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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2/05
    극단적 공부법
    득명
  2. 2017/08/06
    서글픈, 학습법의 끝판왕
    득명

극단적 공부법

 

 

 

 

 

 

  아저씨가 예전에 20대때 노량진 독서실 생활을 두어달 하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망가져 다시 집으로 내려왔고요.  낮과 밤이 뒤바뀌며 불면을 밤을 지낼때 퍼렇게 밝아오는 하늘을 보거나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들으며 갱신히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시작한게 집옆 국민학교 운동장을 맨발로 매일 40여바쿠 뛰는 거였습니다.  처음부터 그리 뛰었다면 죽었을 거고요.  차츰 바쿠 수를 늘려갔습니다.  흙바닥을 맨발로요. (지금 생각하면 지구에 생체 접지를 하여 내 몸속 전류가 균형을 찾아간 듯 합니다)   한달여를 뛰고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고 극단적인 단절의 시간을 2년 가졌습니다.  아무도 얘기할 사람도 없었고 동네 무료 시립도서관에 도시락을 싸가서 까먹고오고 어떨땐 하루 한마디도 못하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와도 얘기할 수 없는 그런 혹독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돌이켜보면 글쓰기, 일기였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끌적거리는 나와의 대화시간.  버티고 버텼지만 세상에 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하고 홀로되는 걸 처음으로 격어서인지 무척이나 심들었습니다. 

 

  2년만에 공부를 그만두고 돈벌러 본드공장에 취직하였지만 들어간지 10여일만에 공장은 불이나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콘테이너 놓고 본드공장을 1년여만에 다시 짓고 반응기 새로 앉혔습니다. 직원을 새로 뽑아놓으면 오전 일하다 오후에 집에 가버리는 열악한 공장이였죠.  그렇게 3번째 뽑은 반장님께는 온전히 본드 뽑는 기술을 (아크릴 중합) 전수해드리고 나왔습니다.  그후로는 고속도로 휴게소, 초등학교 알바와 백수생활을 번갈아하다 집근처 대형마트에 취직하였죠.  그렇게 대형마트서 15여년을 벌어먹다가 동지들을 뒤로한채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지금도 가끔 마트서 일하는 꿈을 꾸고 동지들이 보고는 싶지만 다시는 마트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마치 친구들이 졸업하면 학교에 더 있을 수 없듯이요.

 

  아저씨가 마트를 다닐때 위 영상을 보고는 3달을 공부하여 운좋게 갱신히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 학교서 일하고 있는 거예요.  마트서는 정리해간 암기카드를 틈나는대로 읽었고 퇴근하면 근처 대학도서관엘 가서 저녁으로 가래떡과 아몬드를 도서관서 몰래먹으며 공부했습니다.  도서관 근처 화단에 난 쑥을 뜯어 콧구멍에 말아넣어 냄새를 맡으며 긴장감을 해소하고 집중력을 높였습니다.  시험전에는 연가를 거의 소진하였고 쉬는 날이면 12시간을 현미가래떡과 아몬드를 조용히 씹으며 자리를 뜨지 않고 공부하였습니다.  위 영상말고 다른 영상에서 알려준대로 반복하며 압축하여 시험전날 모든 과목을 훓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죠.  처음엔 책상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지만 어거지로 버텼고 나중엔 체력이 바닥나는거 같아 가끔 수영장을 가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솔직한 극단적인 공부법입니다. 아저씨가 시험에 합격한걸보면 공부하는 법을 몰라서 시험을 못치는 것이지 공부를 못해 시험을 못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량진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 동영상강의는 듣지 못했지만 시험의 길잡이로써 무척이나 소중한 영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유튜브서만 본 선생님이지만 저에게는 엄청난 변화를 갖게한 선생님입니다.  

 

  그 후로 5년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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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학습법의 끝판왕

 

 

 

[윤도현 & 이소은-마음을 다해 부르면.mp3 (5.92 MB) 다운받기]

 

 

 

누군가 이승에서 지옥을 보여달라하면 노량진을 데려가 보이면 된다.  재수생이건 고시생이건..  전국서 모여든 무수한 젊은이들이 아련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히며 살아가는 곳.  점집도 많고..  밤이면 한편에서는 강의를 끊기위해 학원 마당서 밤을 새우고..  한편에선 술취한 젊은이들이 토해놓고 싸움질도 하는 곳.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며.. 긴장하고..  누구에게 맘편해 얘기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곳. 폐인되기 쉽상인 곳.  자칫 몸도 마음도 병들게하는..  삶의 막다른 곳에 몰린 듯한.. 지옥같은 곳. 노량진이다.

 

  내가 서울이란 곳에 살아본 것은 약20여년전..  노량진 어디즈음 독서실에서 한달 반 생활한 것이 전부이다.  물론 서울서 대학을 다녔던 형의 신림동 자취방에 놀러가서 괜히 전천타고 이리저리 돌다 봉천동 어디 즈음을 돌아다니고.. 반지하 자취방서 뒹글거리던 것은 포함하지 않은 기간이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노량진 생활을 일찌감치 접고는 눈물을 뿌리고는 집으로 내려와 버렸다.  난생처음 학원이란 곳을 한달 다녔었고..  어마어마한 교실에 빼곡히 않아있는 수험생에 입이 딱 벌어졌던 기억이 아련하다.  결국 나는 꿈을 접었고.. 지금은 서비스 노동자로서 살아간다.  가끔은 관할 구청에 뭔가 신고를 하러 가면..  일하고 있는 젊은 공무원들한테 지독히 외롭고 고독하고 처절했던 노량진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모를일이다.

 

 

  살아가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능력은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다.  집에 돈이 없다면 더욱 중요하다. 아니..  내 삶이 얼마나 풍요로와지는지 조차도 결국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자를 통해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얻어가는 것.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은 학습의 가장 주요한 부분임에도 학교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아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분 얘기대로 하자면..  지옥같은 생활이 펼쳐지겠지만 노량진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허투로 넘길 얘기가 하나도 없음을 금새 알아차릴 것이다. 몇가지 덧붙이자면..

  1. 공부시간은 시험시간에 맞춘다.  (예를들어 120분 시험후 30분 휴식 시험은..  120분 단위로 평소 공부한다. 60분 시험 10분 휴식인경우.. 60분 공부.)

  2. 공부를 마치기전 내가 지금까지 무얼 공부했다 떠올려본다.  그리고는 다음 공부시 전에 어디까지 공부했나를 떠올리고는 공부에 들어간다. 이것만으로 성적을 2배 올릴 수 있다고 책으로도 나와있다. (이건 거꾸로 강의에 적용할 수도 있다.  강의를 마치기 전에 이번 강의시 한 얘기를 짧게 정리후 강의를 마친다.  다음 강의 시작시 전강의는 무슨 얘기였나 짧게 정리후 강의를 시작한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게되면 알아듣기 쉬우며 명강의가 된다)

  3. 틀리라고 내는 문제는 기꺼이 틀려준다.  80%를 이해하면 넘어간다.  나중에 다시보면 저절로 이해되는게 생기며 85%, 90% 100%도 채워질 수 있다. (일의 진척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100을 채우려 일하면 진척이 되지 않지만..  80%를 채우려하면 완성도와 함께 일도 진척시킬 수 있다. 지나서보면.. 100을 채우려 했던 것보다 80을 채우려한 것이 더욱 완성도가 높다)

   4. 하루 30분 땀흘려 운동하지 않고는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집중력도 떨어지게 된다.  아스팔트를 삐집고 민들레가 피어나듯이.. 생명의 속성은 어떻게든 살아가려하는데 있다. 현대의학도 이러한 속성을 잘 젖물려주는데 맞춰져있는 듯 하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병들어 버리면 자유의지가 주어진 인간만이 스스로 생명을 내치는 행동을 한다.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들어 버린다.  하루 30분 땀흘리는 운동은 몸이 병드는 것을 막아준다.

   5. 마음을 다스리는 자기만의 방법을 구할 것. 이것은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누군가와 대화할 수 없을때..  나와 솔직히 대화하는 일기를 쓰거나, 쑥 향기를 맡아보거나.. 자신에게 위로가 될만한 방법을 반드시 구할 것.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방법. 없을 수도 있으며.. 누구나 다르며.. 여기에 답은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단지 1~3년을 살아가는 과정일뿐..  이것이 나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해칠 수도 없을뿐더러..  인생은 이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살아보니 이런저런 울고 웃고 하는 일들이 펼쳐진다.

 

  내가 만약 기자라면.. 직업인의 의무로써 이승에서 지옥의 삶을 살고 있는 노량진 젊은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취재할 것이다.  자본주의 아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이승의 모든 이에게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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