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① 향호 바람의 길을 걷다(201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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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다시 이사를 했다. 춘천보다 더 춥고. 밭뙈기는 더 구경하기 힘든 곳으로. 첫 느낌은 황량하고 삭막함. 앞뒤로 서 있는 산 때문에 느낀 갑갑함은 좀 더 나중에 든 느낌. 그래도 녹지 않을 것 같던 앞산 눈도 녹고. 과연 꽃이 피기나 할 까 했던 뒷산 벚나무에 벚꽃이 피는 5월이 되니. 한결 낫다. 정 붙이이려면 아무래도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서일까, 전보다 더 자주 바깥나들이에 나선다. 다행히 한 시간만 열차를 타고 나오면 바닷가라. 게다가 재작년 겨울에 멈춰선 곳, 소돌에서부터 다시 길을 걸으려고 하니. 이런, 바우길이 여서 시작하니 말이다.

 
바우길은 얼마 전 새로 정한 16구간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포함한 바우길 이외에도.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바우길, 대관령 바우길이 있다. 7번 국도를 따라 걷다보면 매양 바닷가를 끼고 바다만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쪽 고성에서 시작되는 해파랑길과 아래쪽 영덕 블루로드, 그리고 여기 강릉 언저리를 에둘러 가는 바우길을 거쳐 간다면. 자칫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동해안 바닷가 길 걷기가 새삼 재밌으니. 시간에 쫓겨 걷는 길이 아니라면 천천히 다 둘러봐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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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호를 중심으로 향호저수지를 끼고 산길을 돌고 돌아 주문진 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오는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역시. 호숫가를 빙 둘러 걷기도 하고, 개구리가 놀라 논으로 뛰어드는 농로를 걷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산만한 개에 놀라 주춤,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찌르는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여기 이 길이 맞나, 싶은 숲길을 헤매기도 하다, 눈만 껌벅이며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들을 뒤로 하고, 솔향기 가득한 솔 숲길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푸른 바다와 향호가 보이니, 딱 좋을 수밖에 없다.
 
또 “태백 산지의 동해 사면을 흐르는 하곡의 계류와 동해안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고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 이 침향으로 공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옛 이야기와 “향골의 천년 묵은 향나무를 아름답고 맑은 호수 아래에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스런 일이 있으면 향호의 침향(沈香)에서 빛이 비쳤다고 한다.”는 향호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아가는 재미와
 
동해사면에서 흘러드는 담수와 동해바다의 염수가 혼합돼 있어 하천과 향호가 만나는 곳에는 수문을 만들었으니 이를 찾아보는 재미며, 경치가 뛰어나 호숫가 여기저기 취적정(取適亭)이니 강정(江亭)이니 향호정(香湖亭) 같은 정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또 이들 자취를 짚어가는 재미, 향동・향호동・향호리・향호교・향호저수지와 같은, 모두 향호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름 붙여진 마을과 다리, 호수를 걷는 재미가 있으니. 부러 찾아서 걸을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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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호 - 안정례
한걸음 향했던 설레임의 발자국도 지워지고
낮게 깔린 어둠에 무게는 떨쳐낼 수 없는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어버린 지금
버티다 버티다 이제 갈 길을 돌립니다.
 
눈감아도 젖은 모습 저만치서 내 그리운 사람이
웃음 지며 서있던 그 자리 한 바퀴 돌고나면 있으려나
기약 없는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서는 등 뒤로
낮 익은 음성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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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 안내 책자에 따르면 13구간은 15km정도라는데. 대충 4시간이면 되겠거니 했지만. 오르락내리락 고갯길도 많고 또 길 절반 이상이 산길이라. 처음 바닷물에 발 담그고 놀다 출발했던 모래사장으로 돌아오니.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몸도 꽤나 노곤하다. 마음 같아선 주문진 방파제까지 내쳐 걸어 등대까지 보고 싶지만. 오랜만에 걸은 발이 무겁기까지 하니. 여섯 번째 걷기에서 멈췄던 곳, 소돌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저만치 오는 강릉 시내버스에 또 그렇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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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호는 사주나 사취가 발달해 만 입구가 좁아짐으로써 생기는 해안지형인데요. 가장 큰 것은 함경남도 동남쪽 함주군과 정평군 사이에 있는 광포(廣浦)로 주위가 14㎞에 달한다고 합니다. 남쪽에는 강릉의 경포(鏡浦), 주문진의 향호(香湖), 속초의 청초호(靑草湖)와 영랑호(永郎湖),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송지호(松池湖), 화진포(花津浦) 등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석호는 육상과 해상의 점이지대로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고 멸종위기동식물과 천연기념물이 서식 하는 등 생태계 보존을 위한 중요한 지형입니다. 하지만 보존은커녕 난개발로 인한 훼손이 심각하지요. 또 외래 어종이 다수 발견되는 등 생태계 지형에도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경포, 청초, 영랑과 같이 도심지 내에 있거나 가까이에 있는 석호들은 그 훼손 정도가 심하다고 합니다만. 시멘트로 막혀 있는 청계천을 살아난 생태하천이라고 하는, 4대강 살린답시고 삽질해대는 그런 정부에서 복원과 보존 사업을 한다고 하니. 석호도 그런 꼴 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건. 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입니다. 
 
* 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약 15km.
 
* 가고, 오고
태백에서 강릉을 가는 길은 삼척을 들러 가는 시외버스와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기차 두 가지가 있다. 기차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재미도 쏠쏠하지만 하루 다섯 차례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시외버스는 언제고 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2시간 반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지루함이 있다. 굳이 호불호(好不好)를 따진다면 값도 저렴하고 재미도 있는 기차가 낫지 싶다.
 
* 잠잘 곳
걱정 붙들어 맨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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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19:51 2012/07/24 19:51

1.

대선을 앞두고 앞 다퉈 내놓는 ‘공약(空約)’들뿐인 건가요. 아님 정말 우리 사회가 ‘복지사회’로 나가려고 하는 건가요. 그동안 ‘복지병’이 생길 거라고 큰소리치던 새누리당도 ‘복지’를 외치고 있고. 그나마 만들어놨던 복지정책들을 다 후퇴시켜놨던 통합민주당도 다시 ‘복지’를 외치고 있으니. 이걸 말 그대로 ‘공약’으로 봐야 할지, ‘진보’로 봐야 할지 헷갈립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도 보수주의자든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자 모두 ‘복지’를 얘기하고 제도로 만들었으니 말이지요.  
 
2.
하지만 넘쳐나는 ‘복지’ 공약이 되레 걱정되는 건 왜일까요. 한편으론 그동안 싸워왔던 것들이 결실을 맺는 게 아닌가, 기쁘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저 많은 공약들이 제대로 될지 생각해보면. 허참, 4대강에 쏟아 부은 돈은 있어도 무상급식 할 돈은 없다고 생떼 쓰는데. 또 백지수표만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게다가 토인비가 사회서비스를 고안했던 이유가 산업혁명에 의해 초래된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복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와 늘어나는 빈곤층 때문이니.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유해한 국면을 완화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국가 권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큰 걱정입니다. 또 ‘인간의 상황에 대한 분노감과, 그러한 상황들을 해결하지 못한 기존의 집단행위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행동’(p.185)이 시작됐다기보다는. 눈앞에 둔 표를 잡기 위해 제안되고 있어 더욱 그렇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3. 
누군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를 애기합니다. 또 누군 ‘저녁이 있는 삶’을 애기하구요. 하지만 최근 벌이지고 있는 ‘무상보육’ 논란만 봐도. 그것들이 <복지국가의 사상>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치열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때론 끝내 만들고야 말겠다는 타협 없는 투쟁심, 때론 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협상과 타협을 거친 것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비록 그들 모두가 개혁가는 아닐지라도. 또 제각각 자기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짧은 시간에 복지 정책과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인 이 책을 권하는 건. 데이비드 도니슨David Donnison이 말한 것과 같이. ‘오늘날의 개혁가들로 하여금 사회정책 발달상 다음 단계에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공헌할 수 있게 도와줄 이러한 선구자들로부터 오늘날의 개혁가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p.172)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4. 
하지만 이 책 하나로 복지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복지국가라고 말해지는 나라들이 동일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니까요. 급격한 변화를 거친 나라가 있었다면 점진적으로 제도를 만들어나간 나라도 있고. 단선적으로 복지국가를 이룩한 나라가 있다면 때론 후퇴하고 때론 앞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복지국가를 만든 나라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격렬한 계급간 투쟁을 겪은 후에야 복지제도를 만든 나라도 있으며, 이 투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복지를 도입한 나라들도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말해, 하나의 추진력과 방향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란 얘깁니다. 그러니 참고는 될지언정 답은 아니겠지요.  
 
5.
또 영국사회라는 한정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그에 따른 사상적 변화과정이라는 점. 소개되고 있는 사상가, 15명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있고(예를 들어 찰스 부스니 에브니저 하워드, 에뉴런 배반 같은 이들). 또 몇 번 들어봤던 이름들도 알고 보면 잘 모르기도 하니까요(대표적인 이들이 에드윈 채드윅, 윌리엄 베버리지, 리차드 티트머스가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영국 복지국가 형성에 있어 개척자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을 불과 4-5페이지에 걸쳐 소개하고 있으니. 그들이 어떤 정치.사회,역사적 환경 속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전 생애를 샅샅이 훑어보지 않으면 잘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을 한 권에 다 넣었으니까요. 게다가 15명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이들 말고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 역시 복지제도 발전에 기여를 했으니. 속속들이 알기에는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책을 소개하는 것 말고도 다른 노력들이 필요하단 얘깁니다.    
 
6.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작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책 서문에서도 ‘복지국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 사상가들이 복지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역사와 사상, 정책이나 제도의 발달과정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각 나라가 가진 특징을 서로 비교하고, 각 나라가 지나온 발자국을 살펴보고, 사상사로 정리한다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7.  
지난 몇 년간 정치권이 우려먹은 것들 중에 ‘복지’만큼이나 짭짤했던 건 없을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떻게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복지’를 강하게 요구 하고 있고도 볼 수 있는데요. 시민적 권리가 강화되면서 이야기된다기보다는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따라온 결과라는 점에서.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게다가 정작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된 채, 이해득실만 따지는 이들이 만들고 있으니. 뿌리를 든든히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요? 아님 이번 기회에 다들 ‘복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라, 쓴 소리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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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0 13:28 2012/07/20 13:28
체포동의안이 상정되기 전에도 말들이 많았지요. 이번엔 꼭 특권을 없애겠다, 다짐도 많았고 호언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했고. 어떤 당에선 특권포기와 쇄신을 위해 TF까지 만들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목소리로 외치니. 한편으론 솔까 기대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이런 논의가 이어지면 당연 이에 못지않은 지방의회에서도 변화가 있을 거란 생각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나 무척이나 궁금했을 겁니다. 하지만 국회 개원과 함께 이런 기대가 싹 다 날아갔습니다.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쇄신안은 지지부진. 이제 어찌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결국 처음에는 제법하다 딴전을 부릴 거라는 진짜 예상이 적중한 셈인데요. 뻔뻔하게도 “포기할 방법을 마련해놓고 포기하는 게 순서”라는 말까지 나오니. 적반하장도 이만저만해야지요. 게다가 이 와중에도 다들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번에도 또 안 될 것 같은 분위깁니다. 
 
괘장: 처음에는 제법하다 딴전을 부림.
괘장(을) 부치다: ① 찬성한 일에 갑자기 딴전을 부리다. ② 생급스럽게 그럴 듯한 말로 일이 안 되게 하다. (생급스럽다 - 하는 말이나 짓이 뜻밖이고 갑작스럽다.)
 
국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 통과될 거라고들 생각했을 겁니다. 여간 요란스럽게 떠들어 놨어야지요. 물론 국민들이 성화를 하니 표를 얻으려 했던 것이었겠지만. 제법 뭔가 하려는 듯 보였으니 요란한 것도 봐줄만했습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는 말처럼. 또 괘장 부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하고. 오죽했으면 지방의회에서도 서로 의장단이 되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 와중에 자살 사건까지 발생하는 마당이니. 그 동안 누려왔던 그 많은 권력과 특혜를 어찌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해도(?) 됩니다. 멀쩡한 사람도 완장 채우면 목에 힘들어가고 목소리 커지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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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5 08:30 2012/07/15 08:30

사용자 삽입 이미지늙은 남편을 둔 어머니들에게 재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부재혼(寡婦再婚)에 따라 자식들은 몇 번이고 새로운 이름을 새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죽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금기가 됐고, 어머니의 새로운 남편은 얼마나 딸들이 생기느냐에 따라 사회적 성공 여부가 결정됐습니다. 여자들은 채 10살이 되기도 전에 늙은 남편과 결혼이 정해졌고 심지어 어머니 배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짝이 맺어지기도 했습니다. 남자들은 24살 또는 25살이 되기까지 후견인으로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30살, 아니 40살이 될 때까지도 아내를 맞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혼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티위사람들’이 서구 학자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대부분의 문화인류학 연구들이 그렇듯 하트C.W.M. Hart와 필링Arnold R.Pilling이 각기 1928년에서 30년까지 그리고 1953년에서 54년까지 ‘연구’한 성과로 펴낸 <The Tiwi of North Australia> 역시 연구자의 시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자 서문에는 ‘다양한 민족지들을 접하게 함으로써, 인류학이라는 연구 분야의 참다운 성격 그리고 인류학 연구에서 그 핵심이 되는 문화(文化)라는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또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p.5)라고 인류학에 대해 옹호하고 있지만. 좀 심하게 말하자면. 실은 그 다양했던 문화가 단일한 서구 문화로 수렴되고 만 것에 대해선 외면하면서. 그저 ‘티위사람들’과 티위 문화에 대해 추억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권력은 건들이지도 않으면서 ‘문화상대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얄팍한 추억(1954년 여행을 온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춤을 추기 위해 퀸즈랜드로 보내어 진 호주 북부지역 원주민들과 ‘티위사람들’이나 미국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티위 춤을 즐길 날이 오리라고 기대되는 일처럼 말이지요. p.150)과 약탈한 문화들로 가득 채운 거대하고 화려한 박물관들뿐인 셈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트와 필링이 그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는 건 억울한 일일 겝니다. 그들이 관찰한 대로 ‘티위사람들’이 가진 문화가 파괴되고 사라진 건. 일부일처제를 위해 어린 여아를 사들인 카톨릭 신부, 철과 젊은 아내들을 맞바꾼 일본인 진주 조개잡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마구잡이로 노예를 잡아들인, 식민지 개척 경쟁에 뛰어든 유럽인들일 테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학계가 ‘침묵의 카르텔’로 권력과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일처럼, 아무 상관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모든 문화는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문화란 고정되거나 단일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사라진 것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이름을 유지하고자 할 뿐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셀Gsell신부를 속인 폴리Polly처럼. <티위사람들>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폴리와 결혼한 카바지가 담배를 얻기 위해 새로 혼인한 젊은 다른 여인을 신부에게 준 것처럼, 한 문화가 어떻게 사라지고 파괴되는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인류학, 문화인류학 ‘연구’성과들만큼이나 그래서 뭘 얘기하는 거지, 대체 어쩌자는 거야, 책을 다 읽고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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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12:47 2012/07/11 12:47
양파를 까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겪었을 겁니다. 겉껍질을 벗겨내려다 양파가 반쪽이 돼 버린 거,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껍질에 급기야 눈물, 콧물까지 주루륵.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둘러싼 거짓말이 양파 까기 같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드러나는 거짓말들, 도를 넘은 아전인수(我田引水).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피해자들 눈에 눈물이 마르질 않는데, 이젠 국민들까지 눈물, 콧물 다 흘리게 하려나 봅니다.
 
하기야 오죽했으면 후보 시절 ‘혈통’검사까지 받았겠냐만은. “뼛속까지 친일”이란 말을 들으면서까지 협정을 밀어붙이는 건.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 내에 반드시 체결하겠다는 심보인 것 같으니.
 
파타난 남북관계에 이어 마침내 동북아평화마저 뒤흔들 신(新)남방삼각군사동맹. ‘잃어버린 10년’이란 게 결국 이런 거였나 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천안함 침몰’ 사건은 사상검증 ‘리트머스’로 전락한 지 오래됐고. 비판만 했다하면 같다 붙이는 ‘종북’, ‘좌파’ 딱지 붙이기가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을요.
 
그러고 보니 저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을지 모르겠지만. 정치.사회적 수준은 10년, 아니 20년 후퇴한 것 같고. 남북관계를 포함한 동북아질서는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 간 것 같았는데. 이젠 뜬금없는 똥고집으로 100년은 더 뒤로 물러날 것 같으니. 뉴라이트이진 올드라이트인지가 한 번 답해줬으면 합니다.
 
꼭 100여 년 전에도 그리고 50여 년 전에도 이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부채질,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미국이 대체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지 말입니다. 또 정녕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도 말이지요.
 
때 아닌 양파 까기에 연신 눈물, 콧물이 흐르는데, 오늘은 맵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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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3 13:45 2012/07/03 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