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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0
    [대표칼럼]자본주의 사회가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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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칼럼]자본주의 사회가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

10여 년 전 경제대국인 일본을 뜨겁게 달궜던 가장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자살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12,858명이다. 10만 명당 26명이 자살한 꼴이다. 지금도 하루에 35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는 10년 전 18.4명에서 41%나 늘어난 통계다. 이 같은 자살률은 2003년 이후 OECD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통계도 충격이지만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20-30대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려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1,000만명이 넘어섰다. 빈곤, 실업, 불안정노동의 문제가 생존에 대한 위협을 가중시킴으로서 ‘예측 가능한 미래의 희망’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공세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인간의 생존은 아랑곳없고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노동자, 민중의 목줄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에게 국가는 없으며 사회. 경제적으로 철저히 소외되어 있고 이들 스스로도 정치주체화 될 구체적 방안이 없다는 점이 절망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나 한 사회적 테두리 내에서 삶에 대한 희망과 방안을 찾을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의 벼랑 끝에 밀려 강요받은 선택으로 생명을 버리는 행위는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부터 이명박정권이 쏟아내는 정책들은 모순투성이 정책들이다. ‘대졸초임을 낮추고 잡쉐어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린다’, ‘공기업노동자는 잘라내고 민간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면 보조금 혜택을 준다’는 것은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도 기만적이지 않는가! 
정권과 자본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지만 더 많은 불안정노동자를 양산하고, 고작 무기계약을 정규직이라고 역설한다. 내실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확충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면 빈곤과 차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명박정권의 정책전반은 부자, 재벌을 위한 정책일 뿐,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감안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부채가 60조나 증가하고 국채를 40조 발행함으로 발생하는 16조의 세수부족이 확인되고, 종부세, 법인세를 포함한 감세정책은 결국 재벌들의 감세로 빚어진 세수부족을 채우기 위해 노동자민중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태는 그 자체로 노동자민중 죽이기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소외된 노동자, 민중들이 인생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유명 연예인, 정치인의 자살과는 본질자체가 다르다. 또 허무주의나 이기적 성격이나 우울증, 사회모방현상도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기 보다는 더욱 깊숙이 절망의 수렁으로 자꾸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사회복지를 확충한다고 근본적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고 서민을 살린다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함으로서 근본적인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모순으로 나타나는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은, 분명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차별과 빈곤의 문제를 ‘특정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몰아가는 속임수는 사각지대로 내몰린 이들에게 10개월짜리 행정인턴제와 비정규직이 희망이 될 수도 없고, 대안은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 속에 넘쳐 나는 모순이다.
‘고용없는 경제성장’이라는 신자유주의가 폐기되지 않고, 야만과 광란의 자본주의를 끝내지 않는 한 노동자, 민중의 삶은 절망에 늪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양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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