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를 ‘나의 영웅’이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어찌 김동춘 샘 한 분뿐이겠습니까. 그이 말마따나 그이 시대 청춘들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많은 이들이 그의 글로부터 ‘박정희 체제를 비웃을 수’있었고, ‘민주화 투쟁 의지를 불태울 수’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그가 아버지 박정희를 등에 업은 박근혜를 지지하고 나섰으니 세상 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며 호통 치던 김지하를 떠올리면 세상 일, 결국 다 제 갈 길대로 가는 것이구나 싶습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 건. 기실 조선일보에 글을 쓸 때부터 ‘변절’이니 ‘전향’이니 하는 말들이 돌기는 했어도, 이번만큼이나 싶겠거니 했지만. 백낙청 선생에겐 열 가지나 되는 이유를 대며 ‘깡통 빨갱이’이라 비난하고, 리영희 선생에겐 ‘깡통 저널리스트’라는 막말까지 하는 걸 보니.
이러다 김동춘 샘은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한 운동 세력의 좁은 품’이라고 안타까워했건만, 되레 더 험한 말이 나오지나 않을까 싶어서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말은 좀 하는 게 낫겠다 싶은데.
따지고 보면 딱 김지하만이 아니라도 김문수니, 황석영이니, 김정환까지도. 예전 자신 모습을 부정하는, 아니 삶을 지탱해주고 사회를 진보(進步)시켜줬던 사상까지 다 내팽개치고. 싸움의 대상이었던 자들을 이제는 치켜세우는 자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니. 육당(六堂)과 춘원(春園)이 백년 후에 다시 등장한 것 마냥. 일견 개인들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가진 병리현상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게다가 백낙청 선생을 욕하며 ‘못난 쑥부쟁이’에 비유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본인이야 무슨 구구절절한 사연까지도 잘 알고 있으니 이런 비유를 들었겠지만. 실은 처음 들어보는 절들은 눈에도 들어오질 않았고. 다만 빌어먹을 삽질, 사(死)대강 사업을 하면서 밀어버린 ‘단양 쑥부쟁이’가 떠올랐던 건.
‘생명사상’이니 ‘후천개벽사상’이니 하는 게 결국 ‘자본론’과 ‘경제학․철학 본고’, ‘도이치 이데올로기’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도 없는. ‘지하실에 가본 적이 한 번이라도’ 없는 이들에겐 넘을 수도 없는 심오한 사상이었구나, 무릎이 딱 쳐질 뿐이니.
‘나의 여웅’이란 이미 십 수 년 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아니 이제와 삿대질 하며 저긴 내가 살던 곳이 아니다 몸부림치는 원로(遠老)가 아닌가 싶습니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을 포함한 좌파 정당들과 무정부주의자들, 자유주의 정당과 자치주의자들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선거에서 승리를 합니다. 흔히 알고 있는 칠레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보다 앞선 것이지요. 그리고 또 잘 알고 있듯이 <인민전선> 또한 낡은 사회관계를 과감히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토지개혁을 단행했으며 지배세력과 함께 하고 있었던 가톨릭에 맞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또 또렷이 기억하고 있듯, <인민전선> 역시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세력들이 일으킨 반동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쿠바에서 혁명이 성공한 후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혁명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각 나라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군부 쿠데타를 조장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독점자본과 미국의 후원을 받는 군부가 저지르는 횡포에 맞선 라틴 민중들은 되레 혁명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습니다. 까닥 잘못하면 목숨도 잃고 나라도 망가질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이런 분위기로 보자면 칠레 역시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게바라로 상징되는 무장봉기가 아닌 선거로 이룬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말하자면 ‘선거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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