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핵발전소를 모두 세웠다고 합니다. 54기나 되는 걸 다 멈췄다고 하니 여름 전력 수요는커녕 당장 쓸 전기도 모자랄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조용하기만 한 게 도통 이상합니다. 아니 조용한 걸 넘어 담담하고 차분한 일본 사회를 보고 있으니 이건 뭐, 당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가동하려는 정부나 전력회사들이 되레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고. 기업들은 공장을 돌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칠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하기사 남들은 핵발전 포기에 대해 시비 선악을 가리어서 결정한 마당인데. 무슨 거꾸로 타는 보일러도 아니고, 르네상스를 열어젖히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이해가 되질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값싼 전기 펑펑 써가며 매년 수 조원씩 돈 남는 장사하는 재벌들이 떵떵거리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이런 게 뭐 기삿거리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그저 우스갯소리로. “국산화율 100%면 납품되는 거 전부다 단물 빨아 먹겠네”라는 말이 나도는 마당인데. 무신 거창하게 ‘원전 기술 자립’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착공식을 하는 건 뭐랍니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늘어만 가는 핵발전소를 보고 있으려니. 이구동성으로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 말을 제쳐놓더라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차라리 말입니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려니 말입니다. 제발 전기 좀 적게 쓰자 징징대는 꼴을 보고 있는 게 낫지, 싶습니다.

 
판때리다 : 시비 선악을 가리어서 결정하다.
 
일본이 핵발전소 가동을 모두 정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독일이나, 벨기에, 스웨덴, 스위스처럼 당장에 탈핵을 선언하지는 않을 겁니다.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데다, 가동 중지로 인해 발생하는 전력난을 다른 에너지로 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동에 수출되는 핵발전소에 대해 핵무기 제조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들과 후쿠시마 발전소에 핵무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의혹들이 제기되는 걸 보건데. 상황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재가동할 틈만 노리고 있을 뿐이지 결코 핵무장 정책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란 얘깁니다. 물론 당장에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보급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도 이미 많은 양의 전기를 쓰지 않고 있는 마당에 더 절전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도 하고. 또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모두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개발, 제조할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로부터 핵폭탄의 공포를 체험했던 일본 사회가 한 세대도 채 지나기 전에 프랑스와 미국 다음으로 핵발전 강국이 된 것이나. 그로부터 또 불과 두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후쿠시마 폭발을 경험했음에도 핵발전에 대해 판때리기를 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운 일일까요. 거기다 일본 다음으로 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제는 ‘황금알’ 낳는 수출 주력 산업으로 대통령까지 나서는 우리나라까지 덧붙인다면. 그래요, 망상이라면 참말로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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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3:34 2012/05/11 13:34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늘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양자역학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도 말이지요. 그만큼 인간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논쟁이 벌여졌다 해도 대게 일반인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로인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되거나 과장된 주장을 해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 과학자들 또는 관련된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인데요. 실은 대중들도 알기 쉽게 풀어내기보다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로 이야기하고 결정을 짓는, 쉽게 말해 과학자, 과학자 집단 스스로가 쌓은 성(城)에 일반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근 것뿐이지요.

 
인간 복제 문제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처음 이 문제를 건드린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자들까지 참여해 열띤 논쟁이 일어난 걸 보면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는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또 그것이 미칠 영향을 고려해볼 때 분명 이해당사자임이 틀림없는데도 말이지요. 통 일반인들이 끼어들 틈은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복제 문제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난치병 혹은 불치병 환자, 그리고 그 가족,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불임부부가 인간 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버공간이 됐건 어느 토론회장이나 공청회장, 심지어는 법원 앞에서까지 찬.반 행동을 직접 하기도 합니다. 아니 가만 보고 있으면 관련 과학자 집단이나 학자들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나설 때가 있으니. 이 문제만큼은 조금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찬성하는 이들 모두가 앞서 말했듯이 과학자 집단, 학자들이 주장하듯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되거나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던진다면. 글쎄요. 쉽게 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터이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도 관련된 전문지식이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해하기 쉬운, 쟁점이 무엇이고 찬, 반 진영이 내세우는 논리와 주장은 무엇인지, 어떤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하는 지 등등을 소개하는 책-보건복지 전문기자로 활동 중인 안종주가 쓴 <인간 복제, 그 빛과 그림자>도 대략 그런 종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반인이라고 해서 결코 무시하거나 얕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정보들 중에는 거짓되거나 과장된 것들도 많을뿐더러 일반인들이 그것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악의적이지는 않겠지만 대게는 찬성, 반대 쪽 정보가 조금씩은 그럴듯한 포장을 하거나 과장을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또 찬성,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내를 갖고 듣기보다는 서둘러 반격할 태세를 취합니다. 게다가 상대편이 하는 얘기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할 정보나 책에 더 관심이 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소개한 책처럼 말입니다. 책을 쓴 사람이 기자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기사모음과 거기에 덧붙인 글쓴이의 의견, 이 정도 들어가 있는 정도일 뿐인데다가. ‘빛과 그림자’라는 비교적 균형 잡힌 정보와 주장을 소개할 것처럼 해 놓고는. 어느 한쪽 주장에 대해 편향적인 애기를 하는 책들로 인해. 되레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으니. 얕보거나 무시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얘기를 다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학이라는 전문영역이라 해서 일반인들이 그 문제에 대해 발언권이 없다거나 어떤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과학자들이나 학자들이 대중에게 모순된 지식이나 비과학적 사실들을 진리 또는 과학적 사실로 포장한다고 말하기 전에. 과학자, 학자들 스스로 꽁꽁 숨겨놓은 지식과 과학적 사실들을 대중들 앞에 풀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분과학문으로 세분화된 현대 과학이 인간과 자연, 우주를 연결 지어 사고하기보다는 실험실 속으로 들어가 광학현미경으로만 세상을 보려하고. 좁게는 어떤 삶을 살아 갈 것인가, 라는 철학적 인식 기반에서부터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인간사회, 자연계, 우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동료들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 다는 것은. 스스로 찬.반 논쟁에서 목소리를 잃을 수밖에 없음을, 아니 문제해결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인 것이지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생활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오래 살고자 하는 욕구도 충분하진 않지만 만족스럽게 됐고, 기대수명도 늘어났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사람들도 줄어들었고 암이나 백혈병 같은 난치병 치료도 머지않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문명이라고 하는, 인간 생활수준도 높아졌지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나눌 수 있는가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와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학자, 과학자 집단이 이제껏 누려왔던 특권을 계속 지키려고만 한다면. 그들이 해내는 일들로 인해 인간 사회, 자연, 우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예견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가령 인간 복제 문제를 과학자, 과학자 집단에게만 맡겼을 때 벌어질 우리 사회의 혼란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성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성문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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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5 22:24 2012/05/05 22:24
사용자 삽입 이미지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을 일으킨 두 나라, 즉 독일과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미국이 보여준 태도는 매우 상반된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뉴른베르크 재판 과정만 보더라도 A급 전범은 물론이고 나치에 단순 부역한 이들도 어떤 형태로든 그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천황에 대해 기소조차 하지 않았던 토쿄 재판을 통해 B, C급을 포함 A급 전범 대부분을 풀어줍니다. 독일에 대한 전쟁 책임 추궁은 매우 혹독했던 반면 일본에게는 매우 관대했던 겁니다.
 
일이 이렇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당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존재했던 정치.사회적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보인 이 이중성은 이후 독일과 일본이 과거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길, <독일과 일본, 그 두 개의 전후>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 제목 ‘기억과 망각’과 같은 서로 다른 두 길을 가게 합니다. 
 
물론 두 재판 이후 독일과 일본 사회가 보여준 과거 극복을 위한 노력이 다르게 진행된 것에는 딱히 그런 이유만 있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책임을 미국에만 떠넘기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니까요. 예를 들어 68혁명으로 대변되는 격동의 시기에 보여준 독일 지식인들의 역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이미지가 증폭되고 내면화된 일본 국민들의 피해의식과 같은 것들은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지요. 요컨대 2차 대전 후 ‘전쟁 책임과 전후 책임’ 문제를 얘기할 땐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전후 처리과정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미국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나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우리나라로써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가령 위안부 할머니에서부터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문제를 두고 한일청구권협정을 앞세워 발뺌하는 일본에게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과 윤리의식만을 지적하는 일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을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일본인들에게는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이미 그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임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몇 년 전,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맥아더 - 일본 천황의 전범 소추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731부대로 잘 알려진 세균전 부대에 대해서도 전범 면책 보증을 해주었던 인물입니다 - 동상을 두고 없애야 하느니, 놔둬야 하느니 하며 몸싸움까지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 문제가 해프닝 내지는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고 만 것은, 여전히 우리 역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과 토론, 반성, 성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과연 누가 누구에게 과거에 잘못한 일을 따끔하게 지적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또 미국이라면 역사적 사실마저 눈감고 두둔하는 일이 정말 옳은 일이고 잘하는 일인지도 알 수 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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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08:38 2012/04/20 08:38
선거가 시작됐나, 싶었는데 그새 내일이 투표일입니다. 워낙에 선거운동 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대선을 앞둬서인가요. 각 정당들이 이전 선거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선거를 치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정당들이 인기를 잃으면 당 이름을 바꾼다”는 해외기사까지 나게 하는 두 거대 양당, 새누리당은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 총력전을 펼쳤고, 민주통합당 역시 MB정권 심판을 내걸고 ‘야권연대’까지 이뤘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직접 선거에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안철수까지, 아무래도 다들 이번 선거를 통해 다음 대선까지 어찌어찌해볼 생각들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 아니 다 끝나가는 마당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50년, 100년을 두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싸우기는커녕 진흙탕 싸움만 하다 볼일 다 봤으니. 뭐, 새누리당이야 어차피 정책이라고 해봐야 공약(空約)에 불과한 말잔치에 불과하니 볼 것도 없었지만.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뭉친 반MB 진영 역시 솔직하고 뼈저린 반성 없이 내건 ‘한미FTA폐기’ 주장에서 보듯 일단 표부터 얻고 보자는 속셈이 뻔히 보였고.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봐도 정당이나 정책보단 인물을 보고 뽑겠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 좋아 인물이지, 또 ‘그 밥에 그 나물’들이 잔칫상에 올라올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요란스레 떠들어대는 선거 관련 뉴스에도 그닥 관심이 가질 않았고. 집으로 배달 온 공보물도 봉투만 겨우 뜯어내고 투표소 위치만 확인했다 뿐이지 거들떠도 안 봤는데요. 그나마 진보신당에서 낸 한 장짜리 공보물 “세상을 바꾸는 동행/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정당투표”가 없었다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겁니다. 지역구 후보자들이라고 해봐야 달랑 세 명, 그것도 꼴도 보기 싫은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이렇게 셋인데다, 그나마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던 녹색당은, 혹시 빠진 거 아닌가 싶어 몇 번이나 뒤적거렸는데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해서 내일이 투표긴 하지만 녹색당 홈페이지도 가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정책정보시스템에서 비례대표 선거공보 e-book도 다운받아 보고. 정당별 10대 공약이며 지역구 후보들 공약까지 쭉 훑어봤는데요. 느닷없이 이번 선거에서 정당투표는 통합진보당을 집중투표하기로 결정한 민주노총이 떠오르더군요. 국회의원 뺏지에 목매달아 신자유주의 세력과 손을 잡은 것도 눈꼴사나워 죽겠는데, 성폭력 사건 당사자를 비례후보로 내세운 것도 모자라, 남근 중심 성적 조롱에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우쭐대는 김용민까지 감싸고도는 통진당을 팍팍 밀어 주기로 한 민주노총이 말입니다.
 
내심 진보신당은 지지한다고 선언하진 않더라도 통진당을 꼭 짚어 투표하라고 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그래도 5년 넘게 한솥밥을 먹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진 짝사랑이었나 봅니다. 물론 5년 전에도 설마 그러겠어, 하며 뒤통수를 맞았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충격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씁쓸함은 쉽게 지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새로운 시작은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우직하게 제 길을 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걸 알면서도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살만한 것인 걸요. 그러니 아무래도 내일 투표소에선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지역후보야 대충 1번과 3번을 빼고 찍으면 되겠지만. 정당투표, 11번과 16번 사이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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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3:26 2012/04/10 13:26

사용자 삽입 이미지<춘천을 떠나며 산 책>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이 활개를 치면서. 동네 서점은 학습지 판매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판국인지 오래됐습니다. 일, 이백 원도 아니고 몇 백 원 또는 몇 천 원씩 싸게 파는 마당에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당장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틀이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을 찾아 가는 게 되레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돼버렸지요. 그래도 부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보는 재미며. 동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이 다 있네, 하며 반갑게 들쳐보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는. 아무래도 동네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겠지요.

 

춘천에도 꽤나 큰 서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ㄱ문고니, ㅇ문고니, ㅂ어쩌고 저쩌고는 아니지만. 나름 본점에 지점까지 하나, 둘씩은 갖고 있었으니. 분명 큰 서점임에 틀림없지요. 하지만 춘천이 서울이나 하겠습니까. 그 큰 서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동네 서점들보다야 크긴 크지만. 말이 좋아 지점도 있는 큰 서점이지. 겨우 서가 한 켠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들. 한 층을 온통 차지하고 늘어선 초.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수험서들을 보자면. 동네 서점이라 할 만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가끔 책 구경을 나서게 되면. 책 절반은 조지 오웰이 직접 영국 중북부 지역의 광산촌에 들어가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리도 나머지 절반엔 사회주의가 왜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책을. 그래, 이런 책도 여기서 볼 수 있구나, 하며 선뜻 계산대까지 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태백에 와 처음 산 책>

 

느닷없이 태백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어울릴 듯. 보름 상간에 방 빼고 방 구하고. 도배, 장판에, 버릴 것 버리고 쌀 것 싸고. 자칫 번갯불에 볶은 콩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보름간 머물 오피스텔까지 하나 구해 놓고 춘천에 왔다, 다시 태백으로 갔다, 를 수차례. 다행히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좋은 곳에 집을 얻어 고생은 길게 하진 않았지만. 차비없이 한 이사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더랬습니다.

 

춘천에 비하면 사람 수만 봐도 5분의 1.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아 다니기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 크기도 대충 그만큼은 하려나. 아무튼 춘천보다도 더 작은 도시이니 서점이라곤 학교 앞 참고서 파는 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번화가라고 해봐야 걸어서도 겨우 20여분이면 다 둘러보는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E. H. 카아, 하워드 진과 같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역사학자들부터 챈들러, 캐너다인, 립겐스와 같은 생소한 역사학자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난 연구자에서부터 지역적으로도 미국뿐만 스페인, 독일, 프랑스, 러시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과 같은 책이 떡하니 서가에 진열돼 있는 서점이 있다니. 오호, 여기 태백. 아, 이런 책들도 여기 있구나, 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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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6 14:56 2012/04/06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