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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책에 대한 소소한, 재미있는, 지루한, 발전하는, 구린 생각들

5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5/05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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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3/14
    <나니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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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3/04
    사랑, 그것은 환상<오만과편견><좁은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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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1/2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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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10/03
    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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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9/27
    서울, 1965년 겨울 중에서-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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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6/30
    Recently<죽음,시인,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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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5/24
    요즘2 -신현림, 공지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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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04/27
    무제 -신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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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10/12
    <요즘읽는 책> 안톤체호프 -6호 병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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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추운겨울,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한 곳으로 모여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너무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그 날카로운 가시에 서로 찔리게 되니까 다시 멀리 떨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시 추워진다. 서로에게 다시 다가간다. 이렇게 여러 차례를 반복하다 보면 가시에 찔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추위를 적절히 피할 수 있는 만한 최적의 지점을 찾게 된다. 고슴도치의 가시는 서로간의 가장 적절한 거리를 결정해 주는 근거가 된다.

 

 

나와 너의 거리.

가늠할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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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나니아 연대기>
느무느무 읽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차마 살 수 없는 그 책
(흑흑...언젠가 월급쟁이 삶이 온다면 아껴아껴 이 책과 티나모도티 사진집을 꼭 사고 말거야 ㅠ.ㅠ)

도서관을 뒤져뒤져 드디어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다.

한시간 반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니아 건국 부분만 읽고 말다.

읽다보니 이 부분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아....낼도 또 가서 다음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어볼까?? 훗...

 

판타지가 현실도피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그래도 그 성격 때문에 읽는 맛이 있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 어떤 것인지,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내재된 인간의 속성들이란...

(사실 대부분의 허구 문학이 그렇겠지만)

확실히 원작을 봐야지, 전후맥락이 연결이 된다.

프롤로그만 읽는데도, 성경의 창세기와 <반지의 제왕>의 모티프, <판의 미로: 오필리아의 열쇠>

영화로 제작된 <나니아 연대기>, <황금나침반>이 연결되기 시작.

아...인간의 상상력이란...

아, 시간이 되면 더 많이 생각하고 연구해보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 슬픈 현실...흑

바쁘다...바뻐...흑흑


 

 

시간 부족으로 미뤄놨던 나니아 연대기를 읽다.

캐스피언의 왕자 중반까지 읽다가 잠깐 멈추었는데,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보니

역시 책으로 읽는 것이 더 맛깔난다.

책의 두께가 아니면 진작에 읽어버렸을 내용인데, 그래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접었다.

기독교적 색채가 너무 강한데다가 장자 제일주의가 너무 두드러져 맘 상했다.훗

 

그래도 역시 판타지가 가지는 매력적인 장점은 존재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을 배경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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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은 환상<오만과편견><좁은문>

조금 다른 사랑 이야기

 

얼마 전부터 고전으로 분류되는 소설을 몇 편씩 읽고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소설인데, 지금은 줄거리와 부분적 표현들만 기억에 날 뿐이어서  역시 읽고 난 뒤 그 때의 느낌이나 감동을 기록해 둘 걸이라고 후회를 하면서 읽는 중이다. 그 때는 혹시 문제에 나오면 당황하지 않고 익숙하게 풀기 위해 읽었던 목적이었으므로, 너무 어렵고, 무미건조한 수식의 나열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속에서 사람을 보고, 삶을 본다는 점에 나쁘지 않다.

 

지금부터 기록해 둘 책은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다.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두 책이지만, 뜻밖에도 한 가지 공통점으로 정리된다.

바로 '사랑'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두 작품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서, 함께 묶어 해석하는게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팅 하는 동안 내 지구력이 계속 작용할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오만과 편견>을 읽는 동안에는 얼마 전 영화로 제작되어 '엘리자베스'역에 캐스팅 된 '키이라 나이들리'가 적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하이틴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내게 그녀의 이미지는 톡톡튀는 말투와 억양 너머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눈빛으로 웃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당당하고 자신의 신념이 강한 것 같은 '엘리자'는 소설 후반부로 가면 갈 수록, 사랑을 깨닫게 되면 될 수록 수동적이고 나약해지는 모습이 하이틴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떨렸던 것도 사실 ㅋ)

 

 

 

반면 <좁은 문>은 알리사의 답답한 태도보다 제롬의 미숙하고 소심한 태도에 읽는 동안 불편하고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아마 이 때문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한데,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 신앙과 현실적 사랑 사이에서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절제하고 자신을 속이면서 고독과 열정 사이를 걸어본 적은 있었던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은 여성화자의 시각으로, <좁은 문>은 남성 화자의 시각으로 서술되어 있어 그 필체부터가 다르다.전자가 좀 더 인물의 심리 묘사에 세심하다고 할 수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그 시각이 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결말을 비교해 볼 때, 전작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결국 결혼으로 귀결되는 결말이지만 <좁은 문>은 알리사가 죽음으로써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비극적 결말이라는 점에서 분위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을 결말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간혹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특히 사랑 이야기를 보고 난 후면

그래서 그 이후 그녀와 그는 늘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았을까?를 상상하는데, 대답은 거의 '아닐껄'로 귀결된다.

이것은 언젠가 '비포 앤 선셋'이던가, 영화 시작에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서 그 사람이 사랑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일종의 심리테스트를 해 봤다는 장면에서 '허걱'했던 기억이 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는 습관같은 것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겪었던 사랑과 <좁은 문>에서 알리사와 제롬의 사랑은

그녀 혹은 그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현실적 조건에 맞춰 하는 결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옳다고 믿었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완전무결한 그 무엇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현실적 관계에서 만족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그의 사랑이 무언가의 형태로 결정되었을 때,

과연 그녀와 그가 죽을 때까지 행복했을까란 질문에 나의 대답은 부정적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빙리'같은 남자도 없지만, '달시'같은 남자도 없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백마탄 왕자'는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달시'와 '엘리자'의 관계를 꿈꾸는 사람과, '제롬'과 '알리사'의 이상적 관계를 꿈꾸는 사람은 많다.

'샬로트'와 같이 현실적 조건에 맞춰 결혼을 꿈꾸는 친구들도 있다.

'알리사'의 일기를 보면서, 예전 연애시절 내 일기와 너무 비슷하게 느껴진 점은

나 역시 '좁은 문'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의 환상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그 영혼 속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거울 속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상대방의 마음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처럼,

아니,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보다 더 자세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애정은 얼마나 평온해질까!

             

-좁은 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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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오이저만,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성립사', 아침, 1989

로젠탈, '맑스주의 변증법의 역사', 한울림, 1990

김창호, '마르크스 역사적 유물론과 인간론',죽산,1991

라레인,'역사적 유물론의 재구성',인간사랑, 1987

앤더슨,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 이론과 실천사, 1987

아이히호른 외, '역사적 유물론' 동녘, 1989

 

 

마르크스, '자본론'1권, 이론과 실천 1987

채푸렌코, '현대 자본론 논쟁, 참한 1990

젤레니, '마르크스의 방법론, 까치, 1989

로젠탈,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방법론, 이론과 실천, 1989

이스라엘, '변증법', 까치, 1983

파일, 해리스, '현대 정치 경제학 입문, 한울, 1985

 

 

엥겔스,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돌베개, 1987

스피르킨, 철학연습, 미래사, 1986

 

 

 

포스터,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1, 동녘, 1988

레닌, 기회주의와 제2인터-붕괴' 두레, 1989

튜더, '수정주의 논쟁', '사회민주주의 연구', 새물결, 1991

콜레티, '베른슈타인과 제2인터-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주의 연구1' 새물결, 1991

사끼사까, 마르크스주의 비판과 반 피반, 일원서각, 1991

맥랠런, 마르크스주의 논쟁사, 인간사랑, 1986

브라니츠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중원문화, 1989

김수행, 독일 수정주의 논쟁: 베른슈타인 , 카우츠키, 룩셈부르크,'사회와 사상' 한길사, 1988

베른슈타인, 마르크스주의의 수정, 형설출판사 1991

강신준, '수정주의의 아버지, 베른슈타인, 사회평론, 1922년 6월호, 사회평론사

 

 

 *로자에 대한 언급과 비판들

-토니클리프, '로자 사상의 이해' 구체적 역사 속에서 점철된 사상과 실천의 결정체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로자 룩셈부르크'

-라클라우&무페,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자연발생주의와 역사적 필연성의 범주의 파열 선언

 

**로자 룩셈부르크 '사회개혁인가 혁명인가, '자본축적론, 대중파업 당 및 노동조합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거름 1985

클리프 '로자사사으이 이해, 신평론, 1989

프뢸리히,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과 실천, 석탑, 1991

라이트,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까치, 1989

맥렐런, 마르크스주의 논쟁사, 인간사랑, 1988

김창호, 마르크스주의와 인간론, 죽산, 1991

라클라우, 무페,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터,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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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칼릴 지브란

 

 

 

 동네에 제법 큰 서점이 하나 생겼는데, 거리도 가깝고, 분위기도 참 좋다.

 무엇보다 사람에 먼저 질리는 대형 서점과는 달리 

 한적한 분위기에 책 구경하러, 걸어서 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게 가장 좋다.

 (물론, 서점이 망하지 않고 계속 자리를 잡을까와의 문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오는 길에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와

지브란의 잠언집 <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을 단돈 4000원에 사들고 왔다.

헤세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건 한 3년 쯤 지나서 쓰고 싶다.)

 

 칼릴 지브란의 책을  반 정도 (후루룩) 훓어읽기를 하는데,

 그 중에 맘에 드는 몇 구절만 따오면....

 

▒  

우리들은 누구나 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같이 실질적이고,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이상주의자가 된다.

 

 

 

만일 골짜기들을 보고 싶다면 그대는 산을 올라야 하고, 만일 산꼭대기를 보고 싶다면

그대는 구름 위로 올라가야 하지만, 구름을 이해하는 것이 그대가 추구하는 것이라면

눈을 감고 생각하라.

 

(난 뭘 추구하려고 하는 걸까? 따위의 질문이 이어지게 만드는...)

 

 

미친 사람들 대신에 온전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병원들을 짓는 것이

여러 나라의 정부를 위해서 보다 경제적이지 않을까?

 

(꼭 경제적인 것을 추구하기 보다, 요즘엔 정말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공감)

 

 

 그들이 나에게 말했다. "만일 잠든 노예를 발견하면 그를 깨우지 마세요.

그는 자유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만일 잠든 노예를 발견하면 그를 깨우고 자유에 대해서 그와 얘기를 나눠야 합니다."

 

 

 

이 중에서도 요즘 내가 하는 생각과 가장 비슷한건

 

 ▒

"어떤 사람들은 귀로 듣고, 어떤 사람들은 위장으로 듣고, 어떤 사람들은 호주머니를 통해서 들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전혀 듣지 못한다."

 

라는 것.

 

 

 요즘엔 주변 사람들이나 나를 보면서 느끼는게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들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 혹은 내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

자신의 이야기로만 가득찬 사람에게는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공간이 없다.

 

그건 여유인걸까?

 

 후욱.

 

♬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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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5년 겨울 중에서-김승옥

 

 

 

#1. 현대인의 대화

 

무의미하다. 결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느꼈던 것만을 주고 받는다.

 

혹은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대화의 80%의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은

하나의 대화 장면에서도

나는, 나는, 나는-으로 시작한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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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ntly<죽음,시인,사회 중에서>

#1.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어렵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의 독특함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전통에 도전해라.

 

 

-죽음,시인,사회(Dead Poets Society) 중에서

 

 

 

 

오랜만에 본 영화.  한 달전에 다시 봤지만, 지금 이 말이 너무 필요한 때.

다시 우울주기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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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2 -신현림, 공지영

3.

그것은 세상과 사람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일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더욱 필요한 시간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사람의 내면세계는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풍요롭다.

그만큼 깊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깊은 생각은 자신의 내면을 꼼꼼하게 살펴보게 하고

의식의 폭을 확대하여 포용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 요시모토 타카아키

 

꼭, 성공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 이 구절이 맘에 들었다

달팽이가 빌려 준 책. 신현림의 인생찬란 유구무언

제목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책을 읽어보니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제목으로 써놓은 구절이 간간히 맘에 들기도 하고..

사실 글 보다는 사진이 더 맘에 들더라.

 

하지만 요즘 내 모드와는 맞지 않아.ㅋ

 

 

4.

"무미건조한 삶에 새로운 하루를 갈망하며 한참 달리다보면

가슴이 뻥 뚫려 내가 점점 비워져 바람이 난지, 내가 바람인지 모른다.

태양 아래 흐르는 바람을 안고 자연의 품속에서 아늑한 시간을 갖는 것.

그 멋진 순간. 누군가를 그리워할 시간.

 

 사실, 이게 더 맘에 들었다.

이 구절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건 서정주의 '자화상'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는 그 의미를

그 바람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닫고 있기 때문에 더 와닿았는지도.

 

서정주를 싫어했다.

아니 지금도 싫어한다.

그런데 가끔 그의 시어가 가슴을 흔들어놓을 때가 있다.

그건 서정주의 시어를 매개로 하는 내 경험과 삶이 주는 흔들림이지,

서정주의 시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5.

 공지영의 '무엇을 할 것인가'

 

헌책방에 들러 소설집 한권을 샀다. '카프카를 읽는 밤'

그 중에 첫 부분에 공지영의 소설이 실려있다.

공지영의 소설을 읽으면 나는 불편하다.

신경숙이나 은희경의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는 또 다른 것이다.

 

소설 이면에 자리잡은 패배주의적 면모나,

철저한 틀 속에서의 운동과는 대립되는  개인주의적 일상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거슬리는 것 같다.

 

왜 거슬리는 걸까?

 

물론 내가 운동에 있어서 철저함이나 계획성에 대해 절대적이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이고 온정적인 서술자를 비롯한 공지영의 글쓰기 태도가 부르주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녀가 말하는 운동의 경험이 주는 답답함과 그로부터 일상을 찾은 자유로움,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씁쓸해하는 태도가 싫다.

사람이 상대를 싫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싫어하는 모습이 자신에게도 존재하기 때문이라던데,

공지영의 글에서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빛으로 살아있던 선배의 모습과, 논문속에서나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모습.

퇴색되어버린 운동의 일상들. 이걸 맘모스를 통해 얘기하는 구절이 있다.

 

"맘모스들이 커다란 소리로 쓰러져 얼음 속에 갇혔대....글쎄 몇만 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상한 데가 없다잖아...파랗게 얼어서....그 둥그렇고 날카롭던 상아도,

허공을 향해 치켜뜬 눈매도 모두 다 그대로라는 거야...얼어붙어 있는 붉은 피까지...

밀매꾼들이 그 맘모스를 발견해서는 상아만 가져다가 판다는 거야....그게 돈이 되니까...

그리하여 맘모스의 치켜뜬 눈동자하고 얼어붙은 붉은 피만 영원히 지하에 갇히는 거지...

돈이 되는 상아만 빼고...."

 

 

 

6.

 이 구절이 그냥 눈에 띠었다.

 

" 아무리 이 겨울의 어스름 속에 떨면서 서 있는다 해도 곧 파란 신호등이 들어올 거라고,

그래서 모든 차를 멈추게 하고 길 건너편에서 이쪽 편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걸어가도록

만들어 줄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영영 파란 불은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 자리에 그대로 언제가지나 서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공지영, 무엇을 할 것인가 중에서

 

 작가는 기술한다.

" 나는 길을 건너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방향도 없는 길이었다. .... 봄이 올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그래서 난 어디에 서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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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신현봉

 

무제

                    신현봉

 

 

산다는 것은

멀리에 있는 별을

바라보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 별 뒤의 별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 별에

닿고 싶어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눈물나는 일이다.

 

 

 

  지난 일기를 훑어보다가, 이 시 밑에 써 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날마다 사는 일이 후회이고, 날마다 사는 일이 허물이고, 날마다 사는 일이 연습인 세상에서

별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끔 나는 별을 잊어버리고

때로는 별과의 거리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라고.

지금은?

지금도 마찬가지.

 

내가 바라보는 별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걸.

 

 

 

 

 

다음주부터는 여유가 생기니까. 간만에 여행이라도 좀 다녀와야겠다.

도심을 휩쓸고 다니든가, 아님 기차라도 타고 가까운 곳에 다녀오든가.

가슴에 바람 좀 불게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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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읽는 책> 안톤체호프 -6호 병동 중

 

 

사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정상적이고 당연한 겲말이라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으려 한단 말인가? 어떤 장사치나 관리가 5년이나 10년을 더 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학의 목적을 약으로 고통을 덜어주는데서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을 무엇때문에 줄이려고 하는가? 첫째, 흔히 말하듯이 고통은 사람을 완성으로 이끈다.

둘째, 인류가 정말로 알약과 물약으로 자신의 고통을 절감시킬 줄 알게 된다면, 그전까지 온갖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었고 나아가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종교와 철학을 아주 저버릴 것이다.

푸쉬킨은 죽음을 앞에 두고 무서운 고뇌에 휩싸였고, 가난한 하이네는 중풍때문에 몇 해 동안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안드레이 에미비치나 마트로냐 사비슈나와 같은 사람이 아프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들의 삶은 보잘것 없으며, 고통마저 없다면 아메바의 삶같이 전적으로 공허할 것이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단편선 - '6호 병동'중에서


<죽음에 대한 다른 시각. 고통, 불안, 죽음을 존재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특이해서 몇 자 적어놓는다.  06.10.12>

 

 

 

 

오늘 블로그에 글을 많이 쓰는군.

요즘 읽는 책이다. 예전에 이름만 들어서  알게 된 작가다.

"책 속에서 권총이 나온다면 그것은 반드시 발사되어야한다." 라나 뭐라나.

아마 내 기억으론 이광수 '무정'을 비판한 김동인의 비평글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 같다.

 

 

아직 절반정도 읽었는데, 솔직히 재미는 없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체가 꽤 맘에 든다.

후기에는 희곡을 많이 썼다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꼬옥 읽어봐야겠다.

 

자세한 독후감은 책을 다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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