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전임을 나가기 전에는 점심시간에 국선도를 했다.

그리고 나서 12시 50분쯤에 같이 운동한 사람들과 구내식당으로 갔으니까 점심시간에 밥을 누구와 어떻게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2년만에 돌아오니 국선도는 거의 해산했고, 점심시간엔 밥 먹으러 가는 게 고민거리가 되었다.

같이 밥먹으러 다니는 패거리들도 그렇고, 실 사람들도 모두다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차를 몰고 울타리를 벗어나 일산시내로 나간다.

산오리도 1월달까지 이들을 따라서 바깥의 식당으로 밥을 먹으로 다녔는데, 한달도 안가서 질리기 시작했다.

 



우선, 밥값이 장난이 아니다, 예전의 4천원짜리는 눈 씻고 봐도 없고, 보통 5천원에 공기밥이나 볶은 밥 값을 따로 받으면 6-7천원이 된다. 매일 점심을 이렇게 먹는 건 아무리 경기활성화를 위해서 기여한다지만, 도저히 따라잡기 쉽지 않을 거 같다. 구내식당은 2천8백원이다.

 

밥값이 비싸면 또 맛있거나 먹고 싶거나 특별한 게 있다면 그런대로 감수할 만 하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맛있는 것도 없고,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맛있는 걸 찾아서 산천을 돌아다니는 미식가들도 있다지만, 산오리 생각에 우리나라의 어디나 특색있는 음식이나 맛이 없는 거 같다. 그러니 음식의  세계화(아니, 국내화인가?)가 확실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산오리는 후각장애인 이지만, 음식맛에 있어서는 좀 까다로운 편이다. 조미료나 설탕으로 범벅해 놓은 것은 금새 입안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아마도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음식에 길들여 지지 않아서 그럴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산오리가 '먹을만하다'고 하면 우리노조 지부장은 '맛있는 집'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나가보면 정말 맛있는 집은 찾기 어렵다.

 

산오리는 군대 있을때도 짬밥을 잘 먹었다. 다른 친구들은 고추장이나 깻닢 절인 걸 사서 밥에다 비벼먹는다고 법썩을  떨었는데, 산오리는 두부 콩나물 된장국이 그렇게 맛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하얀 돼지비계만 둥둥 떠있는 고추장 푼 '돼지고기 국'은 정말 얼마나 맛있었는지...

돼지고기 국 먹고 싶다.

 

또 밖에 나가면 이상하게도 과식하게 된다.  밥 한공기 다 먹어도 항상 모자르는 거 같아서 한공기 더 시켜서는 한두 숟갈 떠먹고는 남긴다. 그러나 구내식당에서는  밥의 양을 적당하게 조절해서 먹는다. 자기가 먹을 만큼 밥과 반찬을 스스로 식판에 떠서 먹으니 적당히 먹게 된다.

나가서 배부르도록 밥 먹고 들어오니까 오후 내내 졸리기만 했는데, 구내식당에서 먹은 이후로 이런 졸림이 사라졌다.

 

음식점의 필수요소인 청결은 또 어떤가? 한달동안 돌아다닌 식당 가운데, 무려 3곳에서 머리카락이나 쑤세미 조각(이건 같이 간 친구 음식에서)이 나왔다. 처음 한집에서는 그냥 모른척 버렸고, 또다른 두집에서는 나중에 주인(종업원)한테 보여줬더니, 미안하다면서 서비스 반찬(?)을 주거나 나중에 와서 먹으라고 음식 상품권(?)을 주기도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구내 식당은 주방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느껴 진다. 구내식당에서 머리카락이나 쑤세미 조각 나오면 당장 게시판에 올라오고, 난리가 날 것이다.

 

또 시간도 엄청 걸린다. 일단 차를 타고 나가면 왕복하는데, 30분, 음식 나오길 기다리는데 10-15분, 먹는데 10-15분, 그러니까 빨리 와야 1시간에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고, 보통은 10분가량 늦게 들어오게 된다.

근데, 구내 식당까지 걸어서 5분(왕복 10분), 줄서서 5분, 밥 먹는데 10분, 기껏해야 30분이면 모든게 끝난다. 덤으로 10분간 산책을 했고, 여유가 있다면 이렇게 점심시간에 포스팅도 할수 있다. 날씨 따뜻하면 산책을 더 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 실 20명 가운데 한 명도 짬밥을 먹으러 가는 사람이 없다. 산오리가 '짬밥먹으로 가자'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대도 아무 소용이 없어서, 산오리는 밥먹으로 가는데 완전한 '왕따'가 되었다.

그래서 어쩌랴, 혼자라도 짬밥 먹으러 가기로 했고, 혼자서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옆의 다른 부서 사람들에 끼어서 가게 된다. 그래도 짬밥이 좋다.

 

친구들아, 짬밥 좀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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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2 12:52 2005/02/2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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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짬밥 이야기...

    Tracked from 2006/02/02 12:58  delete

    산오리님의 [짬밥 좀 같이 먹자!!] 에 관련된 글. 연말연시에다가, 설연휴까지 있었고, 이런저런 핑계 김에 짬밥 먹는 걸 소홀히 하고 있었는데, 오늘 모처럼 구내식당에 짬밥 먹으러 갔다.

  1. kanjang_gongjang 2005/02/22 13:3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공장에서 종치면 달려가던 식당 아직도 바뀌지 않았겠죠.
    나가서 먹는 건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먹고 몇분이라도 쉬고자 서로 앞다투어 식당으로 가려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식당이 옆에 있어 느긋하게 점심시간이 알리는 종이 울리면 식당에서 가서 반찬을 탐색한 후 양껏퍼먹고 공장 앞 작은 주차장에서 족구를 정겹게 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공장에서 밥이 어찌나 맛이 있던지 지금 글 쓰면서도 입에서 침이 마르지 않네요.^^ 밥값이 비싸구나.
    위 밥값이 제가 공장에서 용접봉 잡으며 일할때 연장 근로수당 이네요.

  2. hi 2005/02/22 14: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흠흠... 짬밥이라... 짬밥에 대한 어리버리한 추억이 불현듯... 그래도 산오리님 잘 드시고 건강 유지하셔야죠. 그래야 또 산길 안내도 해주시고, 인생 안내도 해주시고... 즐거운 식사시간 되세요~~~~!!!

  3. 전김 2005/02/22 14:5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학교 '짬밥'이 좋아요~ 근데 두부 콩나물 된장국은 처음 들어보는군요..보통 '똥국'이라 불렀기 때문에 >.<

  4. 바다소녀 2005/02/22 15:0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밥 같이 먹을 사람 없는거 참 외롭던데..
    집에서건 밖에서건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아 싫어요.
    그래도 그 동네는 직원이 많아서 다행이예요.
    그리고 이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 투성이라 정말 굶기도 하는 분위기예요.
    누가 밥 사준다하면 좋아라 하고.
    저도 밥 사줄 돈 없으면 집에서 먹고 와 버리기도 하고 그래요.
    학교 다닐때 후배들 피해다니던 시절이 생각날 때도 있고요.

    짬밥이 그립네요.

  5. 꿈꾸는 애벌레 2005/02/22 17:3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짬밥.. ㅋㅋ..새롭네요^^....학부시절..첨에 그밥 못먹어서 1년 넘게 학교앞 식당에서 먹었는데..2학년 2학기 즈음 되니까 적응되더라구요..ㅋㅋ.. 요새 우리도 짬밥 먹어요.3000원짜리..오늘 우리 구내식당에는 대보름전날이라고...오곡밥이랑 나물나왔더라구요..덕분에 자취생 오곡밥도 먹고...ㅋㅋ...

  6. 자일리톨 2005/02/22 18:2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렇지요. 소박하고 간단한 밥상에 건강이 있는 법인데.
    저랑 같이 짬밥 드세요~ 근데 거기가 일산이랬죠? -_-a

  7. sanori 2005/02/22 19: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간장공장/그전에는 우리도 그랬죠.잽싸게 밥먹고 와서 바둑을 한판 두거나, 윷놀이 오락으로 돈따먹기 하느라 정신 없었지요.
    행인/인생안내는 시러요. 당신 살고 싶은데로 사세요! ㅋㅋ
    전김/똥국이라..하튼 된장에 두부와 콩나물만 가득했죠, 늦게 가면 국물도 없이 건데기만... 다들 버렸는데, 그게 지금 생각하면 웰빙이네요, 산오리는 잘 먹었지요..

  8. sanori 2005/02/22 19: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바다소녀/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굶는게 부모 잘못만난 결식아동들만 있는게 아니군요. 민주노동당도 당 일꾼들을 굶기다니..당원으로서, 당 간부로서 부끄럽슴다.
    애벌레/짬밥 쉽게 적응 안되나 봐요.우리 사무실 사람들도 짬밥 맛없다고 밖으로 계속 나가는 거예요.
    자일리톨/일산오세요, 짬밥 사드릴게요..맛있어요.ㅋ

  9. rivermi 2005/02/22 21: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짬밥의 유래는 어디래요?
    군대식 용어 맞나요? 그냥 쓸데없이 궁금해함^^;;

  10. underground 2005/02/22 21:5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최초에 짬밥을 접했을때, '짬밥'이 아니고 '짠밥'으로 알아들었고 한동안 그렇게 여겼죠...(반찬 아낄라고 왜 이리 반찬들이 짠지...)...나중에 자세히 들으니 짠이 아니라 짬이더라구요...ㅋㅋ짬밥 얘기를 들으니 왠지 기분이 짠해지네요..썰렁~~~

  11. sanori 2005/02/22 23:4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리버미/ 그거야 말로 네이버에 물어보세요, 저도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데, 까먹었어요..ㅋㅋ
    언더/산오리도 아직도 짠밥이라고 발음해요, 근데 그것도 짬밥이 맡는 말이라고 어디서 본 듯해요..

  12. 미류 2005/02/23 11: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짬밥은 먹다남긴 밥이라는 우리말이래요. 군대에서 짬밥이라는 말이 사용된 건 군대에서 나온 밥이 누가 먹다남긴 밥과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쨌든 짬밥이라는 말이 '잔반'이라는 한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더군요. (지난번 샀다는 우리말사전에서 봤어요. ^^;;)

  13. azrael 2005/02/23 13: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두달가량 점심 저녁을 농성장에서 짜장면이나 분식으로 시켜서 먹다가..오늘 점심은 모처럼 근처 식당에 나가서 먹었습니다. 맛있더군요...예전에 늘상먹던 순두부찌개가...이렇게 맛있다니..

  14. 바다소녀 2005/02/23 14:2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의 댓글에 바두기님이 충격 받으셨나 봐요.
    조금 오버가 들어 가 있는 --;;;
    저희 짬밥 먹으러 종종 카이스트에 가요.
    바두기님 넘 슬퍼하지 마세요.

  15. sanori 2005/02/24 21: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미류/감사^.^ 역시 사람은 책을 들춰보고 공부해야 해요..ㅎㅎ
    azrael/짜장면 6개월만 먹으면 온 몸이 까맣게 변해요. 조심하세요..ㅋㅋ(온몸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덩은 색이 변하죠..)
    바다소녀/카이스트 짬밥도 맛있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