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정부가 삼척과 영덕을 핵발전소 후보지로 선정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재검토니 폐쇄니 하는 마당인데 말이지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던 모양이고. 처음부터 ‘녹색성장’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이니. 아마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잠잠해질 기다렸던 모양새입니다. 물론 전부터 안전성을 높이면 문제없다고 했으니 더 큰 사고가 나도 밀어붙였을 터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후쿠시마 폭발 사고 직후 단골로 등장하던 국내 핵공학자들 가운데 핵 발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하기야 잘못 말했다간, 아니 진실을 얘기했다간 당장 돈줄이 막힐 터이니 그랬을 것이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결국 사상누각이란 걸 고백하는 셈이니 그리 말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발생 훨씬 이전에 핵발전소가 가지는 이론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점뿐만 아니라 핵 발전의 원리까지 알기 쉽게 짚어주는 책을 펴낸 물리학자가 있었음에도 재앙을 막지 못한 일본을 보고 있으려니. 절대 그럴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핵 발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가지고 가야할 위험을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합니다.
 
게다가 후쿠시마 재앙이 있은 지 불과 3일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UAE 원전 기공식을 하질 않나, 알려진 것만 해도 서울 월계동에 이어 부산에서도 방사능 유출이 생겼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 해에만 국내 원전사고 건수가 12건이나 되는데도 ‘닥치고 원전’만을 외치니. 때 아닌 원전 르네상스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네요. 그저 앞으로 40년은 넘게 살아야 할 강원도에서만큼은 핵발전소가 들어서질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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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09:13 2012/01/16 09:13

119 응급전화에 대고 ‘김문수입니다’,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를 반복했던 김문수는 ‘나’임을 확인받지 못해 화가 났던 걸까요. 아니면, 전화를 받은 사람이 관등‘성명’을 밝히지 않아 열 받았던 걸까요.

 
기억나는 것만 해도. “나 자신이 한때 철거민,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나도 한때 노점상.....”, “나도 학생 때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고통을 겪었던.....”,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아무튼 잊을만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2MB은. ‘나’가 누군지, ‘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히 가르쳐주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더 ‘나’를 인정해달라는 투정이었을까요. 
 
인터넷 강국이란 나라에서 이메일 하나를 쓰려 해도, 게시판에 글 하나, 댓글 하나를 쓰려 해도. 혹여 길을 걷다 불심검문에라도 걸린다면,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 때 투표하려면. 이도저도 아니고, 은행에서 통장 만들 때, 면허증 취득할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13자리 숫자를 입력하는데. 그게 정말 ‘나’인가요, 아니면 그저 국가가 부여한 ‘고유번호’일뿐인가요.
 
뒷북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엇박자는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구요. 한쪽에선 터진 둑을 막아보겠다며 실명제를 없애고 주민번호 수집․이용을 금지한다고 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전자주민증을 만들겠다고 내 놓은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으니 말입니다.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랍니다. 일 년에 무려 499건이나 발생하는 위변조 때문이라는데. 한 회사에서 빠져나간 개인정보 3천 5백만 명은 대체 뭐랍니까. 또 최고 보안설비라고 자랑하는 곳들도 예외가 없는데 말입니다. 이미 ‘나’임을 증명하는 번호가 곧 ‘돈’임을, ‘나’임을 나타내는 숫자를 사고파는 암시장이 버젓이 있는데.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궁색해도 이만저만해야지요.
 
‘나’는 ‘나’일 뿐입니다. ‘나’를 나타내고 ‘나’를 증명하는 건. ‘관등성명’도, ‘나’가 전에 뭐했다고 해서도, 더더구나 국가가 정해준 13자리 숫자는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이 ‘고유번호’로 ‘나’임을 밝혀야 하는지, ‘나’는 그저 ‘나’로 다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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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32 2012/01/09 14:32
여․야 모두 잰걸음입니다. 결국 공주가 앞장선 딴나라당에서부터 지도부 선출을 위해 전국을 도는 민주통합당까지 말입니다. 아, 일찌감치 공동지도부 선출을 마친 통합진보당에 홍세화를 대표로 내세워 철지부심하고 있는 진보신당도 빠질 순 없지요. 마치 한 몸인 양 ‘인적쇄신’이니 ‘물갈이’를 말하고, 너도나도 ‘소통’과 ‘서민’을 외치니. 이만하면 눈이 번쩍 뜨고 귀가 활짝 트는 일도 생길법도 한데. 그도 그럴 것이 20년 만이라지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이니 말입니다. 부디 꼴통은 제일 먼저 제쳐놓고, 짝퉁 ‘진보’도 잘 가려낸다면. 또 입만 바른 소린 이미 여러 번 겪었으니 다시 속지 말고 허황된 장밋빛 그림에도 현혹되지 않는다면. 혹시 또 모르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행복한 사회, 평화로운 사회를 향한 계단을 두 계단쯤은 훌쩍 오를 수 있을지 말입니다.
 
통터지다: 여럿이 한꺼번에 냅다 쏟아져 나오다     
 
안철수 바람에 공주가 나섰습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나봅니다. 불법선거 꼬리 자르기부터 카카때리기까지, ‘물갈이’와 ‘인적쇄신’, 가만 보고 있으니 개과천선이라도 하는 것처럼 요란은 합니다. 하긴 곧 있으면 총선이고 또 얼마 안 있어 대선인데 시늉은 해야겠으니 그렇겠지요. 허나 그렇다고 해서 20대를 대변한다고 데려온 작자만 봐도 뻔 하듯. 아무리 통터져봐야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이번만큼은 ‘속지말자 딴날당 다시보자 공주’를 새기고 또 새겨야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짝퉁 ‘진보’에게 몰아주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선거 때만 말고 정말 평소에도 잘하는 정당, 사람을 찾아보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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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6:54 2012/01/04 16:54

1.

내년엔 미뤄뒀던 여행을 많이 가기로 했습니다. 춘천으로 이사와 4년을 지내며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좋아하는 걷기여행도 고작 하루, 이틀로 네댓 번 간 게 다고. 바람 쐬러 나간 건 영주 부석사를 둘러보고 온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말입니다. 해서 일단 동쪽 바닷길 있는 강릉 바우길을 시작으로 스페인 산티아고길, 군산 구불길, 남해 바래길과 작은 섬들까지. 적어도 육 개월은 무작정 걷기로 작정한 겁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늘어난 뱃살 줄이는 건 부수입일터이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다시 시작하는데 큰 힘이 되겠거니 싶습니다.

 

2.

제주 올레길. 처음 올레길이 소개됐을 때부터 언제 걷나 오매불망이었습니다. 한때는 북적대는 사람들 틈을 걷는 게 싫어 ‘흥’ 하며 짐짓 모른 채 하기도 했고. 유행처럼 번진 걷기 열풍에 이건 또 뭔가 싶어 외면도 했지만. 이번 걷기 여행을 준비하면서 날이 풀리면 이곳부터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말입니다. 올레길에서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제주 중산간의 숨은 비경과 작은 섬들’, ‘제주의 고유한 문화와 풍광’을 찾아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길’을 넘어 ‘제주를 세계와 이어주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새삼스레 느끼고 싶어서였을까요.

 

3.

사용자 삽입 이미지1946년

- 제주농업학교, 오현 중학원: 동맹휴학(일제 잔재, 독재적인 교육 반대)

 

1947년 

- 관덕정 광장

- “조선의 식민지화를 양과자로부터 막아내자”(밀가루에 비료, 석유, 석탄분이 섞인 사건 계기(1946년)

- 제주시내 중학생(제주신보: 1천여 명)

- 제주도 양과자 수입반대: 제주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미시위

 

1947년 3월 1일

- 제주북초등학교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대회

- 2만 5천 - 3만여 명

- 애월읍, 조천면 등에서도 참가

- 6명의 주민 총상으로 사망

 

3월 10일

- 민.관 총파업

 

1948년 3월 6일

- 조천중학원 2학년 김용철 고문으로 유치장에서 사망

- 조천중학원 시위(이전에도 교사 연행에 항의 시위)

 

3월

- 조천면 신촌리: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신촌회의’

- 무장투쟁 결정

 

4월 3일 새벽 2시

- 무장봉기: 봉화(오름)

- 12개 지서, 우익단체 집과 사무실

* 모슬포: 미군정 경비대 제9연대 주둔-진압작전 참여 명령

 

4월 28일

- 서남부 대정명 구억초등학교: 9연대장 김익렬-무장대 총책 김달삼 담판

- 전투중지 합의

 

5월 1일(사흘 후)

- 제주읍 오라리: 무장대에 피살된 여인의 장례식 기점 무장대와 경찰 충돌

- 이후 미군이 경비대 총공격 명령으로 유혈사태 확대

- 4.3 기록필름 <제주도의 메이데이>

 

5월 10일

- 17개 읍.면 가운데 7개 읍.면에서 선거(단선) 반대 활동

- 중문, 표선, 조천 등 투표소 파괴, 무장대 21명, 경찰 1명, 우익인사 7명 사망

- 대흘, 와흘, 와산 등 중산간 마을 투표함 운반 면장 위협(미군정)

 

9월 초

- 진압작전 재개

- ‘삼진 작전’ 개시(불태워 없애고, 죽여 없애고, 굶겨 없애는)

* 삼진.삼광: 일본이 중국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작전으로 대량 살상 자행

- 해안선 5km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 무허가 통행 금지

- 신문사 편집국장, 제주중학교 교장 등 총살, 법원장 연행

- 해안선 봉쇄

 

10월 19일

- 여순사건 발생: 제주도 출동 명령 거부: 14연대 1대대

 

10월 말

- 9연대 병사 17명 ‘공산주의자 세포’ 혐의로 체포, 이후 6명 처형

- 북제주군 애월면 고성리: 135명 사살

- 북제주군 조천면 교래리 부근: 130여명 사살

 

11월 초

- 제주 출신 9연대 장병 100여명 총살

- 납읍리: 무장대에 의한 주민 살해

- ‘빗개’(토벌대의 진입을 감시하는 보초) / ‘비께’(바다고기로 상어의 일종)

 

1948년 10월부터 1949년 3월까지 6개월간 중산간 마을 초토화

- 남제주군 구좌면 세화리

- 표선면 성읍리

- 남원면 남원리, 위미리

 

11월 13일

- 북제주군 애월면 소길리 원동마을, 조천면 교래리, 화흘리 2구, 신흥리

- 남제주군 안덕면 상천리, 상창리, 창천리

- 함덕초등학교 조천면 관내 20대 청년 200여명 가운데 150여명 총살

 

11월 17일

- 제주 계엄령 선포

 

11월

- 중문면 영남마을 50여명 희생

- 조천면 선흘리(21일): ‘선흘곶’, 도틀굴(반못굴), 목시물굴, 밴뱅이굴 등에서 주민 총살

- 21일부터 30일까지: 학살 615명(토벌대 총 12정, 칼 11자루 획득)

 

12월

- 표선 백사장: 토산리 주민 157명 총살

-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130여 가구 / ‘무등이왓’ 100여명, ‘삼밭구석’ 50여명 사망, ‘큰넓이궤’ 120여명 60여 일 동안 숨어 삼

- 2-6일 / 12-20일: 도민 677명 사살, 162명 체포

 

1949년 1월 경

- 17일: 제주읍 조천면 북촌리 300여명 총살, 함덕으로 간 주민 100여명 희생, ‘무남촌’

 

1월 24일

- 북제주군 애월면 하귀리 개수동 63명 희생

- 4.19 후 국회차원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때 제주도 학살 고발 제1호로 기록

 

2월 4일

- 제주읍 용강리 주민 105명 희생

 

4월 1일 미군 정보보고서

- 48년 한 해 동안 1만 5천여 명의 주민 희생, 이중 80% 토벌대에 의해 사살로 기록

 

5월 10일

- 제주 재선거 국회의원 선출

 

5월 15일

-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 해체

 

6월 8일

- 관덕정 광장 이덕구 주검 내검

 

1953년 1월 말

- 유격전 특수부대 무지개부대 투입 한라산 토벌작전 전개

 

1954년 9월 21일

- 한라산 금족지역 해제, 전면 개방

 

4.

그래요. 올레길에는 없는. 제주의 역사와 현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겁니다. 중산간 마을, 아니 제주도 곳곳에 감춰진 상처를, 아픔을. 강정마을 구럼비가 토해내는 통곡을 직접 보고 아파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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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1 16:37 2011/12/31 16:37

첫째 날, 왕곡마을을 둘러보고 해안길을 따라 작은 항구들을 차례로 지나다(2010년 6월 23일)

 
왕곡마을은 남달랐다. 비교적 규모가 큰 읍성마을들과 달리 작고 소박한 마을에. 기와집과 초가집이 한 집에 어울려 있는 모습에. 요란한 시설들도 없고 되레 변변한 안내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 적당히 나무그늘 아래 자리 잡고 앉아 책도 읽고 쪽잠도 자면. 길을 떠나기 쉽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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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는 큰 길을 버리고 샛길로, 동네 길로 접어드는데. 왼쪽으로는 송지호가 햇살을 반짝이며 일렁이고. 오른쪽으로는 고만고만한 텃밭이며 논두렁이 따라온다. 또 사람 그림자는커녕 개짓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은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말끔히 식혀주니. 이거야 말로 숨은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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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렇게 오붓하게 걷고 나니 이번엔 쪽빛 바다가 기다리고 있는데. 백도라는 곳에서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소나무 밑 평상에서 꿀맛 나는 쪽잠도 자고. 교암이라는 곳에서는 맛난 김치찌개로 출출한 배를 채우고 바로 옆 천학정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을 바다만 바라보기도 하고. 또 아야진항에서도 한 낮 햇빛을 피해 쪽잠을 잔 후 청간정에 들러 수평선만 바라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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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저 철조망보다 마음에 새겨진 철조망이 더 얽혀있겠건만. 어디나 경치 좋은 곳이면 바다를 가로막고 서 있는 철조망이 눈에 자꾸만 거슬린다. 그리고 여기저기 파 놓은 참호에. 초소와 군인들. 대전차 방호벽까지. ‘천안함 침몰’을 호기 삼아 전쟁 불사를 외치는 이 정권 아래서는 저 철조망이 더 튼튼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단 생각에. 또 난데없는 전쟁 드라마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있으니. 이건 ‘6.25’를 상기하며 한판 붙어 보자는 심보가 아니고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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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대로 머물 수만은 없어 쉬엄쉬엄 다시 길을 나서는데. 속초를 앞둔 봉포항에 이르러서는 무거워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다행히 싹싹하면서도 정겨운 민박집을 어렵지 않게 찾아 동쪽 바다에선 보기 드문 저녁노을도 보고. 걷기여행 중 처음으로 밥도 해 먹으니. 기분만은 밤을 새도 모자란데. 아까부터 무거워진 몸과 마음 때문에 겨우겨우 허기만 때우고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다.     
 
둘째 날, 등대도 올라가고 갯배도 타고, 속초를 걷다(2010년 6월 24일)
 
늦은 아침에 커피까지 타 마시고 나니 그새 9시가 훌쩍 넘는다. 한 달 전만해도 이 시간이면 딱 걷기 좋은 날씨이었겠지만. 지금은 내리쬐는 햇빛이 벌써부터 심상치가 않다. 애초에 12시부터 3시까진 무조건 쉬기로 했으니. 오전에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채 3시간도 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땡볕에 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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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시내에 접어드니 기껏 한 시간 남짓 걸었나. 하지만 벌써부터 목덜미가 뜨끈뜨근하다. 잠깐 속초 등대에 올라 땀도 식히고 등대도 구경하니 다시 걸을 힘이 나긴 하는데. 이번엔 배가 ‘꼬르륵’. 색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서둘러 갯배에 오르는데.
 
모 방송국 프로그램 출연진이 거의 도배가 되다시피 한 아바이마을은 이런저런 북녘 음식들이 입맛을 당기는 것 빼곤. 이방인, 아니 잠시잠깐 지나가는 이의 헛된 생각이겠지만. 조만간 놓일 다리와 함께 옛 추억이 사라지지나 않을런지.
 
여기까지 와서 대형 마트에 간다는 게 조금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한 낮 더위도 피하고 세 시간 남짓 책도 볼 수 있다는 유혹에. 애들 놀이방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단편소설도 하나 읽고. 방전된 충전지를 대신할 건전지도 하나 사고. 모처럼 이것저것 눈 구경도 하니. 여전히 뜨겁긴 하지만 아까보단 조금 낫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수욕은 아니더라도 발은 담가야겠는데. 마음 급한 피서객들은 벌써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바나나 보트에 몸을 싣고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외옹치항 못 미쳐 이름 모를 해변가에 신발이며 양말을 벗어들고 바닷물에 뛰어드니. 목덜미며 등 뒤에 흐르는 땀이 금세 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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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항구를 넓히느라 번잡스런 대포항에 이르니 번잡스런 만큼이나 사람도 참 많다. 그래도 그만큼 또 싱싱한 활어들도 많으니 쉬엄쉬엄 배를 채우기에도 딱 좋은데. 잠깐만 쉬었다 간다는 게. 벌건 대낮에 소주까지 곁들인 회 한 접시. 비릿한 바다 냄새, 어깨를 연신 부딪치는 사람들, 시끌시끌한 포구 모습에 술이 술술 들어간다. 
 
결국 뉘엿뉘엿 설악을 넘어가는 해를 오른편에 두고 겨우 삼십분 남짓을 더 걷질 못 한다. 그런데 가만, 여기가 어딘가 보니. 지난 번 느닷없이 달려와 바다구경을 하고 돌아갔던 물치항. 어째 낯이 익다, 싶었다. 그러나저러나 도로 시내버스를 타고 속초로 되돌아가니. 이거야 원. 술기운인지 노독인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겨우겨우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오르니 눈이 스르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지경이다. 
 
* 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째 날은 왕곡마을을 들러 봉포항까지 약 19km, 둘째 날은 갯배도 타고 낮술도 마시며 느긋이 물치항까지 17km를 걸었다.
 
* 가고, 오고
두 번째 여행과 같은 방법으로 가고, 왔으니 그때를 참고.
 

* 잠잘 곳   

당분간 잠잘 곳 걱정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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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4 17:01 2011/12/24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