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⑦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만난 신사임당길(2013년 5월 25일)

선교장에 도착하니 북적북적 사람들이 꽤 많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집 구경도 하고 목도 축이려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가보다. 단체관광이라도 왔나. 안 그래도 헉헉 숨 돌릴 틈도 없이 걸어와 땀이 송골송골한데. 서둘러 앞질러 가던가, 뒤로 처져 쉬었다가 구경해야겠는데. 어랏, 선교장이 어쩌고저쩌고.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속에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오죽헌, 선교장, 김시습 기념관을 차례로 들렀다면 이번엔 산길이다. 하지만 해는 산을 넘어 보이질 않고 바람만 살랑살랑. 경포들 너머 아파트 숲과 높다란 시청 건물을 보며 산길을 걷는데. 이렇게 시내 가까운 곳에 솔향 숲길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시루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엔. 멀리 동해바다와 경포호까지 보이니. 산길이 아니라 보물이다.


분명 기아 실태와 그 배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서부터 바로 우리 이웃, 북한에 이르기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던 아옌데와 상카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 소는 배를 채우는데 사람은 굶주리고 있는 현실. 2005년 기준 5초에 1명씩 죽어나가는 10세 미만 아동들에 관한 것이지요.
‘불온’이 무슨 뜻인가 찾아봤습니다. 다음 두 가지더군요. 온당하지 않음.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교육공동체 ‘벗’에서 펴낸, 아니 시즌 1, 2로 진행된 ‘불온교사 양성 과정’은 분명 뒤에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물론 홍세화가 지적했듯이 학교라는 곳이 ‘제도교육을 통해 지배체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의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반전된 불온성의 한계」, 홍세화. p.25)라는 말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이 글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