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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과학의 상품화 2부

홍실이님의 [] 에 관련된 글.

과학의 상품화는 특별한 변환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논의하는 것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 활동에서의 이러한 변화가 낳은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상품 형태는 매우 다른 재화들 사이에서 등가(等價)를 성립시킨다. 낙타 한 마리가 담요 한 장에 상응하지는 않지만, 낙타 한 마리의 가치는 담요 몇 장의 가치와 같을 수 있다. 즉 C≠ B 이지만 V(C) = V(B) 가 될 수 있다. 질적으로 동등한 교환가치를 통해 재화들을 거래하고, 이렇게 해서 서로 다른 것으로의 변환이 가능해진다. 시장은 연금술사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1980년 현재, 납 5백 파운드와 금 1온스라는 교환 비를 통해 납은 금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재화들 사이에 동등성을 성립시키는 이러한 능력은 인간 노동 산물의 교환이 개별 가구 밖에서 주로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여기에는 물론 다른 형태의 교환, 이를테면 관례적인 선물 증정, 공유, 어려운 시기의 재분배, 의례로 자리 잡은 교환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분배는 상품 관계에 의해 주도된다. 가장 좋은 음식은 돈을 벌어오는 사람한테 주어지며 여성들은 스스로의 벌이를 관리하기 위해 투쟁을 벌여야만 한다. 상품화는 개별 재화들이 경제적으로 비슷하면서 물리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비슷함과 다름이 거래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이는 추상적 사고의 위대한 진전이라 볼 수 있다. 교환이 완벽하게 상품화되고 교환가치가 재화의 객관적이고 경제적인 속성으로 나타나려면 그 전에 수(數)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을 만큼 빈번한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재화들이 규칙적으로 사고 팔릴 때, 구매자들이 생산자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른 곳에서 똑같은 생산품을 찾을 수 있을 때, 생산자들이 다른 고객들을 기대할 수 있을 때, 개별 구매자들의 특이한 취향, 상대적인 구매력, 개인적인 절박성 등은 매끈하게 제거된다. 투자가들이 더 큰 이윤을 약속하는 기업에 자본을 쏟아 부을 때, 그리고 사람들(심지어 매우 숙련된 사람들)을 일반화된 노동력으로, 생산의 대체 가능한 비용으로 다룰 때 상품화는 더욱 심원해진다.


19세기 말까지, 과학은 화학․전기 산업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채 이르기 전, 대대적인 과학의 상품화가 진전됨으로써 과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되었다. - 연구는 기업의 투자 분야가 되었다. 기술 산업의 경우, 매출의 약 3~7%는 연구와 개발에 지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자본 투자의 한 가지 방식인 연구 투자는 다른 투자 방식들, 이를테면 생산 증대, 광고 증가, 변호사와 로비스트 고용, 다른 사업 분야 기업의 인수, 노조의 궤멸, 잠재적인 고객 국가들의 정책 결정자들에 대한 뇌물 살포 등과 경쟁 관계에 있다. 이 모든 가능성들은 이윤 극대화라는 단일 척도를 기준으로 우열이 가려지게 된다. 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연구 투자가 예산 삭감의 1순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기술 혁신은 즉각적인 성과물을 내지 못하는 반면, 광고 증가나 노동 혹은 재료비용의 감소는 이윤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의사 결정에 관한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관리자들의 전형적인 결정 지평이 대개 3~5년 정도로 나타난다. 연구에 대한 투자는 이 정도의 시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한편,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들은 개별 기업이 아닌 대학, 국립 연구소 등 공공 기관에서 수행되면서 그 비용의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개별 기업들은 투자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며, 전체 비용은 세금을 기반으로 사회 전체에 고루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사회화된 연구라 할지라도 시장에 내놓을만한 상품의 생산 시점에 이르면 최종 개발은 다시 민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고 이를 통해 배타적인 소유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면, 이는 새로운 품종 개발과 관련하여 농업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국립 연구소들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인증된 종자 생산자들에게 이를 배포한다. 그러면 품종은 이제 일반적인 소유권이 되어 그것들을 “세공”하고 최종 결과물을 농민들에게 판매하는 종자회사가 독점하게 된다. 연구 투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학술 컨설팅 회사라 할 수 있다. 연구 보고서는 이들의 유일한 생산품이다. (1983년 당시, 보스턴 지역에만도 1~2백 개의 기업들이 생태학적 자문과 관련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보고서의 질을 검증하는 것은 동료 심사가 아니라 고객의 만족도라는 점이다. 그 보고서가 환경 영향 평가에 관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때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의뢰한 회사가 법률을 준수하고 있으며 그 활동이 무해하고 최소 비용으로 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해당 감독 기구에 납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컨설팅 회사와 기업 고객의 관계는 복잡하다. 컨설턴트는 당연히 소규모보다는 대규모 계약을 선호하며, 따라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욱 완벽한 조사를 시행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다른 한편, 이 분야의 극심한 경쟁 때문에 컨설턴트들은 비용 절감의 강한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환경 지배가 득이 된다는 것을 보증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나열하며, 문제가 될만한 상황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 정도로 연구를 끝내는 것이다. 모험을 시도하는 것은 컨설팅 기업들에게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이들의 자본이란 대개 전산 설비와 사무용 가구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요 자산은 고객들의 신용이라 할 수 있다. 환경 컨설팅 업체들이 시장에서 빠르게 교체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학술 보고서가 일단 상품이 되고 나면 이 또한 기업 세계의 두 가지 다른 측면에 의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역마차는 탈취될 수 있고, 맥주에는 물을 탈 수 있다. 즉, 이들 과학적 상품들은 도둑맞거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업적을 가로채거나, 성공담을 출판하기 위해 혹은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결과를 변조하는 행위는 점차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과학적 사기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널리 알려진 필트다운의 사례처럼) 우선순위에 관한 논쟁은 명예를 두고 경쟁하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과학적 사기는 이제 합리적인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과학적 발견은 수량화가 가능해졌다. 기업은 신약이나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과 비용,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연구개발 회사나 개발 부서들은 학술 활동을 특정 문제의 해결 방식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일반화된 인간 노동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과학자들은 “학술 인력”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산 비용, 대체 가능한 존재,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학문 분야에서의 노동 분업에 해당하는 전공과 서열의 창조가 점차 합리화되고 있다. 학술 활동의 창조적인 부분은 과학자들 중에서도 점점 소수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나머지는 점차 프롤레타리아화되면서 문제의 선택과 접근 방법에 대한 통제권은 물론 매일의, 혹은 매 시간의 활동에 대한 통제권마저 상실해가고 있다. 과학적 관리는 포드(Ford) 사의 악명 높은 테일러 체계 하에서 자동차 산업을 위해 처음 개발되었으나 점차 상업, 사무직 노동, 학술 연구에까지 확장되었다. 관리적 접근은 노동력을 관리자의 목적을 위해 쓰이는 객체로 인식한다. 기술이 분절되고 그에 따라 특성화가 심화되는 현상은 해당 분야의 지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관리자의 비용 계산으로부터 비롯된다. 두 명의 일반 의료기사를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혈액검사요원과 소변검사요원을 한 명씩 훈련시키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든다. 또한 분절화와 단순작업화는 노동력의 통제를 것을 공고하게 해 준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학술활동의 단순작업화는 더욱 큰 소외 현상을 낳는다. 생산자는 전체 생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창조적인 지적 능력을 연마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단 노동이 소외되면 과학은 더욱 강도 높은 감독을 요구하는 하나의 일자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감독의 부담은 소외를 더욱 촉진하며 부패나 무관심을 부추긴다. 이는 통제권을 과학자의 손에서 빼앗아 관리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없으며, 학술 행정 담당자들도 더 이상 그들 동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없다. 대부분의 책임은 조직 위계의 상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자원의 통제권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로부터 파생된 한 가지 결과는, 연구비 지원기관에 제출되는 연구계획서의 분량이 늘어나면서 좀더 상세하고 신중해졌고, 연구 의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결론을 합리화시키는데 관심이 있는 연구비 지원기관들은 좀더 신중한 쪽을 선택하며 이를 위해 더욱 상세한 기술을 요구한다. - 학술 노동자 그 자체가 생산되어야 한다. 대학과 전문학교의 목적은 다양한 기술 수준의 학술노동 인력을 최저 비용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또한 민간 기업의 인력 부서를 위해 교육 과정 그 자체를 외부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자들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며,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즉, 기업주들이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즉, 대학원 교육 기간을 단축시키고 돈이 되는 박사학위를 더욱 많이 배출해야 한다. 초등 교육에서의 이러한 압력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뜻한다. 실용주의적 접근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며, 언제나 그렇게 노골적인 것만도 아니다. 교육자들은 가끔씩 사회의 지배적 경향과 충돌하며, 자신들만의 목표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창조적인 프로그램마저도 체계를 유연하게 통제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불분명한 임무를 위해 인력을 생산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상품화에 대해 대조적인 방식들로 반응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이를 애통해한다. 그들 중 다수는 중간 계급 출신으로서 거래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학문을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 산물이 교환을 위해서라기보다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즉 사용가치를 갖는 일에 헌신하려고 과학자라는 진로를 선택했다. 그들은 과학이 상품화되기 이전 시대의 신화인 협동정신, 진리에 대한 숭고한 헌신이 사라졌음을 한탄한다. 그들은 학술 노동의 프롤레라티아화, 자율성의 소실을 개탄하며 관리 통제와 가치에 대한 관료적 결정에 대해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저항한다. 만일 그들이 조직을 결성한다고 해도, 이를 노동조합이라 부르기를 꺼려한다. 다른 한편에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이용하는데 몰려들고 있다. 일부는 (특히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미국 번영의 짧은 시기 동안) 재정적 혹은 다른 보상을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대안들 중의 하나로 학문 분야의 직업을 선택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과학자의 약 2/3이 민간 기업에 고용되어 있으며, 이 곳에서는 이윤 추구가 솔직하게 목표로 인정된다. 전문가적 지위를 상실하고 자본주의 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어 가는 이행 상황은 직업 지식인으로서 과학자들의 이념적 위치와 사회적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 형태는 개인적 책임감과 이견(異見)을 대담하게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신중한 비판 혹은 고의적인 무관심, 그리고 비굴한 아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관료화나 프롤레타리아화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저항, 새로운 질서에 대한 현실적 혹은 열광적 참여, 또는 자본주의 반대 투쟁에서 다른 소외된 부문과의 연대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계급 분할이 과학 분야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일하는 백만여 과학자들 중 다수는 학술 프롤레타리아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며 그들의 생산품이나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그 반대편에는 많아봐야 수천 명 정도가 부르주아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연구에 자본을 투자하며 연구 개발 방향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이 두 극단 사이에는 혼자 일하거나 대학, 혹은 연구소 등에서 소규모 집단 활동을 하는 쁘띠 부르주아 전문가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의 동기는 매우 다양한 관심사에 의해 유발되지만, 그들의 연구 활동은 점차로 정부 기관, 민간 기금, 혹은 기업으로부터의 연구비에 좌우되고 있다. 이제 이들에게 연구비는 필수품이다. 그리고 연구비와 연구의 관계는 점점 변해가고 있다. 원래 연구비는 연구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과학 기업주들에게는 연구가 연구비를 위한 수단이다. - 과학에 대한 자본 투자는 주요 산업이 되었다. 여기에는 화학, 기계, 문화 매체, 실험용 동물의 표준 품종, 그리고 학술 정보들이 포함된다. 이로 인해 나타난 결과 중의 하나로, 과학 기술의 발전이 원래 기여하고자 했던 학술 연구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나타났다. 기술은 자연 탐구에 필요한 가장 저렴하거나 최선의 방법을 찾는 쪽으로 향하기보다 특정 시장에서 이윤을 획득하는 쪽으로 몰리게 된다. 제 3세계 국가들에서 활동하는 세일즈 관리자들은 새로운 연구소들이 “최고의”, “최첨단의” 장비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품 보충이나 서비스 수선, 안정적인 전력의 가용성 문제 등은 확인도 하기 전에 말이다. 물론 이들 국가의 대통령은 정신과 병원에 기증된 휘황찬란한 최신식 16채널 뇌파측정기 앞에서는 포즈를 취하겠지만, 과실 파리(fruit fly) 조사에 사용되는 바나나 곤죽으로 가득 찬 양동이를 시험하는 데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기관을 새롭게 설립하는 것은 기존의 시설을 작동하도록 유지시키는 것보다 훨씬 극적 효과가 있다. 열대 지방 전역에 존재하는 사용되지 못하거나 파손, 혹은 방치된 시설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제 의미심장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현재 미국에서 과학자 한 명이 일하는데 드는 비용은 1년에 약 10만 달러 정도인데, 이는 산업 혹은 서비스 노동자 다섯 명의 급여에 해당한다. 제 3 세계 국가들의 경우, 과학자들이 받는 월급은 훨씬 적고 장비와 보급품 비용이 더욱 비싸며 기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한 명의 과학자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데 50명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학술 잡지는 원래 학술 사회의 개인적인 소통 공간을 마련할 목적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출판사들이 학술 서적과 학술지 발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출판사의 대표들은 과학자들에게 아첨하거나 이들을 부추겨서 또 다른 교과서를 쓰게 만든다. 이를테면 “우리 출판사는 분자 유전학과 발생 유전학에서 이미 베스트셀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그 시리즈를 완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새로운 집단 유전학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만든다. 이제 무엇이 출판되는지는 학술지를 채우려는 출판사와 편집자의 필요, 그리고 정년 심사, 새로운 일자리, 혹은 승진을 위해 시의 적절하게 게재가 이루어져야 하는 저자의 필요에 달려 있다. “이러한 학술 출판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 언급되는 정보 급증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잡음의 급증이라 할 수 있다. 대학 학문의 상품화는 대학의 재정적 필요로부터 비롯되었다. 대학은 네 가지 측면에서 과학자들을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 첫째, 정부기관과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얻기 위해서, 둘째, 학술 보고서로 홍보효과를 얻고 그 명성을 이용해 기부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셋째, 대학의 “위상”을 높임으로써 등록금을 인상하고 학생들을 유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대학 교원에 의해 개발된 발명품의 특허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대학 내의 자원 할당은 연구자들의 명성과 다양한 사업에서의 돈벌이 능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많은 대학의 학자들이 관리자들로부터 그들의 연구를 자금이 좀더 풍족한 분야 (이를테면 유전 공학)로 전환하라는 압력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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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과학의 상품화 1부

하드디스크의 자료들이 '지나치게' 엉켜 있어서, 오늘 맘 먹고 몇 시간 동안 정리... 공부한답시고 이런저런 논문이랑 자료들은 정말 많이도 퍼다놨더군. (심지어 중복된 자료들도 종종 발견......ㅜ.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속담을 다시 떠올렸다. 저거만 다 읽고 되새김질 했어도 말이지........... ㅡ.ㅡ 예전에 번역해둔건데, 콩 반쪽도 나눠먹는다는 심정으로 공유... 다른 몇 챕터도 시간 나면 번역하고 싶다만 과연 그 귀하다는 '시간'이 날 지는 모르겠음. ----------------------------------------------------------------- 변증법적 생물학자 The Dialectical Biologist by Richard Levins and Richard Lewontin 번역 : hongsili (2005.2) 제 8장. 과학의 상품화 근대과학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새로운 지역으로의 팽창, 생산의 전환, 새로운 상품의 창조, 더 많은 이윤을 낳는 생산 방식의 창출,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다른 이들보다 앞서 나가려는 자본가의 필요 - 이들이 바로 근대 과학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한편 근대과학의 이념적 토대는 이러한 자본가의 필요 뿐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개인주의,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 국제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권위를 지식의 근거로 삼지 않으려는 성향)의 정치 철학과도 부합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과학의 참여 방식 또한 발전해왔다. 과학은 귀족(궁정악사와 광대까지 포함하여)을 위한 사치재로부터, 봉건적 신학이론에 대한 반대 투쟁의 중요한 이념적 무기이자 실질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자원의 기능을 해왔다. 18세기 말, 산업과 농업 분야에서는 오랜 침체 끝에 발명과 창조의 뚜렷한 성장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영제국의 경우, 1750~1780년대에 특허 등록의 숫자가 92건에서 477건으로 늘어났다. 이 즈음 농업학회가 창립되었고, 가축 교배와 관리는 발전을 거듭하여 헤레포드 (Hereford) 같은 품종을 만들어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런던에서 거래되는 소의 무게는 두 배로 늘어났으며 양의 무게는 세 배 증가했다. 또한 19세기 초에는 최초의 농업 학술지가 발간되었다.


부르주아 혁명의 지도자들은 과학이 가진 군사적, 상업적 잠재력을 일찍이 간파했다. 가장 오래된 학회들로는 1662년에 설립된 왕립학회, 1780년 뉴잉글랜드의 혁명 지도자들이 설립한 미국 학술원, 프랭클린의 미국 철학회(1768), 그리니치의 해군천문대(1675) 등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1795년에 에꼴 폴리테크니끄(Ecole Polytechnique)를 설립했다. 나폴레옹은 전쟁 때문에 인도로부터의 인디고 수입이 중단되자 과학자들로 하여금 이를 대체하는 합성염료를 개발하도록 지시했으며 심지어 군수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이 정복한 열대 지역에서는 생물학적 자원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목록 작성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린네(Carolus Linnaeus)의 지도력 하에 계통분류 생물학의 번성을 가져왔다. 미국에서는 농업과 광업의 발전을 위해 과학적 지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며, 1862년까지 모렐 법안(Morrell Act)을 통해 농업과 공학 기술을 위한 공유지 교부 대학 설립이 이루어졌다. 산업혁명의 첫 세기 내내, 과학은 도로나 등대 같은 자본주의적 팽창의 외부효과(externality)로서, 그리고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 (이를테면 파스퇴르가 당시 프랑스 와인 산업을 위협하던 파이토포라 Phytophora를 동정한 것처럼)으로서 그 역할을 넓혀왔다. 그러나 이 때까지 과학은 아직 상품이 아니었다. 그것의 응용은 불확실했으며 잠재력은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그 산물은 여전히 경험적인 혁신에 대한 사후 설명으로 나타나곤 했다. 상품의 생산, 판매를 위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인간 노동을 투입하는 것은 분명히 자본주의보다 앞서 나타났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 활동의 상품 형태는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으로 점점 더 깊숙이 침투했다. 1607년, 세익스피어는 “아테네의 타이몬 (Timon of Athens)”에서 이러한 상품화를 개탄했다. "황금? 노랗고 반짝이는 소중한 황금? ... 이것들은 이렇게 검은 것을 하얗게, 역겨운 것을 정당하게, 그릇된 것을 올바르게, 평범한 것을 고귀하게, 늙은 것을 젊게, 비겁한 것을 용감하게 바꿀 것입니다. 아, 신이시여! 이것이 왜? 신이여 이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왜 이것이 당신의 사제들과 종복들을 당신 편으로부터 끌어내고, 튼튼한 남자들의 머리맡에서 베개를 빼앗아간단 말입니까 이 노란 색의 노예는 신앙을 졸라매고 부서뜨리며, 저주받은 이들을 찬양하고, 백발의 나환자들을 경배하게 만들며, 도적들에게 직함과 존경을 부여하고 그들을 인정받게 할 것입니다. 원로원들과 함께 ..." 2세기 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1848)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부르주아는 그들이 지배력을 획득한 모든 곳에서 온갖 종류의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인 관계들을 끝장냈다. 그들은 사람들을 ‘타고난 상전들’에 묶어 두던 갖가지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갈가리 찢어버렸으며, 적나라한 자기이익과 냉랭한 ‘현금 지불’ 이외에 사람들 사이의 어떠한 관계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적 열정, 불타는 의협심, 속물적인 감상주의의 가장 경건한 황홀경마저 이해타산의 차가운 물 속에 익사시켜버렸다. 그들은 인간적인 가치를 교환가치로 변화시켰고, 헤아릴 수 없는 불가침의 공인된 자유들을 대신하여, 저 하나의, 비양심적인 자유 - 거래의 자유 -를 확립했다.... 또한 부르주아들은 지금까지 명예롭고 경외에 가득 찬 존경을 받았던 모든 직업들의 빛나는 후광을 여지없이 발가벗겨 버렸다. 이들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임금 노동자로 바꾼 것이다. " 이전에는 인간 상호작용의 직접적 결과였던 활동들, 이를테면 오락, 정서적 지지, 학습, 여가, 아이 돌보기, 심지어 혈액과 장기 공여, 혹은 자궁의 쓰임새 같은 것들마저 시장으로 들어왔으며 인간관계는 비인격적인 거래 뒤에 숨어버렸다. 인간사의 새로운 측면들이 상품화할 때마다 일부에서 저항이 표출되기도 했는데, 이는 이전 가치의 절하에 맞서는 분노의 형태로 나타났다. 시장에 반응하여 빵 값이 자유화되었을 때, 영국 노동계층에서는 빵을 얻기 위한 폭동이 일어났다. 통신 수단이 상업화되고 정보 독점이 가시화되자 1980년대 유네스코의 제 3세계 대표단들이 주도하여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새로운 정보 질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보건의료의 상품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보건 서비스와 건강보험 문제를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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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투자전략: 토론문

다른 자료를 찾다가, 지난 건강형평성 학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을 때 준비했던 원고 확인... 기록차 남겨둔다. ------------------------------------------------------------------- 토론 3: 이 글에서는 사회투자전략 중 건강투자 전략에 집중하여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건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두 번째 발표 (이원영, 건강투자전략과 국민건강)의 첫 머리에 정리되어 있듯, ‘건강’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으며 참여정부의 건강투자전략은 그 중 인적 자본, 투자재로서의 건강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효용이나 가치라는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사람에게 건강이 항상 최고, 우선순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건강을 희생해서라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고, 반면에 다른 차원의 안녕을 포기하고 건강을 지키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선택과는 별도로, 인권으로서 그리고 잠재력(capability)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것이 건강이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에 초점을 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것이자 유보하거나 박탈할 수 없는 속성이다. 건강권은 세계인권선언(25조)은 물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제 12조)에 명시되어 있는 사회권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이는 경제개발의 동력, 혹은 개인의 경제적 성취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질 수 없다. 물론 충분한 교육을 받고 높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개인 수준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성취, 사회 수준에서 생산성의 증대와 경제개발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만일 높은 교육수준과 건강상태가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인적자본은 회수되어야 하는가? 건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의 성취는 오로지 상품생산에만 존재하는가? 아마티야 센(Amartya Sen)의 지적대로, ‘인적 자본’ 개념은 우리가 “왜”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개발’을 ‘경제성장’으로만 이해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와 가치 있는 삶을 증진시키는 ‘포괄적 사회개발’로 바라본다면,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인간 잠재력’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건강을 생각한다면, 참여정부의 ‘건강투자론’은 개발지상주의와 시장동원체제의 수사적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2. 건강 불평등과 사회 불평등 한편, 인적자본 개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건강투자의 문제인식과 접근의 방식을 살펴보자. 건강은 생물학적/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차원적 속성으로서, ‘정상성’에 대한 생물학적 규범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생물학적/사회적 가치판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직한 건강상태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며, 인구집단에서 관찰되는 건강 수준의 변이도 매우 광범위하다. 우리는 다양하게 구분되는 집단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건강 수준의 모든 차이를 불공정, 혹은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하거나 혹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적․지리적으로 구분되는 인구집단들 사이에서 체계적이고 잠재적으로 개선 가능한 차이가 존재할 때, 즉 건강결과 그 자체의 분포보다는 건강 격차가 불공정한 사회질서의 결과물로 나타날 때 이를 문제라고 여긴다. 건강 형평성이 곧 사회정의의 문제라면, 결과의 평등을 넘어서 과정과 절차에서의 공정성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건강 불평등의 개선을 위해서는 격차가 발생하는 사회구조/자원의 분포 방식 자체에 대한 교정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가난하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가?’, 혹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가?’라는 인과성 문제에서, 그동안의 역학적 연구들은 건강 선택(health selection, 건강 → 사회경제적 지위)보다는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사회경제적 요인 → 건강)의 역할을 더 강조해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건강 불평등은 한국사회가 가진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사회적․경제적 질서의 상당한 변화 없이 소위 건강 투자 - 특히 개인의 생활습관 개선이나 보건의료서비스의 확대/적정화 -를 통해 개인들, 더구나 취약계층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생산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완수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보자. 지역안전보건센터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여러 모로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 고용을 영속화시키는 고용정책,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노동안전 법규/제도의 변화 없이, 안전보건 서비스의 추가제공만으로 과연 건강이라는 인적자본이 축적되고 이것이 추가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지금도 한국사회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건강 수준이 낮아서 노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의 노동과 혹독한 노동 강도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 여성의 고등교육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이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이 뒤쳐진다. 이들 생산 활동 적령기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불충분한 인적자본 때문인가? (그림 1). 그림 1 OECD 국가들의 교육수준에 따른 30-44세 여성 취업률, 1995년 (자료원: OECD Center for Educational Research and Innovation. OECD Publication, Paris 1998) 3. 정치적 수사 혹은 진심? 두 번째 발표에서 지적했듯, 건강투자를 통한 경제개발의 논리는 어린이와 청장년 집단에서 심각한 사망과 상병 문제를 경험했던 저개발 국가들의 지원과 관련하여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참여정부에서 제기한 사회투자전략, 특히 건강투자전략도 정치적 우파와 개발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수사로서의 순기능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성장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건강투자전략’의 추진과제를 통해 과연 ‘전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 소득/지역에 따른 건강격차의 해소, 적정 수준의 국민의료비 증가속도 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유럽 등을 위시한 소위 선진국에서는 ‘건강투자’라는 표현을 잘 안 쓰기도 하지만, 쓰는 경우에도 ‘경제개발’을 위한 수단적 속성보다는 건강 불평등의 극복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포괄하는 통합적 ‘사회개발’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복지 서비스 투입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복지)부의 영역을 넘어서, 건강 결정요인들을 다루는 다양한 정부 부처 (예, 교육, 농업, 노동 등) 사이의 협업과 공조에 의해 보건목표와 건강증진 전략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복지부의 전략과 과제를 본다면 불평등을 야기하는 ‘결정요인’에 대한 고려를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하에 보건의료서비스의 상품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정부는 경제개발논리에 근거한 건강투자전략에서 벗어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P) 권고안에 근거하여 건강권을 포함한 사회권을 보장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개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부처 간 협력을 통해서 ‘보건복지정책’을 넘어서는, 건강 결정요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역군’으로서 민중들은 그동안 충분히 노력하고 시달려왔다. 생산성 운운하며 사람들을 ‘인적자본’으로 무장시켜 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최소한(!) 보건복지부가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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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끝내고 싶다.

오늘까지 원고를 마무리해야 하는게 있는데... 뇌주름이 없어지는 바람에... 진도가 진짜 안 나감... 입수한 첩보(라기보다 공저자끼리의 담합)에 의하면 Y 샘도 오늘낼 출장이라 일욜 밤까지 쓸 예정이란다. 문제는.... 월욜 아침 일찍 있는 강릉에서의 강의를 빙자하여 낼 친구들과 뜨기로 한 건데.... 노트북 들고 밤에 작업하겠다고 설쳐대면 이 인간들 백만년 전 일을 언급하며 또 나를 비난할거다. 본과 4학년 때, 주말을 맞아 정선에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이던 동아리 선배형한테 놀러가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는데... 출발하기 전 날, 즉 금요일 날... 월요일에 모의고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친구들은 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 ㅡ.ㅡ 그 약속을 취소했다간 산채로 매장당할 것이 분명하여, 할 수 없이 2박 3일 여정에 올랐더랬다. 기차 안에서 보겠다고 나름 시험 족보랑 예상 문제집도 두어권 들고 갔는데... 시험을 앞두고도 약속을 지켜낸 신의와 희생정신에 대해 칭찬은 못해줄망정, 평소에도 안 보던 책을 여기까지 왜 들고 왔냐고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공부하는 척한다고 재수없단다. 시험날짜도 모르는 인간이 무슨 새삼 공부냐며 빈정빈정............ ㅜ.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험 문제가 너무 터무니 없어서 주말 내내 도서관에서 공부한 이들과 내 성적이 별로 차이가 없었다는 것... 고마운 무성의 교수들 ㅎㅎ) 그 이후, 이 사건을 백만번은 들먹였던 사악한 인간들.... ㅡ.ㅡ+ 학생이 공부하고, 직장인이 일하는게 무슨 죄라고 말이지... 그나저나, 이와 유사한 상황을 이번 주말에 다시 재현??? 그들의 빈정거림과 야유가 두렵구나. 진도는 진도대로 안 나갈게 뻔하고... 아, 후딱 끝내고 상큼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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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

 

청정해역 나의 뇌가 오염될 뻔했다. 

부끄러움 없는 사회, 무섭도다.... 

 

*

 

7월은 생일 시즌이다.

줄줄이... 어.... 많기도 하다.....

심지어 생일이 두 달도 넘게 남은 지인 J는 나에게 때이른 선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퍼즐을 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맞춰서 액자로 달라는...

나의 평소 행태를 생각한다면야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겠으나,

세간의 예상과 달리 그 요청에 기꺼이 부응했다. 이는 오염된 뇌를 씻어내고자 하는 나의 수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늘 그 결과물을 받아든 J는 몹시도 좋아했다. 내가 봐도 뿌듯하긴 했다...

 

 

 


 

내 생일도 7월이다.

김씨는 내 생일 때문에 수영대회 출전을 포기했다고 투덜거렸고 (뭔 소리야?), 엄마는 1박 2일 잔치를 준비할 태세...  그나저나 가족들과 생일밥 같이 먹는게 백만년 만이니 기념할만한 일이긴 하다.

 

 

*

 

그러나 여전히...

수련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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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포럼] 창립대회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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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3편

홍실이님의 [살바도르 아옌데 2편] 에 관련된 글.

3. 대통령으로서의 아옌데

아옌데 정부 - 인민연합 (the Popular Unity, PU) - 는 야심 찬 사업들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다. 정부는 경제적 전략 분야에 위치한 산업들을 국유화하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강력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거대 농장의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단원 입법기구를 설립하여 정치 체계를 변화시켰으며, 경제․정치․사법 체계의 운영에서 민중 참여를 증진시키고,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현존하는 헌법 체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즉, 사회주의에 이르는 칠레의 경로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민연합은 이러한 의문에 절대로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인민연합이 전술과 전략에 관한 생각이 상이한 여섯 개 단체의 연합체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그 자신의 사회당을 결코 통제하지 못했다. 대체로 당은 아옌데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급진적인 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민연합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상원의 경우, 인민연합은 18석을 차지한데 비해 야당은 32석을 차지했으며, 하원에서는 57석 (야당은 93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1973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이 얻은 성과는 야당의 점유율을 아주 조금 줄였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경제 정책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의 성장 후 경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칠레의 주된 수출품목인 구리의 가격이 폭락했다. 외부적으로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전통적인 자금 재원이 말라버린 것이었으며,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식품 수입이 급증하고 이는 다시 지불 잔고 문제를 가져왔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장악하자, 자본가들은 대개 투자를 거부했다. 생필품 분배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암시장이 성장했다. 매일의 삶은 공급이 부족한 물자를 얻기 위한 줄서기의 연속이었다. 인플레이션을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경제 붕괴와 정치적 갈등은 상호작용하고 서로를 강화시켰다. 유명한 칠레의 헌법 체계는 아옌데 정권에서의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나 야당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야당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분명 의회 체계의 관행들에서 벗어나는 행정부의 정책들을 차단할 일련의 수단들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 있었다. 정부 또한 적법성이 의심스러운 대책들을 채택하고는 했다. 이러한 행위는 상호 의심을 강화시키고, 곤경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와 야당은 심각한 대결 국면을 맞이했다. 경제는 통제 불능 상태였으며, 둘 사이를 중재하려다 실패한 군 총사령관은 사임을 했다. 교회 또한 이 둘을 화해시킬 수 없었고, 폭력은 증가했다. 평화로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아옌데 정부는 처음부터 적대적인 미국에 맞서야했으며, 미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칠레의 반정부 세력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쿠데타의 이유는 무엇보다 내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9월 11일, 마침내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폭한 군사쿠데타, 대통령궁 폭격, 아옌데의 사망, 수천 명 칠레인의 살해와 함께.


 대통령으로서 아옌데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1972년에 카스트로를 초청하여 3주간 그와 함께 머물도록 한 것은 실수였다. 아옌데는 중도파의 지지를 필요로 했지만, 이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가 마음에 그렸던 급진적 프로그램은 강력하고 단결된 정부, 허약한 야당, 광범위한 전국적 지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4. 아옌데의 유산

 

 

 현재 칠레에는 아옌데의 유산의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 거의 모든 그의 정책들은 군사 쿠데타 이후 뒤집혔으며, 그 후 자본가들은 반(反) 혁명을 이끌어나갔다. 피노체트(Pinochet) 정권은 아옌데 정부가 국유화시킨 산업의 대부분을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었으며,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했다. 그러나 아옌데의 가장 인기 있던 정책들 중 극소수는 오늘 날에도 남아 있는데, 이를테면 학동들에게 매일 500ml의 우유를 공급하는 것이나 구리 산업의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업적 중 하나는 농촌 지역에서 라띠푼디오스 (latifundios, 대농장)를 철폐한 것이다. 얄궂게도, 이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적 개혁은 대규모 토지 소유자들을 제거함으로써 1973년 군사쿠데타 이후 농업 생산의 자본주의적 방식을 확립하는데 길을 닦아준 것이 되었다.


 보다 넓은 정치적 의미에서, 아옌데 시대와 그 후의 독재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에도 칠레인들을 갈라놓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아옌데 정권의 3년이라는 시간은 칠레 역사상 유일하게 노동 계급과 가난한 이들이 국가와 경제를 움직이는데 정당한 몫을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나라를 혼돈, 심지어 내전의 위기까지 몰고 간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합의 정치가 우세하기는 하지만, 칠레인들의 투표 방식과 국가 통치를 위한 정치적 동맹의 속성은 모두 여전히 이러한 좌/우 분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칠레 좌파에게 아옌데의 유산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존하는 민주주의 체계의 한도 내에서 보다 큰 사회적 정의를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아옌데의 모습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인민연합의 패배에서 그들이 얻은 주요 결론은, 사회 변화를 이루려면 광범위한 전국적 합의와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좌파, 중도파의 동맹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미국과 쿠데타를 일으킨 우익을 비난하며, 인민연합의 마르크스주의적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들이 합의의 정치와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옌데의 이상을 폐기했다고 비난한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부르주아 출신의 뛰어난 의회주의자로서, 공화국 칠레의 입헌 체계를 굳게 추종했다. 그는 또한 쿠바 혁명과 1960년대에 전반적 의제를 좌파 쪽으로 이동시킨 정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의 비극은 민주주의 원칙과 급진적 사회변화를 통합하려는 시도 속에서, 칠레가 자랑스러워하던 민주주의 체계의 바탕에 깔려 있는 합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계속: 살바도르 아옌데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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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Donnie Darko]

 

- 2001년, Richard Kelly 감독 (Director's Cut) -

 

틀림없이 내가 좋아할 거라며 Matthew가 추천해주었던 영화..

영국에서는 좀 흥행이 되었다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다는데,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과 ㅡ.ㅡ

 

 

 

오랜만에 이토록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Sci-Fi 를 만나다니...

80년대 후반 미국사회의 숨막히는 정치적/종교적 보수주의, 관계와 소통, 희생과 구원, 또다른 선택의 가능성과 기로에 대한 메타포의 도가니라고나 할까....

(앗, 그러고 보니 최근에 본 영화들이 이런저런 형태의 '구원'을 다루고 있구나. 거미인간, 밀양, 그리고 도니다코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일이로세?)

 

영화를 보면서 웬지 David Lynch 의 아우라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들 생각하는지, 그와 비교를 많이 하고 있었다. Lynch 영화 중 가장 최근에 본 게 (그래도 아마 2년전인 듯한데) Mulholland Drive 인데, 전개 방식 (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과거로의 전개... 물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시간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그 기묘하고 서늘한, 아니, 건조한 그 분위기....

 

Mulholland Drive (2001).

 

당시, 이 영화를 보고 Naomi Watts에게 깜짝 놀랐었는데, 도니 다코에서는 파릇파릇한 Jake Gyllenhaal 의 연기에 깜짝 놀랐다. 저 때만 해도 느끼하지 않았구나 ㅎㅎㅎ

 

어쨌거나...

이 영화는 두고두고 다시 볼만한 작품...

거대 토끼 프랭크의 기괴한 모습.. 완전 내 취향이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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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구원은 누가?

지난 금욜 저녁에 다큐 감독 J, 사회운동가 K와 [밀양]을 보았다. 그 후유증이 대단하여, 어제 거의 잠만 잤다... ㅜ.ㅜ 영화로 인한 상처나 고민 때문이 아니라, 영화 보구 나서 진정 '오랜만에' 새벽까지 수다떠느라... 토욜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진행된 학교 행사 땜에 피곤이 가중되어, 거의 토욜 밤부터 의식불명 상태 지속... 영화에 대해서는 셋이 대체로 비슷한 감흥을 하면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디... 이창동이 보여주는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과연 냉소냐, 아니냐를 두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극 중 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을 고려하건데, 냉소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구원에 이르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내 의견과, 그래도 여전히 냉소적 성격이 짙다는 (이창동의 전작들을 고려해볼 때도) J 의 의견이 갈라졌다. 또, J 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지 않고 '소설'적으로 읽히는게 불만이라고 했고 (역시 그녀는 감독), 나는 책 읽는 거 같은 분위기는 좋던데, 라고 이야기했다 ㅎㅎ (나는 이창동의 전작들 중 초록물고기를 좋아하는데 똑같은 이유에서다). 다들 동의한 부분은, 송강호의 역할과 연기... 전도연의 역할 자체는 굉장히 극적이라 진폭이 크고, 그야말로 재주를 펼쳐보일 공간이 넓은 반면, 송강호가 맡은 종찬 역은 안 보이는 듯 하면서 상당한 무게가 있는 역할. 그가 정말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양한 조연들의 연기력... 대부분 현지 비전문배우라 하던데 어찌 저렇게들 잘 하는지.. 그게 바로 연출력의 힘인거야??? 그리고 다들 맘에 안 들어한 부분은 예측 가능한 전개와 전형적인 cliche 들... 이를테면, 커피 배달온 아가씨의 의상과 주변 남정네들의 대화는 꼭 그렇게 진부하게 그려졌어야 하나? 일상이 실제로 그리도 진부한 걸 어쩌란 말이냐 하면 물론 할말은 없다만서도... 아마도 가장 셋이 맞장구를 친 것은... 영화 자체보다 기독교와 '구원'의 문제... J는 어머니의 엄청난 신앙활동 때문에 고통을 겪은 바 있고, 나는 자칭 '회의주의자'로 거듭나면서 기독교란 정파나 사파나 종이한장 차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K는 알고보니 신학대학 출신이지만 남한의 기복+구원 기독교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상태... 셋은 한 목소리로 공포와 불안을 매개로 한 착취, 구원의 악용 (exploitation 혹은 capitalization) 문제를 지적했다. 물론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만 한 건 아니었다. 새벽까지 있었던 거는 타로 점 때문... 나는 타로 점을 생전 첨 해보았는디, 의외로 물어볼 게 없어서 고심했다는.. ㅎㅎ 너무나 비전형적인 질문을 해대는 나와 J 때문에 K 가 황당해하기까지... ㅡ.ㅡ 한 가지 신기한 건, 올해 초에 장 양의 포스에 이끌려 사주를 보았을 때도 그랬고, 타로점에서도 그랬고 역마살이..... 그것도 국내가 아니라 다 해외 이주설이 나오더라는... 아직 돌아온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이 무슨 기이한... 내 얼굴에 그리 써 있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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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나들이

무기력과 지지부진을 극복할 수 있는 호연지기 충전을 위해 짧은 나들이.

 

어제, 무궁화호 타고 느긋하게 백양사에 다녀오리라 급 결정을 내렸다. 

광주에 살고 있는 땡칠이 형이랑 절에서 맛나  산채비빔밥 얻어먹어야지 했는데,

고맙게도 형이 백양사 역으로 마중과 배웅을 해주는 덕에 무진장 편하게 댕겨왔다.

 

대전에는 새벽녘에 살짝 비가 뿌린 듯 해고, 하루 종일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햇볕마저 쨍 했으면 더워 죽을 뻔 했지..

 

서대전역에서 토스트랑 과일주스 한 잔,

커피 한 잔 들고 텅빈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 이승열 2집을 들으면서 소설책 읽으면서 바깥 풍광 바라보면서......

진정, 얼마만의 평화던가!!!

 

그동안 서울 오가느라 KTX 만 줄곧 탈 때는 몰랐는데,

무궁화호 창문이 KTX 보다 훨씬 크더라.

창문 한가득 초록색 풍광이 오호.....

하늘이 비치는 물논에서 모내기하는 분들도 꽤나 많았다.

 

백양사는 초봄에, 갑자기 폭설이 내린 날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 고즈넉한 분위기와 호수가 맘에 무척 들었더랬다. 물론 가을 단풍철에는 내장산 단풍객들 덕분에 진입로 들어가는 거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온통 푸르른 나뭇잎들이 갖가지 종류의 단풍이라 하니, 가을이 필시 절경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래도 오늘처럼 인적 드문 경내라면 나로서는 오케이!

 

차편이 너무 뜨문뜨문 있다는게 단점이긴 한데,

그래도 대전에서 기차타고 시외버스 타고 한나절 다녀오기 딱 좋은 곳이다. 

부안 내소사, 강진 무위사와 함께 3대 선호 사찰로 찍어주마!

 

조용함과 푸르름...

 

 




보리수 아래에서 사진 한 장....

 

 

경내 찻집에서 오미자 차 한 잔...

 

 

호수에 비친 경내 풍경...


 

집에 돌아와서,

 

며칠 동안 벌여 놓았던 퍼즐 마무리했다.

고흐, 밤의 테라스...

내일 액자 조립해야겠다.

그러고보니, 액자로 만들어놓은 퍼즐은 모두 고흐 것이다. 사이프러스와 밀밭, 붓꽃이 있는 풍경... 스누피 시리즈는 연정, 송담이한테 뺏겼고, 브뤼겔 거는 후배 J 한테 사기(ㅡ.ㅡ) 당했다. 그 아기자기한 풍경은 지금 ** 의료원 요양병동에 걸려있을 거야.. ㅜ.ㅜ


 

밀린 빨래랑 설겆이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내놓고...

 

얼릉 자고 싶은데, 저 빨래 다 돌아가려면 좀 기둘려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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