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와 진보(進步)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단어가 가진 뜻만 가지고 본다면 지키려는 쪽과 나아가려는 쪽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요. 현실에선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밀워키 14인’은 미국이 벌인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상징적 항의로 징병위원회에 잠입해 수천 장의 서류를 빼내서 태워버린 신부와 수녀, 평신도들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체포되어 절도및 방화죄로 기소됐으며 하워드 진은 ‘전문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했지요. 변호사는 진이 ‘가격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여러 질문들을 던졌으며, 이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이런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곧바로 검사는 이의를 제기했으며 판사 역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결국 진 박사는 “왜 제가 본질을 말해선 안 되는 거죠? 왜 배심원들이 본질을 들을 수 없는 겁니까?”라고 큰소리로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끝내 판사는 법정모독죄로 감옥에 넣겠다는 말로 답변을 막았습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pp.208-223.
첫째 날, 만만하게 봤다 큰 코 다치다, 해 넘어 겨우 당도한 곳 위태(2012년 7월 27일)
준비는 많이 했다. 배낭도 새로 사고 등산화도 사고. 한 짝이 있었지만 스틱도 하나 더 주문하고, 혹시나 몰라 손전등까지 함께 주문했으니. 둘레길 전제 지도는 물론이고, 구간별 지도도 일일이 프린트하고. 것도 모자라 바우길을 걸으면서 유용하게 쓴 GPS를 가져가기 위해 둘레길 트랙까지 구했으니. 휴가철과 겹치는 것 같아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일주일치 예약까지 한 민박은 출발 열흘 전에 마쳤고. 이만하면 다 준비됐다, 싶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던 삼화실 게스트하우스를 지나자마자 시작된 가파른 오르막길. 며칠을 고민고민하다 반대로 걷는 게 햇볕을 덜 받겠다 싶었는데, 이거 웬걸.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었는데도 계속 얼굴로 비치는 해. 겨우 8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바람 한 점 없는 푹푹 찌는 날씨. 땀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떼들까지. 겨우겨우 첫 고개, 느닷없이 나는 오줌냄새에 오줌을 지릴 만치 높아 오줌고개라 부르고 싶은 존티고개를 넘어가는데. 이거 만만치가 않겠다, 걱정이 이만저만이다. 

다시 한 시간 넘게 그늘에서 쉬다 길을 나섰지만. 다시 만난 고개 초입에서 거의 무더위에 실신하다시피. 가니 되돌아가니 실랑이를 하다 겨우 출발. 지나는 길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대나무 숲과 계곡물이 번갈아 나오며 몸을 호사롭게 하지만. 연신 흐르는 땀 때문에 머리와 목에 물을 퍼부어도 역부족. 더구나 엎친 데 덮친 격. 궁항마을을 지나면서 지기 시작한 해가 오율마을에 이르니 어둑어둑, GPS는 전원이 나가고. 겨우겨우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몸은 천근만근, 민박집은 통 보이질 않는다. 분명 아까 전화했을 때 40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겨우 포장길에 내려서니 저만치서 자동차 불빛이 보이는데,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발이 후들후들하다. 다행히 든든한 정돌이가 앞장을 서고, 도착한 민박집에서 찬 물에 씻고 밥을 먹으니 쪼매 살 것 같다. 허나 아저씨 얘기론 오늘 밤 달이 지고나면 별빛이 쏟아질 거라는데. 만만하게 봤다 큰 코 다치고. 겨우 해 넘어 당도한 곳, 위태에서 혼절하듯 잠에 빠지고 만다. 내일 예약했던 마을 체험관이 빵꾸가 나 일정을 바꿔야 하는데도..... 아무래도 많이 준비한 거는 죄다 자잘한 것들이고, 정작 준비해야 할 것은 하지 못한 듯. 튼튼한 몸, 일주일 내리 산을 타야 한다는 각오 말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그랬다지요. 다른 당 후보도 아니고, 자기 당 후보들이 재차 물었으니 짜증도 났겠지만. 가뜩이나 과거를 망각한 채 되레 힘을 키우고 있는 일본에게 우리 정치권이 과연 따가운 일침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 걱정인 판에. “과거에 모두 사시네요.”
하워드 진은 조지 오웰의 말을 빌러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 곧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까지도 결정할 수 있다. 콜럼버스에 관련된 역사를 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잔혹한 20세기 미국의 현재 모습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미국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바로 콜럼버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박정희’에 대한 물음은 단순히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민주화가 완성됐다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어떤 답을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인 것이지요.
그러니 아무리 같은 당 후보였지만 5.16에 대해 던진 질문에 저런 식으로 답해선 안 될 것이었습니다. 물론 김문수나 임태희 같은 사람들과 현재 한국사회를, 미래를 두고 논쟁을 벌인 건 아니었겠지만. 오히려 지난번에 “역사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이것은 결국 국민 판단 몫이고 역사의 몫이다’라고 하고 우리가 맡은 사명에 대해 충실히 노력할 때 오히려 통합이 이뤄진다.”라고 했던 말보다 더 후퇴를 했으니. 오히려 하워드 진이 명확히 지적하듯(?) 역사란 철학과 사상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걸 지적하며 치고 나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그 순간,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특정 부분에 해당하는 정보를 얼마만큼 넣고 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렇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이루어지며, 모든 역사가와 역사 연구는 어떤 관점이 있습니다. 단순한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p.105
“역사 연구는 곧 무엇이 중요한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는 실제로 현재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p.112
“역사는 수많은 사실들에서 선택하는 것이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p.281
아버지 박정희 후광으로 여당 대선후보에까지 오른 박근혜에게 5.16은 대선이 끝나는 날까지 따라다닐 겁니다. 그것도 박근혜 후보 자신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든 얼렁뚱땅 넘어가든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박 후보에게나 다른 대선 후보들에게 모두 좋은 공격 수단으로, 아킬레스건 정도로 생각돼서는 안 됩니다.
앞서 하워드 진으로부터 배웠듯이 이 문제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이며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분명하게 답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콜럼버스와 박정희가 여전히 영웅으로 떠받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니까요.
“콜롬버스를 20세기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인 도덕률은 20세기이든 15세기이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p.274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기소되고 있습니다. 김상곤, 곽노현, 장만채, 김승환, 장휘국. 이제 강원교육감만 남았나요. 겉으로 드러난 건 무상급식, 교원평가, 시국선언, 체벌, 학생인권이지만. 결국 경쟁과 통제, 보수 대 협동과 인권, 개혁이 맞부딪친 결과일 터인데. 한쪽에선 이 기회에 지방교육자치제를 없애버리려 하고, 다른 한쪽에선 안타깝지만 아직까진 지키기에 급급한 모양새이니. 교육개혁, 아직 멀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춰야 되겠습니까. 김상곤 대책위, 곽노현 대책위, 장만채 대책위가 아니라 진보교육감 공동대책위라도 만들어 싸워야지요. 어디 ‘개혁’과 ‘진보’가 쉽게 왔더랍니까. 매번 깨지고, 매번 졌다고 희망까지 놓아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치기도 할 겁니다. 힘도 들겠구요. 오죽해야 말이지요.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벌써 두 번이나 기소됐다 무죄 판결을 받았고,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후보자사후매수죄라는 얼토당토않은 법리로 대법까지 같으니 말입니다. 또 장만채 전남교육감은 배임과 횡령, 뇌물수수 혐의로 한 순간에 파렴치한이 됐으며,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장만채 교육감과 함께 선거홍보비 부당 청구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 또 최근엔 김승환 전북교육감마저 교과부로부터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하기야 애당초 눈엣가시 같았던 진보교육감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니. 이만한 사안들이 아니었어도, 또 이만한 일들이 없었어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을 이유를 기어코 만들었을 겁니다. 인권위에서조차 개선 권고를 한 학교생활기록부 학교 폭력 가해 사실 기재 거부와 관련해 교과부가 특감에 나서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민병휘 강원교육감밖에 없지만. 사사건건 시비를 걸려는 교과부로부터 언제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공동 대응을 해야겠습니다. 혹여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이러다 다음 번 선거도 전에 싹 다 갈릴 수도 있으니까요. 점잖은 도덕론으로 손가락질이나 할 줄 알고. 같지도 않은 핑계로 등 돌리는 이들은 빼고. 경쟁대신 협력이, 통제대신 자율이, 인권과 민주주의가 넘쳐나는 학교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 모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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