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빨갱이’ 타령입니다. 물론 이번엔 직접적으로 ‘빨갱이’라 하지 않았지요. 다만 ‘운동권’ 출신, 그것도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PD계열 인물’이라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곧이어 조.중.동을 위시해 앞 다퉈 옮기며 물 타기를 할 게 뻔하니까요. 아니, 이미 시작됐습니다. ‘주임검사’와 ‘운동권’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벌써 여기저기서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으니요. 한쪽에선 ‘언쟁’이니 ‘감정싸움’이니 하며 국회 내 공방을 전달하는 척하면서. 또 한쪽에선 본격적으로 ‘운동권’ 검사에 대한 이력을 세세히 소개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일베 등으로 대표되는 보수들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게 한, 두 번도 아니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문제는 건건이 다 통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대응할 만한 가치도 없다는 얘긴 하나마나한 소리고. 전형적인 ‘물 타기’라고 길길이 날뛰며 목소리만 높이는 것도 역시 하나마나한 대응입니다. 그래봐야 ‘좌파’, ‘운동권’, ‘진보’라는 말이 ‘빨갱이’와 자동 연상되는 걸 바꿀 수도 없고. ‘빨갱이’ 소리만 들어도 움츠러들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도 바꿀 수 없으니까요. 또 엊그제 아침, 용어 혼란으로 생긴 문제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며 “교육현장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의 생각도 바뀌는 게 아니까요.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유산(遺産)으로 ‘전쟁이 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되고 냉전적 정치경제 질서가 가장 철저하게 착근된 사회’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쟁’중이라는 건데요. 여기서 논의를 더 진전시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면 말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이 ‘전쟁’을 누구와의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또 바라보고 있는 지를 묻는다면. 맞습니다.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빨갱이’면 다 통하는 우리 현실을 온전히 드러내 줍니다. 아직도 ‘빨갱이’와 ‘전쟁’을 하고 있는 마당이니요. ‘적’으로 간주된 이는 ‘사살’되거나 ‘포로’로써 무장해제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 힘없는 민중들은 정처 없이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북쪽이 대화를 제의하면서 남.북간 막혔던 통로가 열리는 가 싶었는데. ‘격’이 맞아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남쪽 주장으로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습니다. 6.15 행사는 반쪽행사로 끝났고, 북미 고위급회담도 ‘선(先)비핵화 조치’라는 압력에 막혀버렸습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돌이켜보면 한, 두 번 접촉으로 화해무드가 조성될 리가 없을 겁니다. 또 5.18 당시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마당에. 북쪽을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는 것 또한 쉽진 않을 겁니다. 더구나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상태인데다, 자국민마저 여차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판이니 말입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은 <작은책>에서 행한 강연에는 37이라는 숫자를 반복해서 얘기했습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 여론조사 결과 등등. 정 전 사장에 따르면 이 37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37은 우리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인 겁니다. 진보는 ‘빨갱이’인 셈이고, ‘빨갱이’는 곧 ‘종북세력’이며, ‘좌파’와도 한 몸, ‘운동권’, ‘전교조’, ‘민주노총’은 물론 ‘민주당’까지도 관련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인 겁니다. 다시 말해 한국전쟁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포로’로써 무장해제를 당한 사람들인 것이지요. 여기에 ‘피난’ 떠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맞습니다. 결코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핵’을 앞세운 카드를 만지작, 만지작하는 북쪽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핵’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초래할 무기로 현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은 결코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한반도 평화는 물론이고 급격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과 미국에 견줄만한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중국 등 동북아지역을 놓고 봤을 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초등학교 학생에게 헤비급 권투선수가 나서 한판 붙자고 하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몰 때도 도망갈 곳은 만들어놔야 한다는 말처럼. 마냥 몰아세워서는 일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빨갱이’에 ‘빨’만 나와도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입니다. 아니 너도나도 손가락질이라 해야 살아남는 요상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정부를 향해 이제 그만 이 ‘전쟁’을 끝내자고 말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가면서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행동도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라는 가치를 확고히 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당장 실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미간 국교도 정상화해야 합니다. 한반도, 아니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성을 위한 논의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고, 발전소를 포함한 모든 ‘핵’을 동북아에서 제거하는 일도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들이야말로 ‘빨갱이’ 콤플렉스에 빠진 우리 사회를, 여전히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 국민들을 ‘민주주의’의 장으로, ‘평화’의 장으로 건져내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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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8 16:29 2013/06/18 16:29
전두환 장남, 전재국이 운영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일개 인터넷 언론사가 찾아냈습니다. 국정원이야 여기저기 게시판에 글들 쓰느라 바빴다고 해도, 검찰은 대체 모랍니까? 하긴 선거에 개입했다는 게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인데도 질질 끄는 걸 보고 있으면, 거기도 되게 바쁘나 봅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썩 미안하고 떳떳하지 않아 기를 펴지 못하고 있어도 봐줄까, 말까한데. 대체 이 와중에 ‘헐값 골프’ 얘기까지 나왔으니요. 그것도 ‘전직 대통령 예우’라고요? 허참, ‘성공한 쿠데타’는 달라도 뭐가 다릅니다.
 
다행히 국회에서 친.인척들에게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도 회수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요. 이미 세금 수억 원이 경호비로 쓰이고, 기업들은 알아서 예우하고 있는 마당에다가. 위헌적 소지가 있다는 둥 소급입법이라는 둥 말도 안되는 얘기들이 나오는 걸 보면.
 
그가 굽죄일 리 있나요. 되레 저렇게 버젓이 호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수중에 단돈 ‘29만원’밖에 없어도 말입니다.   
 

굽죄이다 : 썩 미안하고 떳떳하지 않아 기를 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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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15:42 2013/06/10 15:42
사용자 삽입 이미지1979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30년도 넘었네요. 아마도 백기완 선생님이 한창 젊었을 적, 호기롭게 살았던, 감옥 드나들길 제 집처럼 했던 때 썼던 책인 듯싶은데. 송건호 선생과 고은 시인이 말했듯 민족통일에 대한 ‘높은 식견과 용기’, ‘대원칙’과 ‘전투적 논리’가 돋보이는 책이지만.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 보다는. 1976년 2월 선생이 직접 취재했다고 하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1), (2)>와 같은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말입니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사무치듯 그리워하는 사모곡(思母曲)이요. 동생들과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어린 나이 모진 공장일로 해야 했던 여공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것임을 알 수 있는  글 들이 많습니다.
 
또 이 땅 민중들과 함께 악에 바친 삶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살아왔던 노동자, 민중들에게 악질로 살자 외쳐왔던 삶인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악질로 살고 있는 선생님, 부디 오래도록 올곧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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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5 14:01 2013/06/05 14:01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월 27일(월) 흐림, 비
 
비가 오락가락한다. 그것도 일하려고 올라가면 내리고. 비 피해 일하려고 내려가면 안 오고. 결국 이매기평고대를 걸기 위해 부연 몇 개만 박고. 옥외실습실에서 박공 만들다 끝났다. 이번 주면 교육도 다 끝나는데 내일까지 비라니. 얼추 조립하는 거는 박공 달고, 목기연 걸면 다하기는 하지만. 수, 목, 금 이렇게 3일에 해체까진 어렵겠고. 마지막 하루는 실습실 정리하는 데 써야 하니. 음, 시간이 쪼매 부족하군.
 
5월 28일(화) 비 조금
 
많은 비가 온다고는 했는데 다행이 날만 잔뜩 찌푸리기만 하다. 그래도 언제 쏟아질지 몰라 서둘러 부연도 박고, 이매기도 걸고, 부연착고까지 끼우고 밥 먹고 오니. 그제야 장대비가 내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보며 쉬엄쉬엄 박공 만드니. 오늘도 금방 하루가 간다.
 
5월 29일(수) 흐림
 
오전에 마저 박공 달고 목기연 박고. 오후에 쉬엄쉬엄 남은 목기연 박고 개판 걸으니 송별회 갈 시간.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잔을 기울인다. 2차에, 3차, 4차, 5차까지 갔다고들 하던데. 다들 괜찮을까. 
 
*  박공이 서로 맞닿는 제일 윗부분에 걸리는 목기연 깊이는 맞닿은 곳에서부터 잰다.  
 
5월 30일(목) 맑음
 
어제 송별회 여파로 출석률이 저조할 줄 알았는데. 출석을 부르고 인방을 끼우는 데도 사람이 줄질 않는다. 더구나 점심 먹고 실습실을 정리하고 청소할 땐 아침보다도 더 많다. 말은 안 해도 다들 서운하고 아쉬운가보다. 삼삼오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도 나누고. 자기 사는 곳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도 하고. 내일이 수료식이란 게 믿기지가 않는다. 참 빨리도 갔다. 3개월.
 
* 하인방 아래 끼우는 쐐기는 양쪽 모두 끼워야(사선으로 잘라 세워 끼운다) 나무가 틀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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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금) 맑음
 
사람이 매일 하는 행동 중 40% 정도는 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익숙한 것들을 버려야할 땐 망설이게 되고 두려움 같은 것이 생긴다. 더구나 나이를 먹으면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아침 5시 50분이면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양치하고 볼일보고. 40분이되기 전에 집을 나서 302번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사람이 없으면 창구에서 많으면 자동발매기. 50여분을 달려 진부터미널에 도착하면 자전거로 갈아타고 학교로 향한다.출석체크 카드로 출결을 확인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 출석 부르는 샘 목소리가 들린다. “꽝이에요?”, “화장실은 출석 부르고 가면 안 되나요”.
 
지난 3개월간 아침 광경인데. 혹 다음 주 월요일, 나도 모르게 버스에 오르고 있을 지도. 그만큼 이마저도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구를 챙겨 실습실로 가고 뭐든 일이 있으면 대패며 끌로 이리저리 파내고 깎고. 잘 보이지 않던 사람도 오늘은 어딜 가셨나 서로 묻기도 하고. 늘 그 자리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보이질 않으면 찾게 되고. 
 
다들 수료라는 기쁨보단 이별이라는 아쉬움과 미련에 망설인다. 여기저기 사진들을 찍고 다음에 꼭 다시 보자는 말들을 나누고. 취업이 결정된 이들은 그들대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하며, 집을 지으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겐 꼭 부르라고 당부도 한다.
 
짠 한 마음에 강릉까지 짐을 옮겨주는 사람도 있고. 이별을 앞두고 며칠간 술로 지샜던 이들도 있고. 사람 사는 곳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 있었어도 마지막엔 악수를 나누고. 샘들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고. 며칠 더 머무르겠단 사람까지 있으니.
 
40%에 얼마나 차지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습관처럼 돼버린 행동들, 생각들이 조금은 버겁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일. 좋은 추억들만 간직하고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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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3 12:05 2013/06/03 12:05
5월 20일(월) 바람 셈
 
드디어 조립이다. 가만 두면 세워둔 기둥이 넘어질 만큼 바람이 세지만. 더 이상 늦출 만큼 시간도 많지 않고. 더 깎을 부재도 없으니. 꼭 사개부리로 다림보기를 하진 않더라도 기둥을 세워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방법은 수평자를 이용하는 것. 처음 두어 개까진 샘이 옆에서 봐주며 방법과 요령을 알려주는데. 서너 개를 하고 나니 그때부턴 일이 척척 진행될 만큼 빨리 터득들을 한다.
 
아침 출석 부르고 오늘 할 일을 설명할 때. 오전에 기둥을 다 세우고 오후엔 비계를 설치하는 것으로 했는데. 어째 기둥을 절반이나 세웠을라나, 다들 일찌감치 식사하러 가잔다. 시계를 보니 얼추 12시다. 하는 수 없다. 일단 먹고 해야지.
 
새로운 작업을 해서 그런지 점심을 먹고 와도 꽤 사람이 많다. 덕분에 작업도 속도를 내고. 비계는 사방을 다 설치하진 않기로 한다. 어차피 남은 교육시간으로 보건데 서까래를 모두 다 걸기도 어렵고. 대보나 종보는 크레인을 쓰기로 했으니.
 
그래도 비계를 다 설치하진 못했다. 사람은 많으나 일손은 여전히 거기서 거기라. 아쉽지만 오늘은 기둥 세우고 보아지와 장혀까지 올린 것. 그리고 비계를 절반 넘게 해 놓은 것. 거기까지다. 
  
<기둥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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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일단 기준이 될 기둥을 주초위에 올려놓고 주초 십반과 기둥 십반을 맞춰 세운다.
② 두 쪽 면 쐐기를 밖아 가며 수평자를 이용해 수평을 맞춘 후 레벨기로 기준선을 정한다.
③ 기준선이 정해지면 모든 기둥이 같은 높이를 갖도록 레벨기와 곡자로 나이를 매긴다.
④ ③에 매겨진 나이대로 기둥들에 그랭이를 뜨고, 그랭이 선대로 그레발을 잘라낸다.
⑤ 기둥들을 세우면서 버팀목을 대 기둥이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5월 21일(화) 바람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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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 여간 치목한 부재들이 다 올라갔다. 단 하루만에. 그것도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시작해 4시가 안 돼 끝났으니. 점심 먹은 시간까지 빼고 나면 불과 너덧 시간 만이다.
 
다들 얼추 집 모양이 되가니 뿌듯해들 하기도 하고. 오며가며 지나는 사람들도 좋은 구경이라고 보고 간다. 마지막 종도리를 결구시키고는 기념사진도 찍고.
 
내일부턴 서까래도 걸고, 박공이며 평고대, 부연, 개판까지 걸면. 새삼 다음 주면 끝이라는 게 실감난다. 하지만 한 주만 더 있었더라면 다른 한 쪽도 마저 끝낼 수도 있고. 해체까지도 해볼 수 있을 터인데. 조금 아쉽기도 하다.
 
게다가 부재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마음 한편이 계속 허전해지는데. 분명 집을 다 못 지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조립 순서>
기둥 → 보아지 → 장혀 → 대들보 → 동자주 → 오량보아지 → 오량장혀 → 오량보 → 주심도리 → 오량도리 → 대공 → 종장혀 → 종도리
 
* 장혀와 도리는 양쪽에 암컷 장부가 있는 것부터 올린다.
* 대공은 수평자를 이용 수직으로 세우고 버팀목을 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5월 22일(수) 맑음
 
종도리까지 올리고 난 후 다시 다림보기를 해야 하는데. 장혀며 도리를 짜맞추는 과정에서 기둥이 틀어질 수도 있고. 길이(도리)방향 부재 치목 시 선을 죽이지 않아 전체 길이가 늘어났을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그때서야 샘이 어느 땐 선을 살리고 어느 땐 선을 죽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며 무릎이 탁 쳐진다. 결국 집 뒤편은 길이가 조금 길어졌음을 확인했다. 현장에선 종종 이 작업을 빼먹고 가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렇게 되면 집이 전체적으로 어긋나게 된단다. 그러고 보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순서다. 약식으로 네 귀퉁이 기둥만 다림보기를 하고 버팀목도 다시 보강해서 박으니. 얼추 길이도 맞고 틀어진 것도 잡혔다.
 
오후엔 오랜만에 대패질을 했다. 이제 대패질은 끝이라 생각했는데. 평고대를 치목해야 하는 일이 남았던 것. 먼저 면대패로 면을 잡은 후 홈대패로 개판이 걸릴 홈을 파내고. 이어서 부연이 올라갈 자리를 대패로 잡아 주면 되는데. 역시나 배가 약간 부르게 대패질이 됐다. 보기엔 제대로 된 것도 같았는데 일명 왔다갔다 자(이동 스퀘어)로 확인해보니. 음 역시 쉽게 되는 일이 없고, 뭐든 일단은 확인을 해봐야겠다. 쉬엄쉬엄 홈대패도 써보고 자동대패도 하고. 쌓인 톱밥도 정리하니 또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시간 참 빨리도 간다.
 
* 다림보기를 할 때에는 바깥쪽 기둥부터 본다.
* 길이(도리) 방향의 부재를 치목할 경우에는 선을 죽여야 한다(먹선을 반은 살리고 반은 없애야 하는데 실제 그렇게 하기는 어려우니 약간 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주먹장으로 결구한 곳에 꺽쇠를 박으면 튼튼하다.
* 평고대는 보통 2치 5푼 × 3치 각재를 사용한다.
 
5월 23일(목)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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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진부는 한겨울 추위였다. 대패질을 할 땐 그래도 좀 나았지만. 쉴 땐 어김없이 난로가로 사람들이 모였다.
 
4월 진부는 여전히 겨울 날씨였다. 강릉은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져도. 진부엔 여전히 찬바람이 쌩생. 비닐하우스에서 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5월 진부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초겨울 날씨였는데. 2주 전엔 완연한 봄 날씨. 이번 주는, 초여름 날씨다. 어제, 그제 이틀 쌓아놓은 비계 위에서 작업을 하는데. 자주 쉬지 않으면 힘들 정도.
 
오늘 진부 날씨는, 연무가 잔뜩 낀데다 아침부터 초여름 날씨. 어쩔 수 없다. 옥외실습실 그늘에서 평고대 치목을 위한 장부 만들기 연습과 서까래 옮기기부터 해놓고.
 
되레 해가 뜨니 바람도 선선히 불고 아침보단 덜 후텁지근한 느낌. 점심 먹고 본격적으로 서까래를 걸기 시작해 저녁 끝날 때가 되니. 얼추 장연을 절반 넘게 걸었다. 중간 중간 참 많이도 쉬면서 했는데도.
 
<장연 걸기>
① 받을장이 양쪽으로 있는 평고대를 걸기 위해 집 중앙으로부터 좌, 우로 적당한 간격으로 서까래를 건다.
* 서까래를 도리와 결구할 때 못(또는 피스 못)은 서까래와 직각이 되도록 해서 박는다.
* 도리를 올리기 전에 서까래가 걸릴 자리(보통 1자 간격)를 미리 정해두면 작업하기 편리하다.
* 서까래가 걸릴 위치는 집의 중심에서부터 좌, 우로 잡아 나간다. 
② 걸린 서까래 위에 평고대를 건다. 이때 평고대의 높이가 일정한지, 앞, 뒤로 나온 간격은 일정한지 확인한다.
③ 집 중앙 서까래를 건다.
④ 맨 끝 서까래(박공을 박을 서까래)를 건다.
* 서까래를 거는 동안 평고대가 위, 아래로 앞, 뒤로 간격이 일정한지 계속 확인한다.
⑤ 처음 걸은 서까래와 중앙 서까래 사이, 처음 걸은 서까래와 맨 끝 서까래 사이 중간 서까래를 건다.
⑥ 이후 서까래 역시 양쪽 서까래 중간부터 걸어 나간다.   
 
5월 24일(금) 무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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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푹푹 찐다. 남은 장연을 마저 걸어야 하고. 단연은 전부 걸지는 않더라도 박공을 걸고 목기연도 박아보려면 몇 개는 걸어야 하는데. 날씨가 이러니 일하기 쉽지 않다. 조금 일하고 그늘에 피하는 것도 한두 번. 개판을 박다가 옥외실습장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한다. 치목해 놓은 단연 몇 개를 꺼내 길이를 맞춰 다시 치목하고. 평고대도 마저 만들고. 만들어 놓지 않았던, 박공과 붙는 부연도 만들고. 그렇게 쉬엄쉬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며 일하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바람도 조금 불 때쯤 남은 장연과 새로 다듬어온 단연을 거니 한결 집 모양이 나온다. 이제 부연, 박공과 목기연을 걸고 적심도리만 올리면 모든 교육과정이 끝난다. 모든 부재를 다 올리지는 못하지만 얼추 남은 시간 내에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셈이다.
 
* 개판은 개판 양쪽 끝과 개판홈이 서로 맞닿도록 해서 못 머리를 조금 남긴 후 구부려서 박아 고정해야 한다(나무가 수축해도 쪼개지지 않음).
* 서까래 간격이 1자 이면 개판은 5푼 정도 적게 한다(서까래 휜 것에 맞춰 개판을 위, 아래로 움직이며 조정해야 하기도 하고 못을 박을 자리도 필요하기 때문).
* 단연과 만나는 장연 부분은 도리 중심선에 맞추고 장연이 수직이 되도록 해서(도리 중심선과 수직이 아님)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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