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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3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자크 데리다 외
    redbrigade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자크 데리다 외

  • 등록일
    2009/12/03 00:29
  • 수정일
    2009/12/03 00:29

어떻게 보면 환영할만한 시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도대체 데리다의 언어가 맑스주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할 듯 싶다. 마르크스가 '아'라고 하는 곳에서 데리다는 '어'라고 하고 있으니 두 진영 모두에서 답답할 노릇이다.

 

일단 데리다가 맑스 옆에 서자마자 참으로 왜소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맑스와 대면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장인 앞에 선 도제처럼 횡설수설을 멈추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해체'는 '해석' 앞에서 저렇듯 영원히 초라할지도 모른다. 다만 해석으로부터 멀찌감치 있으면서 아카데미의 풍족한 만찬을 즐길 때만 의기양양할 것이다. 데리다는 말년의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그도 대가임에는 틀림없고 또 고독할 뿐이지만,  맑스는 이미 역사이며, 하나의 연대기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불가능한 만남?』, 자크 데리다 외 지음, 진태원, 한형석 옮김, 도서출판 길, 2009
 
해제 :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의 불가능한 만남? 5
 
제1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비판
제1장 유령의 미소 ― 안토니오 네그리 27
제2장 탈물질화된 마르크스 또는 데리다의 정신 ― 피에르 마슈레 51
제3장 데리다를 화해시키기.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해체적인 정치 ― 아이자즈 아마드 71
 
제2부 마르크스와 아들들
서론 ― 티리 브리오 119
마르크스와 아들들 ― 자크 데리다 123
 
찾아보기 249
 
[아이자즈 아마드]
(78)(죽은 아버지의 유령은 명백히 데리다의 책의 제목-“마르크스의 유령들”-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죽음의 종말성이라는 주제를 가리키고 있으며, 또 마르크스, 죽은 아버지의 진정한 상속인들은 공산주의자들 및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이들이 아니라 바로 와 그의 해체라는 그의 주장을 가리키고 있다.)
 
[81]하지만 데리다 텍스트의 딜레마는 그가 애도하는 있는 것이 무엇이며, 왜 지금 그것을 애도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 텍스트가 전혀 불분명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왜 소련의 몰락이 그로 하여금 애도하게 만들었는가? 왜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마르크스주의의 사망 사이의 이러한 동일시, 데리다가 이 텍스트의 다른 부분에서 대립하고 있는 자유시장론자들이 그처럼 애호하는 이러한 동일시가 이루어지는가? 과거 어느 순간에 그가 소련과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중 하나의 종말이 다른 것의 사망을 애도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 것인가? 적어도 이 한 가지 측면에서 본다면, 이 텍스트의 의미를 구조 짓고 있는 애도의 모티프는 애도의 순간에 대한 어떤 오인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83]나는 이러한 애도의 은유는 매우 명확하고 한정된 적용대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데리다 자신의 철학적인 상상으로, 그는 햄릿을 연기하기를 원하고, 마르크스주의(그의 견해에 따르면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유령과 마찬가지로 죽은 것이다)를 상속하기를 원하며, 이음내가 어긋난 시간을 바로 세울 수 있을 만큼 공정한 왕자-덴마크의 왕자, 해체의 왕자-가 되기를 원한다. 요컨대 그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이 신자유주의적인 우익의 승리가 아니라, 적어도 해체의 철학적, 학문적 승리와 합치하게 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가 애도 중에 있는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의 성격 때문이며, 왕국이 해체의 왕자가 아니라 우익 찬탈자들에게 상속되었기 때문이다. ... [84]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애도의 실제 대상인 셈이다. 곧 죽음이 아니라 찬탈이 애도되고 있는 것이다.
 
[92]내가 “자기도 모르게 기여했다”고 말한 것은 진심으로 한 말이다. 내가 “자기도 모르게”라고 말한 이유는, 데리다의 작업과 영향력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를 갖고 있긴 하지만(사실은 데리다 자신보다는 데리다주의자들에 대해 더 그렇다), 나는 결코 그가 우파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는 우익 인사들의 무리를 찾아다니거나 그들의 ‘교리’의 승리를 능동적으로 추구하지 않았다. 또 그가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가담을 선언한 [93]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 텍스트-이 ‘화해’의 방식-에서조차 데리다는 특히 미국에서 해체론자들이 제기했던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에 댛한 수많은 공격이 어떻게 노골적인 자유주의적 화용론과 철학적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적 수사법에서는, 어떻게 그가 여기에서 개탄하고 있는 우익의 ‘교리’만큼이나 신랄할 수 있었는지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97]일정한 유형의 편협한 종교적 배타주의는 단지 몇몇 이슬람 국가들에 국한된 특징이 아니라 가장 커다란 승리를 거둔 시기의 서방 그 자체, 자본주의적인 유럽 그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데리다의 빛나는 통찰력이야말로 이 대목의 매우 신선한 측면이다.
 
[99]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요점은, 데리다가 “해체는[마르크스주의와의 절연에 대해-아마드] 결코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흥미를 지닌 적도 없다”고 주장할 때, 또는 해체는 항상 마르크스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단지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심화된 것/급진적인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할 때, 그는 해체의 역사를 [100]다소 감추거나 재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기(및 다른 곳에)서 데리다가 해체-해체는 본질적으로 지난 25년여 동안 다소 제한된 학문 집단 내에서 텍스트 해석학으로 존재해왔다-와 마르크스주의-이것은 19세기의 기원은 차치한다 해도 20세기의 세계사에서, 옳았든 틀렸든 간에(대부분은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우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사이에 일종의 동등성 관계를 확립하려고 하는 데 대해서는 논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을 차치한다면 데리다 자신이 훨씬 더 어처구니없는 반마르크스주의적 급진주의와 전반적으로 거리를 유지해왔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북미, 특히 예일 대학에 있는 아주 많은 수의 그와 가까운 동료들, 데리다가 국제적인 지위를 얻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고 데리다 자신이 거리를 두려고 하지 않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 중 어던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마르크스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적대감은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오류 및 잘못은 마르크스주의의 아주 많은 정신들 쪽에서 기인한 반면, 해체의 역사는 아무런 흠결이 없다는 것이 데리다 자신의 설명의 놀라운 특징이다. 정확히 모든 종류의 순수함의 수사법에 대한 해체로 그처럼 유명한 철학자가 최근의 지성사에서 해체의 위치를 설[101]명할 때에는 이렇게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적어도 아주 놀랍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103]우리는 이미 모종의 역설을 간파해냈다. 곧 보통 마르크스의 이름과 결부되었던 어떠한 정치 전통, 철학 전통도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시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전통들의 패배가 마르크스의 죽음의 순간과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이 애도의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역설은 이제 훨씬 더 복잡하게 뒤얽힌다. 자기 자신을 이러한 “어떤 마르크스의 정신”과 [104]동일시하기 위해 데리다는 단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모든 정치적 실천 및 철학전통을 벗겨내야 할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약속”의 비규정성 속에서, “메시아적, 종말론적” 양식에 따라 회복하려고 해야 한다.
 
[107]“교리/독단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미 사회 계급, 이데올로기, 상부구조와 같은 마르크스주의 개념 장치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해체와 화해시키는 과정 도중에 우리 자신을 극단적인 형태의 반(反)정치 속에 정면으로 위치시키도록 초대받는다. “공[개]적인 것이라고 하기도 어려우며, […] 결집 없이, 당과 조국, […] 공동 시민권 없이, 어떤 계급으로의 공동적 소속 없이 […] 반푸닥거리의 형태를 띤 […] 제도 없는 동맹” 등등. 데리다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터네셔널”의 과제는 “비판들/비평들”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이는 아주 작가적인 “인터네셔널”인 것 같다) “비판/비평”의 대상도 명시하는데(민족, 국가, 국제법), 단 아주 명시적인 부정성(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을 넘어서, 그리고 여기 명백히 함축되어 있는 과도한 주의주의를 넘어서, 몇몇 비평작가들과 다른, 정확히 어떤 사람이 이 인터네셔널에 들어가는지는 불분명하게 남아 있다. 적어도 몇몇 문장들(“공[개]적인 것이라고 하기도 어려우며”, “일종의 반푸닥거리”)은 이것이 프리메이슨과 유사한 조직 같다는 인상을 준다.
 
[109]데리다의 “새로운 인터네셔널”-이는 “익명성”의 다른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것이 아무런 “공동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유목적인 개인들을 절대화하고 있을뿐더러 하이데거에 대한 반향은 차치한다고 해도 거의 종교적인 어조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도래하고 있는 것의 절대적 미래” 같은 문장들이 재림에 대한 수많은 잠재적 이미지들을 환기한다면, “사막과 같은 경험”이나 “타자와 사건에 대한 기다림” 같은 다른 문장들 및 비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이미 “법칙화”되어 있는 어떤 “경험”에 대한 환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요한 유일신 종교 모두에 포함되어 있는 신비적 전통에 공통적인 종교적 체념이나 포기의 강력한 언어 표현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고된 “새로운 인터네셔널”이 다소간 프리메이슨 식의 성격을 띤다고 해서 놀랄 것은 아무것도 없다.
 
[112]데리다가 불가능하지만 열정적인 화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어떤 마르크스의 유령’을 남겨두기 위해 다른 모든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배제되어야 하는가? 정확히 말하면 시신이 아니라 유령성을 회수하자고 역사 전체를 쓰레기처럼 내버려야 하는가? ‘새로운 인터네셔널’의 도래를 예고하기 전에 데리다는 자신은 과거의 인터네셔널들의 경우에는 결코 활용한 적이 없었다고 신랄하게 말하고 있다. 데리다의 텍스트에는 어떤 오인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적어도 그가 옹호하는 반(反)정치는 우리를 ‘새로운 인터네셔널’이 아니라 한낱 포틴브라스로, 곧 낡은 질서 그 자체의 한 변형인 ‘새로운’ 질서로 인도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는 아버지의 유령도 햄릿도 예견하거나 견뎌내지 못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체계적인 복고다.
 
[113]정치적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친숙한 범주들을 포기하는 것을 전제하며, (비록 데리다 자신은 자신에게 ‘메시아적인 것’은 종교적이지 않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메시아적이라고 선언할 뿐만 아니라 또한 강력한 종교적 상상계로 가득 차 있는 논거들로 인해 화해 자체가 영향을 받는, 해체와 마르크스주의를 화해시키려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이 텍스트에는 어떤 고결한 태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곧 신자유주의적인 승자들과 동일화하지 않으려는 거부의 몸짓, 자신의 저항적인 자세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거부의 몸짓, 우파의 승리감을 꿋꿋이 견뎌내려는 의지에 대한 긍정, 심지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운 유럽사의 한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려는 용기가 그것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자연히 데리다와 [114]어떤 친화성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그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제안한 자기비판을 해체에 대하여 떠맡는 것을 여전히 너무 꺼리고 있는 것 같다. ... 자신과 마르크스주의-또는 그가 표현하는 대로 한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정신”-의 결합을 긍정하면서도 데리다가 이러한 해체론의 근거들 중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며, 사실은 아주 확고하게 그것들을 재진술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제는 해체론이 과거에 보여주던 거의 자기도취적인 긍정의 태도와 갈등을 빚을 만한 종교적 고통의 어조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티리 브리오]
[124]『마르크스의 유령들』은-이 점을 다시 환기해두자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미 일종의 ‘응답’, 단지 하나의 응답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초대 및 긴급한 명령에 대한 응답이자, 매우 오래된 요구에 대한 응답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책임(responsabilité)에 함축되어 있는 ‘예’라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원초적일 수 있든 간에, 하나의 응답(réponse)으로 남아 있다. ‘예’라는 것은 항상 유령의 명령에 대한 응답처럼 울려 퍼진다. 명령은 우리가 생생한/살아 있는 현재로도, 죽은 이의 순수하고 단순한 부재로도 식별할 수 없는 어떤 곳으로부터 도래한다.
이는 곧 이러한 응답의 책임은 이미 존재론으로서의 철학 또는 현존으로서의 존재의 현실성에 대한 담론인 존재론-이 점에 관해 우리는 많은 것을 또다시 말해야 할 것이다-의 지반에서 떠나왔다는 말과 [125]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제기된 많은 논쟁은-우리는 이 점에 관해 이미 검증했던 게 되겠지만-겉보기에는 추상저이고 사변적이지만, 수십 년 전에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말하곤 했듯이, “우회할 수 없는” 또는 “사령탑의 자리에 있는” 이러한 형식의 질문 주위에서 이런저런 순간에 서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산에서 존재론으로서의 철학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로부터 우리에게 도래했고 또 여전히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정치철학인가? 더욱이 존재론으로서의 정치철학인가? 그리고 겉보기에는 추상적인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정당한가?
 
[132]이 질문은 정확히 말하면 삼중의 질문이다. 1) “정치적인 것”의 질문(특히 “마르크스”에서 “정치[133]적인 것”의 본질과 전통 및 한정에 관한 질문). 2) 또한 “철학적인 것”의 질문(특히 “마르크스”에서 존재론으로서 철학에 관한 질문). 3) 따라서 사람들이 이러한 이름들/명사들 아래, 특히 “마르크스”라는 이름/명사 아래 공통적으로 식별/동일시할 수 있다고 - 이는 이 이름들 간의 불일치를 드러내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 믿고 있는 그러한 장소들의 질문. 이 세 개의 질문(“정치적인 것”, “철학적인 것”, “마르크스”)은 분리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한 가지 “테제” 또는 한 가지 가설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오늘날 이러한 분리 불가능성을 가정할 것이다. 이러한 테제(또는 가설)의 세 가지 주제는 사실은 하나를 이룰 뿐이다. 이것들은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공통의 장소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우리가 그것을 보지는 못한다 해도 그것들의 장소이며, 그것들의 역사적 접합의 장소다.
 
[마르크스와 아들들-데리다]
[139]내가 최근 10여 년간 출판했던 모든 텍스트들(적어도 『정신에 대해서. 하이데거와 질문』)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역시 질문 형식이 지닌 의존성, 심지어 모종의 부차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처음 보기에는 양립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두 가지 일을 함께 실행하려고 시도하는 어떤 담론이 지닌 분할 가능성, 주름(pli), 또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140]렇게 말할텐데-이중성에서 비롯한다. 두 가지 일이란 한편으로 응답 자체에 의해 최면화되거나 억압되는 질문들을 다시 일깨우려고 시도하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질문을 감시하고(veille), 질문의 전야(前夜, veille) 자체로서 질문에 선행하는 긍정(필연적으로 혁명적인), 명령, 약속, 요컨대 어떤 (oui)의 유사수행성을 떠맡는 것이다.
 
[141]내가 문제로 [142]삼은 것은 이론적, 실천적 차원에서 역사적인 파국적 실패들을 해명하기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어떤 유산을 다른 식으로 재정치화하는 것이다. 첫째로 정치적인 것을 존재론적인 것과(무엇보다도 국가/상태État의 관점에서 파악된 현실성이나 현존성, 보편자의 개념, 그리고 당의 관점에서 파악된 세계시민적 시민권 및 인터네셔널의 개념과) 용접했던 것-우리의 근대성에서 이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특히 심각한 폐해를 낳았다-에서 벗어나 있는 어떤 정치적인 것의 차원을 향해 이러한 유산을 돌려놓는 일이 중요하다.
 
[149]도착적 수행문(perverformatif). 내가 방금 지적한 “유사 수행성”은 적어도 두 가지, 한 단어로 두 가지를 의미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이러한 재정치화의 필연성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내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서, 일정한 조건들 아래 재정치화를 작동시켜야 할 것 같다.
A. 적어도 지난 25년 동안 씌어진 나의 모든 텍스트에서처럼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도 수행적 차원(단지 좁은 의미의 언어만이 아니라 내가 흔적 및 기록écriture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고려가 나의 모든 논변을 규정하고 과잉규정했던 게 될 것이다.
B. 과잉규정했던이라고 말한 이유는, 존 오스틴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 동시에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여기서도 역시 나는 나 자신이 “오스틴”에[150]게 그의 유산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시대의 주요한 사상 중 하나 또는 주요한 이론적 사건 중 하나, 가장 풍요로운 이론적 사건 중 하나에게 충실하면서 불충실했기에, 충실함을 통해 불충실했기를 바란다). 나는 오랫동안 내부로부터 수행문 이론을 전환시키기 위해, 해체하기 위해, 곧 이 이론을 과잉규정하고, 다른 식으로, 다른 “논리로” 작동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163]나는 또 『마르크스의 유령들』 및 나의 작업 일반을 포스트모더니즘 내지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유’(類)의 단순한 한 가지 종(種)이나 경우 또는 사례로 간주하려는 모종의 성급한 시도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 이 통념들은 바로 가장 미흡한 정보를 지닌 공중(대개의 경우 거대 언론)이, “해체”를 필두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쓸어 담는 잡동사니 부대자루들이다. 나는 내가 포스트구조주의자도 포스트모던스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는 결코, 더군다나 내 나름대로 활용하기 위해 “모든 메타서사의 종말의 예고”에 관해 말한 적이 없다.
 
[213]『마르크스의 유령들』의 중심에 존재하는 메시아성 및 유령성보다 유토피아나 유토피아주의에 더 낯선 것은 없으며, “은밀한” 형태를 띤 유토피아나 유토피아주의라 할지라도 그렇다. ...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의도적으로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피하”(shun)려[214]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메시아성(내가 경험의 보편적인 구조로 간주하는, 그리고 어떤 종교적 메시아주의로 환원되지도 않는)은 결코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메시아성은 모든 지금-여기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사건의 도래, 곧 가장 환원 불가능하게 이질적인 타자성을 지시한다. 도래하는 (것의) 사건을 향해 쏠려 있는(tendue) 메시아적인 근심(appréhension)보다 더 “현실주의적”이고 더 “직접적인” 것은 없다. 나는 “근심”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사건을 향해 쏠려 있는 이러한 경험은 동시에 기대 없는 기대이기 때문이다(곧 이러한 경험은 능동적인 대비, 어떤 지평에 의거한 예상이지만, 또한 지평 없는 맡김exposition이기도 하며, 따라서 욕망과 불안, 긍정과 두려움, 약속과 위협이 뒤섞인 환원불가능한 합성체다). ... 내가 여기서 메시아성에 대해 제시한 정식화가 추상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정확히 말하면 이는 사건, 도래하는 [것의] 현실적 타자성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보편적 구조, 모든 존재론에 ‘앞서는’ 또는 그것과 독립적인 사건에 대한 사상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가장 구체적인고 가장 [215]혁명적인 긴급성이다. 결코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닌 메시아성은 지금 여기서 사태, 시간, 역사의 통상적인 경로를 중단시킨다. 그것은 타자성 및 정의에 대한 긍정과 분리될 수 없다. 그 다음 어떻게 이러한 무조건적 메시아성이 이러저러한 독특한 실천적 상황에서 자신의 조건들과 협상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분석과 가치평가, 따라서 책임의 장소가 놓여 있다. 분석과 가치평가, 책임은 매순간, 각 사건의 전야에, 각 사건의 진행 도중에 재고찰되어야 한다.
 
[223]문제는 계급적인 소속을 제거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며, 시민권이나 당을 제거하거나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계급이나 당 또는 시민권을 본질적인 토대나 지주로 삼고 있지 않은 어떤 인터네셔널에 대한 호소다. 이는 계급이나 시민권 또는 당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규정된 맥락에 따라 가능한 한 엄밀하게 이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226]내가 보기에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라고 부르는 보편적이고 유사 초월론적인 구조는 역사(정치적 역사이든 일반적인 역사이든 간에)의 어떤 특수한 순간과도, 어떤 특수한 문화(아브라함적인 문화이든 아니든 간에)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아성은 어떤 메시아주의를 위한 알리바이로도 사용되지 않으며 어떤 메시아주의도 모방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메시아주의도 확증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227]한편으로, (메시아적이라는) 이 단어는 내가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임의적이거나 외재적인 것 같다. 이 단어는 수사법이나 교육학적인 거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내가 메시아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닮은 것(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되거나 동일시되지는 않고서라고 곧바로 덧붙여두겠다)을 친숙한 문화적 환경을 참조함으로써 좀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내가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이 언젠가 이해가 될 맥락에서는-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전통적인 메시아주의나 “메시아”에 대한 암시 없이도, 심지어 “없는”이라는 말이 없이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낡은 단어들 아래서 모든 이름이 변화했던 게 될 것이다.
 
[228]첫째, “마르크스”라는 이름의 사건(및 그것이 지닌 모든 구성소와 전체, 결과)이 유럽적이고 유대,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전체는 “메시아”가 무언가를 의미하는 문화에서 출현했으며, 이 문하는 “국지적인” 문화 또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손쉽게 구획될 수 있는 그런 문화로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침전 작용을 다시 드러내는 일은 결코 무익하지 않으며, 이것이 그 침전 작용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정치적 귀결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246]마지막으로 단지 스피노자만이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 해방된 존재론자 마르크스도 마라노였다는 생각을 던져보면 어떻게 될까? 유대계 독일인으로 변장했던 스페인, 포르투갈 출신의 일종의 불법이민자로서, 기독교 신자로 개종하고 심지어 약간은 반유대주의자인 것처럼 처신했던 사람이라고. ... 마라노들은 너무나 잘 은폐하고 너무나 잘 변장해서 그들 스스로 자신이 변장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또는 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억압하고 부인하고 부정해버렸다. 우리는 ‘진짜’ 마라노들, 현실적으로, 현재적으로, 현행적으로, 실제로, 존재론적으로 마라노인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이 또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얼마 전부터 마라노주의라는 물음은 죽었다고 주장해 [247]왔다.
나는 전혀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 여전히 아들들과 딸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 선조들의 복화술사 환영들을 육화하거나 윤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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