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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요리를 해먹자

유치원도 들어가기전이니까 6살정도 되었을까? 그때 내가 만들 줄 아는 유일한 음식은 라면이었다. 어느날 엄마가 매우 급한전화를 받고 외출을 하면서 "점심은 네가 좀 알아서 챙겨먹어"라고 했다. 그런데 찬장을 봐도 라면이 보이지 않았고, 전기밥솥엔 밥도 없었다. 지금같아서는 밥도 앉히고 찌개도 새로 끓여서 먹었겠지만 그땐 정말 암담했다. 그저 무작정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온 엄마에게 난 밥부터 달라고 칭얼댔다. 엄마가 놀라며 "점심때 밥 안 먹었어?"라고 되물었다. 그 이후로 엄마는 급한 외출을 할 때마다 먹을 것을 준비해놓거나, 용돈을 조금 주면서 사먹으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때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대학시절 난 운동을 하는 친구들 주변에서 맴돌았다. 내 곁에는 항상 자신의 인생의 무게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가 그들의 짐을 함께 들어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여느 대학생들이 그렇듯, 세상에 나갈 세속적인 준비를 남들만큼은 했고, 또 때가되어 졸업했기에, 지금의 일상은 친구들에 비해 기름지고 안락하다.

 

그럼에도 지금 "진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과 실오라기만큼의 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부채의식 때문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니라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무언가 빚을 진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블로그를 통해서나 내가 주기적으로 나가는 모임을 통해서, 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힘을 얻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만남은 실망스럽고 때론 아프기조차하다.

 

어제는 잠들기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이나 영화는 라면과 같은 일종의 가공식품이라는 생각을. 세상은 갖가지 요리의 재료처럼 다채롭지만 그 속에는 나쁜 재료도 있고 조리과정에서 손을 베이거나 데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과정이 두려워 작가가 나름대로 소화한 책이나 영화를 통해 편리하게 낼름낼름 라면만 끓여먹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선택한 특정작가표 라면은 항상 내게 일정 정도 이상의 심리적, 지적 만족감은 안겨준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의 실제는 아니다...

 

때문에 이젠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어야겠다. 가끔 손을 베이고 배탈이 나더라도 세상 그 자체는 향기로운 풀들과 기름진 고기, 그리고 담백한 생선들까지 너무나도 다채로운 재료를 가지고 있는 곳일테니.

 

여섯살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차이가 있어야 할텐데...

 

덧1)실로 많은 일들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럽다가, 오늘 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가끔 한편의 글이 사람보다 더 큰 힘을 주는 걸 보면 전 아직 정신적으로 어린가 봅니다. 그 글과 "루시드 폴"이 백주대낮에 이런 산만한 글을 쓰게 만드는군요. 핫~ @.@;

 

덧2)리버미님 계좌번호 꼭 가르쳐주세요. 오늘 카드를 써보니 되네요. 어제는 아마 은행시스템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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