈의 코자크병들]을 시작하면서 부터. 같은 해 최초의 러시아 영화 촬영소가 모스크바에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모든 필름의 공급과 장비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계속 수입되었다. 1917년  제정러시아 말기까지는 모스크바에 주요한 중앙 제작시설을 둔 20명 이상의 제작자가 생겨났다. 그렇다 할지라도 국내영화보다는 외국영화가 더 많이 상영되었다.

제정러시아에서 영화는 마치 다른 곳에 위치한 것처럼 대중적인 예술이 되지 못하였다. 극장도 별로 없었고, 표는 비쌌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영화관에 갈 능력이 없었다. 높은 문맹률은 인쇄된 자막을 일반적으로 부담스럽게 만들었고, 러시아 무성영화의 문학적/연극적 경향은 교육받은 중간계급에 영화를 한정시키는데 더욱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필름 다르 나 아돌프 주커의 유명한 연극 속의 유명 배우들과 다소 유사한 러시아 영화의 고도로 연극적인 전통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ㅇ며 미국의 필름 보관소에 있는 몇몇 예들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더러 예외는 있지만 볼셰비키 혁명 후에,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와 배우들은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장비와 필름을 가지고 외국으로 떠났다.

교육상인 극작과 루나차르스키를 중심으로 한 영화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때까지의 영화와 보잘것없는 러시아 영화제작에 대해서 레닌은 정말로 탁월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고 하였다.

새로운 정부를 완전히 수립하는 데에는 약 5년(1918~1922)이 걸렸으며 영화산업이 생산성을 가지고 기능하는 데에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923년 말까지 소련 내에서 상영된 영화의 13% 만이 소련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1919년에 구자본주의 경제와 그 정신상태가 사회주의 정부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졌을 때 모든 산업은 완전히 국유화 되었다.
같은 해에 새로운 소련 영화감독들을 양성하기 위해 모스크바 영화 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그것은 세계의 영화학교 중에서 가장 크고 훌륭할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25년에는 국내 산업의 모든 면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그리고 해외의 배급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소련 영화기업 합동이 형성되었다.

1919년 경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소련 영화는 당시 두 갈래의 창조적인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처음에 우익은 전통 연극의 상류계급 인물을 인민위원이나 농민들, 적군 병사들로 대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관습적인 방법과 형식을 사용하면서 오래된 연극적 전통속에 안주하고 있었다.
좌익은 내용 뿐 아니라 형식의 혁신에 있어서도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소련 영화는 보통 두명의 좌익 개척자들의 이론과 실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 베르토프
- 소련 영화감독들의 첫 작업은 뉴스릴과 기록영화이어야 한다는 레닌의 충고를 따름
- 1919년 키노 아이 그룹을 창설 & 성명서 발표 / "부지불식간에 포착되는 실체"
- 1922년 [키노 - 프라우다] 제작 : 매달 나오는 뉴스 필름으로서 23회동안 계속 됨
- 베르토프는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행위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편집은 그의 작업에서 특별
  히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1920년대 초기 소련에서의 원자재 부족은 베르토프가 다른 영
 
화 필름의 끝부분에 남아있는 필름 조각들을 찾아내어 사용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하
  여 베르토프는 구제정러시아 떄의 뉴스 영화의 쇼트들과 새로운 쇼트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들을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이 몽따쥬로 발전
  시킨 편집의 맹아적 형태였다.

□ 레프 쿨레쇼프
- 영화감독, 이론가, 대학강사, 모스크바 영화학교 교장
- 필름없는 카메라로 행해지는 일련의 연출실험들을 함으로써 생필름의 부족에 대처
- 영화의 구조를 알기 위해 기존의 영화들을 분석하고 재편집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냄
- 쿨레쇼프는 커팅을 통해 비직업배우가 세련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과 전문배우
  들의 연기에 그들이 연기할 떄는 알지 못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발견

 

>>출처 '소련 영화의 예술성과 변증법 1925 ~ 1929' 中, 네이버카페 '사회당 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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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려운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서사, 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두 번째.

 

열광적인 GV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다가온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난 노동석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 <마이 제네레이션>을 보지않았다. 어디선가 '리얼리즘적인 한국 청년영화의 탄생을 알리는 등장'이라는 표현을 들었을때에도 큰 관심을 갖지않았다. 저예산 영화의 현실이다. 나같은 영화광(자칭)도 저예산영화라면 좋은 영화 건져보기 어려운게 현실이니까. 다행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보게 되어서. 내년에 개봉한다던데, 얼마나 많은 상영관에서 개봉할 수 있을까?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어렵고 버거운 삶 속에서도 '좋은 사람'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어렴풋이 잘 보이지 않는 희망'을 품는 싶은 기수(김병석 분, 그는 '비전문배우라는 타이틀로 벌써 두 개의 훌륭한 영화에 출연했다!! 전문은 뭐고 비전문은 대체 뭔지. 누군가 그를 '노동석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표현한 것을 적극 공감한다.)와 종대(유아인 분)와 같은 청년들에게 '내일'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묻는 것이다. 이미지보다 내러티브가 살아있으며, 너무도 사실처럼 느껴지며 다가온다.

 

드러머라는 꿈이 있지만 그 꿈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 기수. 그리고 항상 위협받아온 자신의 삶 속에서 오직 '진짜 총'만이 자신을 지켜줄 무언가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 종대. 어려서부터 둘의 삶은 온전하지 못했다. 영화 중반부까지 둘은 마치 친형제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처절하고 좌절뿐인 삶 속에서도 어렵게, 어렵게 희망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절규, 외침, 약속들... 그것이 중요하다.

 

시대는 청년들에게 '내일은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너무도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영화의 내러티브가 자연스럽게 그것을 설명해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자꾸만 다른 이로부터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받는 그 공허한 속삭임으로나마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싶지만, 꿈은 자꾸 멀어져간다. 이대로 비참하게 살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그들의 삶을 휘감는다.

 

자칫 우울함만으로 끝날 뻔한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작은 빛줄기를 찾아 떠나는 종대 일행을 보여주며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그래, 그것은 마치 내러티브의 몸부림과도 같았다. 어렵게 악수에 성공하는 다리 밑 '광인'과 기수의 악수하는 두 손, 그리고 종대의 미소로부터 그들의 처절한 삶에서의 다른 삶으로의 의지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그 리얼리티만큼 쓰라리게 다가오는 말이다. 그래, 차라리 희망과 밝은 미래만 이야기하며 공상을 헤매이는 것보다 너무도 명백한 일상의 단편을 풀어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20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 공허한 약속만으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인식이 그/녀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차라리 솔직히 말하자.

 

"그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고. 행복은 잘 보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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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단편영화 <먼지>

-흑백 스틸컷 영화처럼 단절된 컷들의 연속인 기혼 여성의 삶

 

독특한 편집으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스틸컷을 이어서 만든 영화는 두번째인데, 하나 느낀점은 느낌은 아주 슬퍼진다는 것이다. 흑백 스틸컷처럼, 그녀의 삶도 정적이고 고요하며 세상의 무엇과는 단절되어있다. 그녀는 평범한 전업주부이다. 하루종일 설겆이, 빨래, 걸레질, 요리... 반복된 일상, 단촐한 삶은 서서히 그녀를 죽게 만드는 것만 같다. 성애화된 눈빛으로 자신의 삶을 제멋대로 껴맞추고 강제하는, 남편조차도.

 

그녀는 자신을 아무것도 바꿔내지 못한 삶을 파열시킨다. 먼지처럼 쌓여있는 그녀의 표정이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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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확인

시놉시스#4

중증장애인이며 11살인 현동이가 남대문 시장 작은 골목길에서 할머니 손을 놓쳐 길을 잃었다.

때는 1999년 12월 30일.

21세기가 단 이틀남은 어느날 오후였다.

현동이는 앞뒤가 꽉꽉 철망으로 막힌 남대문경찰서로 갔다.

때는 길을 잃고, 남대문로 빌딩 옆 한켠에서 하루밤을 추위 속에서 지샌 그 다음날 저녁이었다.

말이 안통한다며 답답하다고 소리지르는 한 40대 중반의 무뚝뚝한 표정의 경관.

신원확인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너나 없이, 누구의 의심, 의문, 반론도 없이,

현동을 서울 교외의 모 정신병원으로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7년간 현동을 찾아 남대문시장 바닥에서 이리저리 전단지를 붙이고 나눠주며 현동을 찾는 현동의 할머니.

환불상 김씨는 거추장거리니까 저 멀리가서 하라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곤 했더랬다.

그리고 할머니는 7년간 현동을 찾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표정, 눈가의 주름, 가느다란 발목이 더 쾡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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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김순봉

단편영화; 브라보, 김순봉

-슬픈 삶, 그러나 살아간다.

 

카페 빵과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여는 독립영화상영회에 가서 이 영화를 보았다. 언뜻 인터넷 서핑하다가 제목만 몇번 봤던 것 같은데.

 

노인, 가난한 노인, 생활 보조금도 받을 수 없는.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다. 아주 흐릿흐릿하게 보일듯말듯하던 희망도 잘 보이지 않고 이내 사라진다. 김순봉의 버겁고 힘겨우며 외로운 일상을 사실주의적으로 잘 그린 영화같다. 슬펐다. 너무도 가까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막 들었다. 김순봉이 마지막에 자살하지 않는 것으로 결말을 맺어 다행이다. 그러나 슬픈 삶이라는거. 할 일은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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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다운 리얼리즘 영화. 두 형제의 다른 전망. 운동의 비극 속의 개인사적 비극의 혼합.

 

홀로 떠난 부산국제영화제로의 2박3일간의 주말 답사를 통해 그토록 보고싶던 이 영화를 보게되었다. 잔잔하고 찬 바람이 부는 부산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혼자 앉아 광대한 스크린, 바다 널리 울려퍼지는 사운드로 보는 이 영화의 감상분위기는 최고였다. 이 영화는 그런 곳에서 봐야한다. 영화 속 아일랜드 시골의 너른 보리밭이 너무 아름답고, 그곳에 부는 바람을 찍은 영상은 민중들의 노래, 파도 소리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생을 아일랜드 독립투쟁의 대열에 합류시킨 형은 자유주의적이고 '점진적 개혁'이라는 전망만을 갖고 있었고, 형에 의해 투쟁대오에 함께 하게 되었지만 아일랜드 민중들이 겪어온 고통들에 대해 보다 심도깊고 뜨거운 가슴으로 고민해오던 동생은 사회주의자였다. 켄 로치는 다시 묻는다, '자유주의인가', '혁명투쟁인가'

 

독립, 대의, 국가를 위해 투쟁에 있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으로 인식해야 하는가? <보리밭은 흔드는 바람>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랜드 앤 프리덤>을 꿰뚫는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두 형제와 동지들의 혁명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그/녀들은 구체적인 삶, 상황에서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고, 논쟁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 거친 언덕 들바람에 휩쓸려온 자신의 삶처럼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자신의 삶, 실수 속에서 좌절하고 슬퍼한다. 갑자기 혁명은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혁명적 정세는 너무도 슬픈 고뇌가 될지도..

 

영화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속의 피냄새를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보리밭 언덕이 아름다운 만큼 그 안에는 착취당해온 민중들의 피와 상처들이 있는 것이다. 켄 로치는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여받을때 이 영화에 대해 "이 영화는 부시와 미제국주의의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켄 로치의 영국은 잔인한 학살을 일삼은 윈스터 처칠의 영국이고, 그 처칠은 훌륭한 정치가가 아니라 학살자로 묘사된다.

 

해방은 잡힐듯, 잡힐듯하면서 잡히지 않는다. 혁명적 상황 속에서 유리한 상황을 성취해도, 많은 것을 이룬듯하여도...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정작 중요한 내부의 투쟁들이 그/녀들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켄 로치는 동생과 같은 진영의 사회주의자들의 치열한 논쟁들을 빌어 오직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서 끝까지 투쟁하고자 하는 운동만이 대안이고, 민중들이 바라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해방은 무엇으로부터 가능할까? 과연 우리 운동은 언젠가 과정 속에서 지도부의 명령과 '대의'라 지칭되는 무엇이 인간성과 대립되지 않을까? 이 섣부른 고민이라 생각될지도 모르는 이슈는 결코 우릴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모든 혁명적 상황에서, 목숨을 건 투쟁 속에서 저항하는 대중을 선도해온 활동가들은 언제나 그 고뇌에 빠지곤 했다. 자신의 오류를 언제나 정정해나갈지 모른다면 그 어떤 비극적 상황도 쉽게 일어날 것이다. 동생은 비극적으로 총살을 당한다. 독립운동의 뛰어난 리더였지만 자유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이었기에 대립했던 형으로부터.

 

'혁명적 상황'은 그 역동성만큼 저항했던 개인들에게 비극이 되곤 했다. 비극을 연출할 것인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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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브레이크 예찬

 

프리즌브레이크 1편을 이미 본다면, 이 시리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프리즌브레이크는 지금 시즌2를 미국에서 방영중인 미국드라마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tv시리즈류에서 한발짝 앞서있다.

 

이 시리즈에 빠지는 순간 스릴은 멈추지 않고, 혀를 내두를만한 두뇌플레이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다. 게다가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적절히 드라마의 또다른 요소를 담당한다.

 

주인공인 스코필드는 이 드라마의 핵심이고 스토리를 이어가는 중심축이다. 사형수인 형이 무죄임을 알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일부러 은행강도 행세를 하고 체포된 후 같은 감옥에 갇힌 형, 그리고 (본의 아니게) 7명의 다른 동료 죄수들과 같이 탈옥하고, 멕시코 아래로 도망가려는 것이다. 명석한 두뇌, 예리한 눈빛,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근성, 인간애, 치밀함!!!, 헌신성. 게다가 권력에의 개김성까지! 이 시대 영웅들에게 식상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만 하다. 그리고 다른 탈출을 꿈꾸는(시즌1), 또는 탈출한(시즌2) 죄수들이 저마다의 사연, 저마다의 개성으로 스토리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대체 누가 이 시리즈의 시나리오를 쓰는걸까? 누군지 몰라도 천재임이 분명하다.

내가 본 어느 tv시리즈보다 재미있다. 프리즌브레이크를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게 말한다.

지금 시즌2 8편을 엊그제 봤는데 9편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이런 시리즈는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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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년이

 

난년이
-관계맺음, 헤어짐

 

단편영화 <난년이>를 봤다. 러닝타임이 31분정도였던 것 같다. 난년이가 주인공은 아닌 것 같고, 난년이랑 같이 살게되는 강희(맞나?)의 이야기다. 강희는 대체 난년이의 관계맺음의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어쩔땐 헤어진 애인을 생각하며 펑펑 울고, 어쩔땐 매몰차고, 어쩔땐 집에 들여와 sex하고. 너무 쉽다고 해야하나? 단순?

 

강희는 옛 애인을 잊는게 너무 어렵다. 헤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다. 영화는 복잡한 강희의 감정들을 세밀하게 잘 그려낸다. 나래이션은 영화 내내 계속되고 강희가 깔아주신다. 자신의 감정을 일기쓰듯 설명한다. 그녀는 계속 난년이를 바라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난년이의 관계맺음은 남성을 닮아있기도 하고, 여성을 닮아있기도 한 것 같다고 느껴지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난년이는 난년이다. 난년이와의 동거기간이 지나면서 강희는 어느덧 다시 삶을 되찾는다. 다시 찾아온 옛 애인에게 막 키스를 하는데 그 다음날 애인은 사라져버린다. 그치만,

 

아무렇지도 않다. 슬프지도 않고, 오히려 후련? 난년이를 닮게 되었다는건가? 난년이는 '난'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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