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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경(2002)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 때문에 읽게됐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은 경복궁 옆의 인왕산 아랫동네.

바로 나의 친할머니가 사는 동네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서 신식빌라촌이 되어버렸지만, 그전만 하더라도 슬레이트지붕에, 흙벽, 퍼세식화장실로 대표되는 옛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달동네였다. 

지금도 내가 그토록 미워하는 할머니는 여기서 아버지를 포함해 6명의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경복궁과 청와대가 바라다 보이고, 좁고 추레한 골목을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즐비한 이곳에 달동네가 존재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어린시절의 서울구경을 인왕산 아래의 달동네로 기억하곤 한다.

 

이 소설은 언어장애가 있는 한동구라는 작은 아이가 겪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기록이다. 자신만 아는 그악스러운 할머니와 고부간의 갈등의 짐을 항상 아내에게만 지우는 비겁한 아버지로 인해 집안분위기는 항상 험악하다.

 

게다가 동구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해서 할머니로부터 툭하면 갖은 욕설과 매질을 당하곤 하며(할머니의 말은 항상 "야이 새끼야"로 시작한다), 아버지도 동구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동구는 주변사람들의 냉대를 받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착하고 순수해서 6살 터울의 동생'영주'와 자신의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엄마가 매맞고 부엌의 냉바닥에서 잘라치면 부엌에서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고, 아직 아기인 동생 영주를 업어 키우며, 자신이 읽지 못하는 글자를 동생 '영주'가 신동처럼 읽어내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

 

이런 동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오직 동구의 엄마와 담임선생님인 박영은 선생님뿐. 이후 이야기는 동구의 가족사와 남한의 현대사가 뒤섞이며 담담한 결말을 향해 숨가쁘게 흘러간다.

 

소설을 읽다가 몇번 눈물을 흘렸는데, 내가 아직 유치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아직도 (동구같이) 이타심을 가진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볼때면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선생님 : 동생 영주가 처음 글씨 읽었을 때 식구들이 많이 좋아하셨겠네. 동구는 아직 글씨 잘 못 읽는데, 속상하지 않았어?

 

동구 : 사실은요, 창피할 때도 있는데요, 제가 3학년 되도록 글씨도 모르는데 동생은 아직 어린데 다 아니까요, 저는 사실 창피한데요, 음음... 엄마랑 아버지가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할머니도 좋아하시구요. 동생이 글씨 읽고 나서는 엄마랑 아버지랑 한번도 안 싸우셨어요. 얼마 전에는 엄마가 아버지 구두를 닦아놓으셨는데 제가 뛰어나가다가 밟아서 발자국이 났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가 저더러 왜 어린 동생만도 못하냐고 그러셨는데요, 할머니는 원래 맨날 그러시니까 괜찮아요.

 

선생님 : 그럼, 영주가 말 안 듣고 동구 속을 썩이는 일은 없어?

 

동구 : 예, 영주가 속썩일 때도 있어요... 사실은요, 어저께 엄마가 선생님한테 오실 적에 카스텔라를 만들어 오실 생각이셨어요. 우리 엄마는 집에서 카스텔라를 만들 줄도 아시거든요. 선생님께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하셨어요. 그런데 엄마가 잠깐 나가신 사이에 영주가 계란 거품에다가 석고 가루를 넣어버렸어요. 영주는 카스텔라를 만들어서 선생님만 드릴 거라고 하니까 심술이 났던가 봐요. 그래서 제가 계란 거품을 뒤엎어버렸어요.

 

선생님 : 왜? 영주가 혼날까 봐서?

 

동구 : 예

 

선생님 : 그럼 네가 야단을 맞쟎아

 

동구 : 예. 하지만 저는 크쟎아요. 영주는 아직 어리니까요

 

선생님 : 많이 야단맞았니?

 

동구 : 예. 하지만 제가 야단맞는 게 나아요. 영주가 혼나는 모습은 못 보겠어요. 엄마랑 아버지도 많이 속상해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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