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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태어나는 곳 - 게리 마커스

 

<마음이 태어나는 곳>, 게리 마커스 지음, 김명남 옮김, 해나무, 2005.4월


지난 달 근 2년간 살아왔던 동네에서 이사를 했다.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는 것도 은근히 부담스러운 일일 텐데, 이전 살던 집주인과 집세 때문에 다툼이 벌어져서 은행까지 왔다갔다하며 꽤 큰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서울이라는 곳에 대한 은근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고,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리 모질게 굴 수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를 두고 그 옛날 성현들이 많은 논쟁을 벌인 바 있지만, 난 그동안 믿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혀 본 적 없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왔기에,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려니 하는 생각을 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경험은 사람에 대한 적지 않은 실망과 함께, 나로 하여금 인간이란 종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한 사건이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한 권의 책 제목이 내 눈을 잡아 끌었다. 제목은 <마음이 태어나는 곳>, 부제는 <적은 수의 유전자가 어떻게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만들어 내는가>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화된 숙주로서 인간을 그린 데 이어, 이 책의 저자인 게리 마커스는 이보다 한 술 더떠 유전자가 인간의 마음까지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책의 제목만 읽어본다면 이런 류의 오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저자는 유전자가 인간 육체의 여러 특질들, 예를 들면, 키, 피부의 색깔, 얼굴의 형태 등을 결정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뇌에 의해 만들어지며, 뇌는 바로 유전자의 발현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것에 <코페르니쿠스의 복수>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중세적 세계관을 깨뜨렸으나, 그렇게 생각한 코페르니쿠스 역시 우주만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의 여러 생명체 중 하나라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저자는 ‘사전 배선’과 ‘재배선’이라는 개념을 통해,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유전자는 뇌의 ‘사전 배선’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며, 인간의 경험과 의지가 이를 ‘재배선’한다고 말이다. 즉, 유전자는 뇌와 신경계의 ‘사전배선’을 통해 인간에게 고유한 학습능력, 언어능력, 인지능력 등을 부여하고, 인간은 후천적 학습(즉, 뇌의 ‘재배선’과정)을 통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다는 것이다.


유전자에 의한 선천적 요인과 경험과 학습에 의한 후천적 요인을 동시에 강조한다고, 저자가 양비론자 또는 회색분자는 아니다. 위와 같은 이론을 펼치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실험사례와 지식을 들어 치밀한 논증과정을 거치며, 그가 결국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이것이 노암 촘스키가 이 책을 들어, “노련하고 명료하다”고 짧게 평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조금 더 팔겠다고 제목을 너무 감각적으로 뽑은 것은 아닌지 저자, 혹은 출판사에게 서운하긴 하다. 왜냐하면 원래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궁금증이 별로 해결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암만 원제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전자와 환경과의 관계”나, “인간의 뇌,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라는 제목이 좀 더 어울릴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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