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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이 책을 읽고나서 "퍼슨웹"과 이성형씨가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봤다. 이성형씨는  우리가 남미에 대한 두가지 상이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포퓰리즘, 군사쿠데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자원부국임에도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린, 피해가야 할 모델로서의 남미가 하나의 시선이라면,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역사과정과 강렬한 문화적 색채의 남미가 또 하나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미를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마한 파편에 불과할 뿐 남미 전체를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밖의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마치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머릿속의 기억을 왜곡하여 자신들만의 논거로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학교  때 "칠레전투"를 보고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서는 남미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남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중남미는 실제의 그곳과는 많이 틀릴 것이다. 그것을 지적해 준 위의 이성형씨의 말은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글을 읽다가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이 책 "배를 타고..."를 읽을 때도 그랬다. 이 책은 중남미 4개국, 그러니까 쿠바, 페루, 칠레, 멕시코를 다루고 있지만, 재미있게 읽혔던 부분은 쿠바, 칠레 부분이었다. 인디오들의 전통과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많은 페루는 읽는 내내 지루했고 잘 와닿지도 않았다. 마지막 부분인 멕시코도 그랬다. 멕시코 혁명기 벽화운동을 다룬 장을 제외하고 마야문명이니 떼오띠우아깐이니 하는 부분들은 내내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대신 칠레의 쿠데타, 광산지대의 노동운동이 칠레 현실정치에 미친 역사적 영향,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의 현상황 등은 너무나 재미있게 다가왔다.

 

어차피 중남미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그들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집단적인 경험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 구미에 맞는 이미지와 정보만으로 그들을 재단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억울해 할까. 자신들만의 역사와 삶의 방식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는 멕시코 치아빠스주의 반군을 유럽의 좌파지식인들이 자신들 나름의 (실패한 68혁명에 대한 향수어린)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바라보듯이 나도 동일한 오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성형씨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다. 앞으로도 정치경제학, 문화인류학, 역사학, 문학 등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박식함이 우리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데 기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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