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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그리고 Salsa!

  • 등록일
    2009/12/14 12:11
  • 수정일
    2009/12/14 12:11

 

끝 그리고 Salsa!

- 《시간의 춤》, 송일곤, 2009
 
“시간만이 불멸하는 삶은 아름답다”(중국인 이민자 남편의 말) 하나의 거대한 비극. 그게 쿠바 한인들의 강제 이주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위대한 것은 이런 긍정이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불멸하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찬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멸하는 것이고, 매우 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경이로운 것이라고 확인한다. 이와 같다. 조선인 쿠바 이민자 세대들은 죽음을 반추하면서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들은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산다!
 
감독이 발견한 것도 그런 것이다. 애국주의적 향수를 카메라에 담는 일 따위는 너무 지겹기 때문에 아예 그러한 감상을 농담처럼 웃어넘기는 이 사람들이 작가에겐 더 친숙한 것일지도 모른다. 쿠바와 한국이 야구경기를 한다면 그들은 쿠바를 응원할 것이라고 정말 진지하게 말한다. 그들에게 조국은 쿠바며, ‘꼬레’는 아득한 세대의 기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기 때문에 혁명도 그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이 아름다웠던 것은 혁명의 시간에 그(녀)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의 것은 혁명이 아니다. 하긴 혁명이 대수겠는가? 더 극적인 것은 ‘혁명의 시간’이 아니라 ‘살사(salsa)의 시간’이다. 세상을 바꾸었는데도 불구하고 춤을 추지 못한다면 옳지 않다. 그래서 쿠바 한인들, 아니 한국계 쿠바인들은 즐거운 소수자들이다.
 
우리는 이념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너무 자주 슬프고, 너무 자주 분노하고, 너무 자주 좌절하기 때문에 냉소에 익숙하다. 냉소에 익숙하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처연한가? 처연함은 슬픔의 독을 삶의 여린 살에 꽂아 넣는 주사바늘과 같다. 과연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또는 민족주의든, 하나의 이념이 앞서 이들을 규정했다면 이 쾌활함이 가능했을 것인가? 물론 혁명은 위대하다. 하지만 춤이 더 즐거운 것도 명백하다. 그러니 사실 더 위대한 것은 죽음과 혁명의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냉소에 찌들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도, 혁명도, 죽음도 끝나지 않는다. 춤을 춰야 하니까! “Fin y Salsa!"(영화 마지막 자막)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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