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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2
    촛불-프롤레타리아-다중
    redbrigade

촛불-프롤레타리아-다중

  • 등록일
    2009/06/22 07:54
  • 수정일
    2009/06/22 07:54

 

* 이번 4회 [맑스꼬뮤날레] 원고. 거의 초고 상태의 따끈따끈한 글. 언제 퇴고할지는 모른다.

 

촛불-프롤레타리아-다중

 

 

1. 촛불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는 선재된 대답과 더불어 하나의 부정이 있다. 대답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날카롭게 도드라져 보이는 이 ‘부정성’을 먼저 밝게 톺아 봐야 하겠다.

 

우리는 어째서 ‘촛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촛불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일까? 그것은 일견 너무나 당연하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를 ‘아버지’, ‘어머니’, ‘학생’, ‘소비자’, ‘애국자’, ‘노동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런 ‘사람들’이고 그래서 ‘무엇’이라고 묻는 대신 ‘누구’(Qui)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 즉 이 물음에는 나와 집단을 가르는 반성적 매개로서의 ‘지성’보다 반응과 수용(receptivity, 감수성)의 새로운 감성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이 ‘누구’라는 질문 속에는 주체와 대상을 이분화하고 대상을 주체 아래(sub)에 던져 놓는(ject) 폭력적 근대성에 대한 거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라고 묻는 자(지식인, 학자, 토론자, 발제자)는 에누리 없이 ‘누구’에 대해 답을 준비하는 또 다른 자와 다르지 않다. 언표의 주체와 언표 행위의 주체가 다르지 않은 상황, 해석적 주체와 해석 상황이 겹치는 이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은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해석이 “앞과 뒤로”(réegressif et prospectifs) 연관되는 순환적 관계에 처해 있는 것이다.1

 

촛불은 인위적(artificial)이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이라고 볼 수 없다. 촛불은 자연의 일방향으로서의 죽음의 계열을 더 앞으로 추동하거나(그래서 그 반응을 파쇼화하여 내파(impulsion)하거나),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양태를 다기화하여 예측불가능한 춤으로 승화시켰다(축제로서의 집회, 경찰들에게 던져졌던 농담들). 그러므로 촛불은 예술(art)이며 기술(ars)이며 인위적(artificial)이다. 정치가 공적 담론장에서 하나의 예술이라면 촛불은 공적이면서(광장) 동시에 사적인(가정과 개별적 감수성) 담론장에서의 예술적 기예라고 할 수 있다. 촛불이 전복했던 그 모든 고전적 또는 근대적 형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담론장의 분열에 다리를 놓는 작업, 사적 담론장의 노예이길 거부하는 주부들(82 쿡),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수동적 호명기제이기를 거부한 학생들(10대연합)이 광장으로 나왔고, 전통적 집회주체들(전대협 동우회와 시민단체들)이 뒤로 빠지거나, 사적 담론장인 가정에까지 가서 촛불을 밝혔다(재택 촛불, 광우병 반대 현수막). 그러나 먼저 물어 보자. 이것은 정치인가? 그리고 다음 질문이 제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령인가? 또한 이것은 프롤레타리아인가? 대답이 부정적일수록 전망은 더 모호한 지점을 향해 열릴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호한 지대(zone obscure: Deleuze)가 공허하다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된다. 거기에는 분명 들끓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지금도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2. 이것은 정치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정치를 혐오한다’고, 아니면 ‘이제 정치적이 되었다’고. 전자는 정치적 행위의 모든 방면으로 부정성을 실어 나른다. 후자는 최소한 부정성을 거두고 소극적인 수준에서부터 적극적인 수준으로 자신의 감수성을 부르주아 정치와 광장 정치에 개방한다. 이 둘은 이렇게 차이가 나지만 또 한편으로 동일한 구조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라는 데 공통성(communality)이 있다. 그 구조는 부르주아 정치라고 불리워진다. 이들이 혐오하면서 동시에 관심을 가지는(결과적으로 혐오스러운) 정치(Politic)2는 광장의 절규가 아니라 의회의 정치, 다시 말해 대의정치인 것이다. 대의정치의 한계라는 의제는 이런 경우 매우 합당해서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3

 

광장 내부에서도 이 정치에 대한 혐오가 드러났다.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다함께’ 방송차량에 대한 거부, 깃발에 대한 거부. 나중에 드러나지만 중요한 것은 ‘다함께’가 아니라, ‘앞 장 선’ 방송 차량이고 깃발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광장의 정치‘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전위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여간 ‘대중은 전위를 경외한다’라는 오래된 볼세비키적 경구는 전위에 대한 대중의 오래된 불신을 전위 자신들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신문(맑스의 [라인신문], 레닌의 [이스크라])이 필요했으며, 여기에 조직적 역량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4

 

그러나 2008-9년 서울의 광장에서는 이 신문들은 방석 역할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위들이 더 이상 전위일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어떤 전위 인자의 과학적 예측력도 촛불의 형상을 그 명민한 두뇌 안에 그려내지 못했다는 것, 이 기가 막힌 전위의 무능력이 촛불들로 하여금 그들의 퇴장을 명령하게 한 것이다. ‘예측’과 ‘발 빠름’이 없는데 앞서(avan-) 지키는 것(-guard)이 가능한가? 웃음거리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촛불이 켜진 뒤에야 날개짓 했던 올빼미들이 그 둔한 몸을 이끌고 독수리처럼 날려고 했다는 것이 그들이 퇴출된 이유였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5결론적으로 촛불은 부르주아 정치와 더불어 볼세비키 정치도 거부한 것이다

 

3.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부르주아 정치와 전위들이 빠진 자리에 촛불은 어떤 형상을 하고 서 있는가? 프롤레타리아? 정치(politic)? 아니면 온전히 프롤레타리아 정치? 촛불이 프롤레타리아였던 적이 있었던가? 촛불은 대중(mass)인가? 다중(multitude)인가? 우리는 지금 헤묵은 ‘주체론 논쟁’의 영역에 진입하는 중이다.

 

가장 손쉬운 대답은 이것이다. 그래도 시작은 여기서 해야 한다. 첫째, 촛불은 중간계급이다. 둘째, 촛불은 근대적 형상의 민중(people)도 아니고, 경멸적 의미의 군중이나 어중이떠중이(룸펜)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주체성’의 탄생이다. 셋째, 촛불은 진지구적 세계화와 지구제국에 대항하는 다중(multitude)의 한 흐름이다. 그리고 네 번째 대답이 가능하다. 즉 촛불은 맑스의 1848년에 유령처럼 떠돌던 그 공산주의적 주체성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바로 그것이 두 세기를 경과하면서 가면을 바꿔 쓴 누승적 역량이며 그것의 회귀이다.6

 

첫째 대답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많은 지식인들이 촛불은 ‘중간계급 운동’이며 그러한 계급적 한계에 갇혀 있으며, 그 의제가 지속적, 집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고 말했으며, 지금도 그런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촛불의 최초 의제는 ‘교육’이었고 그 다음은 ‘검역주권’(광우병 소고기 수입 금지, “협상무효, 고시철회”)이었으며, 그리고서 “정책 반대”(“명박퇴진”)였으고, 투쟁이 진행될수록 반정부 투쟁적 성격이 전면에 나섰다.7여기 어디에 중간계급적 특징이 있다는 것일까? 참여한 촛불들의 계급적 기반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중간계급’이라는 계급론적 바운더리 내에서는 그 지평이 다 잡히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야 한다. 거기에는 노동계급(전통적인 산업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하여)도 있었으며, 주부와 학생들, 노인들도 있었다. 이런 방향에서 계급론이라는 정치학적 범주를 적용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촛불의 의제가 중간계급적이라는 것인가? 이 방향에서는 의제가 가지고 있는 표면적 모양새에 천착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교육이든 검역주권이든 정책반대든 간에 촛불들의 주장과 요구는 모호하거나 산발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간계급적 요구의 특징인 ‘이권’에 속박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리’와 ‘존엄’, ‘생명’에 관한 것이었고, 이러한 가치들을 소외시키는 정책과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이며, 따라서 그것은 ‘해방 투쟁’이다.8

 

계급적 기반도, 의제의 의미도 중간계급적이지 않다면, 전술적 차원에서 촛불이 중간계급적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특히 투쟁 기간 동안 현장을 떠돌던 ‘폭력/비폭력’ 공방은 이러한 성격규정에 결정적인 단서를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안은 매우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 주장들은 여러 갈래의 계열들을 거느린 담론 상황을 연출한다.

 

일단 어떤 경우에서든 폭력은 안 된다는 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투쟁이 잠재성 차원에서 도사리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터져 나오지 못한 활력이 출구를 찾아 숨을 몰아쉴 때야말로 폭력의 새파란 본성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활력(puissance)을 검열하는 권력(pouvoir)은 필연적으로 ‘지하의 격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며, 억압된 폭력은 반드시 귀환하기 때문이다(Deleuze, Lacan). 그렇다면 어떤 폭력인가? 여기서 폭력은 해석적 지평의 확산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앞으로 뒤로’ 들고 나야 하는 것이다.

 

권력의 폭력이 경찰력을 통해 대리되는 것과는 달리 촛불의 폭력은 직접적이다. 무엇보다 권력의 폭력은 촛불들의 경제적 잉여가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기생적이며, 결국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숙주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물리적인 강도에 있어서는 권력의 폭력이 월등하다. 여기에서 바로 ‘무장’의 요청이 나온다. “다 알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저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냐?”라는 질문은 너무나 선명하고, 절실한 실용적 요청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 무장이 이루어지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달린다. ‘자구책’으로서의 폭력, 즉 ‘정당방위’에만 무장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촛불들은 플라스틱 방패를 제작해서 들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보잘 것 없는 무장은 현장에서 전시효과조차 내지 못하는 무용지물임이 곧 밝혀졌다. 여기에 또 한 계열의 문제가 발생한다. 도대체 논의 과정에서 말한 그 자구책이라는 것도 현장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때부터 대오 이탈이 발생하면서 좀 더 전투적인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 간의 조직적 스펙트럼이 뚜렷이 형성되는데, 이 과정에는 반드시 노선투쟁이 겹친다(대책위와 안티MB, 연석회의, 전대협). 그렇다 하더라도 적극적인 폭력 투쟁이 필연적으로 급진적 부위에서 발생한다는 사고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현장에서의 투석전이나 거점 점거(명동 투석전, 하이서울 페스티발 무대 점거)가 폭력 투쟁 선도 부위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투쟁의 물리적 폭력성이 현실화 될수록 대오에 변화가 생긴다. 다시 말해 소극적 부위의 투쟁에 대한 회의가 나타나고, 이들의 이탈이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 살펴보자. 이러한 대오이탈과정이 과연 비가역적인가?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과연 주체역량의 훼손이나 감소를 증명하는가? 두 질문 모두 ‘아니다’로 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후의 사태들(제2, 제3의 촛불들)이 ‘아니다’라는 대답에 실물적인 근거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쟁의 폭력성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반 상황들의 정련을 통해 투쟁이 잠재성의 차원에서 지속되면서 더욱 더 밀도 있게 성장한다는 것이다.9

 

그런데 나는 이 두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는 기제가 ‘촛불중간계급론’의 사유를 지탱하는 철학적 패러다임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목적론이 그것이다. 이 사고는 고전적인 진보주의의 끈질긴 관성 하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세계는 여러 단계의 사회구성체를 거치면서 그 최후의 부르주아적 형태인 자본주의로 진화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주체적 역량의 발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상당한 목적론적 낙관주의가 숨어 있다. 첫째로 세계의 역사적 경로가 필연적인 전진형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노동계급의 주체 역량에 대한 믿음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역사의 전진은 노동계급 투쟁 승리의 역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목적론 패러다임은 물론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철학적으로 살펴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협소한 근거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목적론이 도달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천년왕국’이다. 그리고 그 과정 전체는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 가는 선형적 경로와 일정 안에 놓여 진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전망 안에서 목적론은 신학적 메타포를 구사하면서 운동의 원초적 촉발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지속을 단지 물리적 흐름으로 축소시키는 효과를 달성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물리적 과정의 총계의 축적일 뿐 아니라, 비물질적 과정, 즉 관계와 비실체적 항들 간의 조우와 공명을 통해서도 움직여진다고 말할 수 있다.

 

정당하게도 촛불은 이러한 조우와 공명의 과정을 증명한다. 촛불에게는 사전모의훈련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목적은 운동이 변해 가면서 함께 변화했으며, 대오의 움직임은 타격지점(청와대)과 거점확보(청계광장, 시청광장, 명동 등)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관계는 물리적으로 정해진 흐름(조직적 질서)을 따라 형성되기 보다, 그때그때마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이용하여 형성되었다. 오히려 이런 비물질적 매개들이야말로 투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동하였다. 따라서 촛불의 주체역량은 감소하지도 않으며 대오이탈이라는 현상적 모습이 비가역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촛불-주체’라는 형상은 어떤 단일하고 구조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관계성의 역량과 과정의 진퇴 하에서 그것의 동력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계성은 상대방(동지들, 심지어 적들까지) 또는 상대항(투쟁의 도구들, 피켓, 장소들, 구호들)을 소외시키면서 서로를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이라는 거대한 투쟁-기계 안에 동등한 흐름으로 서로를 인정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만이 투쟁은 대오의 양적 팽창과 감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존엄을 유지하면서 영구혁명(또는 지속투쟁)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제2, 제3의 촛불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고전적 목적론이 결코 선취할 수 없는 관점을 투쟁 일정의 도약 가운데에서 촛불 스스로가 현실화시킨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과연 촛불을 그저 중간계급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촛불에는 협소한 중간계급론이 점유하기에는 벅찬 지평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화석화된 계급론은 이러한 지평을 다 포괄하지 못한다.10

촛불을 중간계급이라는 관점으로 재단하는 폭력을 행사하기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전통적 개념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 더 낫다.11

 

4. 다음으로 두 번째, 도대체 ‘새로운 주체성’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민중이라든지 군중이라는 근대 정치철학적 주체성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는 대답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방면에서 이런 식의 대답은 운동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소극적 규정에 그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촛불을 통해 주체성의 형상에 대해 좀 더 근원적인 비판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촛불-주체성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주체성의 도식과는 완전히 다른 형상, 괴물의 도래를 예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초기 산업자본 시기의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이 주체성은 스스로 착취의 대상이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착취→임금’이라는 임노동 관계의 기본 일방향(bon sense)을 역전시키면서 ‘임금’에 대해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사회적 존엄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서 화폐를 자기 아래에 종속시키기를 원한다. 이들의 요구는 궁극적으로 화폐관계의 폐절을 향할 것이다. 이들은 부르주아 기업과 국가의 자기 구제책으로 번번히 시도되는 인위적 인플레이션과 내핍정책의 양 극단에 내 몰리면서 스스로의 노동가치를 평가절하 당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기업 간 경쟁의 폭력적 분위기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촛불-주체성은 자신의 몸에 기생하는 국가 권력에다 대고 ‘헌법 1조’를 들이 대며 자신의 제헌적 권능을 확인시키고 이들 기생 권력으로부터 그동안의 모든 영양 공급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생존재가 이제는 숙주의 관대함을 비웃을 정도로 자신의 존재기반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도 이들은 외생적 판단에 길들여지기보다 스스로 이론을 형성하고, 경험과의 피드백을 통해 철학(공동체주의), 경구(함께 살자, 대한민국), 행동 지침(반MB 전선)을 발명해 낸다. 그 모든 전위적 이론들을 비웃으며 추상의 그물(궁극적으로 지식-권력 기계의 포획망인)을 빠져 나가면서 자신을 시물라크르화한다. 실체 없는 주체, 대상화되어 종속되지 않는 이 주체는 그래서 ‘주체’(subject)가 아니다. hypokeimenon도 ousia도 될 수 없는 이 ‘천민’들, 소피스트들, 반소크라테스, counter-idea, 체계의 전복자들, 히드라 ... 이들은 하나의 명사로 지칭되지 않는다. 다만 인터넷 생중계의 화면 안에 어른거리며, 권력의 심장부에 당도한 괴기한 ‘아침이슬’ 소리, 그 유령일 뿐이다.12

 

다시 한 번 물어 보자. 이들을 ‘촛불-주체’라고 부르는 게 가능한가? ‘주체’라는 그 빈약한 개념의 그릇에 이들을 담아내는 게 가능한가? 맑스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가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을 재정의하고 그것에 변혁의 전망을 담아 냈을 때, 실재로 프롤레타리아가 ‘주체’였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촛불도 마찬가지다. 1848년에 ‘공산주의-유령-프롤레타리아’가 가능했다면, 지금은 ‘X-괴물-촛불’이 가능한 건 아닐까?

 

5. 세 번째 대답에 대해 살펴보자. 촛불을 든 사람, 즉 캔들러(candler)는 다중(multitude)이라고 불리워진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 촛불을 ‘중간계급’이라 칭하는 것보다 정확하다. 왜냐하면 촛불의 특이성과 다중의 특이성이 언제나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13 그러나 촛불은 차라리 민중의 부정적 상으로서 군중에 가까울 때도 많다. 선두에 선 촛불들이 물대포를 맞으며 연좌하고 버틸 때 대부분의 촛불들은 비 맞은 개미떼처럼 물러났다. 선두의 촛불들에 대한 어떤 동지애도 그 순간에는 없었다. 두려움, 동요, 변덕, 이기심 ... 이와 같은 것들이 촛불들에게는 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하다. 여기, 이 지점이 바로 정치‘들’이 실패하는 지점이다. 이때 정치는 예술로 승격되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적 의미의 ‘정의’로 격하된다. 그 모든 부르주아적 공격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수행된다는 것을 기억해 보자. 실패한 정치‘들’은 자신의 예술가적 인격성을 고스란히 부르주아들에게 번제하고, 스스로 대문자 정치 안으로 해소되길 기꺼이 바란다. 외디푸스 감옥에 다시 갇힌 촛불들, 이들에게 ‘프롤레타리아’라는 영광된 이름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14

이들에게 어떤 공통성(communality)이 있는가? 이들은 기껏 세계에 내던져져 불안(Angst)에 떠는 ‘그들’(das Man: Heidegger)일 뿐이다.15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로서의 촛불은 동시에 역사적 프롤레타리아보다 더 위대한 공통성을 향유한다. 앞서 말한 이들의 소통, 공명, 창조성 등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역사적 프롤레타리아에게 이런 공통성의 질감이 존재했던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촛불이 향유하는 공통성은 정보사회 자본주의의 유산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시점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프롤레타리아는 1968년 부터 1990년대의 투쟁순환 국면 동안 비물질적 노동의 성과를 투쟁의 활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16

 

불안과 위대함이 공존하는 촛불은 그래서 ‘어떤 활력’(puissance-aliquid)이며, 그들이 가진 감수성의 필연적 운명에 따라 부침하지만, 또한 그들이 가진 코나투스(conatus)의 운명에 의해 공통성의 기쁨, ‘억누를 수 없는 코뮤니스트의 웃음’(Negri)을 향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니, 이들은 존재(einai)가 아니다. 이들은 삶의 부정성까지 긍정적으로 포섭하는 운동이며, 이 역동적 운동 속에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투쟁의 반환점이기 때문이다. 실체를 거부하는 운동인 이 촛불들은 어떤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다중이라기보다 다중적이며, 프롤레타리아라기보다 프롤레타리아적이며, 신이라기 보다 신적이다.17고귀하며 야만적인 어떤 것, 그것은 ‘촛불’이라기 보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촛불-되기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이 운동은 통합과 전체화의 운동이 아니라, ..., a, b, c, ... 촛불 ... x, y, z ... 이렇게 이어지는 이접 항들의 운동이다.

 

6. 네 번째 대답, 즉 촛불은 맑스의 1848년에 등장한 유령의 누승적 역량이며 그것의 회귀라는 대답을 살펴 보자. 이는 프롤레타리아의 재구성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략 안에서 촛불은 온전한 주체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는 아마 두 번째 대답의 보완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그것을 주체성이라는 ‘온전함’을 만족시키지 않는 계획적인 방해가 존재한다. 이 방해는 앞서 살펴 본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촛불 자체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먼저 1848년의 프롤레타리아는 그 실체적 면모가 갖추어지기 전이었다. 맑스는 그것을 호명하고, 그 힘을 ‘불러낸’ 것이지, 자족적인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를 ‘명명한’ 것이 아니다.18 그렇다면 촛불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이긴(프롤레타리아적이긴) 하지만 진보주의에서 구상하는 그런 방식의 강고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촛불은 다중으로 불리워질 수 있지만, 다중이 아니고 프롤레타리아가 아니지만 프롤레타리아적이다. 촛불은 정치적 차원에서 정치‘들’의 관계성이며, 주체성의 차원에서 ‘-되기’의 운동일 것이다.

 

7. 100만 촛불, 이 숫자는 촛불의 양적 팽창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숫자에는 통계적 추정을 넘쳐나는 예측불가능하고, 측정 불가능한 특이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촛불은 멈춰 있거나 과거에 고착되지 않고, 항상 도래하는 것인 바, 이는 불안과 두려움의 분위기 속에서 부르주아지의 진지를 배회하는 괴물의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편에서는 투쟁과 축제의 모습으로 광장을 점거하는 것이다.

 

대문자 정치를 탈주하는 정치‘들’과 주체성의 경계를 비웃으며 계급 간격을 뛰어 넘어 공명하는 ‘-되기’는 때로 ‘정의’(dikaiosyne) 안에서 활력이 선분화되고 벡터가 영점으로 수렴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운동은 진행 중이다. 빛의 속도로 주파하는 이 활력들은 결코 일방향으로 달리지 않으며, 정치적 시공간의 휜 면을 따라 가장 빠른 길을 달린다. 우리는 촛불을 대상화하고 스스로를 주체화할 수 없다. 정치적 시공간의 속도는 그러한 매개 전략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것이 직접적이다. 우리는 촛불을 들고 나가야 하며, 정신력을 투여하면서 정세를 밀어내야 한다. 그 순간에, 광장에서-지금/여기(hic et nunc) 전술이 결정된다. 내 몸의 클리나멘과 저 몸의 클리나멘이 만나 조우하고 교전하는 광장에서 정치‘들’의 관계성이 들끓는다.

촛불 시대의 레닌은 외치지 않고 노래한다.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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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신, 도플 갱어, 그리고 카프카의 애벌레. 거울 속의 나... 이들은 모두 촛불의 표현적 등가물이다. 분명한 것은 거울 속의 나와 현실의 나가 같지 않은 것처럼, 이 표현적 등가물들이 내용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언급한 부분은 Ricoeur에 의해 강조된 하이데거라 할 수 있다. Paul Ricoeur, Le Conflit des Interpréetations-Essais d'hermeneutique(Paris: Seuil), 1969 p, 27, Heidegger, M., Sein und Zeit(Frankfurt am Main: Klostermann),1977, p.11 참조. 따라서 이 주체에게 해석은 곧 삶이며, 삶은 해석에 의해서 그 의미를 발견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이 정치는 대문자 정치, Politic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적 의미의 이 정치는 ‘정의’(dikaiosyne) 즉, 제 사회 계급 간 역관계와 역능을 직업과 신분이라는 실용적 선분으로 나누거나 조절하는 제왕적 계급이나 존재의 책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광장의 절규는 이 책략을 훨씬 상회한다. 오히려 책략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치에 대한 경멸이 그토록 생동감에 넘칠 것이다. 내 생각에 광장의 절규는 ‘공개된 음모’를 자신의 전술로 내세운다. 아고라와 각종 촛불 사이트에 게시된 전략, 전술들은 공공연하지만 부르주아들을 대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들만을 대상으로 말한다. 하지만 보안은 지켜지지 않으며, 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정작 광장에서는 이 전략 전술들이 모두 발휘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 이 전술들이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보안 사항을 공공연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된 전술들 중 하나라도 먹혀들면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경찰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었다. ‘전술은 많을수록 좋다. 그럴수록 저들은 더 혼란스럽다. 우리는 광장에서 어떤 전술이 먹혀들지 결정할 것이다.’ 이런 전략-전술에 기반한 정치는 대문자 정치를 삭제(Politic)하고 다수의 소문자 정치에 투여하는 어떤 정치'들'(politic's')이라고 할 수 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촛불에 투여된 이 부정성, 즉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의 폐기에 대해 히스테리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최장집 등)에게 이 사태는 ‘위기’로 비춰졌다. 이들의 눈에는 한나라당이든 촛불이든 이 측면에서 동일하다. 따라서 이들이 바라는 것은 촛불의 의제를 민주당과 민노당 등 제 의회 세력이 받아 안고 문서화하여 부르주아 정치 일정 안에서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관점은 번번히 좌절할 것이고 실제로 좌절해 왔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 결국 맑스는 아카데미를 떠나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실 정치 일정 가운데에서 비로소 대중은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레닌의 경우에도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하기 전에 그의 권위는 러시아 노농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5.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어떤 필자들은 촛불의 한계가 조직된 전위의 부재에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백승욱, 이택광 등, 『미네르바의 촛불』, 조정환 지음, 갈무리, 2009 참조). 좀 더 많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서 추상적 논리나 이념이 개입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촛불 초기에 퇴출되었던 깃발들이 서서히 촛불로 복귀한 시점을 살펴봐야 한다. 이 시점은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촛불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 즉 깃발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촛불의 전위가 아니라 후위가 되었을 때, 그리고 둘째, 촛불이 저점으로 향해 갈 때, 즉 양적 열세 속에서 활력의 감수성을 전투적으로 북돋워야할 시점이다. 깃발이나 전위적 요소들의 역할을 재고하는 것은 이런 방식의 배치 안에서 가능하다.텍스트로 돌아가기
  6. 가능한 대답들에는 제시된 네 가지의 절충안도 가능하다. 이렇게 대답들이 엇갈리는 이유는 이론적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촛불이 일구어내는 실재적 상황이 그만큼 복잡다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부언하자면, 이러한 투쟁의제들이 ‘반신자유주의’라는 전지구적 의제로 수렴되지 않았다는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섣부르다고 보인다. 그보다는 촛불 의제들의 신자유주의적 함축을 살피고, 그것을 거리의 구호로 정련해 내는 작업에 어떤 역량 투여가 필요할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7. 나는 이런 촛불 의제의 진화가 어떤 전위적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전위의 인식론적 선점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경찰과 대리전을 치르는 동안, 촛불들은 그 싸움이 결코 하나의 의제에 결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투쟁이 양적으로 커질수록(의제의 전염) 질적 측면의 강렬도는 증가하며 그 역의 과정도 되풀이된다. 현실적 투쟁이 소극화되는 단계에서도 이 질적 강렬도는 잠재적 단계에서 꾸준히 유지된다. 제2의 촛불(용산), 제 3의 촛불(노무현 서거)은 이 잠재성의 차원이 없다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투쟁 상황에서 문제제기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촛불 자신의 감수성이 극대화되면서 지성의 활력이 촉발되는 대자적 자기 구성(self-constitution)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전위의 인식론적 선점이란 이 자기 구성 과정의 미미한 한 계기일 뿐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8. 여기서 성과를 따져서는 곤란하다. 성과에 대한 평가는 전술론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9. 투쟁이 잠재적 차원에서 더욱 큰 밀도로 성장하는 과정을 우리는 폭력/비폭력 논쟁의 자연스런 해소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애초부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어쨌든 ‘폭력의 정련’이며, 그것이 다기한 방식으로 현실화되는 참신한 아이디어들이다. 즉 전술의 개발과 그것의 발휘인 것이다. 현실폭력은 그 와중에 촛불의 활력이 드러나는 한 계기일 뿐이다. 분명히 밝히지만 난 투쟁의 현실폭력을 반대하지 않는다. 정치가 예술이라고 하는 의미는, 특히 프롤레타리아 정치가 예술이라는 그 의미는 폭력의 강도 그리고 그 조절과 무관하지 않다. 때로는 비폭력 무저항이 한 무더기의 테러리즘 전시효과보다 더 큰 투쟁의 전진을 보장할 수 있으며, 때로는 거점 확보를 위한 폭투가 절실할 때가 있는 법이다. 이 판단의 정련, 이 결단의 시기, 그때 네차예프가 아니라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 즉 주관주의보다 객관주의가, 정념이나 신념보다 사태에 대한 금욕적시선이.텍스트로 돌아가기
  10. 맑스의 계급론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힌다. 여기서 말하는 화석화된 계급론이란 오히려 산업사회 초기 단계의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교조적 계급론을 가리킨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1. 이에 관한 논의는 조금 뒤에 이어진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2. 여기에 ‘촛불 민족주의’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이 문제는 초기 촛불, 다시 말해 2002년 월드컵을 배경으로 등장한 효순-미선 촛불에서부터 문제가 되었던 사안이다. 하지만 난 ‘민족주의’의 문제가 촛불의 활력에 떠도는 암적 욕망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 욕망은 오히려 우파 민족주의나 파시즘에 대한 차단막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촛불이 민주주의와 반세계화에 대한 삶의 욕망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고 있다는 것은 변함 없다. 왜냐하면 촛불들 자체는 이 민족주의에 대해 취사선택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시판 댓글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민족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지향을 방해할 때 발생한다. 이때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한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 앞서 제시한 ‘촛불 중간계급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러한 민족주의의 부정적 방향에 착안한 경우도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는 매우 정당하다. 하지만 이것을 촛불 전체의 이념적 방향을 설정하는 것으로 활용해서는 곤란하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3. 다중(multitude)에 대한 개념-철학적 정당화는 스피노자에게 있다. 『야만적 별종』,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윤수종 옮김, 푸른숲, 참조.텍스트로 돌아가기
  14. 그러나 이 말이 프롤레타리아가 어떤 부정성도 없는 완전한 주체성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이런 계급 신격화는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관점이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15. 나는 촛불의 이러한 형상을 탈신화화 효과에서 살펴 볼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어떤 시대에서든지 프롤레타리아는 마냥 선하지 않다. 그들은 사악하며, 오히려 더 사악할수록 부르주아지들에게 두려운 존재다.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역사적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이런 탈신화화 작업이 전무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공, 1970』, 김원 지음,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 김원 외 지음, 참조.텍스트로 돌아가기
  16. 『제국 기계 비판』, 조정환 지음, 갈무리, 2005, pp. 521-3 참조.텍스트로 돌아가기
  17.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Deus)이라는 명사를 쓰기보다 ‘신적’이라는 형용사를 많이 쓰면서 모든 고귀한 것들(사랑, 우정, 영웅들의 힘 등등)에 신적이라는 규정을 붙였다. 따라서 신은 영원히 계속되는 규정이지 완결된 함축이 아니다. 거스리 지음, 박종현 옮김, 『희랍철학 입문』 참조.텍스트로 돌아가기
  18.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프롤레타리아는 채 계급적 면모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에도 하나의 위기 국면을 통과할 때마다, 또 새로운 투자처나 자본화의 대상이 나타날 때마다 본원적 축적이 반복된다. 교조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발전이 단순하고 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