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 가출....

from 나홀로 가족 2006/09/12 15:16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일요일 낮이 되어 동희가 학원을 가려고 옷을 챙겨 입고 있는데, ‘바람막이’웃옷이 없다는 거였다. 동희는 전날까지 동명이 방 옷걸이에 걸린 옷을 봤는데, 아침에 없어졌으니 어제밤에 놀러와서는 동명이와 같이 자고, 아내가 챙겨준 아침을 먹고 돌아간 동명이 친구들이 입고 갔다는 거였다.

동희는 동명이한테 옷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고, 침대에 드러누워 테레비를 보고 있는 동명이의 얼굴을 감싸쥐면서 ‘옷을 빨리 찾아 오라’고 했고, 동명이는 ‘나는 모른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 현장에 있던 산오리는 이게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자고 있었는데, 그정도에서 대충 끝이 났고, 동희는 계속 투덜거리면서 다른 옷을 입고 학원으로 갔다.

아, 그 와중에 아내는 마루에 있다가 ‘동명이 청바지 다시 세어봐야겠다’는 말을 했다.



 

밤에 일찍 잠이 들었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는데 뭐 그러려니 했다. 아침에 깨어 보니까 동명이는 밤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밤에 동희는 동명이한테 ‘옷 안가져오면 죽이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동명이는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단다. 가출했다는 것이다.


밤에 아내는 전화를 해 보다가, 몇 번 문자를 주고 받긴 했는데, 처음에는 달래보다가, 나중에는 협박도 해 보았지만, 별 수 없었다면서, 언제나 하는 ‘무자식이 상팔자’란 넋두리만 늘어 놨다.


출근해서 전화를 해보니 안받는다. 문자를 보냈다. 뭐 그런걸로 가출을 하고 그러느냐? 집에 들어오라 고 했더니, 동명이는 엄마도 아빠도 형도 마음에 안들어서 집에 안들어갈 거란다. 형한테 거의 맞을 뻔 했는데, 아빠는 옆에서 말리지도 않았고, 엄마는 청바지 숫자나 세어보겠다고 하는게 말이 되는거냐? 모두다 실망이다. 형이 와서 싹싹 빌때 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 엄마는 전화도 끊고, 현관문 비밀번호도 바꾸겠다는데, 그렇게 나를 싫어하고 차별하는 거냐? 하튼 대충 이런 내용이 동명이가 가출한 배경이다.


당연히 산오리는, 그래 아빠가 잘못했다. 형한테 사과를 받으려면 집에 들어와야 하고 그러면 아빠가 중재를 해 보겠다. 열 받는 일 있으면 당장 문제제기를 하고 뭐가 열받는 것인지 얘기를 해야 알지 그렇게 나가 있으면 어떻게 알겠냐? 하튼 들어와서 얘기하자(이 얘기를 하는데, 꼭 파업사업장에서 사용자가 하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일단은 복귀해라, 그리고 협상하자’...)


아침에 학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점심때 쯤 전화가 왔다. 그래서 동명이가 가출을 했고,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을 거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한 거였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동명이 오늘 학교에 왔고, 징계를 계속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담배 피우다 걸린 징계가 아직 안끝났단다. 그 참 신기한 놈이네, 어떻게 학교를 갔지?


오후 늦게 다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동명이 학교 안왔다는 거였다. 아침에 징계 받으러 간줄 알았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까 안왔고, 친한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학교 주변에서 여자친구랑 같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리고 여자친구도 무슨 병가인가 신청하고 학교를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명이가 내일 학교 가거든 선생님께서 잘 타일러서 집에 들어가라고 얘기해 달라고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동명이와 문자를 다시 했는데, 학교는 어쩔거냐고 했더니, 내일부터는 교복을 빌려 입고라도 학교는 갈 계획이니까 걱정하지 말란다.

여자 친구와 같이 학교도 빼먹고 놀고 있다면 여자친구 부모쪽도 걱정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또 같이 가출한 거 아니라면 동명이 설득 좀 해 보라고 할 겸 여자친구네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여자친구네 아빠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다) 밖에 나와 있어서 잘 모르니까 애 엄마한테 전화해 보라고 해서 전화를 했다.

여자친구 어머니한테 학교선생님한테서 들은 얘기를 해 줬더니, 사실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나중에 그 어머니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그 집 애는 학교를 갔는데, 생리통으로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실에 없으니까 학교를 안온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라는 것이다. 동명이가 가출한 것은 알고 있고, 그 여자친구도 동명이한테 집으로 들어가라고 설득하고 있는 중이란다. 어쨌든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산기평 천막에 갔다가 돌아 오는 도중에 동명한테서 문자가 왔다. 제빵제과시험 원서접수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아빠는 모르니까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했더니, 좀 있다가 다시 연락이 왔는데, 엄마가 문자를 씹고 있단다.

아내에게 전화 했더니, 학원에서 원서접수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란다. 그것도 사진이 4장이나 필요한데, 2장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두 번이나 집과 학원을 오락가락했다면서 투덜거렸다. 동명이한테 원서는 엄마가 접수했다고 했더니, 엄마가 자기를 감동시켰다면서 고맙다고나 전해 달라나 뭐래나....


‘난 모레부터 가겠음. 학교 오지마 사과받기 전까지 들어갈 맘 없어 여자친구 폰고장나서 연락도 안되’

동명이가 어제 밤 마지막으로 산오리한테 보낸 문자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내는 그 자식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아예 신경 안쓰겠다면서, 그런 놈을 위해 운동도 않고, 원서 접수시켜주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그래도 동명이가 얘기한건 그 옷을 친구에게 준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그리고 친구에게 줬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렇게 몰아 부친건 심한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 새끼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있어서 믿을 게 없단다.

얘기를 안해서 그렇지 저번에도 동희가 신고다니는 신발까지 자기 친구에게 빌려 줬다가 동희가 신발찾아오지 않으면 죽인다고 난리를 쳤더니 찾아 왔다는 것이다. 옷 사달라고 해서 비싼옷 사준거 남아 있는게 없다면서, 그 옷도 분명히 그날 밤에 온 친구놈들 중에 누군가 입고 갔을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얘기했다. 집에는 아무리 뒤져도 그옷이 없다는 말도 덧붙여...


그리고 집을 나갔다는 놈이 낮에 친구들 끌고 집에 들어와서 라면 끓여먹고 난리를 쳐 놓고 나가냐? 그게 무슨 집나간 거냐? 이번기회에 전화도 끊고, 현관문 비밀번호도 바꿔서 아예 정신좀 차리게 해야 한다. 지가 연락해도 이제는 연락 안할 거다. 돈떨어지면 집에 들어오겠지....아내의 말이다.


그래? 현관문 비밀번호 아예 바꿔 줄게..산오리가 그거 뜯어서 바꿔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건지 몰라서 한참을 헤메고 있었더니, 아내는 ‘그거라도 그냥 냅둬요, 집에 와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게...’ 이런다. 그래서 현관문은 그대로 개방상태...


아내 혼자서 소주 한병 다 마시더니, 어젯밤에 그 자식 안들어 온다고 괜히 답답해 하고, 문자 보내고, 달래고 하면서 잠만 못잤다고 하더니, 그냥 쓰러져 잔다. 동희 밤늦게 오면 먹을 거 좀 챙겨 주라면서...여전히 ‘무자식은 상팔자’란 후렴구호는 잊지 않은 채...


아침에 동희 학교 실어주면서 물었다.

“동명이가 형 사과를 받아야 집에 오겠다는데....”

“그 새끼 옷은 어떻게 했대?”

“그건 자기가 안그랬다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해”

사과는커녕 대화도 안될 분위기다.


내 자식이지만, 무슨 코미디 같은 가출을 연출하고 있다.


과연 이 자식은 며칠간 밖에서 개길 것인가? 그리고 엄마는 애를 찾으러 나서지 않고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어찌되었거나,

동명아! 빨리 집에 들어와라! 집에 들어와서 얘기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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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2 15:16 2006/09/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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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돌아온 동명이...

    Tracked from 2006/09/15 17:08  delete

    산오리님의 [동명이 가출....] 에 관련된 글. 어제밤 9시에 동명이를 만나서, 돼지 갈비를 사 먹이고,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같이 들어왔다. 4박5일간의 동명이의 1차 가출은 막을 내렸다.

  1. 바다소녀 2006/09/12 15:2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 심각한 상황에 웃음만 나오는데 어찌하오리까?

  2. 머프 2006/09/12 15:3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딸은 그래도 가출빈도가 조금 낮지 않을까 하여, 안도가 된다는..ㅎ 그래도 걱정이 되기는 하네요.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란..쩝~

  3. 유치봉 2006/09/12 15: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초보아빠인 저로서는 가슴이 무척 답답해지는 글입니다.-_-;;

  4. 슈아 2006/09/12 21:2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쩌죠. 전 음청 웃으면서 봤어요. 아직 안당해봐서 그런가봐요~~ 라면이라도 먹게 번호 안바꾸는 엄마 맘이 짠하네요. 글고 우선 들어와라 하는 산오리도 잼나고 ㅋㅋ 진짜 사용자 같아요.

  5. 김수경 2006/09/12 23: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말 잼나게 봤습니다. 오늘 당게를 들여다보고 한심해서 울적했는데 기분전환이 됐네요. 근데 이래도 되나?

  6. 산오리 2006/09/13 08: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바다소녀/애비가 봐도 좀 웃겨요..
    머프/아들이냐 딸이냐로 걱정의 정도가 달라지진 않을 듯..애들 성격에 따라 다르죠.
    유치봉/이제 한살도 안된 애기 아빠가 별 걱정을?!
    슈아/엄마는 여전히 걱정되죠. 말로는 그렇게 안해도..
    김수경/짜증나는 인간 몇 땜에 당게는 들어가기 싫고, 글 올리기도 싫더라구요. 그런 인간들 신경쓰지 말고 하고픈데로 하세요..

  7. 곰탱이 2006/09/14 17: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참, 동명이 집에 들어왔나요? 오늘쯤 들어오는 날인 것 같은데^^... 내일 뵙겠습니다.

  8. 민주애비 2006/09/14 18: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카~^&^ 우리 아들도 초등 2년때(지금은 3학년)누나랑 다투고 엄마에게 야단맞고 그래서 가출을 했는데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다니며 집으로 전화해서 누나와 엄마의 사과를 요구하며 투쟁을 하던중 제가 집근처 공중전화 박스의 전화번호를 확인하여 이동통로를 따라 체포했다는...ㅋㅋ

  9. 산오리 2006/09/15 17:1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곰탱이/쪽집게 이십니다. 어젯밤에 들어왔어요
    민주애비/ 참 조숙하기도했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