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객관화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2/09
    조직문화를 프로파일링해봐?
    PP

조직문화를 프로파일링해봐?

조직 문화의 스트레스
크리미널 마이드란 미국 드라마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FBI 행동분석팀의 이야기다. 5시즌이 방영 중이니까 상당히 인기 있는 드라마다. 행동분석팀은 연쇄살인사건에서 남겨진 모든 흔적을 통해 범인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고 범인 행동의 패턴과 소재를 예측해 다음 사건을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다. 이 과정을 한마디로 프로파일링이라 한다. 첨단 전산망과 조직력이 이들의 주요 무기지만, 기본적으로는 범인과의 심리 게임이 주된 내용이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대부분의 싸이코패스들은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욕망이 억압되었다. 성장 후에 억압된 욕망을 푸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방법 때문에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그 스트레스 요인은 폭력적 해결방법을 택하게 만들고, 그것이 첫 살인으로 연결된다. 첫 살인의 과정에서 스트레스 요인을 피하고 욕망을 해결하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면, 더 큰 해방감을 위한 계획 살인으로 진화하고, 자신만의 표식을 남긴다. 싸이코패스들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행동분석팀은 싸이코패스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유형도 분석한다. 드라마가 회를 더해 가며 몇몇 특출한 싸이코패스들은 행동분석팀에게 직접 공격을 감행하는데, 그래서 팀 동료를 프로파일링할 필요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동료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동료들 간의 프로파일링은 금지되어 사건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이 대목에서 어떤 시청자는 문제 해결이 막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이런 걸 계산한 드라마는 동료들 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암묵적 프로파일링 허용을 통해 다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 드라마를 프로파일링 하는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패턴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돋은 닭살을 비벼 피부의 안정을 취한다.
서설이 길었는데, 키워드는 패턴과 존중이다. 조직 문화의 스트레스를 이야기하기 위해 너무 끔찍한 이야기로 예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조직과 조직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조직과 사람의 관계들 속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충돌들과 그 해결의 노력들에서 섬세한 프로파일링은 기본이 된다. 패턴을 찾는 것은 프로파일링의 기술이고, 존중은 프로파일링에서 상대적인 의미의 정서 같은 것이다.

패턴들
예를 들어, 쌍용차 파업에 여러 단체들이 공동투쟁을 진행하던 상황을 회상해 보자. 자신이 관련 없었다면 상상만 해도 좋다. 단체마다 사람마다 국유화를 두고 조금씩 다른 견해가 있었다. 옥쇄파업 전술을 두고도 다른 견해가 있었다. 어떤 견해가 올바른가 이전에 각 단체마다 사람마다 고유의 경험과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몰라도 ‘저쪽은 이럴 것이다’는 예상치가 있다. 먼저 주장을 펼친 쪽에게 ‘그럴 줄 알았다, 저 조직이 그렇지’라고 생각했다면, 이미 상대를 분석하고 예측했다는 말이다.
한 조직 안에서도 사람마다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고, 조직의 입장과 개인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직의 입장이 이러니 조직원은 따라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장의 차이가 적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 안에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흔히 나온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 속에서 예측되는 ‘그럴 줄 알았다’는 패턴의 근거들은 나이, 성별, 계급, 직위, 직업, 경제력, 학력, 지혜, 성격, 외모, 취향, 기호, 출신지 등이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위계적인 관계, 억압적 관계, 친한 관계, 불편한 관계, 부적절한 관계 등의 패턴들이 만들어진다. 평등한 관계라는 패턴은 존재할까?

존중
평등은 사회주의의 매우 중요한 가치다. 사회주의 실현을 꿈꾸는 조직은 평등하지 않은 사회 장치들과 싸우기 위해 사회주의 실현 전까지 전술적으로 부분적인 평등을 포기해야 할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사노준 안에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대단히 평등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묘한 위계와 억압의 패턴들을 발견한다.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느끼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목격하고, 조직과 사람 사이에서 목격하고 있다. 특히 지난 총회 자리에서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에서 복잡한 문양과 수학식이 매우 위험한 곡예 쇼를 펼쳤다.
동지애라는 말이 공식발언으로 몇 번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을 크리미널 마인드에 대입하면, 동료들 사이의 프로파일링 금지에 해당한다. 프로파일링 금지가 공식적 방침이지만 암묵적 프로파일링은 누구나 하듯이, 동지애가 강조되었다는 것은 동지애가 없었거나 발언자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뜻이다. 뒤에 동지애가 무시되었던 상황에 대한 사과가 따랐고, 동지애에 입각한 화해도 따랐다. 약간 닭살이 돋긴 했다. 이런 과정도 하나의 패턴이다. 패턴은 복잡한 과정의 한 단면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이 경과하는 시간의 흐름이기도 하다.
사노준이 상대적으로 평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패턴이 흘러가는 방향이 평등을 향하기 때문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특별한 상황에서 어떤 발언을 할지 예측할 수 있지만, 그 예측은 언젠가 빗나가고 만다. 그의 패턴이 진화하거나 내 프로파일링 방식이 진화하는 것이다. 그 진화가 좋은 방향, 곧 평등의 방향으로 진행하게 만드는 동력이 존중이라 생각한다. 동지애라 표현해도 무방하지만, 조직에 너무 국한된 느낌이라 존중이란 표현이 더 좋다.


조심해야 할 것들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일선 수사관들에게 행동분석팀이 범인의 프로파일을 공개할 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밝힌다. 발표하는 프로파일은 부족한 증거를 통해 얻은 결과라는 점과, 범인이 이 프로파일을 미리 프로파일링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그 말은 곧 자신을 프로파일링할 줄 아는 범인이라면, 행동분석팀의 프로파일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말 특출한 싸이코패스는 프로파일링할 단서를 하나도 안 남겨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고 있을 수 있다. 수십 명을 살해한 싸이코패스 중에 경찰을 수십 년간 농락하다가 끝내 숨어버린 자들이 극소수 실존했다. 가까이서 찾으면 화성 연쇄살인사건 같은.
자신과 주위의 관계 속의 다양한 패턴을 객관화 시켜보는 시도는 평등한 문화를 향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그런 노력을 하겠지만,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한편 자신만 잘 객관화 시키는 사람을 사회에서는 바보라 부른다. 바보가 되지 않으면서 훌륭한 프로파일을 만들더라도 상대와 세계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악마적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정치조직 안에서 치열한 사상투쟁은 조직이 건강하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칫 치열함에 압도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상대를 동지라 호칭하면서도 존중 없이 사상투쟁을 일삼는다면, 히틀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정치조직이 악마가 되면, 싸이코패스의 위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을 낳을 수 있다. 인류는 이미 그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몇 가지 피해야 할 길은 알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찾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