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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6/27
    그래도 안 먹어(6)
    루냐
  2. 2007/06/19
    몹쓸 몸(2)
    루냐
  3. 2007/06/18
    그분들의 정체(8)
    루냐
  4. 2007/06/14
    명복을 빕니다(5)
    루냐
  5. 2007/06/12
    첫 번째 생일선물(9)
    루냐
  6. 2007/06/07
    행사 보조(2)
    루냐
  7. 2007/06/01
    자전거 탄 금요일 풍경(9)
    루냐

그래도 안 먹어

지난주는 내내 헤롱거렸다. 감기인지 빈혈인지 식체인지 꾀병인지 알지 못한 채 그냥 헤롱거렸는데, 그중에서도 수요일은 한 주의 중간답게 아픈 것도 절정이었다. 결국 조퇴하고 파주에서 서울로 들어갔다.

합정에 내렸는데 어째 병원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촌에는 뭐든 많으니까 신촌에 가보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 안을 들여다보니 한 건물에 '8+1 ... 내과 한의원' 등등 뭔가 많이 써 있었다. "그래 저거야"하고 들어갔다. 감기인지 식체인지 꾀병인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내과'면 된 거였다. 덤으로 한방적으로도 봐주지 않을까 하면서(욕심도 많다-_-).

 

의사 아저씨는 내 얼굴을 보고 맥도 짚고 청진기를 대보고 하시더니 경상도 억양으로 "아버지는 무얼 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더니 아빠와 엄마의 체형과 잠버릇, 성격 등을 물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 대답하기 귀찮을 만큼이었으나 참고 대답했더니, 결론적으로 해주시는 말씀이 "평소에 고기는 좀 드세요?"였다. "아니요, 2년 동안 거의 생선하고 채소만 먹었어요"라고 했더니, "허허, 아무리 좋은 음식도 사람마다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해요. 사람은 8가지 체질로 나뉠 수 있거든요. 사람도 동물에 비유하면, 소 같은 사람이 있고 호랑이 같은 사람이 있어요. 호랑이 같은 사람이 풀만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병이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소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사람은 고기 먹으면 탈 나요......"

식은땀 흘리며 참고 들은 결과 "(소)고기 좀 먹어라" 였다.

허무하고 황당해서 "그럼 채소는요!" 했더니 "뿌리채소 위주로 먹어라"는 것.

"웅. 2년 전에도 잘 체했는데.." 했더니 "아마 그때보다 지금이 더 약해졌을 것"이라는 식이었다.

'췟췟췟, 뭐야, 믿을 수 없어!' 하고 외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말이 안 믿겨요? 안 믿으면 할 수 없는데, 내가 이 자리에서 수년간 그렇게 환자들 고쳐왔어요. 우리집 가족들은 4년 동안 감기 한 번 안 걸렸어요"라고 하셨다.

"(끄응......) 네, 그래서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포기하고 그렇게 물었더니 미소를 가득 담고 "집에 가시기 전에 곰탕이나 설렁탕 한 그릇 드세요"라고 하셨다.

.

집에 가다가 결국 다른 병원에 들러서 처방을 받았지만, 손오공 머리 조이는 이 고통에서 속히 벗어나고픈 마음에 '그래 혹시나......' 하고 갈비탕을 한 그릇 먹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어쭈어쭈 머리가 안 아프구랴' 해서 좋았지만 '그래 그날은 약해진 마음에 한 번 먹었다 치자,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래?' 하는 고민 시작.

 .

'한 달에 한 번만?', '뭘 그런 걸 믿구 그래, 신념을 믿어'...... 마음의 소리들끼리 논쟁이 붙었다.

 .

'에잇, 대략 포기. 다음에 혹시 아플 때까지 버틴다'로 결정.

 .

그러다 며칠 후 친구랑 명동을 지나는데, <이천시의 아기 돼지 거열형>을 규탄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원래 고기를 안 먹게 된 것은 태어나자마자 한 번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육'당해야 하는 대량축산에 대한 반감과 사료로 들어가는 많은 곡물로 인한 환경문제와 식량분배문제(..... 이렇게 쓰니 너무 거창하잖아!!! -_-) 때문이었는데, 괴로워하는 돼지의 표정을 보니 채식을 하는 데는 단지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거열형 당하는 돼지만 저런 표정일까, 도살장의 돼지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절대로 잡아먹지 않겠어. 마음 흔들려서,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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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몸

이곳저곳이 돌아가면서 아프다.

아픈 사람들도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전에 당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괴롭기도 하고, 참 쓸모없는 몸이구나 싶기도 하다.

'이래 가지고 뭐 제대로 하겠어? 몹쓸 몸... 하느님은 왜 사람들을 아프게 하실까...'

그랬다가도 이내 고쳐먹는다. '떽, 혼나려구! 철없는 소리야.'

마음 한켠에서 반응한다. '응. 철없는 소리인 거 알아'

잠시 나보다 훨씬 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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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정체

어제 점심의 햇살은 직선으로 내려와 종로 거리를 걷는 내 정수리에 계속해서 꽂혔다. 내리꽂히는 햇살에 눈도 똑바로 뜨지 못하고 벌게진 볼따구를 한 채로 종로타워 지하의 반디앤루니스로 들어가려고 파파이스 앞 지하도로 들어서던 찰나, 양산 아래에 다정하게 붙어선 20대 여성 두 분이 나에게 길을 물어왔다.

"저, 죄송한데, 교보문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교보가 어딘지 모르시다니 의외다-ㅁ-라고 생각하며) 네ㅡ 이 길 따라 쭉 가시다가 오른쪽으로 길 건너시면 '교보생명'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지하에 있어요"

"(방긋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설명을 참 잘해주시네요. 혹시 학교 선생님이세요?"

"(에에, 무슨 소리지? 하면서도 칭찬에 약한 나) 아... 아닌데요"

"그럼 교사 준비 중이시죠?"

"-_- 아니에요(스무고개하는 것 같습니다-_-)"

"아, 그럼 전공이 뭔데요?"

"......"

여하튼 전공부터 형제관계까지 주우욱 물어보셨더랬다. '저 바빠요' 할 만큼 바쁘지도 않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물어보는 데다, 초반에 칭찬(-ㅁ- 그런 설명은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는 거잖아)도 들어서 쌩~ 하고 돌아서지는 못한 것이다. 결국 나는,

"아, 죄송합니다. 바빠서 이만."

"아, 네, 그냥요. '인상이 좋아서요', 그리고 그... 눈 밑에 있는 점 빼지 마세요~^^"

.

왜 이렇게 신상을 묻는지를 그제서야 알았다. '인상이 좋아서요' '눈 밑의 점 빼지 마세요' -_-

그렇다. 이분들은 '도를 믿으십니까?'였던 것.

요즘에는 이렇게 길을 물어보는 걸로 접근하기도 하는구나...

흑. 어쩐지 싫어. 또 만만해보였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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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

내 주위엔(아주 가깝기도 하고 한 다리 건너서이기도 하고) 중병을 앓는 사람도 많고

아파서 1년 동안 누워지내다가 일찍 떠나버린 친구도 벌써 있고

죽겠다고 설치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자살한 사람도 있다.

.

어제도 측근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죽었다.

작은 일과 실수에도 괴롭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던 그의 유서가 많이 와 닿아서

이미 육체를 떠난 영혼에게라도 토닥토닥하고 싶다.

.

토닥토닥, 토닥토닥

작은 일과 실수에도 괴롭고 살아갈 자신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그냥 죽을 자신도 없기에 살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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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생일선물

지난주 목요일 저녁, 아빠에게서 전화가 두 통 왔다. 나는 받지 않았고, 다시 걸지도 않았다. 상처받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잠 자고 일어나니 역시 잊을 수 있었다.

금요일은 생일이었다. 그리고 토요일에 엄마네 집엘 갔다. 목요일에 아빠한테서 전화 온 게 신경이 쓰여, "아빠가 엄마한테는 전화 안 했어?"라고 했더니, 역시나 전화했댄다. 근데, 어인일로 내 옷 치수를 물어보고 끊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분홍색 쇼핑백을 들어보였다. "이거 아빠가 너 주라고 놓고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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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주신 생일선물이다. 당황스러웠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영화라면 이쯤에서 "컷" 사인이 나겠지. 엔딩자막이 올라갈지도 몰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년은 또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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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각하면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이 난다. 그 오래된 상처에 지독히도 무뎌지지 못하는 나는, 어렸을 때 <동물의 왕국>에서 본 어떤 동물을 닮았다. 지평선이 보일 듯한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한쪽 귀에 파리가 들어가 홀로 빙글빙글 맴도는 영양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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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보조

지난 화요일에 안국역 근처 윤보선가에서 한 시민단체의 '후원잔치'가 있었다. 말 그대로 단체의 활동을 후원하기 위한 행사인데, 일반 회원들도 오긴 하지만 사실상 무슨무슨 대표,라는 쟁쟁한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모금의 목적이 강하므로 티켓값도 5만 원/10만 원씩 하고, 단체에서는 비싼 티켓을 산 참석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상당히 신경 쓴다. 이번에는 <아시아의 몸짓과 소리>라고 해서 가야금 연주와 네팔의 전통 춤과 음악을 무대에 올리고, 네팔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학부 때 그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하다가 취업한 뒤로는 1년에 한 번 얼굴 비추는 것도 힘들어진 상태였다. 그러다 거의 1년 반 만에 다시 행사를 돕게 되니 간단한 일인데도 적응이 안 되었다. 처음에는 행사장 입구의 접수대에서 손님들의 접수를 돕고 여러 가지 브로슈어들을 챙겨드려야 했는데, 어느 게 어느 상자에 있는지, 새로운 얼굴은 왜 이렇게 많은지...... 안 그래도 어리버리한 나는 더욱 어리버리해지고 말았다. 회사에 있다가 겨우겨우 행사 시작 시간에 맞춰 왔기에 하는 일에 대해 설명도 제대로 못 듣고 투입되었지만, 다들 바쁘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누굴 탓할 수도 없고 그냥 혼자 답답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손님을 맞이하는 표정은 자꾸 굳어져만 가고, 다음번에는 아무리 자원활동가가 급히 필요하다고 해도 이런 식이라면 안 하는 게 좋겠다는 둥 자꾸 딴생각이 끼어든다.

 .

행사가 시작되고 접수대 일이 줄자, 대문 앞에서 경비-_-를 섰다. 사실은 마구 웃으며 환영하던 친구가 자리를 비우면서 그 자리에 대신 선 건데, 아무래도 한 번 굳어진 표정은 잘 안 풀어졌다. 2년 전 이 자리에서의 발랄하고 씩씩하던 내 모습은 이제 새 얼굴의 자원활동가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대문 안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윤보선가가 오늘따라 활짝 열려 사람들이 드나들고 시끌벅적하니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도 들어와서 구경하고 싶어했다. 그 심정 누가 모르랴만, 그 집의 주인이라는 부인(? 그래봤자 아주머니지)께서 보안을 위해 행사와 관계없는 외부인은 못 들어오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기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구경하고픈 그 마음들은 너무 당연하기에, 겉마당(마당이 두 겹이다)에는 들어오셔서 구경하시다 가라고 했다. 힝. 그래도 뭔가 불편해. 티켓이 얼마냐고 물으시길래 내가 5만원이라고 하자, "옴마야~" 식겁하는 표정들... 2년 전에도 했던 생각ㅡ행사를 좀 더 소박하게 만들고, 그 대신 1만 원짜리 티켓도 만들면 좋겠다는ㅡ이 또 들었다(단체의 1년치 살림을 위한 후원잔치라는 거 알지만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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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올해 행사가 그 어느 해보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이 사람들과 스스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얼마나 애정을 담뿍 담아 일하는지도 잘 알기에, 언제나 지지하는 마음이지만, 고상하고도 화려한(내 기준에서는) 후원잔치에 대해서만은 좀 아쉽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우울해지려는 표정을 애써 숨겼지만, 뒷풀이에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단체와 떨어져 있었던 데서 오는 낯선 느낌, 행사준비를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겉도는 느낌, 일회용 자원봉사자로 전락한 느낌, 삐까뻔쩍한 OO 대표/국회의원들을 접대하는 것이 아무래도 못마땅한 이 삐뚤어진 심보, 소박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참석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들을 곱씹으며 버스를 타고 회사로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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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마도) 혼자만 우울했던 2007년 후원잔치. 끝. 

+) 아무튼,이라는 접속사는 정말 요긴해. 대충 이런 식으로 끝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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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금요일 풍경

지난주 금요일 마포대교 아래 한강 시민 공원.

노을도 보이지 않는 뿌연 대기와 회색빛 한강.

일찍 퇴근하니 심심해져서 조용한 공터 주변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는데

내 뒤에서 어느덧 들리는 50대 아주머니 소리,

"어, 어, 어~ 와 이카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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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기다리! 내가 잡아준다 안 하나!" 아저씨 목소리.

돌아보니 위태위태하게 자전거 타는 아주머니와 그 뒤를 좇는 아저씨.

어쩌면 부부일 수도 있겠다.

보던 책 계속 보는 척하며 흘끔흘끔 구경났다.

아, 보는 내가 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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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말이 가까워 주머니도 텅 비었다. 저녁도 초코 우유로 대충 때우고,

걷기 싫어도 차비가 없으므로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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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에서 원효대교까지 한강을 따라 걷다보니 완전히 밤이 되었다.

오후 내내 뿌연 하늘을 보며, 더러워 서울 더러워 서울.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별 대신 여의도의 불빛과 다리의 조명으로 단장한 서울 밤 풍경에 또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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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금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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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앨리스> ost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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