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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14
    당분간 부스러기로 살겠다
    ninita
  2. 2006/12/10
    꿈.(3)
    ninita
  3. 2006/11/26
    10m(2)
    nin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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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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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10/11
    가족.(8)
    ninita
  10. 2006/09/28
    ^^
    ninita

당분간 부스러기로 살겠다

이건, 내심 좋아하며 만나는 그와의 관계에 대해 때로 '이것은 연애다', 때론 '이것은 연애가 아니다'라고 제멋대로 뒤죽박죽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의 언설이다. 아무튼 당분간 부스러기로 살기로 했다. 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줄곧 부스러기로 살아왔다고 정리해 버리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게 이 말의 함정이다. 그러니까, 진심일 수도 있고 진심이었을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좋은 글을 읽었다. 하지만 거슬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가장'이라는 단어. 최상급을 표현하는 '가장'이라는 단어는 주의를 요한다. '가장 무엇무엇한 것'이라고 표현된 것들 중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글쓴이에게는 그러할 지 몰라도,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특히 고통과 어려움에 있어서 '가장'이란 말은 때로 오만하기까지 하다. 그건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나 위대함도 실은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산타 마을이 핀란드의 라플란드가 아니라 터키의 미라라고 구태여 부연하는 건 좋은 태도는 아니다.

 

오늘 보니 황진이는 아마데우스였네? 혹자는 대장금과 황진이를 두고 비슷한 이야기구조라 하던데, 대장금을 보지 않은 내가 알 리 있나. 아무튼 황진이는 아마데우스고 부용이나 매향은 살리에르인 셈인데. 매향의 대사는 그러했다. 예인으로 가장 아끼는 이는 명월이되, 내심 가장 아끼는 이는 부용이라는 것. 끊임없이 수련하여 최고를 꿈꾸는 부용이, 언젠가는 명월을 이겼으면 좋겠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포함한 평범한 이들에게 따뜻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명월의 존재이유 역시 부용의 어느 멋진 날을 위한 것이라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그리고 용화 오빠와 김아중의 열애설. ㅎㅎ 개구리 반찬, <자반고등어> 엔딩크레딧에 흐르던 no surprises, 유머, 큰형님 삘.

 

아무튼 부스러기지만 괜찮아. 즐거운 부스러기~ 굳이 어딘가에 속하려 할 필요는 없다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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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새벽에 갑자기 아팠다. 오늘 오후엔 돕기로 했던 일이 있는데 그것도 취소했다. 조금만 몸을 틀어도 내장이 다 쏠리는 느낌이 나서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 좀전에야 일어나 앉았다. 간헐적으로 통증이 왔다갔다 한다. 대체....

 

 



 

좌린과 비니의 사진가게에서 가져왔다.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술탄 호텔. 그러니까.... 6년 전 이맘 때 난 카이로에 있었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쯤 이 술탄 호텔에 머물렀다. 호텔..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지. 그 방안에서 나는 앞으로의 여행을 걱정하고 있었다. 첫 여행치고는 힘든 여행지였던 데다가... 전날 보았던 스모그 가득한 대도시의 풍광, 신호와 상관없이 질주하는 차들, 아랑곳않고 그 사이를 지나다니던 사람들, 나이와 상관없이 징그럽기만 한 아랍 남자들. 카이로의 모든 게, 그 날 생각에는 이집트의 모든 게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행은.. 카이로를 벗어나면서부터 무척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룩소르에서 아스완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마주한 열대의 새벽은, 숨을 쉴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지평선 아래로 저물어가던 태양이, 지평선의 기복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던 광경하며,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 위에 떠 있던 무지개를 만난 기쁨, 알렉산드리아의 풍요로운 해산물들과 꿈의 카타콤, 시와의 작은 오아시스까지...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한, 나의 첫 번째 기억.

 

그 땐 자주 아프지 않았었다. 아프다는 게 뭔지 몰라서, 겁도 없었다. 아무 거나 먹어도 배탈 한 번 안 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딘가 가게 될 때마다 겁이 난다. 어딘가 말도 안 통하고 불편한 곳에서 또 아프게 될까봐. 그래도 그걸 딛고 또 떠날 생각에 사로잡히는 건, 그렇게도 피하거나 잊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면 난 참 속편한 인간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꾸만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하고도 일주일 정도는 더 걸어야 하는 여정인데.. 다람살라의 토굴을 향해 올라가던, 그 때의 기분으로. 그냥 모든 걸 다 잊고 적막 속에 걷고 싶은 거다..

 

여행 끝의 피로와 냄새, 가득찬 배낭, 그리고 꺼끌꺼끌한 발뒤꿈치의 느낌을 무척 싫어하지만.. 

 

한 후배가, 졸업영화 찍으러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지중해로 떠난단다. 졸업영화는 핑계겠거니 한다. 외로움에 지쳤다가 영화를 토해내면, 그건 어떤 모양일까 궁금해진다.

 

마음은 이미, 먼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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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

오랫만에 청소년 드라마를 보는데, 이건 뭐, 사랑 이야기 뿐이구나. 쩝.

아무튼 이쁜 여자아이가 '윤이는 늘 나한테서 10m쯤 떨어져 있어, 난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대사를 쳤다.

 

훗.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건, 참 기분 더러운 일이다.

것두 10m쯤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참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아닌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그리고 이런 거. 

 

비단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난 10m쯤 떨어져 있다. 내가 만든 것이기도, 그저 혼자서만 느끼는 것이기도, 뭐라고 해석해도 좋다. 아무튼 난 10m쯤 떨어져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건 아니라는 거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ㅎㅎ

 

선배들은 반가웠지만, 나는 피로연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후배들과도, 조교 언니와도 웃으며 인사했지만, 그 뿐.

마지막 헤어질 때, 그 따뜻하고도 냉랭했던 공기와 거리와 기분을 기억한다.

 

아무튼, 경훈 오빠, 현호 오빠, 지영 언니, 기웅 오빠, 경진 오빠, 준석 오빠, 당신들 무척 반가웠어요. 10년이 흘러도 여전하기만 한. 새론 언니한테 웨딩드레스가 그렇게 잘 어울릴 거라곤, 그 땐 미처 몰랐지. ^^

 

다시 10년. 지금까지의 10년과는 무척 다를, 나는 사실 그 10년이 설레기 보다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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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렁.

농담 같은 안내문이 나를 위축시키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오게 했던 것이다. 고민할 정도는 아니야. 어떤 곤란에 부닥칠 때마다 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넘어왔다.

 

나는 공부를 못 해, 야마다 에이미, p.48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듯 고민들도 벗어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진심은 있었던가 싶은 생각마저 드는 지금. 미안하다거나 슬프다거나 원망스럽다거나, 죄다 입밖으로 내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다. 나는, 피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피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눈에도 귀에도 마음에도 담지 않을 것이다.

 

농담 같은 것들, 의식하지 않았던 어떤 순간들이 나를 이끌고 있었던 걸까. 그런 순간들의 동력을 인정하지 않는 공간이었을까. 애정과 신뢰는 때로 지나치게 가볍다. 끝끝내 버릴 수 없는 것은 나 자신이겠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아요.

 

+ 가장 힘들었다고 느껴지는 시간을 길게 늘여놓고 한가운데를 짚었을 때, 나는 계속해서 되뇌였다. 억지로 3일을 버티고 나면 그 3일은 어느 새 3개월이 되고 어느 새 3년이 되어 있을 거라고. 처음엔 그 3일이 힘들었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3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의식하지도 않은 어느 날 3일이 아닌 13일쯤 지나 있었고, 곧 3개월이 될 것을 알게 됐다. 곧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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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참세상에 올라간 영상 속 인물들은 참 익숙하다. 실제 만나본 경험이 없어도 그렇다. 영상에서만 보다가 현장에서 마주치면, 순간 당황하기도 한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디서 만났더라.. 생각해 보면 영상 속에서 보던 얼굴들.

 

짧게는 몇 백일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그래서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이 익숙한 노동자들을 보면, 반갑지만 쓸쓸하다.

 

20대부터 5,60대까지. 남녀를 막론하고 이 땅의 노동자들은 투쟁한다.

 

모두의 승리를 기원하는 밤.

 

+ 365, 450, 670 +  : 이날, 감동적이었던 상애원노조 박은자 위원장의 발언과 세 명 노동자와의 인터뷰를 이제야 짧게나마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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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스트레스가 심하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면역력이 약해져 질병에 걸리기 쉽다.

이 정도면 상식인데 새삼 귀에 걸리는 이유는 뭔지.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거다.

 

난 없는 스트레스도 만드는 타입인 것 같다.

복작대는 서울역을 지나오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두서없이 늘어놓고,

(그냥 머릿 속에 늘어놓으면 재미없으니까, 종이타일 같은 식으로 방바닥에 늘어놓을까? 아님 폴라로이드 사진 식으로 벽에다 걸어놓을까? 음. 음. 방청소나 해야할텐데. --)

그 일의 앞뒤를 적어보는 거다.

앞은, 그 일을 생각한 이유가 될 거고,

뒤는, 그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나의 삶에 좋을지 나쁠지 상관없을지 상상해 보는 거다.

미래를 두고 대차대조표를 그리는 것 같긴 하지만,

두루두루 펼쳤다가 하나씩 지우거나 버리고 나면,

내가 정말 바라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정말 바라는 길의 정의는 '스트레스가 없는 길'인데,

'난 없는 스트레스도 만드는 타입'이니까 그런 건 없겠지?

그러니까, 아무 거나 해도 별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긴 싫다. 메롱.

 

kbs에서는 일요일날 광우병에 대한 방송을 한다.

대강의 내용만 봤을 뿐이지만, 방송 후폭풍이 엄청날 것 같다.

사무실컴 속 '광우병' 폴더는 미련없이 지워야겠다.

TV에선 다음의 UCC 광고가 나온다.

 

나는 용기가 없다.

 

+ 도살장 끌려가는 소꼴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또! 토요일은 후딱 지나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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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 need is..

courage..

 

hope..

 

strength..

 

something like that..

 

그건 실수였다. 그 날의 사진 한 장이 모든 관계를 그르치기까지의 맥거핀이었다는 것.

안다고 말하지 마라. 아무 것도 몰랐음을 깨닫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다.

 

신경이 쓰인다. 올해는 특히.

바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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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구 보면 참 적응에 더딘 것 같다.

결국은 아무 것에도 적응하지 못 했거나 적응되지 않았거나. 

 

어쨌든, 곰녹음기의 편리함을 알았고,

드디어, 캠타시아 녹화 성공했다.

 

으휴.

 

열 발짝 쯤 뒤에 있기도 하고,

열 발짝 쯤 앞서 있기도 하다.

그래서 순서를 따지는 건 의미없는 일이 된다.

 

알고 있다고..

 

+ 조각케익 먹고 싶어 죽겠다.

+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일에는 게을러지기 싫은데, 마음처럼 안 된다.

+ 그냥 정이 들어간다. 그게 좋은 거지. 상처를 받긴 했었나, 기억도 안 나는.. 에둘러 10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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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잊고 있었는데, 나의 가족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오빠의 결혼, 아빠의 퇴직.

나의 가족이 부쩍 나이를 먹었음을 알려주는 지표.

올봄 오빠의 결혼 이후 시큰둥하다가.. 아빠의 퇴직을 두달 앞두고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나니 다시금 새삼...스럽다.

 

어렸을 땐 그저 자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나의 가족도 어렸다.

그런데 내가 자랄만큼 자라고 나니,

나의 가족도 자랄만큼 자라, 그 가지는 축 처져 있었고,

오빠는 금세 가지치기를 하고 나갔다.

나는 가지치기는 안 하기로 했다.

대신 철이 들어야 했지만 그러지도 못 했다.

 

엄마는 1월이면 할머니가 되고 이른 봄이면 아빠를 서울로 올려보낸 채 집에서 혼자 손주를 키우게 생겼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손주를 키우는 엄마를 먹여살리려고 또 돈을 벌어야 하게 생겼다. 한동안.. 아빠의 거처는 내 방이 되고, 나의 거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그냥, 1년 앞당겨진 것일 뿐.

 


dancing with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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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채널 e를 보다가.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 김득신의 묘비명

 

지치고 지친 오늘 같은 날은, 뜻밖의 진부함도 위안으로 삼는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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