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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

호연지기 대 양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잠깐 나들이를 다녀왔다.

다음 주에는 이걸 까먹으면서 살 예정이다. 

 



어제 늦은 오후 대전 출발 - 진주 진양호 도착

탁 트인 전망에 일단 호연지기 일갑자 상승

 

진주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 중 하나라는 천수식당에서 '진주' 비빔밥 시식

경상도 음식이 짜고 맵기만 하다는 편견은 버리기로 했으나,

이게 과연 '가장 맛있는' 음식일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ㅡ.ㅡ

 

남해안 호우 주의보 때문에 걱정을 (아주 조금) 하기는 했으나 다행이 큰 비바람은 없었고, 특유의 새파란 바다를 볼 수는 없었으나 대신 진양호에서, 남해바다에서 환상적인 물안개를 원없이 감상하고 호연지기 이갑자 상승

하지만 그 풍광을 담아내기에는 사진기가 영.... (재주없는 목공이 원래 연장 탓 하는 법이다.)

 

숙소 베란다에서 내다본 진양호 풍경... 원래 사진보다 백배 멋진디...


 


 통영에서 아침으로 충무김밥 먹고

풍화일주도로 거쳐 달아공원에 올랐으나 운무가 짙어 먼 바다는 구경을 못하고,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일몰이 그리도 환상적이라 하던데... 

 

간식으로 사발면 간단히 먹고 통영국제음악제 Sun Rings 관람.

실컷 싸돌아다니다 깜깜한 극장 안에 들어가 조용한 실내악 듣고 있으려니 초반 20분은 완전 의식불명 상태 ㅜ.ㅜ

다행이 얼릉 정신차린 후 '보고 듣노라니' 아름답고 인상적인 공연.... (다소 난해하기도 했음 ㅡ.ㅡ) 어쨌든 이걸로 호연지기 1갑자 정도 상승....

 

TIMF 매표구 앞 조형물...


 

음악회 끝나고, 또 유명하다는 도다리 탕수어랑 짜장면 먹고 대전으로 귀향.

 

원래는 굴이나 장어도 먹어야 하는데 워낙 일정이 짧다보니... ㅡ.ㅡ

굴 축제도 이즈음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풍랑 예보 때문에 취소되었다고...

 

내년 국제음악제에도 꼭 들러줘야겠다는 생각.

예전 사진을 찾아보니, 지난번에 갔던게 2003년, 벌써 4년 전이더라....

 

2003년 통영국제음악제에 갔을 때, 본 공연이 열렸던 시민문화회관 야경


 

내년에는 꼭 달아공원의 일몰을 보리라.

(흠, 갑자이 일출/일몰 매니아 송양이 생각나는군!)

 

총 4갑자의 호연지기를 얻었으니 월~금까지 평균 0.8갑자씩 소비하면 된다!!!

 

* 진주 (레드망고) -고성(공룡나라 휴게소) - 통영 (갤러리커피).. 이 세군데에서 연속 세 차례 경악스러운 커피 맛에 정말 상처입었다. 무슨 엄청난 사양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커피를 원했을 뿐이라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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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레이스?

까지는 아니지만, 다음 주 일정을 보니 숨이 허거덕... 월: 국/건/영 설문 개발 프로젝트 자문회의 자료 완성 및 발송, 원고 쓰기 화: 원고 완성 및 회람, (수업준비)+ 통계실습강의 수: 프로젝트 관련 논문 1차 리뷰/정리, (수업준비) + 연구방법론 세미나 목: 출장 - 노동안전프로젝트 회의 + 형평 세미나 금: 출장 - 국/건/영 설문개발 자문회의 및 정리 * 학회 원고 검독 몸만 가서 살짝 앉아 있다 올 수 있는 회의들이면 좀 좋을까? 공식 일정이 저렇다는 거고, 그에 대한 준비는 도대체 언제 한다냐??? 미루거나 펑크낼 수 있는 것도 없구나. 논문 때문에 분석 마무리해야 할 것도 있는디... 그래서 내린 결론인데....


이번 주말은 우선(!)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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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줄넘기..

5백개 하고는 피토하며 쓰러지는 줄 알았다.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그나마 예전에 했던 가락은 다 사라졌고나...

 

이제 나름 날도 포근하니,

대중교통 출퇴근 엄수 + 줄넘기 다시...

 

강호의 은둔자 J 가 강추한 검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보구....

성격 개조도 할 겸, 도를 닦는 건 좋은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도대체......

(그리고 안경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우려에 J는 코웃음을 치더군)

 

우선, 2천개 될 때까지 매일 백 개 씩 증가...

 

후배 M의 꼬드김에 무려 만원이나 주고 나이키 줄넘기 장만했는데,

알고 보니까 요즘 줄넘기들은 횟수가 자동으로 헤아려진단다.

내 거는 그게 안 되서, 백 개 할 때마다 나뭇가지로 바를 정 자를 표시해둬야 한다. ㅜ.ㅜ

2천개 채우려면 그것도 장난 아닌디? ㅡ.ㅡ

 

뭐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중간에 숫자 까먹어서 더하면 너무 억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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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1편

지난 연말,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학생 한 명에게 영문으로 된 논문 번역을 맡긴 적이 있다. 성적 때문에 추가 과제물을 해야 하는 학생도 괴롭겠지만, 없는 숙제 만들어서 줘야 하는 사람도 괴롭기는 하다. 그래도 학생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시키고자 머리를 짜내다 결국 논문 번역을 시키게 된 거다. 그것도 너무 기술적인 걸 맡기면 안 될 거 같아 포괄적이면서 뭔가 이 학생에게 공부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 희망찬 논문...

마침 읽으려고 책상 위에 출력해 놓았던 논문을 건내주었는데,

며칠 후 그 번역본을 제출받고, 수정해서 블로그에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랬다. 그게 벌써 세 달 전인디... 까먹고 있다가 아까 책상정리하면서 발견했다.

2005년도 국제역학회지 (34권)에 실린 논문으로, 칠레 정치사에서 살바도르 아옌데의 역할, 라틴아메리카 사회의학의 탄생과 그의 역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Muir R and Angell A. Commentary: Salvador Allende: his role in Chilean politics

Waitzkin H. Commentary: Salvador Allende and the birth of Latin American social medicine

학생의 초고를 많이(ㅡ.ㅡ) 수정해야 하는디, 내가 언제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진전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끊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1. 의학에서 정치로..



살바도르 아옌데 고센스(Salvador Allende Gossens)는 1908년 태어나 1973년 9월 11일에 일어난 반정부 쿠데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네 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1952년, 1958년, 1964년에 낙선했다가 마침내 197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1932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지만 학창시절부터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였고, 그가 졸업하던 해에 출범한 칠레 사회당 (Chile's Socialist Party)을 결성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는 1937년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38년에 인민전선(Popular Front) 정부를 수립한 급진주의자 대통령 뻬드로 아귀레 세르다(Pedro Aguirre Cerda) 정권에서 보건부 장관을 맡고 나면서부터이다.


칠레는 그 격동의 시기에 인민전선 정부를 수립했던 세계에서 유일한 3개국 중 하나였다 (다른 두 나라는 스페인과 프랑스). 이는 유럽으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국가에서 좌파 급진주의 정치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칠레는 20세기 초반의 공산주의, 아나키스트 운동 이래 강력한 좌파 운동이 존재해왔다. 1912년에는 사회주의 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이 이뀌께(Iquique)의 탄광부두에서 결성되어 곧 칠레의 북부 탄광지역에 굳건한 뿌리를 내렸으며, 빠르게 성장하던 노동운동에서 급진적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칠레의 정치는 1917년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1920년에 칠레 공산당(Chilean Communist Party)이라고 이름을 바꾼 후 제 3차 인터내셔널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칠레 공산당은 소비에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감에 따라 스탈린의 숙청에 대해 부당한 지지를 보내야 했고, 중도 분파들과의 동맹을 회피하며 정치적 고립을 자초하는 협소한 계급 지향 전략에 몰두하게 되었다.


공산주의 노선의 경직성은 대공황이 칠레를 강타했을 때 정치적 주도권이 다른 좌파 그룹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1932년, 정부는 좌파 군관이자 칠레에 100일간의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던 마르마두께 그로베(Marmaduke Grove) 대령에 의해 전복되었다. 당시 그는 경제적 위기의 와중에서 민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일련의 조치들을 실행한 바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그러한 시도는 1년 후 젊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포함한 일군에 의해 건립된 사회당의 지도부 형성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자들에 비해 이념적 측면에서 좀더 절충적이고 내적 규율이 덜 엄격했던 사회당은 스탈린주의 반대라는 목표를 공유한 토르츠키주의자, 아나키스트, 사민주의자들의 기묘한 연합의 본거지가 되었다. 그로베 자신의 인민주의자 스타일은 공황의 영향이 칠레를 강타하던 시기에 당이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도록 만들었다. 노동 계층과 하위 중간 계급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커다란 지지를 얻도록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1930년대 중반,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서유럽의 공산당, 사회당 구분과 유사한, 좌파 그룹 내 강력한 당파성이 발전하게 되었다.


칠레의 정치적 발달이 일정 부분 유럽과 닮아 있었다면, 사회 체계는 저개발 국가의 그것이라 할 수 있었다. 영아 사망률은 높았고 건강 수준은 낮았다. 의료 서비스는 불충분했고 영양실조가 빈번했으며 노동 환경은 안전이나 건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옌데 같은 급진적 의사라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정책을 만들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아옌데가 ‘칠레인의 의학적/사회적 현실 (La Realidad Medico-Social Chilena)’j이라는 책을 출판한 것은 그가 보건부 장관으로 취임한지 1년이 지나서였다. 이 책은 칠레 빈곤층을 향한 그의 인도주의적 관심은 물론 급진적인 구조적 변혁에 의해서만 이 나라에서 불건강의 사회적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그의 정치적 판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은 옷을 사 입고 가족들을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소득이 없고, 노동자들은 가혹한 상황과 고용 환경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며, 노동계급 가정은 살만한 주거환경과 위생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는, 바로 이러한 조건들이 용납하기 어려울만큼 높은 영아 사망률과 불건강으로 직결된다는 것이었다.


아옌데는 이러한 상황들 중 일부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즉각적인 조치들, 이를테면 더욱 잘 짜여진 보건의료 체계, 강제적인 고용주 부담의 산재보험 등을 제시하면서 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칠레의 사회 문제를 진정 해결하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구조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토지 개혁과 국가의 천연 자원 판매에서 얻은 이윤이 사회복지에 쓰일 수 있도록 외국 기업의 국유화 같은 것들을 제시했다. 연정의 장관으로서 이러한 폭넓은 사회적/경제적 의제를 추진하는 그의 능력에는 제약이 따랐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의 창조적인 조치들의 도입을 이끌어냈다. 싼 가격으로 우유와 유제품을 가난한 이들에게 공급했단 산티아고의 일명 ‘우유 판매대 milk bars’ 등이 그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농촌 지역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내보이고 고발하기 위해 산티아고에서 열린 대중 박람회를 후원하기도 했다.


인민 전선이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촉진하고 공공 교육 프로그램을 확장하면서 정치/시민 생활의 많은 측면을 민주화시키는 데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정권의 타협은 좌파들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1941년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독립적으로 경쟁했고, 분열적인 내부 논쟁 끝에 급기야 정부를 떠났다. 냉전의 시작과 함께 미국의 압력 속에서, 급진주의자 대통령 곤잘레스 비델라(Gonzalez Videla)는 1948년에 공산당을 금지시켰고, 이러한 움직임은 사회당의 소수 분파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이는 사회당이 다수 분파(살바도르 아옌데를 포함하는)와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들 분파는 반(反) 공산주의 입법과 정부 내 급진주의자들과의 후속 협력을 반대하는 ‘인민 사회당(Popular Socialist Party)’을 형성하였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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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패 혹은 무오류의 신화...

어제 시당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참가를 했다기보다... 미국/캐나다/꾸바의 보건의료 현황을 소개하는 간단한(?) 강의를 맡아서 하게 된 거다.

 

끝나고...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북한과 꾸바가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북한의 상황은 어떤가?

 



북한 지원 프로젝트 때문에 직접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W 샘이 나 대신 현황을 설명해주셨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ㅜ.ㅜ

국가 중앙 병원이라 할 수 있는 평양적십자병원조차 전기공급이 안 되는 지경이고, 보건의료체계는 거의 와해된 수준이라고 말이다....

나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여러 샘들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그게 궁금했었다. 북한과 꾸바는 왜 다를까...

 

대재앙 수준의 자연재해와 미국의 금수조치라는 엄청난 시련 때문에 북한의 상황이 어렵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꾸바가 상황이 더 나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자연재해라면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쉬지 않고 허리케인이 눌러살다시피 하는데다, 바로 미국의 코 앞에서 30년 넘은 금수조치, 특히 90년대 초반 소비에트 몰락 이후 더욱 고삐를 조인 미국의 압박 때문에 꾸바도 무진장 힘들었다. 92년 이후에 한층 강화된 미국의 잔혹한 금수조치를 두고, 일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genocide'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었다. 북한에 '고난의 행군' 시기가 있다면, 꾸바에는 'special period'가 있었다.

 

꾸바 사회에서 독특했던 점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 동안 '인민의 삶'을 지키는데 최선 (최고/최대가 아니라)을 다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국가 그 자신'이 아니라....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무상교육/무상의료 의제는 물론, 약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생명공학기술 투자, 농산물 수입을 대체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생태농업 육성...  그리고 심지어 더 가난한 남미 국가들에 대한 의사파견 지원사업은 멈춤이 없었다.

 

경제적 압력과 걸핏하면 무장공격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핵"이 아니라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민들이 다 굶어 죽고 아파 죽고 나면 ,

그깟 지켜야 할 조국이 무엇이고 혁명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북한이 처한 어려운 사정을 부정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현재 민중들이 처한 고통을 자연재해나 미국 탓만으로 돌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좀더 개방적인, 이견을 허용하는 사회적 풍토도 꾸바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소비에트 유전학자 라이센코의 스캔들 (나중에 한번 소개해야지)은 전헝적으로 정치가 과학을 지배한(자유주의자들의 비판), 그리고 환원론적 경직성이 변증법적 이해를 가로막았던(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 반과학 사건으로서, 교조주의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이와 달리 꾸바에서는 사회발전 방향, 개발 방식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토론'과 투쟁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혁명이 일어난 직후에는 꾸바 사회의 교조적 경직성도 장난 아니었다고...  (레빈스 할배의 말씀) 시간이 걸려도, 주요 과제들을 인민들이 토론할 수 있는 사회,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까스트로 흉보며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숨쉬다가도 음악 나오면 앗싸~~~ 

 

글이 샛길로....

 

하여간, W 샘이 답변해주신 후에, 덧붙여서 이런 개인적인 의견을 짧게 피력했는데...

그 순간...

분위기 완전 썰렁~

 

몇몇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북한이 처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

 

이런' 특수 정황론'을 들으면 두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선 유신정권의 소위 '한국식 민주주의'...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한국식' 민주주의...

 

두번째는 내인생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인디...

일명 대자보 파손 사건이다.

학생 때 우리학교에서 전대협 출범식이 열린 적이 있다. "불패의 신화, 전대협"...

마지막 날 모여서 라이터불 번쩍이며 의장님 "옹립식"하던 그 전대협 말이다.

당시 학생운동 일각에서는 전대협이 보여준 '불패의 신화'니 '무오류의 역사'니 하는 식의 자기인식을 비판하는 의견이 팽배(???) 해 있었다.

우리 단과대학도 이런 취지의 대자보를 학교 입구 (우리 건물은 정문 들어서면 첫번째!) 잘 보이는 위치에 게시했었다. 

당시 대자보를 내가 썼는디....요지는 스스로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돌아봄으로써 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거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한 사고를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불패'니, '무오류'를 이야기할 수 있나... 플러스 뭐 어쩌구저쩌구... (생각해니 상당히 시건방진 대자보구나... 지금 같으면 절대 못쓸...ㅜ.ㅜ) 

 

문제는, 이 대자보를 붙이기만 하면 누군가가 찢어버렸다는 거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긴 어떤 단체의 현수막도 가운데가 '싹뚝'...

출범식이 열리는 2박 3일 동안, 나는 똑같은 대자보를 세 번 썼다. (길이도 엄청 긴데..)

 

똑같은 대자보 연속 세 번 쓰면서 슬펐던 것은

우리글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들의 의견을 담은 비판의 대자보를 붙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찢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상황이 특수해서,

너무나 숭고해서 감히 비판조차 할 수 없는, 비판을 용납할 수 없는 존재...

세상에 과연 그런게 존재하나???

 

속해있는 정파조직도 없고,

나 스스로 어떤 정파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지만

그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변증법적 유물론자와 종교인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관념이 아닌 구체적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 아닌가?

변증법적 유물론 "따위"는 이미 넘어섰다고 이야기해버리면 할 말 없고....

 

뭐 어쨌든, 북한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왜 이 분들이 베네수엘라에 열광하는지도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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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5단계'가 아니고,

발표/원고 마감의 5단계

 

 

1. 부정 (denial)

내일이 벌써 발표날(마감일)일리가 없어.

 

 

2. 분노 (anger)

왜 하필, 가장 바쁜 이 때에 날이 잡힌 거야!

 

 

3. 타협 (bargaining)

혹시 미룰 수는 없을까? 저쪽도 다른 일들이 많고 바쁠텐데... 굳이 이것까지 챙기려면 저쪽도 틀림없이 힘들거야. (아름다운 사해동포의 정신)

 

 

4. 우울 (depression)

흑!

 

 

5. 수용 (acceptance)

운명을 받아들이자. 초연하게...

 

 

@ 블로거 특별(?) 단계

 

불질을 해. 사람들이 위로해줄거야...

 

아냐, 사람들이 비난할 거야. 이렇게 불질할 시간 있으면 슬라이드 한 장이라도 더 만들고, 원고 한 줄이라도 더 쓰라구!!!

더/구/나/ "갑"이 이 블로그를 보고 있단 말야!!!

"을", 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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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보건의료개혁의 새로운 모색]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6583

(파이어폭스에서는 웹사이트 그림 복사 기능이 안 됨.)

저자 중 이웃 한 분이 책 소개를 부탁하셔서 알려드립니다.

책 소개글을 잠깐 보자면...

"직접 정책현장에서 뛰고 있는 소장파 보건의료정책가들이 향후 10년간 우리나라 보건의료 부문에서 이루어가야 할 정책과제들을 크게 ①보건의료정책의 선진화와 개혁, ②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건강정책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 다시 세부적인 11가지 조건으로 의료정책에 대한 내용과 개혁방향을 제시했다.

보건의료개혁을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1993년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처럼 모호한 표현보다 정치적 기술, 정치분석, 그리고 정치전략을 필요로 한다. 진정한 개혁가는 노련한 전략가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개혁을 꿈꾸는 소장파 학자들이 정치의 창(policy window)을 겨냥해서 만든 전략서이기도 하다."

사실, 저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해서 확신은 못하겠으나, 저자 면면은 이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많은 고민을 해온 분들이 분명한지라, 믿을만할 거라 생각이 드네요.

보건의료 정책의 개괄과 개혁 방향, 그리고 보건의료를 넘어서는 "건강정책"에 대한 논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합니다. (읽어보지도 않고 막 홍보를... ㅡ.ㅡ)

블로거 여러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

*

*

그런데, 목차를 살펴보니 잠깐 궁금증이 생겨나네요.

"소장파 보건의료정책가"들은 모두 남자로군요.

그녀들은 어디에???

음. 그리고 보니, 소개글에도 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치적 기술이나 전략, 혹은 정치의 창들이 소위 개혁적 엘리트와 기술관료의 결탁에 의한 정치공학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죠? 의심병이 발동하여... ㅡ.ㅡ



역자서문 신영전
들어가는 말: 2015년 보건의료개혁의 조건과 전망 김창엽

제1부 보건의료정책의 선진화와 개혁

제1장 전 국민 건강증진을 사회정책으로 정백근
제2장 튼튼한 건강 안전망 구축 이진석
제3장 보건의료 공급구조의 개혁 감신
제4장 진료비 지불방식의 혁신 강길원
제5장 안전한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 박형근
제6장 공공보건의료의 선진화 이원영
제7장 차별과 배제 없는 건강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건강정책 박웅섭

제2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건강정책

제8장 건강불평등 넘어서기: 통합적 건강형평정책 윤태호
제9장 건강한 노후: 고령화 대책에서 활기찬 노년(Active Aging) 정책으로 유원섭
제10장 국경을 넘어: 국제정책으로서의 건강정책 신영전
제11장 국민이 주인 되는 건강정책 임준

맺음말: 함께 나누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보건의료개혁 신영전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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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 한 편씩

바빠서 금방 숨이 넘어갈것처럼 투덜거렸지만

영화도 보고 책도 읽는다. ㅡ.ㅡ

 

기록을 남겨두자..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바벨]

 

 

글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화두인 이 시대에 지구촌 가족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건 단지 언어 때문일까? 히치하이커 시리즈에 등장하는 "바벨피쉬"라 한들, 이 소통불능상태를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소통불능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의 부재 때문도 아닌 바, 국경을 가로지르는 사회계급이라는 견고한 실체가 소통의 일방향성을 주도한다고 봐야겠다.

모로코 소년들의 장난(?)으로부터 비롯된 한바탕 전지구적 소동 속에서, 관련자들 모두가 나름의 상처를 안게 되었지만 결국 목숨을 잃고,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은 모로코와 멕시코라는 주변부 인물들...  

 

미국인들은 이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나? 일본인들은? (도대체, 일본 여고생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판타지인지 알 수가 없음 ㅡ.ㅡ)

 

브래드 피트도 나이를 먹고, 케이트 블랑쳇은 여전히 요정처럼 우아하고,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또한번 팔색조, 엘르 패닝은 언니를 쏙 빼닮았더라.

 

 

 

@ Neil Gaiman, [Neverwhere]

 

첫 장편소설이라는데, 훌륭하기도 하지

Neverwhere: A Novel

 

그야말로 악몽과 백일몽에 대한 어른용 판타지...Islington 의 모습은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공포스럽게 묘사되었고, Mr. Vandermar & Croup 의 행태는 엽기잔혹 그 자체... 하지만 그 극적인 모험과 여정보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귀환 이후의 Richard Mayhew...

 

... He tried to listen to the conversations going on at the table, and he found that he could no longer concentrate on what anyone was saying, and, which was worse, that he was not interested in any of what he was able to hear...

  

으흠..  하필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오늘 포스팅의 화두는 (국경과 인간의 내외면을 넘나드는) "소통'이로구나..

작가의 저력은 몸소 확인했으니, 휴고/네뷸러/브람 스토커 기타 등등을 통해 남들이 다 인정한 American Gods 를 꼭 읽어봐야겠구나...

 

American God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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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 중 하나가

전화하는 건데.. 요즘 업무의 반은 전화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 같구나... 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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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생일

원래 엄마 생신이 음력 설 다음 날이었는데,

 

작년에 돌연, 올해(2007년)부터는 "양력 생일"을 치르자고 제안하셨다.  

 

이유는 매우 합리적인데, 사연은 좀 길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양력설만 공식 휴일로 인정하고, 음력 설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 지방에 살고 계신 친척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는게 은근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승용차가 있나, 그렇다고 고속열차가 있었나...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가족 회의를 통해 양력 설을 지내는 걸로 바꾸었는데,

민족 고유의 명절 운운하면서 다시 음력설이 제 위치를 찾게 되면서 다시 가족 내에 혼란이 일었다. 하지만, 남들 다 이동하는 음력설은  교통편 구하기도 힘들고, 더구나 제수 물가가 급상승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우리 집은 그냥 양력설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양력설이 너무 짧아 이동이 불편하다는 다른 친척들의 이견이 간간이 접수되었으나, 차례 준비는 엄마 혼자 거의 도맡아 하는 상황이었기에 누가 감히(!) 뭐라 하기도 어려웠고...

여기에 결정타를 날려준 것은 오빠의 결혼이었다.

 

언니네 집은 제사/차례를 지내지 않지만 어쨌든 음력설을 지낸다는 점을 고려하여,

오빠네 식구가 양력설은 우리집에서, 음력설은 언니네 친정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차저차한 사정으로 이제는 다른 친척들은 잘 모이지 않고 대개 우리 부모님과 오빠네 가족, 나만 모여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래서 양력설 지내는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그 사정의 대부분은 누가 누구한테 섭섭하게 했다는 둥, 의례는 이렇게저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류의 가부장제를 둘러싼 가족 갈등인데 우리 식구는 하나같이 나몰라라 분위기.  밥 먹고 한가하니까 쓸데없이 저딴 소리한다는게 중론. 우리 식구 모두 냉혈한??)

 

뜻하지 아니한 문제가 한 가지...

바로 엄마의 생신이었다.

엄마 생신이 설 바로 다음날이다보니 오빠네 가족이 친정집에 충분히 눌러앉지 못한 채 서둘러 우리집에 와야 했던 것. 제도와 현실의 괴리라고나 할까...

한 10년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던 울 오마니께서 마침내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올해의 생일 변경 사건이다.

 

며느리의 입장을 배려한 매우 존경할만한 결정이나,

나로서는 항상 기억해오던 '설 다음날'의 공식이 깨지고 나서 날짜를 깜빡 잊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소지가 큰, 매우 위험한 결정인지라...

 

오늘 아침에 문득(!!!) 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클날뻔했다. ㅡ.ㅡ;;

미국에서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맞는 엄마 생일인디 하마터면....

 

엄마한테 전화해보니까 아들딸 오면 주려고 손수(ㅜ.ㅜ) 음식 장만까지 다 하셨더만...

사실 바빠서 이번 주말에는 서울에 안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이거 생각 안 났으면 정말정말 큰일날 뻔.... 식은땀이 삐질...

 

 

* 사족...

 

대한민국의 대부분 아들들은 결혼하고 나면 부쩍 효자가 되는데 (그것도 리모콘 효자). 이벤트 준비를 위해 김씨에게 전화해보니 다짜고짜 언니랑 통화해서 의논하랜다.  

어이가 없어서

"뭐? 너네 엄마지, *** 씨 엄마냐?" 라고 한다는게, 그만

"뭐? 너네 오빠지, *** 씨 오빠냐?" 해버리고 말았다.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뭔 소리야? 바보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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