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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5
    노력하지 않는 무지
    득명

노력하지 않는 무지

 

 

 

[김윤아-04-길.mp3 (6.17 MB) 다운받기]

 

 

 

"감사합니다..  총무팀입니다.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전에 거기서 일했는디..  내가 일했었다는 서류 좀 뗘줘유. 거긴 뭐라도 남아 있을거 아니우?"

 

사무실로 갑자기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무슨일때매 그르신 건디유?"

 

"2007년 ㅂ 아주머니랑 드르가 2008년까정 거기서 청소일했는디..  정안서 서류를 안뗘줘유. 2007년 마치고 나를 퇴사한걸루 하고는 2008년도에는 일한 기록이 웂댜는겨. 못뗘주겠대서 국민연금에 1년치를 까먹게 됐슈. 2009년도 식품회사에 드르가기까지 거기서 계속 청소일을 내가 분명히 했었는디 일한일이 웂대는겨."

 

"까치네 사시는 ㅂ 아주머니유?"

 

"몰러..  아무튼 거기서 분명히 일을했었었는데 2008년 일한건 정안에 남어있는게 웂데유"

 

  하청 미화용역업체에서는 갑과의 계약이 불확실하거나 갑에서 받은 인건비를 너무 많이 착복하여 월급이 작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거나..  지급해야하는 퇴직금을 아끼려 할때  1년 단위로 계약해지후 재계약하거나..  근로계약서를 아예 쓰지 않고 4대보험을 가입하지않아 생긴 여분?의 돈을 얹어 월급을 현찰로 주며 일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람.. 월급받은거 찍힌 통장이라두 있을거 아니여유?"

 

"통장이 웂어.  내가 그르키 달랜것두 아닌데 2008년도는 현찰로 받았어유"

 

"그라믄..  월급 명세표두 안받았어유?"

 

"다 버려버렸지 뭐 남은게 있나?"

 

"무슨 일당 받는 노가다도 아니고 월급을 현찰을 받어유?  그런거 웂으면 다 끝났어유.  워티기 일했다는걸 증명할 거냐구유.  그리구 여기서는 마트에 직고용된 사람들이나 일했다는걸 뗘줄 수 있는거구유, ㅇ명자님은 용역업체 소속으루 청소 일을 핸거니까 그 업체에 가셔서 뗘달라고 해야되는 거여유. 여기서 소속된게 아니여서 뗘드리고 싶어도 뗘드릴 수가 웂어유"

 

"아이구..  환장하것네.  아휴..."

 

"2007년서 2009년이면 푸르미에서 넘어가서..  다시 또 회사가 베끼는 때였고 그때 미화용역업체는 어디쥬? 그후로 청소업체가 몇번이나 베꼈거든유."

 

"그란식으루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하지 마슈. 나두 죄다 알아보고 여까정 전화한거니께. 거기 콤퓨터에 들어 있다고 그라든디..   얼른 뗘줘유"

 

"아이구.."

 

"...  용역업체서 거기서 돈 받고 나한테 월급 줬으믄 머라도 기록이 남아있을거 아니유? 아까도 거기 찾아갔었는데 웂다그려서 기다리다 와서 다시 전화하는거유."

 

"2008년도믄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때는 푸르미서 넘어가고 또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시기인디..   혹시 정안이란 업체가 아니면..."

 

"어휴..  알았슈.   툭."

 

"여보세요???"

 

 

  크게 한 숨을 쉬시고는 전화를 끊어버리셨습니다.   2007년~2009년 일하셨으면 매장돌다 한 번이라도 인사를 하였을 거고 얼굴을 뵈면 금방 알아보는 분이셨을 겁니다.  담당자로서, 노조원으로서 먼가를 도와드릴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불신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먼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한테 하듯이 누군가에 했다면.. 누구든 건성건성 얼버무리고 무시했을 것 같습니다.  전화가 끊어지고는 그분이 지금까지 그렇게 부딪치며 살아오신 세월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정말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도움을 청하면 될일이지만 세상도 잘 모르고 감사하는 방법도 모른다면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듯 합니다.  노동조합은 말그대로 이익집단입니다. 노조원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그러다 정의로운 일도 하게되고.  그런 노조원이 인사담당자가 하는 듯한 말을 기계적으로 내뱃었으니 세상물정 모르시던 ㅇ아주머니는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나중에야 후회가 되었습니다.  월급을 통장으로 받지 않고, 명세표도 찢어버렸어도 일한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 같은데..  전화번호도 물어보기전에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전화를 끊어버리셨습니다.  용역업체 사무실을 물어물어 전화온 사람 있었나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살아오신 방법에 제가 개입한다는게 부질없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왜..  노조원으로 회사를 다니는가?   노조원의 정체성은 뭔가? 말로만 어쩌구 떠들면서..  아무것도 몰라 속상해서 '너도 지금 나 속이려고 그러는거지?' 하며 함께 일했던 도움을 청하는 분께..  회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뭉개버린게 아닌가.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간 10여년의 세월이 눈앞에 스치며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나를 또 정당화해야 나는 또 일그러졌지만 굴러굴러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찾아가는 중이니까요.

 

   모르는건 좋은일도 나쁜일도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는 무지는... 선도 악도 아닌 엄청난 죄악입니다. 제가 누군가의 삶에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드라마 시그널에서 과거가 바뀌었을때 누군가 죽기도 살기도 하지만..  현재는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이러한 생각이 저의 한계일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  삶에 어떠한 정답이 있는건 아니지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는 죽어야만 그만둘 수 있는 짓거리입니다.  노조고 뭐시기고.. 보편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지 않나요? 행복해지기 위해 사기치지 않고.. 땀흘려 등산도 하고..  누굴 해치지도 않고요.   말은 뻔드르해도..  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결국 저의 행동입니다.  나는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는가? 내가 한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우연인지, 다행히 전화를 끊었던 ㅇ아주머니가 사무실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ㅇ명자님 이시죠? 저 알아보시겠어유?"

 

"어디서 많이 본건 같은디.. "

 

"제가 전화받은 사람이여유.  푸르미때부터 일해서 여기서 누구보다도 정확히 얘기해드릴 수 있어유. 어디까지 얘기가 되셨어유?"

 

"2007년거는 세무서에 있대서 그걸 찾았고..  2008년 것만 찾으믄 되유. 저짝 책상에 앉은사람이 컴퓨터에 일헌게 남어있다구 그랬었어유"

 

"그럼 거기서 뗘달래지 머하러 왔어유? ㅇㅇ팀장님 거기 ㅇ명자님 일한 기록있어유?"

 

'저.. 그런말씀 드린적 없는데..  용역업체 기록이 뭐가 남아있을게 없고 제가 갖고 있을 수도 없어요"

 

"ㅇ명자님..  거 봐요.   자꾸 거짓말만 하니까 도와드리고 싶어도 그냥 넘어가는거여유.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니께 방법을 찾아드리려고 하는데 자꾸 그짓말만 하시면 저두 대충 넘기지 도와드릴수가 없어유.  사실 그대로 얘기하고 도와달래면 안그런 사람도 간혹 있지만..  다들 도와주려고 한다니께유.  공무원들은 서류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여유.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뭐 뗘와라 하면 뗘다주고..  멀 해와라 하면 해다 주면 되는거여유."

 

"환장하겄네..  여기서 내가 일하고..  여기서 돈도 받았는데 왜 기록이 웂다는거여유?"

 

"그게 갑이고 을이고 하는 용역이고 하청인 거여유.  마트서 책임지기 실으니께 본사서 용역업체에 돈주고 알아서 월급주고 청소하라고 했다니께유. 본사서 청소용역회사와 지들끼리 돈 주고 받고 한거구 여기서는 알수가 웂고 아무 기록도 웂어유. 청소용역회사에는 왜 아무얘기도 못하셨어유? 뗘주면 거기서 뗘주는건디."

 

"거기선 몰르것대는데 뭐."

 

  대형마트들의 대부분의 계약은 본사에서 이루어지고 매장내 물건의 진열조차 본사에서 지시한 장소에 진열하게 됩니다.  각각의 마트에서는 하다못해 외벽에 현수막하나 메달 권한도 갖고있지 않습니다. 상품들, 직원들 모두가 표준화된 소모품입니다.

 

 

"ㅇ명자님이 여기서 일하셨다는거는 제가 함께 일한 사람이니.. 제가 증명서류니께 일하셨었다는 확인서는 써드릴 수가 있어유. 2007년 정안이란 회사였으면 2008년도도 같은회사일거여유.  알아보니께 그 회사는 5년전 베꼈으니까유. 잠깐만 요기 앉아 지달리셔유."

 

"아이구... 고마워유. 휴.."

 

 

  20여년전 육군종합행정학교 행정병 출신의 경력?을 발휘해 누가봐도 있을 것만 같은  '근무이력확인서' 라는 제목의 그럴듯한 문서를 하나 뚝딱 만들어 직인을 찍어드렸습니다.

 

근무이력확인서

▲ 성명/생년월일 : ㅇㅇㅇ / 1959년 ㅇ월ㅇ일

▲ 근무기간 : 2007년 1월1일~2008년 12월 31일

▲ 소속회사 : 정안 02-000-0000  서울시 강남구 ㅇㅇㅇ ㅇㅇㅇ

상기인은 ㅇㅇ마트(구,푸르미 ㅇㅇ점)에서 함께 매장 청소근무를 하였음을 확인해 드립니다.

 2016년 3월 23일

ㅇㅇ마트점장 (직인)

※ 담당자 : ㅇㅇ마트 총무팀 득명 (010-****-****)

 

 

 

"혹시 몰러서 그 회사 옛날 명함 한장 복사했구유.  근무이력확인서는 3장을 해놨어유.  명함의 사람은 관두고 웂겠지만 회사 전화,주소,홈페이지는 그대로일 거여유.  확인서 한 장은 국민연금 사무실에 내보시고유. 거기서 머라하면 고용노동부 민원실서 이거 내면서 그 회사를 혼내달라고 해보시구유. 국민연금 안들어주고 월급 현찰로 줬다고유."

 

 

"아이구..  고마워유"

 

 

"아니..  국민연금서 안된다고 하면  바로 청주노동인권센타 043-296-5455 로 전화하시고 찾아가셔유. 세상물정을 너무 몰르셔서 혼자서는 심드시고 거기서 도움을 받으셔야할거 같어유.  여기 확인서에 제 연락처 있으니 전화주시구유.  이르키 저르키 찾으면 방법이 있을거여유."

 

 

  "알었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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