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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해역 나의 뇌가 오염될 뻔했다.
부끄러움 없는 사회, 무섭도다....
*
7월은 생일 시즌이다.
줄줄이... 어.... 많기도 하다.....
심지어 생일이 두 달도 넘게 남은 지인 J는 나에게 때이른 선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퍼즐을 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맞춰서 액자로 달라는...
나의 평소 행태를 생각한다면야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겠으나,
세간의 예상과 달리 그 요청에 기꺼이 부응했다. 이는 오염된 뇌를 씻어내고자 하는 나의 수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늘 그 결과물을 받아든 J는 몹시도 좋아했다. 내가 봐도 뿌듯하긴 했다...
내 생일도 7월이다.
김씨는 내 생일 때문에 수영대회 출전을 포기했다고 투덜거렸고 (뭔 소리야?), 엄마는 1박 2일 잔치를 준비할 태세... 그나저나 가족들과 생일밥 같이 먹는게 백만년 만이니 기념할만한 일이긴 하다.
*
그러나 여전히...
수련이 필요해...
홍실이님의 [살바도르 아옌데 2편] 에 관련된 글.
3. 대통령으로서의 아옌데
아옌데 정부 - 인민연합 (the Popular Unity, PU) - 는 야심 찬 사업들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다. 정부는 경제적 전략 분야에 위치한 산업들을 국유화하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강력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거대 농장의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단원 입법기구를 설립하여 정치 체계를 변화시켰으며, 경제․정치․사법 체계의 운영에서 민중 참여를 증진시키고,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현존하는 헌법 체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즉, 사회주의에 이르는 칠레의 경로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민연합은 이러한 의문에 절대로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인민연합이 전술과 전략에 관한 생각이 상이한 여섯 개 단체의 연합체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그 자신의 사회당을 결코 통제하지 못했다. 대체로 당은 아옌데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급진적인 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민연합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상원의 경우, 인민연합은 18석을 차지한데 비해 야당은 32석을 차지했으며, 하원에서는 57석 (야당은 93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1973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이 얻은 성과는 야당의 점유율을 아주 조금 줄였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경제 정책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의 성장 후 경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칠레의 주된 수출품목인 구리의 가격이 폭락했다. 외부적으로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전통적인 자금 재원이 말라버린 것이었으며,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식품 수입이 급증하고 이는 다시 지불 잔고 문제를 가져왔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장악하자, 자본가들은 대개 투자를 거부했다. 생필품 분배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암시장이 성장했다. 매일의 삶은 공급이 부족한 물자를 얻기 위한 줄서기의 연속이었다. 인플레이션을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경제 붕괴와 정치적 갈등은 상호작용하고 서로를 강화시켰다. 유명한 칠레의 헌법 체계는 아옌데 정권에서의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나 야당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야당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분명 의회 체계의 관행들에서 벗어나는 행정부의 정책들을 차단할 일련의 수단들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 있었다. 정부 또한 적법성이 의심스러운 대책들을 채택하고는 했다. 이러한 행위는 상호 의심을 강화시키고, 곤경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와 야당은 심각한 대결 국면을 맞이했다. 경제는 통제 불능 상태였으며, 둘 사이를 중재하려다 실패한 군 총사령관은 사임을 했다. 교회 또한 이 둘을 화해시킬 수 없었고, 폭력은 증가했다. 평화로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아옌데 정부는 처음부터 적대적인 미국에 맞서야했으며, 미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칠레의 반정부 세력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쿠데타의 이유는 무엇보다 내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9월 11일, 마침내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폭한 군사쿠데타, 대통령궁 폭격, 아옌데의 사망, 수천 명 칠레인의 살해와 함께.
대통령으로서 아옌데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1972년에 카스트로를 초청하여 3주간 그와 함께 머물도록 한 것은 실수였다. 아옌데는 중도파의 지지를 필요로 했지만, 이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가 마음에 그렸던 급진적 프로그램은 강력하고 단결된 정부, 허약한 야당, 광범위한 전국적 지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4. 아옌데의 유산
현재 칠레에는 아옌데의 유산의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 거의 모든 그의 정책들은 군사 쿠데타 이후 뒤집혔으며, 그 후 자본가들은 반(反) 혁명을 이끌어나갔다. 피노체트(Pinochet) 정권은 아옌데 정부가 국유화시킨 산업의 대부분을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었으며,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했다. 그러나 아옌데의 가장 인기 있던 정책들 중 극소수는 오늘 날에도 남아 있는데, 이를테면 학동들에게 매일 500ml의 우유를 공급하는 것이나 구리 산업의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업적 중 하나는 농촌 지역에서 라띠푼디오스 (latifundios, 대농장)를 철폐한 것이다. 얄궂게도, 이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적 개혁은 대규모 토지 소유자들을 제거함으로써 1973년 군사쿠데타 이후 농업 생산의 자본주의적 방식을 확립하는데 길을 닦아준 것이 되었다.
보다 넓은 정치적 의미에서, 아옌데 시대와 그 후의 독재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에도 칠레인들을 갈라놓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아옌데 정권의 3년이라는 시간은 칠레 역사상 유일하게 노동 계급과 가난한 이들이 국가와 경제를 움직이는데 정당한 몫을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나라를 혼돈, 심지어 내전의 위기까지 몰고 간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합의 정치가 우세하기는 하지만, 칠레인들의 투표 방식과 국가 통치를 위한 정치적 동맹의 속성은 모두 여전히 이러한 좌/우 분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칠레 좌파에게 아옌데의 유산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존하는 민주주의 체계의 한도 내에서 보다 큰 사회적 정의를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아옌데의 모습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인민연합의 패배에서 그들이 얻은 주요 결론은, 사회 변화를 이루려면 광범위한 전국적 합의와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좌파, 중도파의 동맹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미국과 쿠데타를 일으킨 우익을 비난하며, 인민연합의 마르크스주의적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들이 합의의 정치와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옌데의 이상을 폐기했다고 비난한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부르주아 출신의 뛰어난 의회주의자로서, 공화국 칠레의 입헌 체계를 굳게 추종했다. 그는 또한 쿠바 혁명과 1960년대에 전반적 의제를 좌파 쪽으로 이동시킨 정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의 비극은 민주주의 원칙과 급진적 사회변화를 통합하려는 시도 속에서, 칠레가 자랑스러워하던 민주주의 체계의 바탕에 깔려 있는 합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계속: 살바도르 아옌데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학의 탄생)
- 2001년, Richard Kelly 감독 (Director's Cut) -
틀림없이 내가 좋아할 거라며 Matthew가 추천해주었던 영화..
영국에서는 좀 흥행이 되었다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다는데,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과 ㅡ.ㅡ
오랜만에 이토록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Sci-Fi 를 만나다니...
80년대 후반 미국사회의 숨막히는 정치적/종교적 보수주의, 관계와 소통, 희생과 구원, 또다른 선택의 가능성과 기로에 대한 메타포의 도가니라고나 할까....
(앗, 그러고 보니 최근에 본 영화들이 이런저런 형태의 '구원'을 다루고 있구나. 거미인간, 밀양, 그리고 도니다코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일이로세?)
영화를 보면서 웬지 David Lynch 의 아우라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들 생각하는지, 그와 비교를 많이 하고 있었다. Lynch 영화 중 가장 최근에 본 게 (그래도 아마 2년전인 듯한데) Mulholland Drive 인데, 전개 방식 (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과거로의 전개... 물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시간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그 기묘하고 서늘한, 아니, 건조한 그 분위기....
당시, 이 영화를 보고 Naomi Watts에게 깜짝 놀랐었는데, 도니 다코에서는 파릇파릇한 Jake Gyllenhaal 의 연기에 깜짝 놀랐다. 저 때만 해도 느끼하지 않았구나 ㅎㅎㅎ
어쨌거나...
이 영화는 두고두고 다시 볼만한 작품...
거대 토끼 프랭크의 기괴한 모습.. 완전 내 취향이얏!
무기력과 지지부진을 극복할 수 있는 호연지기 충전을 위해 짧은 나들이.
어제, 무궁화호 타고 느긋하게 백양사에 다녀오리라 급 결정을 내렸다.
광주에 살고 있는 땡칠이 형이랑 절에서 맛나 산채비빔밥 얻어먹어야지 했는데,
고맙게도 형이 백양사 역으로 마중과 배웅을 해주는 덕에 무진장 편하게 댕겨왔다.
대전에는 새벽녘에 살짝 비가 뿌린 듯 해고, 하루 종일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햇볕마저 쨍 했으면 더워 죽을 뻔 했지..
서대전역에서 토스트랑 과일주스 한 잔,
커피 한 잔 들고 텅빈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 이승열 2집을 들으면서 소설책 읽으면서 바깥 풍광 바라보면서......
진정, 얼마만의 평화던가!!!
그동안 서울 오가느라 KTX 만 줄곧 탈 때는 몰랐는데,
무궁화호 창문이 KTX 보다 훨씬 크더라.
창문 한가득 초록색 풍광이 오호.....
하늘이 비치는 물논에서 모내기하는 분들도 꽤나 많았다.
백양사는 초봄에, 갑자기 폭설이 내린 날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 고즈넉한 분위기와 호수가 맘에 무척 들었더랬다. 물론 가을 단풍철에는 내장산 단풍객들 덕분에 진입로 들어가는 거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온통 푸르른 나뭇잎들이 갖가지 종류의 단풍이라 하니, 가을이 필시 절경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래도 오늘처럼 인적 드문 경내라면 나로서는 오케이!
차편이 너무 뜨문뜨문 있다는게 단점이긴 한데,
그래도 대전에서 기차타고 시외버스 타고 한나절 다녀오기 딱 좋은 곳이다.
부안 내소사, 강진 무위사와 함께 3대 선호 사찰로 찍어주마!
조용함과 푸르름...
보리수 아래에서 사진 한 장....
경내 찻집에서 오미자 차 한 잔...
호수에 비친 경내 풍경...
집에 돌아와서,
며칠 동안 벌여 놓았던 퍼즐 마무리했다.
고흐, 밤의 테라스...
내일 액자 조립해야겠다.
그러고보니, 액자로 만들어놓은 퍼즐은 모두 고흐 것이다. 사이프러스와 밀밭, 붓꽃이 있는 풍경... 스누피 시리즈는 연정, 송담이한테 뺏겼고, 브뤼겔 거는 후배 J 한테 사기(ㅡ.ㅡ) 당했다. 그 아기자기한 풍경은 지금 ** 의료원 요양병동에 걸려있을 거야.. ㅜ.ㅜ
밀린 빨래랑 설겆이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내놓고...
얼릉 자고 싶은데, 저 빨래 다 돌아가려면 좀 기둘려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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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천하무적 홍실도 두려운게 있군요~ㅋㅋ 그래서 상큼하게 다녀오셨나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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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공익이라고 쉬는 주말에 대전까지 불려가서 도서관에서 짱박혀 자료 입력을 하라고 하는 선배님도 있더군요.. 누구더라.. 잘 기억이 안나지만...ㅋㅋ 뭐, 친한 후배는 다들 어디 병원 과장들인지라, 학생인 니밖에 없다... 하면서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서 다시 서울로 이삿짐을 날랐던 기억도 있고.. 또... referance 입력을 맡기면서 처음엔 알바였다가, 나중에는 '예방의학 발전을 위해 일좀 했다고 생각해라.. 연구비가...' 했던 적도 있고... 흠... 저도 꽤나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군요...ㅋㅋ 조만간 일정 잡아서 대전 한 번 가겠습니다... ^_^;;;;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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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전 기차에서도 단 한번 펼쳐지지 못하고 가여운 J에 손에 들려다니던 책과 족보... 이번에도 트렁크안에서 누워있던 노트북... 설마 천하에 맹이 누구 무서워서 공부 안했을라구??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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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rael/ 그닥 상큼하지는 못했다는 ㅎㅎㅎ나후/ 으흠. 당신 목숨이 여러개인 모양인데?
changga/ 당신 떠나고 나서 그래도 조금 일했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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