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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5
    조끼를 입다.
    득명
  2. 2014/08/05
    9년전 비교
    득명

조끼를 입다.

"파업 가결되었고요.. 어제부터 이렇게 조끼 입고 일하기로 했어요.."

"그리키 됐으믄 입으야지 뭐..  워틱햐..."

"여기유.. 하나 드릴께유.."

"ㅅㅇㅇ꺼도 줘.. 낼 나오믄 주게"

"예.. 등에 붙이는 것도 달아서 드릴께유. 이거 입었다고 누가 머라믄 저한테 바루 알려주세요. 이건 완전히 합법적인 거니께유."

  반대표를 던지셨던 올해가 정면이신 ㅇ조합원님께 2벌을 건네드렸다.   창고 입구서 나머지 조끼에도 달고 있는데.. ㄴ조합원님이 L카에 과자를 한짐 싣고 가신다.  

  "저기.. 이거 입기루 결정했어유.  조합원은 다 이거 입고 일해는 거여유. 속은 유니폼말고 단정한거루 아무거나 입으믄 돼유. "

  "더워 죽것는데.. 뭘 또 입으라는겨..? 얼른 줘유"

  바로  유니폼을 벗어던지시고 투쟁조끼를 걸치시면서.. 얼굴에 땀이 범벅인채로 매대서 까대기를 하기위해 급한 걸음을 옮기셨다.  

    이제 ㅁ조합원님만 남았다.  잠시후 ㄴ조합원님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일까?

  "창고에 사다리 있어유? 나같이 작은사람은 워틱하라구 일키 쪼맨 사다리를줘.. 있음 하나 과자매대로 갖다줘유"

"예.."

사다릴 들고간 과자매대 사이 복도는 "비정규직 10년째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란 글씨가 2개가 넘실넘실 춤을 추었고.. 몇몇 고객은 의아한 듯 멈췄다가 카트를 끌고지나갔다. 

"그람.. 수고하세유"

갑자기 8년전 일이 주마등처럼 스처지나갔다. 위원장님이 내려와 갱신히 식당서 투표해 지부를 설립한 일.. 지부게시판을 휴게실 복도에 달아놓고 울컥했던일.. 회사옆 국밥집에서 하는 간담회 오다가 서있는 회사간부 보고는 다들 돌아 갔서 순자이모랑 위원장님이랑 꾸역꾸역 국밥을 먹었던 일.. '이르키 할거면 다 관둬야뒤야' 라고 화내시던 몸아파 그만두신 순자이모..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다.  잘 할 수 있을까?

"합법적인 쟁의행위기간에 노동조합 지시로 사복/조끼 등을 입는건 지극히 정당한 활동입니다. (단,위생용구 장화,앞치마,두건은 조끼위 반드시 착용)

  누가 뭐라고 하면 언제고 저에게 알려주세요. "

 

  식품매장을 괜히 들락거렸다.  

"아이구.. ㄴ조합원은 지금 입구 일허는 디.. 누군입고 그라믄 안돼유.  입을라믄 다입구 해야 돼유.."

 "퇴근 1시간 남아  안입었는디.. 그람 지금 입지 뭐.."

 "그래유.."

  음.. 다시 문자 발송. 

"합법적인 쟁의행위기간에 노동조합 지시로 사복/조끼 등을 입는건 지극히 정당한 활동입니다. (단,위생용구 장화,앞치마,두건은 조끼위 반드시 착용)

  누가 뭐라고 하면 언제고 저에게 알려주세요. " 

  오늘은 근무중인 전 조합원이 투쟁조끼를 입었다.  9년이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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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 비교

9년전.. 비밀조합원이었던 나는 부천의 본조 사무실서 조합조끼를 받아와 입고 출근하였다.  이내 사무실은 뒤집어졌고.. 흥분한 나는 누구던 조금만  걸고 넘어지는 인간들이 보이면 개같이 짓고 물어뜯었다.  린치를 당하는건 종종 있는 일이었고 따르던 부서원조차 눈치를 보며 계급열외? 같은걸 하였다.  내가 가는 곳이면 여지없이 CCTV 카메라에 보안직원이 따라 붙었다. 나만 살기위해서일까? 시선도 외면하던 동료들로 부터의 고립. 같이 하진 않더라도.. 전과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는게 나를 가장 심들게 하였다.  나는 하나의 섬이었고..  전화로 5분간 위원장에게 부당노동행위란걸 첨으로 설명듣고는..지니고 있던 녹음기와 사진기 그리고 본조의 도움으로 점장을 날려보낸후 비교적 잠잠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무인도에서의 삶같은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누군가 세월을 아주 빨리 흘려보내고 싶다면.. 주저없이 마트에서 일하시라 추천한다.  당시 나는 비장하였고 완전히 옳기만한 정의, 그 자체라 되뇌곤 했다.  아무튼 옳다는건 강박적이랄만치 중요한 일이었다. 

  9년의 시간이 흘러갔고..  한 때 23명이던 조합원은 모두 탈퇴하였고.. 곧 은퇴를 바라보는 '큰언니' 조합원과 나 둘만 남았다.  이 분른 왜 탈퇴하지 않으실까.. 궁금했지만 여쭤보진 않았다. 나중에 알은건 젊어서 70년대 서울서 동일방직에 다니셨었다는 것.. 주변에서 옥바라지를 하였다는 것일뿐 얼마전 큰아들 장가를 보내신 너무나 평범하신 어머니같은 분이다.   초밥기계에 손가락이 잘려나갔을때 쉬쉬하며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려던 회사의 실체를 목격한후 집에단 얘기도 못하고 애끓이시다 산재종료후 가입하신 ㅁ조합원..  단협에 나온 직무외병가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버티는 인사과장에 반해 노조원들은 100% 적용된단 말씀에 가입후 적용받으신 ㅇ조합원, 뭔가 불안하다 가입하신 ㅅ조합원.  모두는 무기계약직, 난 정규직 이렇게 다섯이 다시 파업을 맞게 되었다.  

  매장을 돌다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질문은..

 "어머.. 비정규직이셨어요?"

 "아뇨.. 전 정규직인데요.. 우리노조 파업이라 다 이렇게 입고일 하는거예요.  선임으로 자동전환해달라 교섭했는데.. 얘기가 잘 않된 모양이예요"

  "ㅋㅋ 멋지다..  화이팅~~!"

  정규직. 비정규직이 한 노조에 이러는걸  진귀한듯 바라보는 시선도 있는데.. 난생 처음 가입한 푸르미노조는 이랬고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모습이다.  회사의 칼끝은 언제나 비정규직을 내쳐 손아귀에 넣은 다음 정규직을 겨냥한다.  집안밖에서 갖은 고초를 감내하며 살아가시는 우리 어머니. 남성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우리 어머니들의 강인함과 포용력이 이 모든 난관을 슬기롭게 넘고도 남은 듯 하다.  지금 창궐하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핍박받던 히브리노예들의 역사이며 구세주의 강생과 부활사건으로 완성된 가장 보잘것 없는 노예들의 계시 종교였다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일까? 가만 살펴보부당함에 저항한 기억에 남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핍박받던 힘없는여성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노조이름과 단결 투쟁이 크게 세겨진 남색조끼, 사실상 비정규직이 철폐하자는 의미의..자동선임 전환하라 고 씌어진 노란 리본,  비정규직 10년째다! 해도 너무한다! 라는 몸벽보 를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끝나자 조서 신라면 박스에 보내왔다.  

 

   별 준비가 없었던 나는.. 리본만이라도 모두 착용해 순차적으로 모두 입자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난 다입고.  최후.. 나 하나 입고 매장을 휘젖고 다니는 것도 아주 의미가 없진 않을 듯 하였다.  

  "노조원들은 파업기간에 자율복을 입으며 조끼, 리본을 착용합니다. 물론 입기가 거북하신 분도 계실텐데.. 조끼를 입고 일하는건 결국 나를 위한 일이예요. 
  모두 통일해서 결정했음하는데.. 의견주세요.  ㅇㅇㅇ 올림"

오늘은 출근을 모구 안하신 듯 몇시간이 지나도 의견 메세지가 없다.  이번에도 혼자 입을건가.. 9년이나 흘렀는데...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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