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핵발전소를 모두 세웠다고 합니다. 54기나 되는 걸 다 멈췄다고 하니 여름 전력 수요는커녕 당장 쓸 전기도 모자랄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조용하기만 한 게 도통 이상합니다. 아니 조용한 걸 넘어 담담하고 차분한 일본 사회를 보고 있으니 이건 뭐, 당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가동하려는 정부나 전력회사들이 되레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고. 기업들은 공장을 돌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칠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하기사 남들은 핵발전 포기에 대해 시비 선악을 가리어서 결정한 마당인데. 무슨 거꾸로 타는 보일러도 아니고, 르네상스를 열어젖히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이해가 되질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값싼 전기 펑펑 써가며 매년 수 조원씩 돈 남는 장사하는 재벌들이 떵떵거리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이런 게 뭐 기삿거리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그저 우스갯소리로. “국산화율 100%면 납품되는 거 전부다 단물 빨아 먹겠네”라는 말이 나도는 마당인데. 무신 거창하게 ‘원전 기술 자립’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착공식을 하는 건 뭐랍니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늘어만 가는 핵발전소를 보고 있으려니. 이구동성으로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 말을 제쳐놓더라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차라리 말입니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려니 말입니다. 제발 전기 좀 적게 쓰자 징징대는 꼴을 보고 있는 게 낫지, 싶습니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늘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양자역학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도 말이지요. 그만큼 인간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논쟁이 벌여졌다 해도 대게 일반인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로인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되거나 과장된 주장을 해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 과학자들 또는 관련된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인데요. 실은 대중들도 알기 쉽게 풀어내기보다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로 이야기하고 결정을 짓는, 쉽게 말해 과학자, 과학자 집단 스스로가 쌓은 성(城)에 일반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근 것뿐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attach/4673/1093422774.jpg)
![사용자 삽입 이미지](/attach/4673/1390044853.jpg)
<춘천을 떠나며 산 책>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이 활개를 치면서. 동네 서점은 학습지 판매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판국인지 오래됐습니다. 일, 이백 원도 아니고 몇 백 원 또는 몇 천 원씩 싸게 파는 마당에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당장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틀이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을 찾아 가는 게 되레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돼버렸지요. 그래도 부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보는 재미며. 동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이 다 있네, 하며 반갑게 들쳐보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는. 아무래도 동네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겠지요.
춘천에도 꽤나 큰 서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ㄱ문고니, ㅇ문고니, ㅂ어쩌고 저쩌고는 아니지만. 나름 본점에 지점까지 하나, 둘씩은 갖고 있었으니. 분명 큰 서점임에 틀림없지요. 하지만 춘천이 서울이나 하겠습니까. 그 큰 서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동네 서점들보다야 크긴 크지만. 말이 좋아 지점도 있는 큰 서점이지. 겨우 서가 한 켠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들. 한 층을 온통 차지하고 늘어선 초.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수험서들을 보자면. 동네 서점이라 할 만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가끔 책 구경을 나서게 되면. 책 절반은 조지 오웰이 직접 영국 중북부 지역의 광산촌에 들어가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리도 나머지 절반엔 사회주의가 왜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책을. 그래, 이런 책도 여기서 볼 수 있구나, 하며 선뜻 계산대까지 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태백에 와 처음 산 책>
느닷없이 태백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어울릴 듯. 보름 상간에 방 빼고 방 구하고. 도배, 장판에, 버릴 것 버리고 쌀 것 싸고. 자칫 번갯불에 볶은 콩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보름간 머물 오피스텔까지 하나 구해 놓고 춘천에 왔다, 다시 태백으로 갔다, 를 수차례. 다행히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좋은 곳에 집을 얻어 고생은 길게 하진 않았지만. 차비없이 한 이사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더랬습니다.
춘천에 비하면 사람 수만 봐도 5분의 1.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아 다니기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 크기도 대충 그만큼은 하려나. 아무튼 춘천보다도 더 작은 도시이니 서점이라곤 학교 앞 참고서 파는 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번화가라고 해봐야 걸어서도 겨우 20여분이면 다 둘러보는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E. H. 카아, 하워드 진과 같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역사학자들부터 챈들러, 캐너다인, 립겐스와 같은 생소한 역사학자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난 연구자에서부터 지역적으로도 미국뿐만 스페인, 독일, 프랑스, 러시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과 같은 책이 떡하니 서가에 진열돼 있는 서점이 있다니. 오호, 여기 태백. 아, 이런 책들도 여기 있구나, 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싶습니다.
이 글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https://blog.jinbo.net/skin/blog/myskin/4673/character-seevaa__1295258908/images/emoticon06.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