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천리 농사 끝

from 11년 만천리 2011/11/20 10:20
서리태 - 첫째 날(11월15일/맑음 -3-13도)
 
지지난주에 서리태를 베어 널었는데 이제야 털러 나왔다. 오락가락 비가 자주 온 탓이긴 한데, 덕분에 푹 쉬었으니. 이제 부지런히 털어야 하는데, 얼추 보니 이틀, 사흘이면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부터 또 비가 온다고 하니 그때까진 다 마쳐야겠고. 하루 정도 밭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음, 오늘 해야 할 양이 많군.
 
서리태 - 둘째 날(11월 16일/맑음 0-15도)
 
점심 먹고 서둘러 밭에 나왔다. 오늘까진 끝내야 내일 하루 팥 골라내고, 이것저것 정리도 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 다행이 허겁지겁 한 숨도 안 쉬고 일한 덕에 계획했던 대로 일은 다 마쳤으니. 수확해야 할 건 다 했고. 올 농사도 이젠 마무리다.   
 
만천리 농사 끝(11월 17일/흐림 6-13도)
 
만천리 밭에서 농사를 지은 게 3년이다. 첫 해엔 고추를 중심으로 심었다가 둘째 해엔 콩. 그리고 올 해엔 잡곡을 많이 심었는데. 자전거로 오가며 보낸 3년이 오래된 사진처럼 남는다. 그렇다고 ‘정’까지 생긴 건 아니고. 어차피 내년엔 어찌될지 모르니 접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아쉽긴 아쉬운가보다. 지난 추위에도 살아남은 콩 꼬투리만 따고 오려 했는데. 해가 져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이제 차분히 지난 3년, 아니 삼천동까지 해서 4년 간 실험해왔던 농사를 돌아보며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차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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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0 10:20 2011/11/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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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거진등대와 해맞이 공원을 둘러보다(2010년 5월 21일)

  

연휴에 길을 나서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자마자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에. 결국 새로 놓은 길을 두고 옛 국도를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인제를 지나 원통에 들어서자 엉금엉금. 예정치도 않은 휴게소에 잠시 쉬어 보기도 하지만. 밀려드는 차들에 채 10분도 여유가 없고. 승객들도 승객들이지만. 한 번이라도 더 버스를 몰아야 하는 기사아저씨로서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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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리는 길목에 이르니 조금씩 길이 뚫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시령 터널을 지나니 평소 속도를 되찾는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계획했던 것과는 어긋나고 있었고.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한참 차가 밀릴 때 기사분이 겁을 준 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역시나 30여분 이상 늦었다. 
 
시간이 늦긴 했지만 일단 요기는 하고 본다. 그리고는 곧장, 시내버스긴 하지만 고성군, 그것도 마차진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운 좋게도. 금방 버스에 오를 수 있다.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한없이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1-1번 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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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번 여행 때 다음 여행의 출발지로는 조금 애매한 화진포에서 멈췄던 데에는. 짧은 겨울 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일정을 짰던 탓도 있었지만. 역시나 별 일도 아닌 것으로 대판 말싸움을 한 탓이 컸다. 무슨 이유였는지 지금도 가뭇가뭇한 걸 보니. 필시 웃기지도 않을 이유였을 테지만. 어쨌든. 그때 거진까지 갔었더라면 속초에서 직행버스를 탈 수도 있고. 홍천에서 시외버스를 탈 수도 있었을 것을.
 
그래도 저번엔 꽃을 볼 수 없었지만. 이번엔 빨갛게 봉오리가 올라온 해당화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고. 황량한 느낌이었던 화진포도 그세 봄옷을 갈아입고 마중하니 오히려 더 낫다. 또 바쁜 시간에 쫓겼다면 그냥 거진읍내로 허겁지겁 들어갔을 터이지만. 지금은 거진등대 해맞이 공원까지 덤으로 걸을 수 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채 세 시간도 안 되게 걸었지만. 오랜만에 참 걷기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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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관동별곡 8백리 길을 따라 왕곡마을 입구까지(2010년 5월 22일)
 
어제 읍내 뒷산에 있는 공원 구경을 하지 않고 왔다면. 아침부터 거길 기어오르느라 땀깨나 흘렸을 터인데. 느긋이 해변 길을 따라 거진항을 빠져나오니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그리고 어제 거진에 들어오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관동별곡 8백리 길> 표지판이 제법 갈림길이며 마을 입구마다 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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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광풍에 성수기가 아닌 때에도 비행기 표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들로서는 때 아닌 걷기 열풍에 한 동안은 많은 동지들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도 했는데. 지리산 둘레길도 그렇고. 제주도 올레길도 그렇고. 길을 이어준 사람들 생각, 마음이 지금 길을 걷는 사람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길과 길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그런 걷기를 얼마나 마음에 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것도 한때의 유행처럼 번지는 때잔차질이 애꿎은 4대강 삽질 망패막이로 전락하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 마냥. 우려는 늘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일까. 
 
정철이 걸었다던 <관동별곡 8백리 길>은 아직은 다 이어진 길은 아니다. 우선은 총석정과 삼일포가 더 북쪽에 있는 데다. 옛길을 복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콘크리트와 시멘트가 발라져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를 바로 볼 수 없게 막아 선 철책들이. 천안함 사건만 보더라도 언제 걷어질까, 기약 할 수 없으니. 이대로 길을 잇는다손 치더라도 걷는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만이라도 따로 손대지 말고, 삽질하지 말고, 있는 길 살며시 이어 놓기만 해도 걷는 재미는 꽤나 있겠다.
 
거진을 출발해 두 시간을 조금 넘게 걸으니 곧 간성읍인데.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때맞은 장날을 맞아 여기저기서 맞춰 입은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총출동이다. 1톤 트럭을 개조한 차마다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둘씩 셋씩 짝지은 운동원들은 가겟집마다 머리를 내민다. 이거야 장 구경을 한 건지 선거운동 구경을 한 건지.
 
어수선한 간성읍을 빠져나와 등나무 아래에서 쪽잠을 달게 자고 나니 시계 바늘이 두시를 향해 간다. 오후에는 가까이에 있는 왕곡마을을 둘러보고 되는 데로 걷다 어제 타고 올라온 1-1번 시내버스를 타는 것인데. 한낮 해를 피하고자 한참을 쉬었더니 일정이 조금 애매하다. 어제 밀리는 차를 보건데 아무래도 일찍 출발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왕곡마을까지는 다소 무리인 듯. 그래도 어쩌겠나. 일단은 출발이다.
 
마냥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따라, 철책선을 따라 걸었다면 꽤나 지루했을 텐데. 오늘 아침부터 이정표가 되 준 <8백리 길>을 따라 걸으니. 둔치를 걷기도 하고, 마을길을 걷기도 하고, 잠시 돌아가기도 하지만 작은 항구도 온전히 둘러볼 수 있으니.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개들만 아니라면 쉬엄쉬엄 동네 산보하듯 걷기에 참 좋다. 허나 왕곡마을에 이르러서는 급한 마음에, 또 오랜만에 걸어서인지 여기저기 몸이 쑤시는 덕에. 해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번 걷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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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째 날 약 7km, 그리고 둘째 날 18km 합쳐서 25km쯤 걸었다.
 
* 가고, 오고
춘천에서 고성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춘천에서 진부령을 넘어 곧바로 간성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거나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간 후 다시 고성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는 것. 앞에 것은 한 번에 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루에 단 두 번 있는 차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뒤에 것은 비교적 차 시간은 여유가 있는데 비해 속초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앞에 방법이나 뒤에 방법이나 고성까지 가는 시간은 엇비슷하다.
 
* 잠잘 곳
거진읍내에는 민박과 여관이 꽤 있다. 하지만 연휴나 여름철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러니 가진이나, 반암, 공현진과 같은 인근 작은 항구에도 민박집이 많으니 그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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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15:24 2011/11/07 15:24

메주콩 털기

from 11년 만천리 2011/11/06 15:03
서리태를 베어 널다(10월 31일/맑음 5-20도)
 
마지막으로 수확해야 할 서리태를 베어 널었다.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하니 다음 주 후반쯤에는 털어야 할 터인데. 베면서 보니 역시 빈 꼬투리가 많고. 아예 꼬투리가 달리지 않은 것도 꽤 되고. 웃자라기만 한 것도 있고. 아무래도 양은 많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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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콩 털기 - 첫째 날(11월 2일/맑음 9-22도)
 
봄 날씨다. 울긋불긋한 낙엽만 아니면 봄 인가, 착각할 듯. 20도를 오르내리고 아침 기온도 10도에 육박하니. 가을 상추나 배추, 무 등을 심었으면 한참 잘 자랐을 터.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어 가을 작물을 하나도 안 한 게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마지막으로 수확해야 할 메주콩과 서리태라도 꼼꼼히 거둬야지. 그래야 조금이라도 섭섭한 마음이 덜 할 것 같으니. 오늘은 몸 풀기로 두 시간 남짓 털고 날리고 골라냈는데. 그새 등 뒤로 땀이 주르륵 연신 흐른다. 바람도 없는, 봄 날씨 탓이다.
 
메주콩 털기 - 둘째 날(11월 3일/맑음 6-23도)
 
내일까진 일을 마쳐야 한다. 주말에 비 소식이 있기에. 바짝 오늘과 내일, 이틀 털면 다 할 것도 같은데. 점심 때 아버지가 오시는 바람에 오늘 일을 반도 못했다. 아무래도 내일은 아침보단 낮에 밥 먹고 나와 해야 하지 않을까.
 
메주콩 털기 - 셋째 날(11월 4일/흐림 11-21도)
 
다행이 일을 다 마쳤다.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나와 12시까지. 물 마실 틈은커녕 쉬지도 않고 일한 덕이다. 이제 서리태 베어 널은 것만 거두면 되나. 아차차. 오늘까지 털어낸 메주콩 골라내야지. 쭉정이며, 콩깍지며, 돌..... 벌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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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15:03 2011/11/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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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支柱)

from 11년 만천리 2011/10/31 19:39
지주(10월 14일/흐림 9-15도)
 
내년에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게 많다. 우선 어렵사리 모아 올 한 해 잘 키워 갈무리한 종자들을 잇지 못한다는 게 가장 걸린다. 내후년까지도 농사를 짓는 게 어찌될지 모르니 무작정 보관만 할 순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다 밥에 넣어 먹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여기저기 조금씩 다 나누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또 걸리는 게 있다면. 100평 농사를 짓던 1,000평 농사를 짓던 꼭 필요한 농사기구들이 문제다. 삽, 괭이, 호미, 낫 같은 것들이야 잘 닦아서 보관하면야 문제가 없지만. 비닐 끈이라든가. 첫 해에 쓰고 남은 멀칭용 비닐이라든가. 창고에 넣어둔 고추용 대나무 지주. 토마토, 호박, 오이에 쓴 각목 지주까지. 덩치가 꽤 있는 것도 있어 이래저래 보관하기도 그렇고. 또 내년엔 이사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깝기도 하고. 참 난감하다.
 
오늘도 그렇다. 내일 또 영하에 가까운 추위가 온다 해서 마지막으로 팥꼬투리 따기 위해 밭에 나왔지만. 황량하게 서 있는 각목 지주를 보니 저걸 어째나 싶어 한참을 망설이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아니 집으로 갔다 놔야 짐만 될 게 뻔해 어딘가 처박아 둘 게 뻔하지만. 일단은 한데 모아두자는 마음에 찬바람 맞으며 한 시간 넘게 끈 잘라내 모으기까지 하며 다 뽑아냈는데. 다 하고 나니 저걸 어째 다 자전거로 옮기나 싶어. 괜한 짓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참 난감하기만 하다. 
 
율무(10월 28일/맑음 8-20도)
 
봄 날씨다. 낮 기온은 20도를 오르내리고. 아침나절도 쌀쌀하지 않으니. 엊그제 그리고 지난 주 딱 이틀만 춥지 않았더라면 팥을 제대로 수확했을 터인데. 이미 지나간 일, 그리고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두고두고 안타깝다.
 
지난주에 베어 널다 남겨둔 메주콩을 마저 다 베고. 서리태는 어찌 여물었나 보니 음. 오늘은 율무 수확하고 내일은 서리태를 베어야 할 듯. 빈 꼬투리가 많이 보이긴 하지만 이만치 속이 찼으니 이제 거둘 때다. 
 
한 시간 남짓 쭈그리고 앉아 율무 따내고 나니 등에 땀이 날 지경. 날씨가 거꾸로 가는 건가. 마침 배도 고프고 하니 듬성듬성 서 있는 들깨 몇 개 더 베어 널고는 자전거에 오른다. 한 봉기 가득 딴 율무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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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19:39 2011/10/3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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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학도 그렇지만 경제학이란 학문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세계’를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느냐에 따라 부침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한때는 정설로 믿어져왔던 것들이 폐기처분되기도 하고.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기도 하고. 종교나 신념과도 같이 돼버린 것들을 고수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기법들을 도입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에서만큼은 단언컨대 딱, 부러지게 정답이라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인류가 경제활동이란 걸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했다는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거의 모든 대학에 경제학과가 있을 만큼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때론 곡해하고 또 때론 자기 편의대로만 해석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2.

신입생이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워낙 여기저기서 10년, 20년 뒤로 퇴보하는 모습들이 많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거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있었지요. 교수 채용에 있어 어떤 결정권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공개강의’란 형태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겁니다. 등록금 투쟁하다 짤리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총학생회마저 유명무실한 지금으로 보면. 맞습니다. 딴 나라 얘기지요. 아무튼. 그때 당시 학과에서 ‘경제사’ 전공 교수를 뽑으려 공개채용을 했습니다. 물론 미국유학파가 대부분이었던 교수들 사이에선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으려 했고. ‘경제사’만큼은 맑스주의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회는 학생회대로 지원자들 가운데 적임자를 찾으려 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2번 공개강의를 했었던 것 같고. 공개강의를 들었던 학생들과 학생회 측 의견도 교수들에게 전달됐던 것 같고. 일본에서 공부를 한, ‘식민지근대론’을 수용하는 한 지원자를 채용하려는 움직임에 싸움을 했던 것도 같고. 그러다 막판에 학생회가 요구하는 다른 어떤 것과 바꾼 것도 같은데. 20년도 더 된 일이니 정말 가물가물하기는 하네요.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결국 학교와 과 교수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임용된 그 교수는 그때까지만해도 완고하기 짝이 없는 학과를 더 공고히 하는데 일조를 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엔 ‘한국판 새역모’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쓴 <해방전후사의재인식>이라는 책에도 글을 써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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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봉건시대부터 현대까지 경제체제가 어떠한 점진적 발전과정을 걸어왔나를 매우 흥미 있게 관찰’할 만큼만. ‘위대한 사상가들이 전개시키는 주요사상의 역사를 추적’할 만큼만. ‘다양한 그룹들의 특수한 諸 문제와  관심이 매우 특수한 경제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으며, 이들 이데올로기들은 현상유지를 위한 변명으로서 또한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로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게 될 것’만큼만. 알려줄 수 있는 교수가 없었던 건가 의문이 듭니다. ‘현재의 구태의연한 경제학에 산적해 있는 개념의 쓰레기장에서 참신한 경제학이 탄생하기까지는 아직도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말이지요. 그래서일까요. E. K. Hunt가 쓴 <소유의 역사 Property & Prophet>를 지금에서야 읽을 수밖에 없는 건. 너무 긴 시간을 돌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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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8 16:08 2011/10/28 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