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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6
    '나'를 설명한다는 것
    redbrigade

'나'를 설명한다는 것

  • 등록일
    2009/12/26 16:49
  • 수정일
    2009/12/26 16:49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내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개인이력이 타인들에게는 낯설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서양철학, 그 중에서도 프랑스 철학을 전공으로( 이 말은 아마 '벌어먹고'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하고 있지만, 내 학부 전공은 불교학, 그 중에서도 원시불교 쪽이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사람들은 꽤나 신기하게 생각한다.

 

여기다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조기졸업 했다는 사실까지 보태면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엄청 혼란스러워한다. 게다가 대학은 또 1년 늦게 간 거다. 하긴 이게 뭐 상식적으로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경로는 분명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정리되는 내 이력은 그래서 대충,  "검정고시->1년 잠적->대학입학(불교학)->대학원석박사(프랑스철학)", 이렇게 된다. 아 하나 더 빠졌다. 대학 10년 수학. 입학년도와 졸업년도를 계산해 보면 딱 10년동안 대학이라는 곳에 있었던 게 된다. 이런 제길!

 

요즘에는 나이도 들고 이런 걸 꼬치꼬치 캐 묻는 '면접관'을 만날 일도 없고 해서 괜찮지만, 예전에는 이런 이상이력의 구멍들을 설명하기 위해 꽤나 심난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란 '상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종속심리가 있어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죄다 '어둠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검정고시'로 조기졸업했다는 것까지는 그나마 괜찮지만, 대학 입학 전 1년을 뭐했는지(혹시 조폭의 세계? 혹은 어떤 종류의 음침한 오타쿠의 세계?), 또는 어째서 대학을 10년씩이나 다녔는지(학생운동 수배? 아니면 불우한 가정형편?)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갑자기 좌중이 숙연해지곤 했던 거다. 설명 안 하면 나란 물질이 온갖 의혹에 휩싸이게 되고, 설명하자니 도통 재미없고(왜냐면 사람들이 바라던 그런 '활극'은 없으니까)  그런 것이었다. 

 

또 사실대로 설명을 해도 반신반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보다 시립도서관 인문과학실과 문학자료실에서 살았다는 둥,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읽고서 고승은 아니라도, 땡중이라도 되려 했다는 둥 ... 이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당췌 '감'이 안 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인생이 그들에게는 없었으니까.

 

결국에는 자기들 편한 대로 나를 야쿠자 세계에 접수시키거나(실제로 난 이런 분을 봤다. 그전에 실컷 위와 같은 설명을 해 드렸는데도 말이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공부하는 학자로 보거나(대체로 이렇게 본다. 하긴 집이 좀 가난하긴 했다. 서울 상경때 딱 5만원이 내 주머니에 있었으니까),  아니면 고맙게도 독학으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철학자로 보거나, 그래 주신다. 이 모든 소위 '파악'들이 공교롭게도 '내'가 아니다. 편하신대로들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나로서는 난감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나'를 설명해야될 상황이 되면 그냥 귀찮다. 그렇다고 맘대로들 상상하시게 놔두자니 짜증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괜히 애먼 사람들한테 화도 내게 되고 말이다. 

 

난 내 이런 상황이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국사회의 사회적 의식의 '보수성'을 가늠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타자에 대한 시선이 관습화되어 있고, 일생의 타임라인이 대체로 유사하고 고만고만한 삶만이 인지되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메인스트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확고해서 거기 속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주변화되거나 소수화되기 쉽다. 

 

문제는 이런 주변화되거나 소수화되는 이력이나 삶이 매우 자주 사회적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이미 사회적 '인정투쟁'의 장에서 애초부터 애매모호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메인스트림과 그에 가까운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이물감을 안겨다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서와 같이 이럴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의 방어기제라는 것을 동원해서 이 이물감을 애써 없애 버리려고 하거나(기억의 왜곡), 제거하려고(차별화와 억압)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인정하기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 말보다 주먹이 더 가깝기도 하고 말이다. 

 

어찌 보면 나란 물질이 어째서 평소에는 사람좋게 보이다가 문득문득 성격이 더러워지는지 그 원인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이 자본주의하고도 천박한 한국 사회에 살자니 편협한 시선들이 귀찮다 못해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멍청한 시선으로 나를 훓어 보는 걸 견디지 못해서 쌍욕이 나오는 게다. 세상의 모든 마이너에게 느끼는 연민도 여기서 나오는 것일 게고 말이다.

 

하여간 메인스트림에서 비껴서 있는 마이너의 스탠스가 더 익숙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짜증이 밀려오지 않고도 슬슬 웃어가며 능구렁이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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