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 제8권 해결책의 응용 제4장 여러 가지 지지와 반대'에서 리카도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토지가치세가 전가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게젤에 따르면 전가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를 만족해야만 하는데, 그 전제란 토지가치세로 얻은 수익이 소위 '공짜땅' 노동자의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젤에 의하면 세 가지 부류의 공짜땅이 있다. 첫 번째 부류의 공짜땅은 말 그대로 공짜땅이다. 미개척지처럼 주인 없는 땅을 말한다. 두 번째 부류의 공짜땅은 무시할만큼 적은 금액을 내고 쓸 수 있는 땅, 그래서 공짜나 다름없는 땅이다.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은 과학이나 기술의 진보로 새로 생기는 땅이다. 예를 들어 비료를 개선해서 생산량이 3배로 늘면 땅이 3배로 늘어난 것과 같다. 또, 건축기술이 발달해서 건물을 높이 올리면 그 만큼 새로운 땅이 생기는 셈이다.
땅주인이 임대료를 올리면 소작농(세입자)은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공짜땅으로 떠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농사 지어서 얻은 생산물을 팔려면 다시 판매중심지까지 가져와야 하고 그래서 운송비가 붙는다. 그 생산물을 팔아 얻은 돈으로 자기가 필요한 재화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데에도 마찬가지로 운송비가 붙는다. 그래서 이런 저런 비용 다 제하고 노동대가를 얻는데, 땅주인은 노동자에게 그만큼을 임금으로 주고 나머지를 임대료로 얻게 된다.
이처럼 공짜땅 노동대가가 임금을 결정하는데, 그 중에서도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 노동대가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 임금은 첫 번째 부류의 공짜땅 노동대가 밑으로 떨어질 수는 있지만 세 번째 부류의 공짜땅 노동대가 밑으로는 떨어질 수 없다. (헨리 조지의 용어로는 '지대선rent line'이다.)
따라서 토지세로 얻은 정부수익을 공짜땅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하느냐 마느냐가 분배에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전자는 공짜땅 노동자의 노동대가를 올리기 때문에 땅주인이 토지세를 전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그만큼 임금을 올리라고 땅주인한테 요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토지세 자체로 임대료를 공격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로 한 번 더 지대를 공격하게 된다. 반면, 후자는 공짜땅 노동자의 노동대가를 올리지 않기 때문에 땅주인이 토지세 부담을 소작농(세입자)과 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Ⅰ. 분배'에 포함된다. 이 파트는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 분배에 대한 기존 상식이 얼마나 안일한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땅사유권을 남겨둔 상태에서는, 토지세를 부과하여 얻은 수익으로 땅주인들의 부동산에 길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동자 아이의 교육비를 부담해주는 것도 모두 땅주인을 이롭게 한다. 그것들은 모두 공짜땅 노동자의 노동대가를 올리지 않기 때문에 땅주인이 토지세 부담을 전가시킬 수 있다. 반면 공짜땅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한다면 토지세 부담은 전가될 수 없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대조세제나 지대이자차익세제를 살펴보면 그것만으로는 토지세를 세입자나 노동자들한테 떠넘길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전가 가능성은 토지세로 얻은 수익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대조세제나 지대차익세제로 얻은 정부수익을 교육과 의료에 쓰면 토지세를 떠넘길 수 있게 된다. 교육과 의료에 지출하면 복지에 쓰는 것이니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옳다구나!"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땅에 교육과 의료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더해지면 그 이익은 그 땅의 지대에 반영된다. 임대료는 오른다. 그래서 그 혜택을 조만간 상쇄한다. 그래서 땅사유권은 모든 복지정책을 무력화한다.
결국 게젤은, 땅을 국유화하고 공매로 최고의 임대료를 납부하는 사람에게 임대하여 그 지대를 공공의 복지를 위해 쓸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지대가 오를 때마다 그만큼 임대료를 올려 땅을 빌려쓰는 자가 지대의 상승을 자기 것으로 취하지 못하게 방지한다.
실비오 게젤의 공짜땅 개혁은 헨리 조지의 지공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실비오 게젤과 헨리 조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1. 게젤에 따르면, 이자·경제위기·실업은 땅을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교환(상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환매개물인 돈을 개혁해야 해결할 수 있다.
2. 헨리 조지는 땅사유권을 폐지하는 대신 지대를 조세로 몰수하자고 했다. 하지만 게젤은 땅주인이 이 세금을 소작농(세입자)과 노동자한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게젤은 헨리 조지가 원래 주장했던 땅사유권 폐지를 근본적인 대안으로 삼으며, 땅을 국유화하는 재정은 공짜돈 개혁으로 마련한다. 이와 같이 게젤은 헨리 조지를 완성한다.
한쪽에는 보수가, 다른 한쪽에는 진보가 있다. 무엇을 보수로, 무엇을 진보로 정의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보수는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쪽, 진보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로 갈아타려는 쪽이다. 보수는 기존 질서에서 최고의 기득권을 누린다. 그런데 이 기득권은 불로소득을 바탕으로 한다. 불로소득은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노동대가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것이고 개혁해야 할 대상이 된다.
여기서 가장 미스테리한 점은 보수가 진보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보수는 사실 소수다. 한 줌도 안되는 인간의 무리가 거대한 군중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사실 이것은 단순한 메커니즘에 근거한다.
보수의 운동방향은 하나로 통일된다. 변화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 하지만 진보를 보자. 진보는 그 운동방향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져 있다. 케인지언, 맑스주의자, 사민주의자, 환경운동가, 민족주의자, 러다이트주의자, 테러리스트1, 페미니스트, 종교인들, 신흥영성주의자들, 무신론자, 예술가, 성소수자, 인권단체, 몽상가들 그리고 현실도피자들까지...
진보는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와 자기도취적 심리에 의해 분열되어 있다. 보수가 그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진보를 이기는 것은 진보가 분열하여 얻는 어부지리漁夫之利다. 보수가 강한 게 아니라 진보가 약한 것이다. 분열되어 있기에. 이 분열의 실상을 먼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때때로 진보세력들은 선거에서 이기려고 뭉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속은 느슨하다. 그들은 통일된 하나의 정치경제 패러다임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계산하여 연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옆구리만 살짝 찔러도 그 대오는 무너지고 만다.
진보는 다들 잘났고 다들 똑똑하고 그래서 각자 갈 길을 가기 때문에 늘 진다. 그렇게 똑똑하고 잘났으면 자기들끼리 붙어서 진보의 방향에 대해서 최종합의를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결론이 나왔으면 그대로 밀고 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그냥 각자의 보잘것없는 견해를 소중히 간직한 채 사회운동가의 로망을 꿈꾸며 낮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각자가 자기 우상의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았느냐? (에스겔 9:12)
진보세력의 목표는 모두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로 가장 쉽고, 가장 간단하고, 가장 근본적으로 이룰 수 있다. 붙어 볼 용기가 있으면 논쟁을 해보자. 뒤에서 쑥덕거리지만 말고.
보수는 백 보 물러설 것을 한 보 물러선 뒤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며 엄살 피우는 것이 고작이다. 아쉬운 쪽이 움직여야 한다. 아쉬운 건 진보세력이다. 따라서 필자는 보수를 비판하지 않고 진보를 비판한다. 진보를 더 강하게 만들려고 진보를 비판한다. 진보의 운동방향을 통일하려고 진보를 비판한다.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여러분들이 지금 쥐고 있는 패를 놓아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의 포지션이 더 강해질 것이다. "가짜 진보"를 버리라. 그걸 붙잡고 있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되는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낡은 부대에 담으면 그 부대가 찢어져 버릴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상을 낡은 경제질서 안에서 빚어낼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경제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이유다. 낡은 질서를 버리라.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라.
폭력은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 폭력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포함시켜 두었다.
이 링크를 따라가면 어떤 민간 연구가가 게젤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게젤 식의 스탬프머니적 발상이 현실에 채택되기 곤란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화폐만을 겨냥해서 그 유통속도를 유지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목적하는 효과를 볼 수가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화폐는 소득시장을 떠나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에서 회전하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이미 스탬프머니는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 범국가적으로 실시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이 수신이자율을 초과하는 마이너스 이자율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이처럼 단지 화폐만을 겨냥한 스탬프머니적인 유통강제는 일장일단이 있는 정도라는 사실, 즉 획기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뭐가 검증되었다든 건지...자세히 살펴보자.
"그렇게 되면 화폐는 소득시장을 떠나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에서 회전하게 될 뿐입니다."
이 말은 돈이 노동과 교환되는 게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투기하는데 몰릴 거라는 얘기다. 이런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연구가는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큰 폐를 끼치고 있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투기가 불가능하다. 투기가 가능하려면 매매타이밍을 기다려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손실없이 부를 쌓아둘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 수단이 바로 돈이다. 하지만 공짜돈은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므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돈을 잡고 매매타이밍을 기다리는 동안 투기꾼은 그 돈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불규칙적인 이익을 위해 규칙적인 손실을 입어야 하는데 어떻게 투기를 할 수 있겠는가?
공짜돈은 순환할 수 밖에 없는 강제에 종속되어 있다. 돈을 쌓아두면 손실을 입기 때문에 그 돈은 돈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흘러가고 남는 돈은 은행이나 보험회사 등에 예금되고 그 돈은 곧바로 사업자와 기업들에게 투자된다. 그 사업자와 기업들도 그 돈을 쌓아둘 수가 없기 때문에 바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필요한 재화를 사서 일자리를 만들게 된다. 위 연구자는 기존 경제질서의 틀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이해해 보려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경제질서가 무엇인지 조금도 알 수 없다.
주식에 대해서 좀 더 말해보면,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 주식은 배당을 하지 않는다. 돈이 낳는 기본이자가 0이 되고 따라서 실물자본 이자도 결국 0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배당을 하지 않고 그저 장부에서 지워지는 감가상각 금액만 받게 되며 그 금액조차도 사람들은 바로 회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회수하는 순간부터 그 금액은 감가상각의 손실을 입으니까. 사람들은 그 돈을 회수하는 시점을 최대한 연기하게 된다. 노년까지 연기하게 될 것이다. 게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노르드도이처로이트의 주주는 공짜돈 개혁으로 아무 배당도 못 받게 돼. 하지만 그 주주는 회사가 감가상각을 위해 떼어둔 금액에서 자기 몫 전부를 지불해 달라고 하지 않을 거야. (그 금액으로 그 회사는 현재 새 배를 만들어.) 그 사람은 자기가 가진 주식 일부에 만족하며 자기가 투자한 마지막 달러가 자기한테 다시 지불될 날을 가능한 오래 늦추려고 할 거야. 따라서 새 배는 늘 만들어져. 그 배가 이자를 생산하는 대신 감각상각을 위해 장부에서 지워지는 금액만 생산하더라도 말이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Ⅴ. 공짜돈 이자이론 5. 공짜돈 이자이론의 완결 중에서
또, 이 연구자는 마이너스금리를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와 혼동하고 있다. 이런 어리석음에 일일이 답해줄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답변은 다음의 링크로 대신한다.
이 링크로 들어가면 문제의 본질에 주목하기보다는 정부가 돈의 제조를 독점하는 것을 문제라고 본다. 돈을 찍어내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껏 찍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화폐운동가들은 이런 주장이 얼핏 자기들의 움직임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여서 지지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돈 액면가가 불변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돈순환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젤은 기본적으로 지역화폐를 동의한 적이 없다. 국가통화를 공짜돈으로 개혁한 다음에는 모든 지역화폐는 폐지되어야 한다. 돈의 가격(가치가 아니라)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화폐는 국가통화를 개혁하기 앞서 공짜돈의 위력을 사람들한테 보여주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시도하는 것이지 그것을 최종 결론으로 여기면 안된다.
이 책은 돈이 사회유기체의 혈액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도, 케인즈요법이 그 혈액을 원활하게 돌리는 방법이라고 구라를 친다. 케인즈 요법은 케인즈 스스로 실토하였듯이 유동성함정이라는 결정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즉 이자율을 아무리 낮춰도 돈은 순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케인즈의 방법으로는 사회유기체의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않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케인즈 요법을 위와 같이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간에서는 케인즈를 자유방임에 맞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것으로 인식하여 좋게 바라보는 듯 한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인식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여기는 것은 마치 아토피환자가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고 증상이 잠시 나아지면서 그런 대증요법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산화콜레스테롤로 변성되면서 전보다 더한 면역반응을 유발하여 증상을 심각하게 악화시킨다.1 소위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유발한다는 것. 환자는 괴로우니까 스테로이드 사용량을 늘리고 그러면 더 심한 면역반응으로 다시 올라오고... 이게 거듭되면서 면역반응은 점점 격렬해져서 그 사람의 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만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렇게 된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4/nw1800/article/3405199_13479.html
이 뉴스를 보면 환자는 잘못된 치료, 스테로이드 때문에 증상이 점점 악화되었다. 그리고 그 연고는 분명히 병원에서 준 것일 터. 재밌는 것은, 언론이 그 대증요법을 지지하는 사람을 불러서 의견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 대증요법으로 생긴 폐해에 대해 대증요법을 지지하는 사람한테 의견을 묻고 있으니 무슨 해결이 되겠나? 케인즈 요법이 이 스테로이드 요법이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경제"라는 말도 있다.) 케인즈 요법으로 생긴 부작용에 대해 케인지언한테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돈순환이 부족하군. 더 찍어서 뿌려. 그럼 저 아우성대는 사람들이 잠잠해질 거야. 사회유기체의 염증반응은 이렇게 가라앉히는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돈이 다시 쌓이고 그 잉여금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투기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중산층의 삶이 팍팍해지면 어떻게 하냐고? 괜찮아. 그 문제는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돼. 저 사람들은 거기까지 생각 못하니까 말이야.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나 할까? 하이퍼인플레가 올 때까지는 다 괜찮아. (등을 두드려주며) 자, 어서 뿌리라고! 계속." 따라서 환자(사회유기체)는 지금 대증요법을 구사하는 치료자(케인지언)와 놔두면 나을 거라고 말하는 돌팔이(방임주의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이다. 왜 근본치료를 하지 않나? 왜?
제롬 블랑Jérôme Blanc의 <SILVIO GESELL’S THEORY AND ACCELERATED MONEY EXPERIMENTS>이라는 쓰레기논문에서 V. TRUST AND ACCELERATED MONEY: THE PRACTICAL LIMITS OF THE GESELLIAN UTOPIA(10~11쪽)를 보면, 게젤 이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 게젤 시스템이 2~3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증거가 없다.그 시도는 몇 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았고 금지되거나 금지되기 전에 멈춰버렸다. 2. 게젤 시스템은 거대한 규모에서 작동한 일이 없고 지역화폐 수준에서만 작동하였다. 3. 게젤 시스템을 사람들은 인플레나 하이퍼인플레 초기로 인식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신뢰해야만 그 시스템은 작동할 것이다. 4. 공짜돈의 대체물이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지불수단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은행화폐는 스탬프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그것으로 갈아탈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제롬 블랑은 게젤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한다. 1. 공짜돈의 대체물이 나오는 걸 금지하기 2. 공짜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신뢰하기.
필자는 이에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1.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게젤 시스템을 강제로 금지한 것은, 공짜돈의 활약으로 국가통화가 허수아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중앙은행이다. 그것이 2~3년 이상 지속되지 못한 이유다. 그리고 WIR에서 공짜돈을 중단한 것은, 공짜돈이 WIR의 회원제 시스템과 충돌했을 때 운영자들의 몰이해로 회원제를 놔두고 공짜돈을 버린 것이다. WIR는 왜 게젤이론을 포기했나?를 참조할 것. 제롬 블랑의 논문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게젤의 시스템이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언제든지 실행될 수 있었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 게젤의 경제이론이 충분히 이해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게젤의 시스템은 혹독하게 탄압받았고 제대로 이해되지도 못했다.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의 수난만을 기억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수난이다. 사람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수난을 당하자 그 아래에서 경제행위를 꾸려가는 수십억의 인류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게젤은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맑스주의자들의 무지를 감당해야 했고, 운터굿겐베르거는 뵈르글에서 중앙은행의 독선과 아집을 견뎌야 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무지한 대중들이나 권력자들에게 언제나 수난을 당했다. 현대문명에도 골고타의 언덕은 남아있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지혜가 수난을 당하는 모든 지점이 바로 골고타의 언덕이다. 하지만 실제로 피 흘리고 못박히는 자는 그 지혜가 아니라 그 지혜를 무시했던 대중들이다. 대중들은 모든 종류의 사회적 비극 속에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할퀴고 밀치고 눈치보면서, 온갖 미친 짓을 다 해대면서, 그 선각자가 제시했던 새로운 세상에서 자기가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 자기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는지 평생토록 깨닫지 못한다. 세상에 만연한 악에 의하여 닳고 닳아서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추스리면서 그 비루한 인생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2. 게젤 시스템을 국가통화로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은,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게젤을 방해했던 맑스주의자들 때문이다. 또, 루즈벨트처럼 권력분산을 염려한 정치가와 그런 정치가를 지지한 유권자들 때문이다. 미국에서 10억달러의 스탬프머니 법안을 폐기한 바보들, 바로 그 사람들 때문이다. 진부한 틀 안에 갇혀서 헛되이 기도하는 자들이 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있다.
3. 게젤 시스템은 인플레나 하이퍼인플레가 아니라 통화안정을 기초로 한다. 돈가격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쫓기만 하면 그 시스템은 작동한다. 자기 이익을 쫓는다면 감가상각되기 전에 돈을 소비할 테니까. 따라서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신뢰하거나 말거나 그 시스템은 설치 후 바로 작동한다.http://blog.jinbo.net/silviogesell/115
4. 대체물 이야기는 케인즈의 헛소리를 재탕한 것이다. 대체물은 나올 수 없다. 대체물은 돈이 돈노릇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다. 돈순환이 부족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실비오 게젤과 케인즈를 참조할 것.대체물은 나오지 않고, 따라서 그것을 금지할 필요도 없다.
어리석음의 모음집은 끝이 없다. 모든 것의 결론은 이것이다.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는 경제질서를 세워라. 이것이 사람이 할 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옳은지 그른지는, 경제현상과 경제주체들 사이의 되먹임으로 낱낱이 심판될 것이다.
<명견만리>에서는 기계화가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여러분들한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1.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대로 공짜돈 개혁을 하여도1 기계화가 일자리를 줄일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없다면 그래도 일자리 감소가 기계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
2 .사람들이 일자리 감소가 기계화 때문이라고 믿게 될 때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계급은 누구일까?
첫 번째 질문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공짜돈 개혁으로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게 되면, 돈은 어쩔 수 없이 교환되어야 한다. 쌓아두면 손해가 되니까. 따라서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서 사람한테 주게 될 것이다. 공짜돈은 기계화와 상관없이 노동수요를 창출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기계화로 인한 혜택을 모두 골고루 누리게 된다. 일은 편해지고 임금은 돈순환이 만들어내는 만큼 더 받게 된다. 따라서 일자리 감소는 기계화 때문이 아니라 돈의 결함 때문이다. 돈을 쌓아둘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노동과 교환되지 않는 것이다. 초밥을 기계로 만들 수 있게 되어 요리사가 해고되어도 돈이 어쩔 수 없이 교환되어야 한다면 그 요리사는 그 돈이 만들어내는 다른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노동수요를 구현하는 것은 돈이다. 지금의 돈은 쌓아둘 수 있기 때문에 노동수요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개혁해야 한다. 기업이 기계로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도 돈 때문이 아닌가? 돈이 더 적게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경제주체들의 동기를 지배하는 돈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기계화가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그런 돈을 쓰는 것으로 인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쌓아두는 게 손해가 된다면 기계화가 진행되든 말든 돈은 노동과 교환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자본가"다. 여러분들이 실업의 원인으로 엉뚱한 것을 지목할수록 자본가들은 안심할 것이다. 기계화가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라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자본가들은 경제질서의 결함을 바로잡을 책임을 면하니까.
<명견만리>는 자본가의 이익을 지지하는 프로그램이다. 언론은 여러분의 이익을 챙겨주지 않는다. 언론은 "자본가의 대변인"이니까. <명견만리>가 말하고자 하는 속뜻은 이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든 건 기계화 때문이고, 기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흐름이야. 그러니까 닥치고 열심히 각자 살 길 찾아라. 알겠니?
아마도 <명견만리> 다음 편에서는 기업들이 자비를 베풀어 일자리를 조금 더 만들어주는 사례를 보여주며 거기에 박수를 치고, 그게 최선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러분들한테 근거없는 희망을 북돋아주고, 여러분들을 도와주는 시늉을 하며, 여러분들이 "진짜 개혁"을 밀어붙이게 되는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할 것이다. <명견만리> 다음 프로그램을 기대해 볼 것.
<엔트로피>에서 제레미 리프킨은 열역학 1, 2법칙으로 문명 전체를 통찰한다. 리프킨에 따르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도 경제위기에서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모두 자원의 기반 자체를 무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무한한 경제성장(양적 성장)을 하려고 하니 문제라는 것이다.
열역학 법칙은 실제 부富의 양에 제한을 가한다. 그것들은 조만간 썩고, 닳고, 낡고, 유행이 지나는 등 소멸될 운명이므로. 하지만 돈은 이자를 낳으며 계속 제 몸을 불려간다. 이 때문에 둘 사이의 균형은 결국 무너진다. 그 무너지는 균형을 보상하려면 환경이 파괴되어야 하고, 기후가 바뀌어야 하고 , 나라 사이의 채무관계로 인한 갈등 때문에 전쟁이 터져야 하고, 개인 사이의 채무관계로 인한 갈등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야 하고, 인플레가 일어나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파산해야 하고 재산을 몰수당해야 한다.
우리가 리프킨에게 동의한다면 실제의 부가 종속되어 있는 소멸성을 돈에 마찬가지로 부여해야 한다. 재화는 엔트로피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재화를 교환하는 돈도 마찬가지로 엔트로피 법칙의 지배를 받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다. 실비오 게젤의 공짜돈은 엔트로피 법칙의 지배를 받는 돈이다. 돈의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당함으로써 돈은 세상만물과 함께 소멸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른 만물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사회의 에너지가 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독점되면 부와 권력을 소수가 독점하여 다른 사람들은 생존에 필요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빼앗기고 만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의 에너지, 예컨대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재산)가 미치지 못하고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그 사회는 붕괴되거나 혁명으로 발전한다. 또는 그 두 가지 현상이 모두 발생할 때도 있다. 자연은 균형을 되찾기 위해 자체 조절의 생물학적 법칙에 의존하고 있으나, 인간사회의 경우에는 경제적인 공평성의 원리에 의존해야 한다. <엔트로피 I> 232쪽
이 공평성의 원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바로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다.
돈개혁이 자기 재화를 파는 사람한테 요구하는 건 공평함 뿐이야. "이제 재화를 사서 남들도 자기 재화를 처분할 수 있게 해." 이 요구는 공평하기만 한 게 아니라 지혜롭기도 해. 다른 재화를 살 수 있으려면 자기 재화를 팔아야 하니까. 사, 그러면 네 생산물을 모두 팔 수 있을 거야. 안 그러면 구매자로서는 왕이 되지만 판매자로서는 노예가 되어야 해. 구매가 없으면 판매도 없어. 그리고 판매가 없으면 구매도 없어.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Ⅳ. 공짜돈 (돈은 어떠해야 하는가) 5. 공짜돈은 어떻게 판단될까 L. 프루동의 제자
산 만큼 팔고 판 만큼 사는 게 공평한 것이다. 돈을 돈소지자의 임의에 따라 쌓아두게 되면 돈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리프킨이 우려한 대로 에너지와 부와 권력이 독점된다. 이 블로그 "돈은 네트워크다"를 참조할 것.
사람들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요법이 없으면 대증요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고 그 대증요법은 사회의 다양한 증상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기계적인 반작용이며 사람들은 그런 방법을 적용하면서 그 기계적인 반작용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입한 것이지만 그 방법을 적용하면서 그 방법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요리사가 요리에 몰입하면서 칼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그래서 대증요법에 취해있는 사람들은 근본요법을 바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저항이 존재한다. 그들은 관성 때문에 자기의 움직임을 수정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래서 근본요법을 발견한 것 만으로는 사회유기체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회개혁가가 사회유기체에 근본요법을 적용하고 싶다면 대중들이 대증요법에 이르게 되는 사고의 노선을 추적해서 그들이 진실로 가는 길의 어느 지점에서 발을 헛딛었는지 정확히 지적해주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사회개혁가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어리석어져야 한다. 어리석음의 늪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이 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그 사회개혁가는 아마도 맑스주의에 빠진 노동자의 머리 속으로, 통화팽창정책을 지지하는 통화주의자나 적자재정을 지지하는 케인지언의 머리 속으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방임주의자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또, 그는 기존 진보운동에 거부감을 느끼며 소외감과 불안감을 이기려고 일베에 가입하는 어느 외로운 젊은이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보다 수면제를 원하는 중산층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기계적인 반작용의 여러 양상들을 스스로 체험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 속에서 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지 그리고 실제로 삶을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1. 각성-사회 구성원 중 누가 직관적으로 문제의 근본원인을 깨닫는다. 그는 해법을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해 둔다.
2. 전파-이것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 그 사람은 아마도 호기심이 강하고 활발하며 여러 가지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그것을 자기가 속한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해는 꽤 단편적이고 깊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네트워크는 이 아이디어가 가장 멀리까지 퍼져나갈 수 있게 만들 것이다.
3. 검토-그렇게 전파된 생각들은 이번에는 회의주의자들을 만난다. 이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을 의심하고 그것의 한계나 가능성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완전히 순수하지는 않다. 이해관계가 갈리는 집단들끼리의 피튀기는 논쟁이 진행되며 여러 가지 비겁한 반칙과 속임수, 인신공격도 난무할 것이다.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개입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걸러낼 수 있는가는 어디까지나 대중의 역량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성패를 가르는 것은 그 새로운 아이디어가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가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중산층이 현재의 경제질서에서 충분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개혁을 지지하는 정치적 리더와 지식인들은 중산층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정책이 중산층의 이익에 이바지함을 증명하고 선전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4. 실행-검증을 마치고 그 아이디어를 채택한다. 실천적인 세부사항들을 덧붙이고 실행한다. 개혁의 효과가 나타나고 그에 따라 대중은 안정을 찾는다. 그 아이디어를 도입하기 전보다 뚜렷하게 상황이 나아진다. 사회문제들이 줄면서 그 개혁에 대한 지지도가 증가한다. 이 단계에서 가장 크게 이바지하는 사람들은 "그저 되어진 대로 적응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새로운 정책이 도입되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그 정책에 반대하지만 역설적으로 새로운 질서 안에서 가장 빠르게 적응한다. 이 보수주의자들의 적응이 새로운 질서를 더 굳건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람들 각자가 가진 속성이 이 과정을 얼마나 훌륭하게 수행하느냐가 관건이다.
누가 이 생각을 전파할 수 있는가? 누가 이 생각을 검토할 수 있는가? 누가 이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가? 여러분들은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