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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4
    쪽수보다 중요한 연대의 정
    PP

쪽수보다 중요한 연대의 정

몸짓선언 + 좌측통행



몸짓선언
몇 달 전 국가인권위 입구에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50여명의 시위대가 수백명의 전투경찰에 포위되었다. 경찰의 해산명령 방송이 흘러나오는 중에 포위된 대오 안에서 몸짓선언의 문화공연이 있었다. 저 상황에서 공연이 되나 싶었다. 그날 연행된 사람이 수십명이었다.(사진) 몸짓선언은 그런 예술가들이다.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춤이란 예술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바로 그 현장에서. 멋지다. 그러나 그들이 멋 부리느라 저렇게 투쟁하는 것일까?

 

2009년 전국노동자대회 본대회에 민주노총이 제시한 모토는 ‘지루한 집회는 이제 그만’이다. 확인할 길 없는 어떤 기대감이 있는 말이지만, 그 정도의 불안감 또한 짙게 느껴진다. 집회에 동원되는 노동자들이나 그런 집회를 기획하는 문화활동가들을 구분할 것 없이, 집회가 지루해 진 것은 사실이고 이런 지루한 집회 문화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마저도 지루해진지 오래다.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그동안 노동자 집회를 만들어 온 사람들에게 집회 문화에 대해 들어본다.

 


몸짓패는 풍물패, 노래패 보다 후발 주자지만, 몸짓선언이 1999년 만들어졌으니 그 역사가 짧진 않다. 공식적으로 팬클럽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크고 작은 무대와 현장에서 공연할 때,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매우 광범위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몸짓선언은 현장 몸짓패들과 강습으로 끈끈하게 묶여있다.

연합팀, 연합공연
몸짓선언은 가끔 현장 몸짓패들과 연합팀을 만들어 공연한다. 작년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전에 좌파문화활동가들 중심으로 기획한 ‘Say NO 문화제’에서 그 연합팀이 구성되어 ‘바리케이드’란 연합공연이 있었다. 준비과정에 대해 묻자, 안무를 연출했던 박현욱 씨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한 달 정도 전에 기획했고, 3번 연습했다는 것이다. 당시 서울, 경기권 현장패 활동가들로 팀을 구성했는데, 다들 모여 연습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3번밖에 연습하지 않았지만 대충 연습한 것도 아니었다. 어렵게 모이는 만큼 모일 때 제대로 연습하기 위해 매우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고, 집중을 위해 대단히 빡센 연습을 강행한다. 연습이 빡세면 사람들 입술이 파래지는데, 좀 더 하다보면 입술이 까매진다고 한다.
아무리 빡센 연습을 했다치더라도 3번 모여 연습해서 그 정도였다. 프로인 몸짓선언은 당연히 그렇다치고, 연합공연의 현장 몸짓패 활동가들도 정말 멋지다. 이들도 멋 부리는 건 아닐텐데.

 


부산 몸짓패 좌측통행
몸짓선언의 박현욱 씨가 2주에 한번 강습하는 좌측통행은 10명의 지역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누구누구까지 하면 10명이니, 대략 7~8명 정도가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중에는 몸짓패 경력이 10년 넘은 사람도 있고, 1년 남짓한 사람도 있다. 소속 사업장은 다양하고, 해고자도 있고, 전업주부와 학생도 있다. 작년 3월에 결성했는데, 결성 배경은 부산 지역 문화 활동가들 사이의 복잡하고 끈질긴 역사 속에서 개인적인 감정들까지 들어간 어떤 결과물이다. 이 이야기는 지역 문화 운동의 측면에서 재구성하기로 하고, 이번 호에선 생략한다.
좌측통행은 촛불집회나 작은 사업장들에 결합하면서,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만, 작은 사업장들의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는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작은 사업장들의 노동자 투쟁에 결합하려고 노력한다.

생생한 강습
박현욱 씨와 함께 하는 좌측통행 모임은 지난 공연에 대한 평가와 보고로 시작했다. 10월 10일 “이명박정권 공공서비스 파괴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 공공부문노동자대회 공연에 좌측통행이 함께 했었다. 준비과정에서부터 세세하고 평가하고, 그 내용을 공공연맹에 전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다음 안무 연습이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비정규철폐연대가, 단결투쟁가, 또다시 앞으로 세 곡의 안무 연습을 했다. 주로 박현욱 씨가 좌측통행 멤버들의 동작을 교정하는 시간이었다. 프로니까 그렇겠지만, 박현욱 씨는 좌측통행 멤버들의 미묘한 손동작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매 동작마다 그것이 멋진 안무로서 보다는, 그 동작이 가지는 의미를 노동자투쟁의 계급성과 연결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아직 배우지 않은 ‘철탑 위에서’를 시작하기 앞서 노래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몸짓선언에서 창작한 안무를 좌측통행이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강습 과정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먼저 노래를 주의깊게 듣고 그 노래에 대한 느낌들을 토론한다. 안무는 그 느낌에 대한 집단 창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짓선언이 강습하는 현장패마다 같은 노래라도 버전이 다른 경우가 있다. 먼저 연습했던 ‘또다시 앞으로’에서도 따로 배운 사람이 있어 다른 버전의 안무가 함께 나오기도 했다.

연대의 정
몸짓패 경력 10년 넘은 이태호 씨(사회보험노조)에게, 왜 몸짓패를 하는지, 무대에서 관객의 환호에 대해 어떤 감동이 있는지 물었다. “처음엔 부산역에서 민주노총 집회의 20평짜리 무대에서 공연하며 그게 몸짓패 활동인 줄 알았다. 몸짓패 1년 정도 됐을 때, 신신기계란 곳에서 와서 공연한번 해달라 그래서 갔더니, 50대들이 초라하게 앉아, 카세트에서 나오는 ‘철의 노동자’ 한 곡만 가지고 박수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뭐 이런 집회도 다 있나 싶어 충격받았다. 어쨌든 몸짓공연하고 나니까, 그거 좋다고 가르쳐 달래서 가르쳐 주고, 노래 모른다고 그래서 열 댓곡 하고, 지쳐서 나오려니까, 그 때 한 아주머니가 불러서 갔더니, 다음에도 올 수 있냐고 다음에도 꼭 와요 하는데, 문화활동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큰 집회가서 감명 같은 거 없다. 가봐야 속터지는 거지. 진짜 좋은 건 아무도 부르지 않아도 우리가 알아서 찾아가 문선하고 같이 놀고 막걸리 한 잔하고 오는 게 제일 좋은 거다.”
옆에 있던 농협노조의 이민주 씨에게 왜 몸짓패를 하는지 또 물었다. “2007년 파업 때 옆에 있는 이태호 동지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든 걸 지원해주셨다. 내가 도대체 뭘 바라고 그러냐고 되라지게 물었다. 다음에 우리같은 사람들 생기면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해주면 그걸로 된다고 말하더라. 그 말에 진실성을 느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 주고 싶다. 어떤 집회, 어떤 무대냐가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소통하는 느낌에 감동받은 적이 많다. 그리고 우리끼리 하는 것보다 다같이 함께 문선하는 게 무척 좋았다. 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중에 사진 찍어 논 걸 보면, 모두들 입이 찢어지는 표정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함께 주고받는 분위기가 좋은 것이다. 그 때 우리패가 없어졌지만, 살아있는 동안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게 또 사람들은 모일 것 아니냐? 그런 때를 위해 이렇게 다른 사업장 사람들끼리 모여 연습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좌측통행은 나에게 맘편하게 놀 수 있는 해방구다.” 해방구란 말. 그 순간을 잠깐 얼려버렸다. 이태호 씨가 “우리는 니 노리개가 아니다”는 말로 얼음을 깼다. 농담도 멋있다.
멋은 연대의 정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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