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헉 ㅠ.ㅠ

초록 마감이 2월 7일인 줄 알고 열심히 불꽃을 태우고 있었건만... 이제서야 발견했다. 마감일자를 잘못 봤다. 2월 2일... 2월 2일... 2월 2일......... 아.......... 이를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설레임

이 사라지는 현상... 이것이 바로 노화?? 예전에는 어디 여행간다고 하면 (출장이건, 놀러가는 것이건) 떠나기 전에 마음이 마구 설레이면서 오직 그 기대 하나로 많은 나날을 버티곤 했었는디... 언제부터인가 먼길 나서기 전이면 짜증과 불안이 고양... 당장 다음 주에 당 활동과 관련해서 출장(?)을 가게 되었는디...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임박한 다른 일들 때문에 마음이 심히 불편하구나 불편해... 일단 현지에 도착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거워하겠지만서도, 여행일자가 하루하루 가까워지는만큼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만... 세월이 나의 설레임 유전자를 비활성화시킨 것일까? 사주팔자에 들어있다는 그 막강한 '역마살' 혹은 wandering spirit 을 생각해본다면, 설레임 기능을 얼릉 다시 원상복구시켜야 인생이 더 행복해질거야... (잉, 이렇게 쓰고보니 안드로이드 같잖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무제...

일군의 친구들(!)이 내가 블로그에서 "가식적으로 착한척"한다고 구박해서 누구 칭찬도 못 쓰겠다. ㅜ.ㅜ

도대체 얼머나 더 까칠해져야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지난 번 포스팅 때문에 자책했던 JC를 위해 한 마디 남겨두고 싶어졌다.

 

뭐 평소에 생각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오늘 학회에서 JC 가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근데 대견은 무슨 대견이냐???  이건 내공 심후한 자가 후학에게나 쓸 수 있는 표현 아냐? 학교 1년 먼저 들어갔다고 내가 그녀에게 이런 표현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하여간.. 정서가 그랬다는 거다. )

 

비슷한 주제를 연달아 두 명이 발표했는데,

분석 방법의 정교함, 이런 걸 떠나서

문제를 대하는 두 사람의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달랐던 거다.

'업자'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다른 발표자에 비해, 또박또박, 성실하게 자료를 대하고 해석하려 애쓰는 JC의 모습이 대견해보였던 거다. 

거기다 발표자를 소개하면서 좌장이 "이름을 이렇게 쓰는 건 미국식인가보죠?" 해서 시작 전부터 어처구니를 상실하게 만들었는데,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제 이름은 미국식이 아니라 부모성 같이 쓰기에 따른 것입니다"라도 대답하더라. 그녀가 혹시 이야기안하면 토론자인 내가 이야기할까 말까 생각하고 있었는디...

 

학문 업계에 있다보면 여러 종류의 장점을 가진 다양한 연구자(?)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가공할만한 순발력과 번뜩이는 두뇌를 가진 사람도 있고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이 둘을 다 가진 사람도 있기는 하더라....

 

어쨌든, 이 업계에서 뭐 오래 살아본 건 아니지만 보건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성실함과 진정성만한 미덕은 없는 듯하고, 그런 면에서 JC 는 함께 가고 싶은 동료...

 

그나저나, JC 의 발표에 대해 다소 상처를 줄 수 있는 코멘트를 좀 했는데, 뭐 맘이 상하지는 않았겠지? 뭐 사실 그녀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으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고민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을 미워해야 할까? 불신해야 할까? 혹은, 나름의 사정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할까? 근데....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까칠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리영희 대담집 [대화]

원래 다소 오만방자하고 심지어 의심까지 많아서(ㅡ.ㅡ) 존경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오만방자보다는 이 의심...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존경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그 분들이 워낙 훌륭해서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는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자각함으로써 그게 얼마나 훌륭한 건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영희 교수의 대담집 [대화]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들었던 생각은...

"이 분은 자격이 있다"는 것...

동시대의 남한 사람들, 그리고 특히 (소위) 지식인들을 야단칠 자격이 있다는...

 

사실, 리영희 교수의 글은 초기 한겨레에 실린 짤막한 글들밖에 읽지 않았었다.

학교 다닐 때에도 그의 책들 - 이를테면 전환시대의 논리- 이 학교 한구석에 굴러다니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같은 책을 다른 이들에게 선물로 건낸 적은 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그의 글이 그닥 충격적이거나 충분히(!) 과격하지 않았기에 흥미가 없었던 거다. "원전을 읽기도 힘든 마당에, 이런 교양서적 정도야... 흥..."

돌아보면 좀 어처구니 없지..

 

그도 그럴 것이..

한국사회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일천하고, 더구나 그의 글이 쓰여졌던 "맥락"을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몰라봤던 것...

부끄러운 일이야.... ㅡ.ㅡ (어렸던 나이 탓으로 돌리자..)

 

숙연하거나, 혹은 뜨끔하게 만든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특히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써 기억해두어야 할 몇 가지 부분...

 

 

 

 

 

 



".. 그렇지만 언론계 생활과 대학에서의 삼십여 년 생활과정에서 나도 세파를 헤치며 살다보니까 적당히 타락했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땅을 굽어보아 뉘우침 없는' 시인 윤동주와 같은 삶은 나에게서 멀어져갔어요. 나도 적당히 '이중인격자'가 되어갔고 위선자가 되었어. 윤동주는 멀리 하늘과 땅을 보면서 부끄러움이 없었지만 나는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울 앞에서 부끄러운 내 자신의 얼굴을 마주해요. 서글픈 일이지"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울이라...... ㅡ.ㅡ;;

 

 

"국제정세의 어떤 문제나 운동양식 등을 파악하고자 할 때, 흔히 '미국 교수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외국인 지식에 대한 권위주의적 노예가 되요. 학문연구의 주체의식이 희박해. 큰 문제야. 자기 나름의 문제의식이나 분석방식 없이 남의 이론을 빌려서 자기의 권위로 이용하는 작태를 나는 멸시해요. 내 글에는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이 없어. 정치이론도 사회비평도 다각도로 교차검증한 다음에 일단 소화하고 내 머릿속에서 내 것으로 만들고 충분히 반죽해서 자신의 누룩을 가미해서 발효시켜서 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나는 현학적인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런 현학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인용한 누구의 이름에 자기를 동일시하려는 허영에서 출발해요. 자기의 지식이 돼버린 것은 굳이 누구의 것이라고할 수 없어요. 대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한 철저한 '자기화'가 필요하지.."

 

아... 뜨끔....

 

 

"누구나 자신의 특기와 장점을 살려서 사회에 공헌해야지. 나는 스스로 직접적, 현장적 행동으로써가 아니라 남들보다 앞선 지적 봉사, 즉 머리와 지식과 글로써 남이 못하는 선구적 계몽자 역할의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실제로 그랬고"

 

음......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음....

 

"내가 늘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해왔고.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국제법을 몇십년을 공부해도, 박사학위를 몇 개씩 받아도, 아무런 '회의'도 없이 그저 정부가 내놓은 대로만 '지식화'하면 영원히 무식자로 남을 뿐이라. 그것이 우리 교수들, 전문가들, 박사들의 실정입니다."

 

또 뜨끔...

 

"하느님이라는 실이 만물을 창조했다거나, 자기가 만든 남자의 늑골을 하나 빼서 여자를 만들었다거나, 에덴동산의 남녀와 사과와 뱀 따위의 성경 기록이라던가, 선인과 악인을 가려서 하나님나라 천당이나 지옥으로 보낸다는 따위의 이야기도 나의 이성과는 무관한 일이야"

 

앗, 좋아라...

 

 

"그런데 나에게는 신문에서도 무시되고 인류의 관심을 거의 건드리지 않고 지나간 '작은 일'처럼 감격적이고 중요한 '사건'은 없었어. 1988년 9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명예회복 결정을 내린 것이오. 기독교의 미신성, 반과학성, 반지성, 열성, 독존성, 비인간성, 반관용, 잔인성, 이중인격성, 반동성 등 모든, 그리고 온갖 악적 과거를 간접적으로 그러나 공개적으로 고백한 중대사이지. 종교적 야만과 미신에 대한 인간이성의 승리선고였지. 거꾸로 인간이성과 과학적 사고에 대한 기독교적 무지와 폭력의 패배선고이기도 하고"

 

웬지 진짜 나와 한 편인 거 같은 느낌이란.... ???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나라, 사회의 변화와 전진을 지켜보면서, 혹시 요구가 있으면 몇 마디를 해주는 것으로 족하지. '족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성현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나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숙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부산에 잠깐

다녀왔음.. Y 샘의 부탁으로 강의차...

오랜만에 간데다, 혼자 간 건 처음이었음..

0. 출발 전에 길을 묻는라 전화를 했는디...

Y샘 "지하철 타고, 토성동(?)에서 내려요"

홍실 " 뭐라구? 호성? 토성? 목성 금성 할 때 그 토성? 동네 이름도 참..."

Y샘 "아니, 흙 토에 성곽 할 때 성.. 풍납토성 그런거 있잖아"

홍실 "아, 그런 것도 있구나.... ㅡ.ㅡ"

0. 지하철 타러 갔는데..

역사에 역무원이 없더라...

온통 승차권 자판기에, 자동 지폐교환기 (그 옆에 세트로 복권자판기)...

만원짜리 밖에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다 승객 안내 어쩌구 해서 가보니까

노인들이 신분증 내고 우대권 받아가는 (역시) 자동 발급기만 덩그마니...

나중에 Y 샘한테 들으니까 지하철이 적자라고 인건비를 확 줄여서 사람이 없다나?

아침 저녁 자원봉사자에 공익요원까지 동원하여 승객 안내하는 대전지하철은 거기 비하면 천국인감??? (근데, 또 Y 샘이 예측하길, 대전도 좀 있으면 부산처럼 될거란다 ㅡ.ㅡ)

0. 자갈치...

지하철 탔는데 역 이름에 "자갈치"가 있어서.. 순간 엉뚱한 상상이...

자갈치가 생선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갈치 시장"역도 아니고 그냥 "자갈치" 역이라니 너무 웃기잖아.... "고등어"역, "갈치"역... 푸하하하...

그래서, 그 이야기를 Y 샘한테 했더니만

설마 그럴리가 있냐며... 나를 완전 바보 취급했다.

그러면서 "혹시 자갈이 많아서 자갈치 아닐까?" 하길래 나도 그 양반을 완전 바보 취급해주었는데..

이/럴/수/가

집에 와서 찾아보니, "자갈치는 우리나라 동해 등에 분포하는 농어목 등가시칫과의 바닷물고기이기도 하지만 자갈치시장은 남포동에서 충무동 로터리까지 뻗어 있던 자갈밭을 자갈치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

둘 다, 바보가 아니었다!!!

0. KTX 안에서..

대전 상행 열차에서 황당한 사건 목격..

내 앞앞 좌석에서 벌어진 사건...

부산역 지나고 얼마 있다가 갑자기 격앙된 경상도 아저씨 (A) 목소리...

듣자하니, 건너편 좌석에 남녀 한 쌍이 앉아 있는데, 남자 (B) 가 다리를 앞 좌석에 올려 놓았던 거다 (동반석) 이 때 A 아저씨가 발 내리라고, 공공장소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근데 B 청년 입장에서 보기엔, 아니 빈 자리에 발 좀 올려놓은게 무슨 잘못이며, 더구나 열차에서 그리 소리소리 지르며 반말을 지껄일 이유가 뭔가.

중간에 젊은 여자가 말리려고 하니 (아마 여친?) 이 A 아자씨가 입닥치라고 하면서 더욱 기세 등등....

여기까지는, 일찍이 여러 번 목격한 바 있는 경부선 아자씨들의 패악이라고 생각하며, B가 불쌍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B가 벌떡 일어나더니 "이런 XXX, 이리 나와.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그러더니 둘이 나갔다

그리고 의외로 금방 들어왔는데, 다시 또 싸우기 시작...

젊은 B " 술 을 곱게 처먹지 어디다 대고 주정이야.. 나이만 처먹으면 다야? XXX"

나이먹은 A " 뭐라고 이 XXX 야, 내가 맥주 한 잔 밖에 안 먹었다. XXX, XXX, XXX"

진짜 여러가지 하는구나 싶었는데

웬 다른 아자씨 승객이 끼어들어 말리며 술 마신 A (본인은 절대 안 취했다고 주장하는)을 말리며, 다른 객실로 데려갔다.. 참 품성도 좋으시더만.... B는 여전히 분을 못 삭이더군.. 하긴 나 같아도 그랬겠다..

이 둘은 모두 경상도 싸나이들로, 엄청 사투리 써가며 고성방가를 했는데.. A야 그렇다고 치고, B도 정말 대단하더라... 다소 존경스러웠음....

사실, 내려갈 때도, 뒤에 앉은 경상도 아자씨가 계속 큰소리로 전화통화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경부선... 힘들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화수분

이란 이런 것인가?

 

이제 겨우 집에 들어와 씻고 한숨 돌리며 컴을 켜니

[급]이라는 제목을 단 이메일이 와 있네... 

오늘 오전 마감이란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ㅜ.ㅜ

 

아 정말...

도무지 일이 바닥나지 않아...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 가 있다면 그리로 가고 싶어..

 

외계인, 나 좀 데려가줘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일상의 의료화

Democracy Now 로부터 며칠 전 받은 메일링리스트 기사에서는, 최근 발표된 다큐를 소개하고 있다. [ Big Bucks, Big Pharma: Marketing Disease & Pushing Drugs ] 질병의 진단 기준을 바꾸거나 혹은 새로운 질병 분류를 도입함으로써 엄청난 시장이 창출되고 그로부터 제약산업이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꾸준히 회자된 바 있다. 이를테면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진단 기준을 낮추어야 한다는 연구 논문의 저자들이 제약회사로부터 연구비나 자문비를 받았다는 폭로들은 잇따르고 있는 것... 미국에 있는 동안 가장 어처구니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성인형 주의력결핍 증후군 (Adult Attention Deficit Disorder)에 관한 치료제 광고였다. 살다보면,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이나 이것저것 다양한 잡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무언가를 깜빡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는 그야말로 흔해 빠진 일상일텐데.. 이걸 "병"으로 정의하고 치료받아야 할 심각한 것으로 실감나게 보여주는 광고가 TV 를 도배질했었다. 이번 뉴스에 등장한 자료화면을 보니, 이제 해도 해도 너무하지... Restless Leg Syndrome - 다리 떠는 거 말이다. 이게 병이란다. 나도 환자.... Social Anxiety Syndrome -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나치게 부끄럼을 타거나 낯가림을 하는 경우를 지칭하는데, 미국인의 10%가 이 병(?)에 걸려있단다. 이윤이 걸려 있으면, 없는 병도 만들고 멀쩡한 사람도 환자 만드는 거 순식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소위 '전문가'들이 훌륭한(!!!)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으니,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사회민주적 통제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 Democracy Now 기사 링크 http://www.democracynow.org/article.pl?sid=07/01/19/1432236 ** [참세상] 미국의 의약품 광고 실태 기사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3573&page=1&category2=4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조카들의 방문

밤새도록 발길질에 맞아주고, 중간중간 걷어찬 이불 덮어주느라 잠을 설쳤더니 ..

아이구, 피곤타.. ㅡ.ㅡ

 

우재, "나는 고모집이 너무 좋아"

고모, (빵끗 웃으며), "고모집이 그렇게 좋아? 왜~?"

우재, "집이 너무 쪼끄매서 좋아"

고모: ㅡ.ㅡ;;

 

문득 옛일이 떠올랐다.

내 차를 가지고 오빠네랑 같이 고깃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나오니까 마당에 웬일로 그리 검은색 세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지.. (무슨 행사가 있었던 듯)..

 

효경, "어머, 고모차만 왜 이렇게 귀여워?"

고모, "고모가 귀여우니까 차도 귀엽지~ " ㅡ.ㅡ;;

 

어제 밤에 시민천문대 갔는데, 날이 맑지 않아 관측을 못해서 효경이는 아쉬워했고,

전시관에서 퀴즈 푸는데 언니가 답 갈쳐주니까 우재가 "고모가 똑똑하니까 고모가 답해줘" 해서 언니가 맘 상했음 ㅎㅎㅎ

 

우재는 지난 추석 때 내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완전히 충격받은 이래 나를 엄청 존경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에 와서 내가 운전도 한다는 걸 알고는 더욱...  (흠, 우재 태어나고 산부인과에서 퇴원할 때도 내가 싣고 왔는디... 그 때 생각해보면 다소 안습인 것이, 내 차가 작아서 언니랑 효경, 우재, 짐보따리만 싣고,  오빠는 뒤에서 혼자 자전거 타고 쫓아왔더랬다....)

 

자기도 이제 초등학교 가면 바로 운전면허를 딸 거란다. 차를 사기 위해 심부름도 많이 하고 엄마 말도 잘 들을 거라고... 그러면서 차가 얼마냐고 물어본다. 한번 심부름 할 때마다 언니가 백원씩 준다던데.... ㅡ.ㅡ

 

이제 유치원 졸업한다고 좋아라 하는데...

"고모, 이제 나 초등학생 돼...."

"우와.. 초등학교 가니까 좋아?"

"응"

"왜?"

"유치원 졸업하니까 이제 공부안해도 돼"

 

허거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악몽

아주 가당찮은 악몽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니까 어찌나 피곤하던지... 세상에.. 울 엄마가 나를 덜컥 결혼시켜 버리려는 것이었다. 물어보지도 않고 청첩장까지 찍어놓았는데, 나는 그 날 아침에 사연을 알게 되었더라는... 그래서 아주 생쑈를 했다. 울고불고 소리지르고.... 근데 사실 울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권력 관계에서 약자에 놓인 사람 (무의식에서라도)가 보이는 행태이기 마련이다. 아무리 서럽고 감정이 북받쳐도 (그것이 억울함이던 슬픔이던) 자신보다 약자를 앞에 두고 울면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편한 친구를 마주보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우는 것은 물론 예외... 꿈에서는 울 엄마가 시큰둥 하고 내가 울며불며 거의 악다구니를 썼는데.. 현실에서는 가능성 제로 퍼센트의 이야기다. 엄마와 나 사이의 권력 관계가 역전된 것은 이미 수십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며칠 전 해미의 포스팅도 관련이 있고, 어제 오후에 엄마한테 온 전화에 대고 내가 왕 까칠하게 대한 것도 뜨끔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인 거 같다. 레파토리는 맨날 비슷하다. 주변 누군가의 못돼먹은 행태 때문에 속상한 이야기들, 누구누구한테 섭섭했던 이야기, 아님 누구 아픈데 어느 병원 가야되는가 하는 이야기들... 첫 마디 들으면 다 알 지경 ㅡ.ㅡ 하여간 웃긴 일이다. 평소의 나라면 실실 웃으면서 두 가지 중 하나의 대답을 했을텐데... "맘대로 하슈. 난 안 갈테니" 혹은 "그렇게 좋음 엄마가 가요. 난 안갈거니까" 어쨌든, 꿈인데도 이렇게 피곤하니, 감정 풍부한 사람들이 관계로부터 받는 상처와 감정의 소진은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구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