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한 달이 넘었네요. 느닷없이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었더랬습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를 때이니 벌써 5년이 훌쩍 지났고. 한참 자랄 때라 그런지, 그때도 부쩍 자란 조카들에 흠칫 놀랐었는데. 지금은 길에서 마주친다고 해서 알아볼 수나 있을지. 그동안 한 번도 보질 못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아들내미, 아니 조카가 이제 문, 이과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애 얘기를 들어봐 달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더라구요. 하지만 오랫동안 연락도 없었으니 쑥스러워 전화를 하지 않겠다, 란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낮에 누나와 통화를 했고, 저녁때쯤 전화할 거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9시 뉴스가 끝나도록 전화가 오질 않더군요. 그래, 쉽진 않을 거야, 라며 보리차물을 올리러 주전자를 닦는데.
 
요란스레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2. 
누나와 얘길 할 때도 그랬지요. 성적도 좋고, 앞으로 취직 문제도 좋지만 일단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게 먼저 아니겠냐고 말입니다. 물론 나중을 생각한다면 그런 것들을 무시하진 못하겠지만 우선은 지가 끌리는 게 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전화 통화는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먼저 예상했던 것보다 스스럼없이 자기 성적이며, 고민하고 있는 게 뭔지를 소상히 얘길 하는 조카 목소리를 들으니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고 꽤나 기분이 좋았었지요. 헌데, 안부를 묻고 이런 저런 애기를 하다 학교생활도 묻고 어쩌고 하는데. 자꾸 성적이 어떠니, 문과 쪽 과목들하고 이과 쪽 과목들하고 어느 쪽이 더 높느니,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물론 학교에서 진로나 진학 상담은 받아봤는지, 흥미를 느끼는 과목이 어떤 것들인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 것인지 등등도 물어봤었지요.
 
하지만 돌아온 답은 들으나 마나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이고. 학교에서도 아이 취미나 적성보다는 진학률, 취업률을 먼저 생각할 것이 뻔하고. 이제껏 받아온 교육이란 게 답이 있는 문제만을 풀어오고 암기해온 게 전부니. 조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겠지만.
 
참 난감하더라구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3. 
수업을 받는 것도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보고 돈을 주는 나라가 있습니다. 압박 수단으로 시험과 성적표를 쓰지 않습니다. 노는 때와 공부하는 때를 가르는 것이 의미가 없구요.
 
교사는 아이들이 갖는 자유로운 결정권을 제약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굴복시키는 훈육자이거나 조련사이지 않으며, 더더군다나 적대자여서는 안 됩니다. 그저 필요한 전문지식을 주는 조언자에 지나지 않으며, 학생의 장점과 단점, 충분히 발휘되고 있는 재능과 아직 계발되지 않은 발전 가능성을 의논할 뿐이지요.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기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소질이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습니다. 상급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은 공화국으로부터 어떤 조건도 달지 않은 재정지원을 받습니다.
 
어떤가요. 상상 속에나 있을 법한 이 나라, 그 동안 싹도 틔워 보지 못한 채 짓밟히고 말살당한 창조성을 길러내며, 지금의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고, 극복하고, 개선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삼는,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나라.
 
바로 공화국 벤포스타입니다.
 
 
4.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을 다닌 게 벌써 20년도 더 됐다며 발뺌을 한 것도 같고. 결국 작년까지 학교를 다녔으니 조금 더 잘 알겠거니 싶어 짝꿍한테 전화를 넘겼지요. 애기를 이어갈수록 처음에 하려고 했던 말은 안 나오고 맨 이.공계 취업이 요즘은 옛날과 다르다느니, 이과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이 가는 편이라느니, 당체 도움도 안 될뿐더러 다 아는 얘기만 나오니까요. 하는 수 없었습니다.
 
물론 얼떨결에 전화를 넘겨받은 짝꿍이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경험담을 섞어 잘 얘기를 해서 결정은 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내 자식도 아닌데도 끝내 남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하는데. 내 자식이면 오죽하겠나, 싶더랬습니다. 틈만 나면 학교 교육에 대해 침 튀기며 열만 올릴 줄 알았지 말입니다. 또  꼴에 콩 내놔라, 팥 내놔라 남 얘기하기만 좋아할 뿐.
 
아직 멀었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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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7 22:03 2012/08/17 22:03
사용자 삽입 이미지예전엔 ‘선거투쟁’이란 말도 있었더랬습니다. 듣기엔 거창할지도 모르겠지만. 솔까, 당선되긴 어려우니 하고 싶은 말이라도 실컷 해보자던 건데. 지금 봐도 참 그럴듯한 말을 갖다 붙였지요. 아무튼 그땐 소로우가 누군지 몰랐었음이 틀림없었을 터인데.   
 
투표란 장기나 주사위 놀음과 같은 일정의 놀음이다. 다만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노는 약간 도덕적 냄새가 풍기는 놀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기에 자연스럽게 따른다. 투표하는 사람의 인격은 내기가 상관없다. 나는 어쩌다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진다. 그러나 그 옳은 것이 승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생명을 건 관심사는 아닌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 결과를 다수자들에게 맡긴다. 그러므로 투표의 의무는 결코 편의(便宜)의 의무를 넘지 못한다. 옳은 것을 위해 던진 표도 진작 그 옳은 것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사람들에게 정의가 이기기를 바라는 당신의 소원을 미약하게 나타낼 뿐인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정의를 다수자의 손에 맡기거나 아니면 그 다수자들의 힘을 통해 승리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수자들이 결국에 가서 노예 폐지를 위해 투표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노예에 대하여 흥미를 잃었거나 아니면 그들의 투표로 해방될 노예들이 거의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때에 그들은 남아있는 유일한 노예가 될 것이다. 다만 자신의 투표로 자신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 노예들의 투표만이 이 노예제도의 폐지를 빠르게 할 것이다. pp.193-194
 
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선거투쟁’보다는 좀 세련된 말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당시엔 선거에 통 관심이 없었었지요. 누가 되도 상관없단 식은 아니었지만. ‘부르주아 선거’에서 얻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이 잇따라 대통령이 되고. 진보정당들도 의회에 들어가는 호시절을 지났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을 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투표를 하되 옹근 표를 던지라. 그저 한 장의 종이쪽만 던질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전 영향력을 던지라. 소수자는 다수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한 무력하다. 그렇게 되면 소수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소수자가 그 온 힘을 다하여 버티면 그것을 당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p.203
 
라는 소로우의 말도 또한 여전히 유효하단 생각도 듭니다. 금배지 달아보겠다고 과거에 잘못한 일들을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이들과 손잡는 일도 벌어지고. 대중의 마음을 얻어 보겠다며, 고매한 ‘도덕’을 강요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종이쪽만 던지는 게 아니라 내 온 영향력을 던진다면.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며 다시 싸움을 시작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평화로운 제주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어깨를 건 이들에게 표를 던진다면. 맞습니다. 한 발은 더 내딛는 거란 얘깁니다. 물론 지금도 정부는 최소한도여야 한다는 소로우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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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6 13:37 2012/08/06 13:37
바우길 ① 향호 바람의 길을 걷다(201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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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다시 이사를 했다. 춘천보다 더 춥고. 밭뙈기는 더 구경하기 힘든 곳으로. 첫 느낌은 황량하고 삭막함. 앞뒤로 서 있는 산 때문에 느낀 갑갑함은 좀 더 나중에 든 느낌. 그래도 녹지 않을 것 같던 앞산 눈도 녹고. 과연 꽃이 피기나 할 까 했던 뒷산 벚나무에 벚꽃이 피는 5월이 되니. 한결 낫다. 정 붙이이려면 아무래도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서일까, 전보다 더 자주 바깥나들이에 나선다. 다행히 한 시간만 열차를 타고 나오면 바닷가라. 게다가 재작년 겨울에 멈춰선 곳, 소돌에서부터 다시 길을 걸으려고 하니. 이런, 바우길이 여서 시작하니 말이다.

 
바우길은 얼마 전 새로 정한 16구간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포함한 바우길 이외에도.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바우길, 대관령 바우길이 있다. 7번 국도를 따라 걷다보면 매양 바닷가를 끼고 바다만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쪽 고성에서 시작되는 해파랑길과 아래쪽 영덕 블루로드, 그리고 여기 강릉 언저리를 에둘러 가는 바우길을 거쳐 간다면. 자칫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동해안 바닷가 길 걷기가 새삼 재밌으니. 시간에 쫓겨 걷는 길이 아니라면 천천히 다 둘러봐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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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호를 중심으로 향호저수지를 끼고 산길을 돌고 돌아 주문진 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오는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역시. 호숫가를 빙 둘러 걷기도 하고, 개구리가 놀라 논으로 뛰어드는 농로를 걷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산만한 개에 놀라 주춤,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찌르는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여기 이 길이 맞나, 싶은 숲길을 헤매기도 하다, 눈만 껌벅이며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들을 뒤로 하고, 솔향기 가득한 솔 숲길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푸른 바다와 향호가 보이니, 딱 좋을 수밖에 없다.
 
또 “태백 산지의 동해 사면을 흐르는 하곡의 계류와 동해안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고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 이 침향으로 공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옛 이야기와 “향골의 천년 묵은 향나무를 아름답고 맑은 호수 아래에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스런 일이 있으면 향호의 침향(沈香)에서 빛이 비쳤다고 한다.”는 향호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아가는 재미와
 
동해사면에서 흘러드는 담수와 동해바다의 염수가 혼합돼 있어 하천과 향호가 만나는 곳에는 수문을 만들었으니 이를 찾아보는 재미며, 경치가 뛰어나 호숫가 여기저기 취적정(取適亭)이니 강정(江亭)이니 향호정(香湖亭) 같은 정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또 이들 자취를 짚어가는 재미, 향동・향호동・향호리・향호교・향호저수지와 같은, 모두 향호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름 붙여진 마을과 다리, 호수를 걷는 재미가 있으니. 부러 찾아서 걸을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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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호 - 안정례
한걸음 향했던 설레임의 발자국도 지워지고
낮게 깔린 어둠에 무게는 떨쳐낼 수 없는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어버린 지금
버티다 버티다 이제 갈 길을 돌립니다.
 
눈감아도 젖은 모습 저만치서 내 그리운 사람이
웃음 지며 서있던 그 자리 한 바퀴 돌고나면 있으려나
기약 없는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서는 등 뒤로
낮 익은 음성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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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 안내 책자에 따르면 13구간은 15km정도라는데. 대충 4시간이면 되겠거니 했지만. 오르락내리락 고갯길도 많고 또 길 절반 이상이 산길이라. 처음 바닷물에 발 담그고 놀다 출발했던 모래사장으로 돌아오니.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몸도 꽤나 노곤하다. 마음 같아선 주문진 방파제까지 내쳐 걸어 등대까지 보고 싶지만. 오랜만에 걸은 발이 무겁기까지 하니. 여섯 번째 걷기에서 멈췄던 곳, 소돌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저만치 오는 강릉 시내버스에 또 그렇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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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호는 사주나 사취가 발달해 만 입구가 좁아짐으로써 생기는 해안지형인데요. 가장 큰 것은 함경남도 동남쪽 함주군과 정평군 사이에 있는 광포(廣浦)로 주위가 14㎞에 달한다고 합니다. 남쪽에는 강릉의 경포(鏡浦), 주문진의 향호(香湖), 속초의 청초호(靑草湖)와 영랑호(永郎湖),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송지호(松池湖), 화진포(花津浦) 등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석호는 육상과 해상의 점이지대로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고 멸종위기동식물과 천연기념물이 서식 하는 등 생태계 보존을 위한 중요한 지형입니다. 하지만 보존은커녕 난개발로 인한 훼손이 심각하지요. 또 외래 어종이 다수 발견되는 등 생태계 지형에도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경포, 청초, 영랑과 같이 도심지 내에 있거나 가까이에 있는 석호들은 그 훼손 정도가 심하다고 합니다만. 시멘트로 막혀 있는 청계천을 살아난 생태하천이라고 하는, 4대강 살린답시고 삽질해대는 그런 정부에서 복원과 보존 사업을 한다고 하니. 석호도 그런 꼴 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건. 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입니다. 
 
* 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약 15km.
 
* 가고, 오고
태백에서 강릉을 가는 길은 삼척을 들러 가는 시외버스와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기차 두 가지가 있다. 기차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재미도 쏠쏠하지만 하루 다섯 차례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시외버스는 언제고 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2시간 반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지루함이 있다. 굳이 호불호(好不好)를 따진다면 값도 저렴하고 재미도 있는 기차가 낫지 싶다.
 
* 잠잘 곳
걱정 붙들어 맨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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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19:51 2012/07/24 19:51

1.

대선을 앞두고 앞 다퉈 내놓는 ‘공약(空約)’들뿐인 건가요. 아님 정말 우리 사회가 ‘복지사회’로 나가려고 하는 건가요. 그동안 ‘복지병’이 생길 거라고 큰소리치던 새누리당도 ‘복지’를 외치고 있고. 그나마 만들어놨던 복지정책들을 다 후퇴시켜놨던 통합민주당도 다시 ‘복지’를 외치고 있으니. 이걸 말 그대로 ‘공약’으로 봐야 할지, ‘진보’로 봐야 할지 헷갈립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도 보수주의자든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자 모두 ‘복지’를 얘기하고 제도로 만들었으니 말이지요.  
 
2.
하지만 넘쳐나는 ‘복지’ 공약이 되레 걱정되는 건 왜일까요. 한편으론 그동안 싸워왔던 것들이 결실을 맺는 게 아닌가, 기쁘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저 많은 공약들이 제대로 될지 생각해보면. 허참, 4대강에 쏟아 부은 돈은 있어도 무상급식 할 돈은 없다고 생떼 쓰는데. 또 백지수표만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게다가 토인비가 사회서비스를 고안했던 이유가 산업혁명에 의해 초래된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복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와 늘어나는 빈곤층 때문이니.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유해한 국면을 완화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국가 권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큰 걱정입니다. 또 ‘인간의 상황에 대한 분노감과, 그러한 상황들을 해결하지 못한 기존의 집단행위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행동’(p.185)이 시작됐다기보다는. 눈앞에 둔 표를 잡기 위해 제안되고 있어 더욱 그렇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3. 
누군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를 애기합니다. 또 누군 ‘저녁이 있는 삶’을 애기하구요. 하지만 최근 벌이지고 있는 ‘무상보육’ 논란만 봐도. 그것들이 <복지국가의 사상>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치열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때론 끝내 만들고야 말겠다는 타협 없는 투쟁심, 때론 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협상과 타협을 거친 것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비록 그들 모두가 개혁가는 아닐지라도. 또 제각각 자기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짧은 시간에 복지 정책과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인 이 책을 권하는 건. 데이비드 도니슨David Donnison이 말한 것과 같이. ‘오늘날의 개혁가들로 하여금 사회정책 발달상 다음 단계에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공헌할 수 있게 도와줄 이러한 선구자들로부터 오늘날의 개혁가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p.172)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4. 
하지만 이 책 하나로 복지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복지국가라고 말해지는 나라들이 동일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니까요. 급격한 변화를 거친 나라가 있었다면 점진적으로 제도를 만들어나간 나라도 있고. 단선적으로 복지국가를 이룩한 나라가 있다면 때론 후퇴하고 때론 앞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복지국가를 만든 나라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격렬한 계급간 투쟁을 겪은 후에야 복지제도를 만든 나라도 있으며, 이 투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복지를 도입한 나라들도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말해, 하나의 추진력과 방향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란 얘깁니다. 그러니 참고는 될지언정 답은 아니겠지요.  
 
5.
또 영국사회라는 한정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그에 따른 사상적 변화과정이라는 점. 소개되고 있는 사상가, 15명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있고(예를 들어 찰스 부스니 에브니저 하워드, 에뉴런 배반 같은 이들). 또 몇 번 들어봤던 이름들도 알고 보면 잘 모르기도 하니까요(대표적인 이들이 에드윈 채드윅, 윌리엄 베버리지, 리차드 티트머스가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영국 복지국가 형성에 있어 개척자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을 불과 4-5페이지에 걸쳐 소개하고 있으니. 그들이 어떤 정치.사회,역사적 환경 속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전 생애를 샅샅이 훑어보지 않으면 잘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을 한 권에 다 넣었으니까요. 게다가 15명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이들 말고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 역시 복지제도 발전에 기여를 했으니. 속속들이 알기에는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책을 소개하는 것 말고도 다른 노력들이 필요하단 얘깁니다.    
 
6.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작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책 서문에서도 ‘복지국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 사상가들이 복지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역사와 사상, 정책이나 제도의 발달과정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각 나라가 가진 특징을 서로 비교하고, 각 나라가 지나온 발자국을 살펴보고, 사상사로 정리한다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7.  
지난 몇 년간 정치권이 우려먹은 것들 중에 ‘복지’만큼이나 짭짤했던 건 없을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떻게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복지’를 강하게 요구 하고 있고도 볼 수 있는데요. 시민적 권리가 강화되면서 이야기된다기보다는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따라온 결과라는 점에서.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게다가 정작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된 채, 이해득실만 따지는 이들이 만들고 있으니. 뿌리를 든든히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요? 아님 이번 기회에 다들 ‘복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라, 쓴 소리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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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0 13:28 2012/07/20 13:28
체포동의안이 상정되기 전에도 말들이 많았지요. 이번엔 꼭 특권을 없애겠다, 다짐도 많았고 호언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했고. 어떤 당에선 특권포기와 쇄신을 위해 TF까지 만들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목소리로 외치니. 한편으론 솔까 기대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이런 논의가 이어지면 당연 이에 못지않은 지방의회에서도 변화가 있을 거란 생각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나 무척이나 궁금했을 겁니다. 하지만 국회 개원과 함께 이런 기대가 싹 다 날아갔습니다.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쇄신안은 지지부진. 이제 어찌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결국 처음에는 제법하다 딴전을 부릴 거라는 진짜 예상이 적중한 셈인데요. 뻔뻔하게도 “포기할 방법을 마련해놓고 포기하는 게 순서”라는 말까지 나오니. 적반하장도 이만저만해야지요. 게다가 이 와중에도 다들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번에도 또 안 될 것 같은 분위깁니다. 
 
괘장: 처음에는 제법하다 딴전을 부림.
괘장(을) 부치다: ① 찬성한 일에 갑자기 딴전을 부리다. ② 생급스럽게 그럴 듯한 말로 일이 안 되게 하다. (생급스럽다 - 하는 말이나 짓이 뜻밖이고 갑작스럽다.)
 
국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 통과될 거라고들 생각했을 겁니다. 여간 요란스럽게 떠들어 놨어야지요. 물론 국민들이 성화를 하니 표를 얻으려 했던 것이었겠지만. 제법 뭔가 하려는 듯 보였으니 요란한 것도 봐줄만했습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는 말처럼. 또 괘장 부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하고. 오죽했으면 지방의회에서도 서로 의장단이 되겠다고 난리를 치고, 그 와중에 자살 사건까지 발생하는 마당이니. 그 동안 누려왔던 그 많은 권력과 특혜를 어찌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해도(?) 됩니다. 멀쩡한 사람도 완장 채우면 목에 힘들어가고 목소리 커지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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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5 08:30 2012/07/15 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