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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3편

홍실이님의 [살바도르 아옌데 2편] 에 관련된 글.

3. 대통령으로서의 아옌데

아옌데 정부 - 인민연합 (the Popular Unity, PU) - 는 야심 찬 사업들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다. 정부는 경제적 전략 분야에 위치한 산업들을 국유화하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강력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거대 농장의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단원 입법기구를 설립하여 정치 체계를 변화시켰으며, 경제․정치․사법 체계의 운영에서 민중 참여를 증진시키고,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현존하는 헌법 체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즉, 사회주의에 이르는 칠레의 경로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민연합은 이러한 의문에 절대로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인민연합이 전술과 전략에 관한 생각이 상이한 여섯 개 단체의 연합체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그 자신의 사회당을 결코 통제하지 못했다. 대체로 당은 아옌데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급진적인 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민연합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상원의 경우, 인민연합은 18석을 차지한데 비해 야당은 32석을 차지했으며, 하원에서는 57석 (야당은 93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1973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이 얻은 성과는 야당의 점유율을 아주 조금 줄였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경제 정책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의 성장 후 경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칠레의 주된 수출품목인 구리의 가격이 폭락했다. 외부적으로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전통적인 자금 재원이 말라버린 것이었으며,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식품 수입이 급증하고 이는 다시 지불 잔고 문제를 가져왔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장악하자, 자본가들은 대개 투자를 거부했다. 생필품 분배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암시장이 성장했다. 매일의 삶은 공급이 부족한 물자를 얻기 위한 줄서기의 연속이었다. 인플레이션을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경제 붕괴와 정치적 갈등은 상호작용하고 서로를 강화시켰다. 유명한 칠레의 헌법 체계는 아옌데 정권에서의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나 야당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야당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분명 의회 체계의 관행들에서 벗어나는 행정부의 정책들을 차단할 일련의 수단들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 있었다. 정부 또한 적법성이 의심스러운 대책들을 채택하고는 했다. 이러한 행위는 상호 의심을 강화시키고, 곤경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와 야당은 심각한 대결 국면을 맞이했다. 경제는 통제 불능 상태였으며, 둘 사이를 중재하려다 실패한 군 총사령관은 사임을 했다. 교회 또한 이 둘을 화해시킬 수 없었고, 폭력은 증가했다. 평화로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아옌데 정부는 처음부터 적대적인 미국에 맞서야했으며, 미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칠레의 반정부 세력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쿠데타의 이유는 무엇보다 내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9월 11일, 마침내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폭한 군사쿠데타, 대통령궁 폭격, 아옌데의 사망, 수천 명 칠레인의 살해와 함께.


 대통령으로서 아옌데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1972년에 카스트로를 초청하여 3주간 그와 함께 머물도록 한 것은 실수였다. 아옌데는 중도파의 지지를 필요로 했지만, 이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가 마음에 그렸던 급진적 프로그램은 강력하고 단결된 정부, 허약한 야당, 광범위한 전국적 지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4. 아옌데의 유산

 

 

 현재 칠레에는 아옌데의 유산의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 거의 모든 그의 정책들은 군사 쿠데타 이후 뒤집혔으며, 그 후 자본가들은 반(反) 혁명을 이끌어나갔다. 피노체트(Pinochet) 정권은 아옌데 정부가 국유화시킨 산업의 대부분을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었으며,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했다. 그러나 아옌데의 가장 인기 있던 정책들 중 극소수는 오늘 날에도 남아 있는데, 이를테면 학동들에게 매일 500ml의 우유를 공급하는 것이나 구리 산업의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업적 중 하나는 농촌 지역에서 라띠푼디오스 (latifundios, 대농장)를 철폐한 것이다. 얄궂게도, 이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적 개혁은 대규모 토지 소유자들을 제거함으로써 1973년 군사쿠데타 이후 농업 생산의 자본주의적 방식을 확립하는데 길을 닦아준 것이 되었다.


 보다 넓은 정치적 의미에서, 아옌데 시대와 그 후의 독재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에도 칠레인들을 갈라놓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아옌데 정권의 3년이라는 시간은 칠레 역사상 유일하게 노동 계급과 가난한 이들이 국가와 경제를 움직이는데 정당한 몫을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나라를 혼돈, 심지어 내전의 위기까지 몰고 간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합의 정치가 우세하기는 하지만, 칠레인들의 투표 방식과 국가 통치를 위한 정치적 동맹의 속성은 모두 여전히 이러한 좌/우 분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칠레 좌파에게 아옌데의 유산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존하는 민주주의 체계의 한도 내에서 보다 큰 사회적 정의를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아옌데의 모습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인민연합의 패배에서 그들이 얻은 주요 결론은, 사회 변화를 이루려면 광범위한 전국적 합의와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좌파, 중도파의 동맹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미국과 쿠데타를 일으킨 우익을 비난하며, 인민연합의 마르크스주의적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들이 합의의 정치와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옌데의 이상을 폐기했다고 비난한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부르주아 출신의 뛰어난 의회주의자로서, 공화국 칠레의 입헌 체계를 굳게 추종했다. 그는 또한 쿠바 혁명과 1960년대에 전반적 의제를 좌파 쪽으로 이동시킨 정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의 비극은 민주주의 원칙과 급진적 사회변화를 통합하려는 시도 속에서, 칠레가 자랑스러워하던 민주주의 체계의 바탕에 깔려 있는 합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계속: 살바도르 아옌데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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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Donnie Darko]

 

- 2001년, Richard Kelly 감독 (Director's Cut) -

 

틀림없이 내가 좋아할 거라며 Matthew가 추천해주었던 영화..

영국에서는 좀 흥행이 되었다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다는데,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과 ㅡ.ㅡ

 

 

 

오랜만에 이토록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Sci-Fi 를 만나다니...

80년대 후반 미국사회의 숨막히는 정치적/종교적 보수주의, 관계와 소통, 희생과 구원, 또다른 선택의 가능성과 기로에 대한 메타포의 도가니라고나 할까....

(앗, 그러고 보니 최근에 본 영화들이 이런저런 형태의 '구원'을 다루고 있구나. 거미인간, 밀양, 그리고 도니다코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일이로세?)

 

영화를 보면서 웬지 David Lynch 의 아우라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들 생각하는지, 그와 비교를 많이 하고 있었다. Lynch 영화 중 가장 최근에 본 게 (그래도 아마 2년전인 듯한데) Mulholland Drive 인데, 전개 방식 (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과거로의 전개... 물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시간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그 기묘하고 서늘한, 아니, 건조한 그 분위기....

 

Mulholland Drive (2001).

 

당시, 이 영화를 보고 Naomi Watts에게 깜짝 놀랐었는데, 도니 다코에서는 파릇파릇한 Jake Gyllenhaal 의 연기에 깜짝 놀랐다. 저 때만 해도 느끼하지 않았구나 ㅎㅎㅎ

 

어쨌거나...

이 영화는 두고두고 다시 볼만한 작품...

거대 토끼 프랭크의 기괴한 모습.. 완전 내 취향이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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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구원은 누가?

지난 금욜 저녁에 다큐 감독 J, 사회운동가 K와 [밀양]을 보았다. 그 후유증이 대단하여, 어제 거의 잠만 잤다... ㅜ.ㅜ 영화로 인한 상처나 고민 때문이 아니라, 영화 보구 나서 진정 '오랜만에' 새벽까지 수다떠느라... 토욜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진행된 학교 행사 땜에 피곤이 가중되어, 거의 토욜 밤부터 의식불명 상태 지속... 영화에 대해서는 셋이 대체로 비슷한 감흥을 하면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디... 이창동이 보여주는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과연 냉소냐, 아니냐를 두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극 중 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을 고려하건데, 냉소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구원에 이르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내 의견과, 그래도 여전히 냉소적 성격이 짙다는 (이창동의 전작들을 고려해볼 때도) J 의 의견이 갈라졌다. 또, J 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지 않고 '소설'적으로 읽히는게 불만이라고 했고 (역시 그녀는 감독), 나는 책 읽는 거 같은 분위기는 좋던데, 라고 이야기했다 ㅎㅎ (나는 이창동의 전작들 중 초록물고기를 좋아하는데 똑같은 이유에서다). 다들 동의한 부분은, 송강호의 역할과 연기... 전도연의 역할 자체는 굉장히 극적이라 진폭이 크고, 그야말로 재주를 펼쳐보일 공간이 넓은 반면, 송강호가 맡은 종찬 역은 안 보이는 듯 하면서 상당한 무게가 있는 역할. 그가 정말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양한 조연들의 연기력... 대부분 현지 비전문배우라 하던데 어찌 저렇게들 잘 하는지.. 그게 바로 연출력의 힘인거야??? 그리고 다들 맘에 안 들어한 부분은 예측 가능한 전개와 전형적인 cliche 들... 이를테면, 커피 배달온 아가씨의 의상과 주변 남정네들의 대화는 꼭 그렇게 진부하게 그려졌어야 하나? 일상이 실제로 그리도 진부한 걸 어쩌란 말이냐 하면 물론 할말은 없다만서도... 아마도 가장 셋이 맞장구를 친 것은... 영화 자체보다 기독교와 '구원'의 문제... J는 어머니의 엄청난 신앙활동 때문에 고통을 겪은 바 있고, 나는 자칭 '회의주의자'로 거듭나면서 기독교란 정파나 사파나 종이한장 차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K는 알고보니 신학대학 출신이지만 남한의 기복+구원 기독교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상태... 셋은 한 목소리로 공포와 불안을 매개로 한 착취, 구원의 악용 (exploitation 혹은 capitalization) 문제를 지적했다. 물론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만 한 건 아니었다. 새벽까지 있었던 거는 타로 점 때문... 나는 타로 점을 생전 첨 해보았는디, 의외로 물어볼 게 없어서 고심했다는.. ㅎㅎ 너무나 비전형적인 질문을 해대는 나와 J 때문에 K 가 황당해하기까지... ㅡ.ㅡ 한 가지 신기한 건, 올해 초에 장 양의 포스에 이끌려 사주를 보았을 때도 그랬고, 타로점에서도 그랬고 역마살이..... 그것도 국내가 아니라 다 해외 이주설이 나오더라는... 아직 돌아온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이 무슨 기이한... 내 얼굴에 그리 써 있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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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나들이

무기력과 지지부진을 극복할 수 있는 호연지기 충전을 위해 짧은 나들이.

 

어제, 무궁화호 타고 느긋하게 백양사에 다녀오리라 급 결정을 내렸다. 

광주에 살고 있는 땡칠이 형이랑 절에서 맛나  산채비빔밥 얻어먹어야지 했는데,

고맙게도 형이 백양사 역으로 마중과 배웅을 해주는 덕에 무진장 편하게 댕겨왔다.

 

대전에는 새벽녘에 살짝 비가 뿌린 듯 해고, 하루 종일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햇볕마저 쨍 했으면 더워 죽을 뻔 했지..

 

서대전역에서 토스트랑 과일주스 한 잔,

커피 한 잔 들고 텅빈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 이승열 2집을 들으면서 소설책 읽으면서 바깥 풍광 바라보면서......

진정, 얼마만의 평화던가!!!

 

그동안 서울 오가느라 KTX 만 줄곧 탈 때는 몰랐는데,

무궁화호 창문이 KTX 보다 훨씬 크더라.

창문 한가득 초록색 풍광이 오호.....

하늘이 비치는 물논에서 모내기하는 분들도 꽤나 많았다.

 

백양사는 초봄에, 갑자기 폭설이 내린 날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 고즈넉한 분위기와 호수가 맘에 무척 들었더랬다. 물론 가을 단풍철에는 내장산 단풍객들 덕분에 진입로 들어가는 거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온통 푸르른 나뭇잎들이 갖가지 종류의 단풍이라 하니, 가을이 필시 절경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래도 오늘처럼 인적 드문 경내라면 나로서는 오케이!

 

차편이 너무 뜨문뜨문 있다는게 단점이긴 한데,

그래도 대전에서 기차타고 시외버스 타고 한나절 다녀오기 딱 좋은 곳이다. 

부안 내소사, 강진 무위사와 함께 3대 선호 사찰로 찍어주마!

 

조용함과 푸르름...

 

 




보리수 아래에서 사진 한 장....

 

 

경내 찻집에서 오미자 차 한 잔...

 

 

호수에 비친 경내 풍경...


 

집에 돌아와서,

 

며칠 동안 벌여 놓았던 퍼즐 마무리했다.

고흐, 밤의 테라스...

내일 액자 조립해야겠다.

그러고보니, 액자로 만들어놓은 퍼즐은 모두 고흐 것이다. 사이프러스와 밀밭, 붓꽃이 있는 풍경... 스누피 시리즈는 연정, 송담이한테 뺏겼고, 브뤼겔 거는 후배 J 한테 사기(ㅡ.ㅡ) 당했다. 그 아기자기한 풍경은 지금 ** 의료원 요양병동에 걸려있을 거야.. ㅜ.ㅜ


 

밀린 빨래랑 설겆이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내놓고...

 

얼릉 자고 싶은데, 저 빨래 다 돌아가려면 좀 기둘려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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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슬럼프도 아닌 것이,

우울 모드도 아닌 것이....

 

아우...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자초한 일들이 그저 짜증만 나는구나...

 

그렇다고 일의 절대량이 많은 것도 아니건만...

왜 이렇게 매사가 지지부진이냐???

효율성 바닥이로군!!!

 

 

온전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해!

 

내일(도 아니고 오늘이군) 오전까지 급한 일 우선 마무리하고, 숨 좀 돌리자.....

 

현충일에는 소설책이랑 MP3 싸들고, 어데 그늘로 바람쐬러 가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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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강풀의 '26년'

예전에 웹 상에 연재 중일 때, 기다림에 지쳐(ㅡ.ㅡ) 보기를 포기했었다.

 

아예 시작을 안 하면 모를까, 기다리는 거 질색.... 

생각해보니, 만화방 다니던 시절에도 완간되지 않은 거는 안 보고 꾹 참았다 나중에 원 샷.  '몬스터' 때 마음 고생 심했었고, '20세기 소년들'은 시작한 걸 엄청 후회했더랬다.

 

어쨌든....

포기하고 있자니, 예상대로 책이 나오는구나...

 

냉큼 세 권을 이어서 읽어버렸다.

 

   



*****

 

내가 '광주'를 처음 알게 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생 때였던 거 같은데, 성당 마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고 김승훈 신부님이 우리 성당 주임신부였음) 사진전을 했었고, 사진집(?) 같은 걸 신자들에게 빌려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현실감이 없어서, 그저 어디 먼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에서 전학 온 친구 한 명이 청소 시간에 광주 이야기 (공수부대가 대검으로 임산부 배를 찔렀다는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신문에 한 글자도 안 날 수가 있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가만히 있었겠냐구?"라며 내가 따졌던 거다 ㅡ.ㅡ 

나는 초딩 고학년 시절부터 신문 열심히 읽던 나름 유소년 인텔리... 이멜다의 구두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었다.   

 

그랬다..........

 

광주에는 대학 1학년 때 첨 가봤다.

친구들이랑 방학 때 광주 사는 선배형한테 놀러갔는데,

전남대에 가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오월대'는 진짜 교내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고,

잔뜩 긴장하고 찾은 금남로는 지하철 공사 때문에 온통 파헤쳐저 그냥 정신만 없었다.

그 후에도 몇 번, 광주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공사는 참 오래도 하더라. 사람들 말로는, 데모하는 거 막으려고 일부러 공사를 오래 한다는.. ㅡ.ㅡ

 

한 번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망월동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묘역까지 들어가는 버스 편이 없어서, 한참을 걸었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았던건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 가겟집 할아버지가 고개 넘으면 바로 있다고 해서.... ㅜ.ㅜ)

그 때, 묘역 입구에는 전두환이 세웠다는 기념비가 누워있었고, 사람들은 자근자근 밟아주고 지나갔다. 우리도 일부러 오며가며 계속 밟았다.

 

생각보다, 아주아주 초라했다.....

 

새단장을 한 이후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다녀온 친구 말로는, 눈 버린다고 했다. ㅜ.ㅜ

 

*****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일들도, 의외로 쉽게 잊혀진다.

친구한테 나름 큰 돈을 빌려주면서, 까먹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액수 따윈 적어놓지 않았었다. 적어놓을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랬던 것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까먹는다.... ㅡ.ㅡ

 

하물며...

내가 아닌, 내 가족이 아닌, 우리 동네가 아닌 곳에서 일어난 일인 다음에야...

 

예전에, 지인 한 분이, 요새 대학생들 한심하다고, 어떻게 광주도 모르냐고 한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게 왜 한심한가? 우리는 광주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알아서 혼자 인터넷 검색해서, 혼자 책 읽어서 알게 되었나?

새로운 세대가 역사를 모른다면, 그건 우리 잘못이다.

그래서... 강풀의 투박한 (?) 시도는 소중하다.

 

*****

 

누군가의 악행을 보면, '저 사람 진짜 나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거야, 저이라고 왜 갈등이 없겠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임철우의 '붉은 방'은 어린 시절, 꽤나 충격이었다. 고문 형사에게도 가족이 있고, 가족애가 있고, 일상의 피곤함이 있었다니... 그들도 인간이었어!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달라져갔다. 

'갈등? 타인의 고통 따위가 저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있을 리가 없어'

 

강풀의 '26년'이 슬픈 건,

만화 속 주인공들이 상처를 입어서, 혹은 거사에 성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책 바깥에서 가해의 최고 책임자들이 여전히 자알~ 살고 있다는 것.

이런 책 쯤이야!!!

 

세상에는 '진짜 나쁜 놈'들이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단죄가 안 되니까, 만화책 속에서, 광주의 아이들이 직접 총들고 칼들고, 사제폭탄 들고 나서는 거다.... ㅡ.ㅡ

 

*****

 

문득, 광주에 가서 구 묘역을 다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차편이 없어서 한 시간 넘게 허덕이며 땡볕 도로를 걷던 학생이 자가용 끌고 가게 생겼으니,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고 해야겠지? 

 

살기 좋아진 만큼, 진실도 잊혀지고 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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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사람들

토욜 저녁에 좀 웃긴 일이 있었다.

 

대학 동아리(의대 신문사) 후배의 결혼식 때문에 사람들이 꽤 모였는데,

근처 호프집에서 간단히 동아리 모임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 주욱 자리잡고 앉아서 맥주 한 잔씩 따른 다음,

누군가 일어나 첫 잔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할만한 분위기가 되었는데...

 

보니까 내가 최고령 전직 편집장인거다 ㅡ.ㅡ

물론 나이나 학번으로만 본다면야 연장자들이 더 있었지만....

 

나 원 참...

 

다 늙은(^^) 선배와 후배들 (심지어 일부 후배의 어린 아기들까지 ㅎㅎ) 앞에 놓고 대표로 일어나서 한 마디 하려니 참으로 민망하여.... 

뭐 무소불위라고 말하면 심하게 웃기지만, 신문사에서 편집장의 막강 파워란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하더군 ㅎㅎㅎ

 

술잔이 돌아가며, 여러 사람들의 서로를 향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난타전이 이어졌는데... 웃겨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그 중 내가 N에게 저지른 악행은 지금 봐도 좀 심했더군 ㅎㅎㅎ

 

나중에 시간 나면 이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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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점...

이 임박해있도다.

 

그래도 나름 주제파악은 잘 하는 편이라,

냉정하게 본다면야 그닥 폭발할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건만...

괴로븐 심정은 어쩔 수 없구나.

 

호연지기가 필요하다.

슈퍼 울트라 호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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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아름다운 글을 쓰지도 못하는 처지에, 남을 비판하는게 우습기는 하지만서도... 도대체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 도저히 독해불가능한 한국어 논문을 쓰는 상황을 어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나도 논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싶단 말이다! 진심으로! 최소한 주어와 서술어의 짝은 맞춰달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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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놀이 [독서문답]

에셔님의 [독서문답] 이어가기..

 

포스팅하는데 시간 엄청 걸리네요. ㅡ.ㅡ

 

 


 

집에 책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 학교에 있거나 서울 부모님 댁에 있고...

그리고 다른 집들에... ㅡ.ㅡ

책 빌려가서 안 돌려주는 인간들이 하도 많은지라...

(이 포스팅 보면 자수하시오)

 

책장 위의 그림은 왼쪽부터 멕시코 작가, 쿠바 작가 (제목은 "생각하는 고양이"),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에곤 실레 작품입니다.



*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감기 때문에, 그리고 밀린 일 때문에 그닥 평안치는 않습니다. ㅡ.ㅡ
그러나 이런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라, 그러려니 하고 있을 뿐입니다.
첫 질문에 너무 까칠하게 답한 거 같네요... 사실은 평안해요...

 

*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좋아한다고 믿고 있어요.

 

*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취미가 독서인 사람의 나름 비애가 있죠.
예전에 공지영의 소설에 나왔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인간에 대한 예의였던가?), 할 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는 이들, 취미란에 독서밖에 쓸 게 없는 사람들이 있죠.
뭐 그림을 그릴 줄 아나, 악기를 하나 다룰 줄 아나, 가장 돈 안들고 효용이 큰 (말하자면 비용-편익이 가장 큰) 취미가 아마 독서 아닐까 싶네요.
뭐 그렇다고 책을 좋아하게 된 걸 후회한다거나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예요.

 

*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굉장히 불규칙해요.
한 권 끝나면 한 권, 이렇게 차근차근 읽는게 아니라, 화장실용, 출퇴근용, 잠자리용, 업무/학습용을 따로 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답니다.
물론 필이 꽂혔을 때 (주로 시리즈물)는 다른 거 작파하고 몰아서 읽기도 하죠. (심지어 업무 중에도 틈틈히...)
뭐 따져보면 적을 때는 두 세권에서 많을 때는 열 권... 평균 네 다섯권 정도 되는 거 같네요. 한번 통계를 내봐야겠군요


 *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주로 읽는" 책은 없고 "절대 안 읽는" 책은 있습니다. 경영처세술, 말랑말랑 에세이, 그림책 아니면서도 글씨보다 여백과 그림이 많거나 폰트 사이즈 12 이상인 책들 말이죠.
잡다하게 여러 가지를 읽는 편인데, 뭐 광범위하게 인문/사회/자연 교양(?) 서적들이라 총칭할 수 있을 거 같고, 픽션 종류는 주로 영문 SF 들을 읽는 편이예요.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소설, 특히 한국현대소설들을 무진장 좋아했는데... 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시들해졌어요.  성석제 소설만이 제 선호목록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한 마디?
너무 하심!
음... "무한우주"라고 정의해볼까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그 경계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끝없는 팽창... (여긴 이견이 존재하죠 ㅎㅎ)

 

*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또 한 마디...
이 문답놀이를 첨 만드신 분의 취향 참 독특하셔...
이번에는 그럼 '우주여행' 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ㅎㅎㅎ
진심으로, 저에게는 독서가 미지의 세계를 열어주고 보여주는 (우주)여행이나 다름 없습니다.

 

*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쎄... 요새 대학 논술 문제들 보니까 학생들 독서량이 엄청난 것 같던데 (엄청나야 쓸 수 있을 거 같던데), 아닌가봐요?
독서율 낮은 것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단기간 내에 직접적인 편익을 발생시키지 않고, 그에 비해 여흥의 기능을 갖는 경쟁상품이 눈부시게 증가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각종 처세술이나 학습 관련 책들 판매량이 엄청난데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잘 안 팔리는 현상은 전자에, 각종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부흥은 후자에 해당하겠지요.
지하철에서도 책보다는 휴대전화로 게임하거나 DMB 보거나, 그도 아니면 차량 내부에 달린 TV 광고 보는 사람들 만나기가 더 쉽죠.

 

* 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아, 이 분 취향 참...어떻게 '하나만' 추천합니까!!!
음.... 그래도 꼭 하나면 추천해야 한다면,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추천해야겠네요.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492 to Present (P.S.)

 

 

*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론 제가 감동받았거나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이야기하라면 주저리주저리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추천'을 하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죠. 예전에 이 책을 읽고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저자 서문만을 읽고도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니,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등 여러 종의 역사책을 읽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충격과 놀라움은 있었지만, 이 책만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거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얻는 감동은 상당히 특별합니다. 고구려 삼족오 문양을 보고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분들도 있다지만, 많~이 다릅니다...
인간의 위대함, 저항의 아름다움, 그리고 집단으로서의 자기성찰...

아마 이 책을 읽는다는 건, 그저 멀리 떨어진 지구반대편 나라의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색다른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줄 거예요. 
영어 장문독해가 가능하신 분들이라면, 영어 서적을 읽는 것도 강추하고 싶어요.
하워드 진 할배의 쉬우면서도 담백한 글쓰기는 정말 우리 (저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책이 아니면 뭐죠?
제가 책을 '우주'라고 정의했다는 점에서 만화책은 그 중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은하계나 성단 쯤이 아닐까 싶네요.
어린 시절 만화책이 저에게 주었던 영감이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해요.
아기공룡둘리, 오달자의 봄을 비롯하야, 제 7구단, 오 한강, 고독한 기타맨, 대머리 감독님, 비트, 슈퍼보드, 추혼 시리즈 등등등... 제 아이디인 "홍실이"도 김수정씨의 연재만화 주인공 중 한 명 입니다.
아마 가장 최근에 읽은 만화책은 John Sacco 의 [Palestine] 인 거 같은데... 그 감동도 대단했죠....

 

*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음... 문학이라면 픽션???
그렇다면 비 문학을 더 많이 읽는다고 해야겠네요. 아까 언급한 대로 한번에 세네가지 책을 함께 읽는데 출퇴근길은 소설 종류를 많이 읽습니다.
'시'는 잘 안 읽는 편이예요. 정서가 메말라서인지... ㅡ.ㅡ
'수필'은 심지어 정서적 거부감까지 있습니다. 아마도 정규교과에서 배웠던 수필들이 영 그래서... 물론 좋은 것들도 있었지만, 피천득 류의 수필에 완전 학을 떼었다고나 해야할까요.

 

*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비문학'이라는 표현은 마치 '일회용' 혹은 '철저히 유흥용' 문학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폄훼의 의미가 담겨있는 거 같네요.
근데, 문학이라는게 근본적으로 정서적 감흥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야, 굳이 이런 구분이 필요한가 모르겠네요. 오히려 각종 처세술 ("@@살에 해야 할 모든 것" 류) 책이 본래 의미로서의 '소비 문학'에 들어맞지 않을까요?
'판타지'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들을 폄훼하는 건 부당해요. 


*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번역서를 두 권 낸 적이 있고, 여러 명이 쓴 책의 공동저자로 한 챕터를 쓴 적이 있어요.


*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며칠간 뿌듯했습니다. ㅎㅎ
(근데, 한편으로는 불안함과 부끄러움도 같이 자라더군요. 혹시 틀린 부분은 없을까, 왜 이렇게밖에 못 했을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옛날 자기 사진 들여다보기 민망한 감정...ㅡ.ㅡ)

 

*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예전에는 정운영,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 나오면 꼭 사서 읽고, 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씨의 책도 꼬박꼬박 샀더랬습니다. (에셔님과 많이 겹치는군요!) 리영희 교수님의 책도 뒤늦게 재미를 붙였구요... 미국에 2년 동안 살면서, 이런 분들의 책이랑 소원해졌네요...

그런데, 그러고보니 이 분들을 '작가'라고 하기는 좀 그렇네요. 
의미를 축소하여, 픽션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칭한다면, 불멸의 소설을 쓴 조세희 씨와 껄렁함이 특기인 성석제, 그리고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저자인 더글라스 아담스를 좋아합니다. SF 에 본격적인 맛을 알게 해준 아시모프에게는 '애증'이 있죠. 작품이 영 고르지가 못해서...아, 기호학자로서는 도통 모르겠고 소설가로서의 움베르토 에코도 좋아요.

 

*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작가에게 무슨 부탁이... 그저 좋은 책 앞으로 많이 써달라는...
특히, 조세희 작가님... 많은 이들이 목 빼고 있습니다.

 

*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어허... 참.. 어렵다.

요즘 불질 뜸한 후배 냐후,
방문이벤트로 성석제 책을 보내주신 적이 있는 산오리님
진지한 블로거 사회와 의료님
나를 '모시고' 다닌다고 스스로 믿는 야옹이,
이거 아니라도 책 이야기 자주 쓰시는 새벽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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