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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백운산 정상부근의 사찰

 

1.

9시쯤 일어나 프런트에 가 도미토리룸이 비어있느냐고 물으니 열쇠하나를 내밀며 있단다. 짐을 꾸리고 하루 숙박비 50원을 치루고 도미토리룸으로 들어갔다. 2층침대 4개가 있는 8인실 방이다. 묵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했다. 프랑스인, 중국계 인것 같은 호주인, 그리고 일본인 둘이 있다. 어제 강변공원에서 소설책을 읽고 있던 은발 아저씨는 자고 있다. 2주된 젋은 일본인만 제외한다면 다들 여행경력이 화려하다. 다른 일본인은 7년전 티벳에, 5년전에는 실크로드를 다녀왔단다. 중국어도 계속 배웠단다. 배용준 상이 인기가 있다고 얘기한다. 내가 일본 아줌마들이 좋아하지 않느냐라고 하니 웃는다. 내가 배용준 좋아하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나도 아니라고 했다. 젋은 일본인은 자기는 최지우가 이쁘단다. 내가 기따노 다케시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호주인에게 광저우 여행지 추천해달라고 하니 광저우 지도를 가지란다. 일단 백운산에 올라가란다. 그러면 광저우 시가 다 내려보인단다.

 

2.

백운산에 가기위해 전철을 타고 광저우 동역에 내렸다. 홍콩에 기차타고 간다면 여기서 홍콩바로 옆 도시인 선전가는 기차를 타야한다. 이리저리 찾다가 선전가는 매표소를 확인했다. 내일이나 모래 여기로 와서 표를 끊으면 되겠군. 기차역을 나와 걷다가 중국은행에 들어갔다. 여행자수표를 홍콩 달러로 환전하려고 하는데 창구에서는 여기서는 중국 돈으로는 바꿔주는데 홍콩달러는 홍콩으로 가야 한단다. 그래 가서 해결하자. 조금 걷다보니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아무래도 버스로 산 입구까지 가는게 나을 거 같다. 호주인이 준 광저우 지도를 보니 짧은 거리가 아니다. 

 

3.

버스에 내려 백운산 입구로 걸어 올라갔다. 화창한 날씨.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올라간 시간대가 점심이라 야외 식당 곳곳에서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어제 먹은 먼가가 걸려 속이 좋지 않다. 한 한시간 남짓 걸어 정상에 올랐다. 산이름 그대로 흰구름산이라 시가지는 안개에 싸여있다. 정상부근의 매점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걸 시켰는데 수정과 국물에 순두부 국이다. 맛이 이상했지만 그냥 다 먹었다.

 

72열사묘가 있는 황화강공원

 

4.

광저우 사람들은 마치 이런 식이란다. 정치는 북경사람들이 해라. 우리는 돈을 벌테니... . 하지만 광저우는 근대 중국혁명의 중심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주창자인 쑨원의 주 활동무대도 광저우였다. 혁명역사유적을 보려 산길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공교롭게 다른 산길로 내려가게 되어 지도를 보니 서쪽 문으로 내려왔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파악해 223번 버스를 타고 황화강공원에서 내렸다. 1911년 10월 무창에서 일어난 봉기로 청조가 무너졌는데 그 이전에도 수 많은 무장 봉기의 시도가 있었단다. 1900년 10월 광동성의 해주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봉기는 실패로 끝났다. 이때 중국 혁명당은 정예맴버 72명을 잃었단다. 청조 당국은 혁명당 전사자들을 사형수 공동 묘지에 묻도록 했지만 어떤 한 사람이 황화강의땅을 기부해서 전사자들을 합장하도록 했다고 한다. 공원의 이름도 황화강공원이다. 72며으이 전사자들을 기리는 비석이있고 그 뒤에 72개의 직사각형 돌에 각 사람의 이름이 씌어져 있다. 돌은 삼각형 모양으로 쌓여져 있었다. 이곳을 지키는 관리원은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 열사묘 쪽은 사람이 없고 왼쪽 공원으로 사람들이 집단 체조를 하고 있다. 대부분 일본유학생들이었다는 72명의 혁명가들, 1911년 신해혁명과 청조의 몰락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5.

열사묘를 나와 지도상으로 한 이삼십분 거리인 광주기의열사능원쪽으로 걸어갔다. 진순신저 중국역사기행에 의하면 1927년 상해에서 장제스가 백색테러를 일으킨해 8월 1일 남창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12월 11일 광주에서도 중국공산당이 지휘하는 봉기가 일어났단다. 그 결과 광동코뮌이 수립되었는데 국민당의 이복림군이 공격을 가해 코뮌에 참가했던 수 많은 노동자들과 공산당원이 희생되었단다. 이를 추모하고 기념하기위해 1954년 이 광주기의열사능원을 만든 것이다. 공원가는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들어 한 아저씨에게 묻고 경비에게 묻고해서 공원에 들어갔다. 중간에 연못이 있고 놀이용 작은 배를이 정박해있다. 능원의 분묘는 지름이 한 50미터될까. 큰 원으로 조성되어있었다. 비석 앞에는 웃통을 벗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베트민턴을 치고 있다. 실력이 수준급이다.

 

초밥집에서 초밥을 먹고 이 회원카드를 받았다

 

6.

날이 어수룩해졌다. 정문으로 나오니 바로 전철역이다. 한 정거장을 걸어 모택동이 1926년 농민운동강습소를 열어 혁명적 농민을 교육시켰다는 지금은 공산당 역사전시관이 되어있는 농민운동강습소의 문은 닫혀 있었다. 속도 안 좋고 단걸 먹어서인지 입맛이 없다. 김밥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큰 회전 초밥집이 나온다. 그래 제대로 좀 먹어보자. 김밥과 초밥을 여섯접시 먹었다. 5원짜리 김치도 시켜서 같이 먹었다. 냉모밀은 영 면발이 거칠다. 나와서 더 걷다가 중심쇼핑상가 백화점 거리로 들어섰다. 한 대형슈퍼에서 면도크림과 치솔을 샀다. 지하철을 타고 9시쯤 숙소로 들어갔다.

 

7.

그 은백 서양인이 누워있는데 육중한 몸매에 팬티도 입지 않고 있다. 다행이 뒷 모습이다. 서양인들의 습성이지만 좀 낯설다. 샤워를 하고 일기를 좀 쓰다 내 자리인 5번 2층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어느덧 나까지 8명이 다 들어왔다. 그동안 도미토리에서 3명이 최고었는데, 3등석 배에서도 6명이었는데 이제 한방에 서양인 넷, 동양인 넷 해서 8명이 함께 잔다. 잠이 안 온다. 상념이 약간 스며져 나온다. 난 왜 여기에 와 있지. 난 어디로 가는걸까. 그러다 잠이 들었다.

 

 

* 041222(수) 여행 27일차

 

(잠) 도미토리 8인실 6500원 (50원)

(식사) 아침 만두 390원 (3원)

         점심 순두부국 390원 (3원)

         저녁 초밥 냉모밀 8710원 (67원)

(입장) 백운산 1300원 (10원)

         72열사묘 1040원 (8원)

         광주기의열사능원 390원 (3원)

(이동) 지하철 5원 3원 버스 1원 1원 1300원 (10원)

 (간식) 실론티 같은거 330원 (2.5원)

          사과 650원 (5원)

          만두 130원 (1원)

(기타) 면도크림 2730원 (21원)

          치솔 1230원 (9.5원)

------------------------------총 25,1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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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8 16:11 2004/12/28 16:11

내가 묵은 광저우 유스호스텔

 

1.

아침에 일어났다. 처음엔 졸려서 몰랐는데 창가로 점점 더운 열기가 느껴진다. 광저우가 가까워지고 있다. 차창밖에는 꽃들이 피어있다. 저건 활엽수다. 야자나무같군. 채소농사밭이다. 모든게 푸르다. 겨울에서 순식간에 봄이온 느낌이다. 광저우 역에 도착했다.겨울파카와 솜바지를 꽉꽉묶어 베낭 위 주머니에 넣고 역을 나왔다. 어디나 역앞은 정신이없다. 숙소로 결정한 광저우 유스호스텔로 걸어갈까 어쩔가 하다 지하도를 내려가니 지하철이 있다. 2003년 판 론리플레닛에는 지하철 공사중이라 나왔는데 완공되었나 보다. 표를 사는데 터치스크린 방식이다. 내가 갈곳을 누르면 요금이 표시된다. 몇 번을 보고 따라하니 4원에 작은 고무 동전이 나온다. 내려서 나갈때 동전을 반납하면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2.

시멘다오 섬에 도착해서 숙소를 확인했다. 아직 체크인시간인 12시까지는 20분이 남았다. 밥을 먹고 들어가자. 근처 식당에서 볶음밥과 계절에 따른 야체를 시켰는데 야체가 달랑 한가지만 데쳐서 나온다. 파오차이 김치를 달라하니 못알아 듣는다. 광저우의 광둥어와 북경어는 다르다는데 사실인가 보다. 12시가 넘어 유스호스텔 카운터로 갔다. 아니 도미토리 룸이 다 찼단다. 150원짜리 싱글도 다 차고 180원짜리 더블만 있단다. 여기 하나 믿고 왔는데 계속된 배와 기차여행에 지쳐 다른 곳을 돌아다닐 힘도 없다. 다른 곳을 가보았자 여기가 그래도 싸다. 광저우는 홍콩과 물가가 맞먹는다는 도시다. 일단 하루 묵기로 하고 도미토리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침대는 더블이라 넓다. 4일 동안 몸을 굽혀서 자느라 힘들었는데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다니. 5일만에 샤워를 했다. 아이구 좋다.

 

3.

1시쯤 나와 내가 묵고있는 시멘다오 섬을 둘러보았다. 광저우 사람들이 결혼식 야외촬영하는 곳이 여긴가 보다. 녹지가 우거져 있고 갖가지 인물상들이 거리거리에 장식되어있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은 고급 주택가와 외국인 대상 상점, 호탤들이 들어서 있다. 지도를 보며 강가를 죽 걷다가 돌아 희귀동물 약제시장이 있다는 칭핑시장쪽으로 갔다. 칭핑시장은 못찾고 쇼핑상가가 길게 이어진다. 빵을 사먹으면서 아이쇼핑했다. 크리스마스 케럴이 여기 광저우에서도 울려퍼진다. 마치 대목을 잡으려는 듯 산타 모자를 쓴 점원들이 소리를 지른다. 광저우의 길거리 음식으로 보이는 순대국같은 건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워 포기하고 센베이 과자 비슷한 것을 사먹었다.

 

4.

일찍 숙소에 들어와 다시 샤워를 하고 티비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축구를 보면서 내일 일정르 생각했다. 만약 도미토리가 없다면 이 곳 광저우에 계속 있을 필요가 없다. 바로 홍콩으로 가자. 한편 진순신의 중국문화기행 광저우 편을 보며 여기를 좀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이생각 저생각에 잉글랜드 축구 다음 스페인 프리메라리그의 바로셀로나 경기를 보다보니 12시다 넘었다. 중국 남단 광주에서의 하루 밤이 지나간다.

 

 

* 0412219(화) 여행26일차

 

(잠) 광저우유스호스탤 더블 23,400원 (180원)

(식사) 점심 2600원 (20원)

(이동) 광저우 지하철 520원 (4원)

(기타) 물 260원 (2원)

          센베이과자 390원 (3원)

          빵 330원 (2.5원)

.......................................... 총 2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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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8 15:46 2004/12/28 15:46
  1. yyjoo
    2004/12/29 11:37 Delete Reply Permalink

    '서쪽으로 간 까닭' 잘 보고 있슴다. 도 많이 닦으시고 사람되서 만나세...


이창에서 광저우 가는 기차표

 

1.

새벽 5시 배가 이창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배낭을 꾸리고 3일동안 함께 한 방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패키지 승객을 제외하고 나 같이 개인 승객은 거의 없다. 배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니 정말 한적하다. 한 남자가 나를 따라 붙는다.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고 말하고 페리터미널 안에 웨양가는 편을 보니 오후인거 같다. 이 시간에 여관을 가기는 돈이 아깝고 그냥 기차역으로 가자. 나를 따라온 사람은 택시 운전수였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깜깜하고 모든 문이 잠겨있다. 사람 몇 명이 짐을 놓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5시 50분쯤 되니 문이 열린다. 대합실 의자에서 7시까지 앉아있다가 표를 끊으러 갔다. 대합실은 한적했다. 어제 장가게를 거쳐서 광저우로 갈까, 그냥 광저우로 갈까하고 계속 망설였었는데 그냥 광저우로 가기로 했다. 일주일 남은 비자날짜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원래 계획이 처음 한 달은 홍콩까지 가는 것으로 했기에 여행 초자로써 계획대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장가계는 또 기회가 있겠지... . 57시간동안 배를 타고 다시 몇 시간만에 24시간동안 기차를 타게 되었다. 광저우에 도착하면 푹 쉬자. 

 

2.

아침 식당에서 만두와 쌀 죽을 먹었다. 목사님 말대로 파오차이(김치)를 달라하니 준다. 2원 5마오인데 10원짜리를 내미니 7원만 거슬러 준다. 파오차이 먹은 셈 쳤다. 10시 55분 출발 기차다. 이제 4시간을 또 대합실에서 보내야 한다. 의자에 앉아 약간 졸기도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기차에 올랐다.

 

3.

기차는 한적했다. 중 상층 침대는 거의 비어있다. 큰 베낭을 선반위에 올려놓고 먹을 거리와 더운물먹을 컾을 테이블위에 올려 놓았다. 기차여행의 필수품은 더운 물 먹을 컾이었다. 서안에선가 2원주고 샀는데 잘 써먹고 있다. 한 한시간쯤 자고 일어나  옆자리의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32살먹은 베이징사는 남자인데 기술직이고 결혼했단다. 서안지도 베이징지도 철도노선표를 보며 대화를 했다. 나보고 중국어를 잘한단다. 아니 숫자도 제대로 못알아듯는 나에게 말이다. 중국인과의 대화는 이번 여행에는 이만큼이라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4.

다시 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이 되었다. 장강에서 계속 먹은 도시락은 질렸다. 열차 식당에 가자. 가서 테이블에 앉으니 옆자리 여자가 군대서 먹는 식판에 3가지 반찬에 밥을 먹고있다. 저걸 달라고 하니 20원이란다. 음 조금 비싸군. 일단 먹을 만 하다. 돌아와서 밀린 일기를 썼다. 한 10시쯤 되었나 역무원이와 불을 끈다는 눈치를 보낸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광저우에 도착하겠군.

 

 

* 041220(월) 여행25일차

 

(잠) 기차

(식사) 아침 390원 (3원)

          저녁 2600원 (20원)

(이동) 이창여객터미널-이창역 택시 910원 (7원)

          이창-광저우 딱딱한 침대 하단 42,900원 (330원)

 

...................................................총 4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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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8 15:14 2004/12/28 15:14

첫날 신청한 삼협 여행사 마크. 이날은 나도 이걸 목에 걸고 있었다

 

1.

새벽 5시 가이드가 문을 두드린다. 눈을 부비고 배 뒤쪽 난간으로 나갔다. 여기가 삼협의 첫번째 관문인 취탕협이란다. 8키로 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물살은 가장 급하단다. 어두워서 느낌으로만 그렇구나이지 잘 모르겠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한 잠 잔 다음 7시 30분쯤 배가 소삼협의 입구에 정박한다. 배에서 나와 갑판을 걸어 좀 더 작은 배에 올라탔다. 배 천장이 열리는 더 작은 배도 있었는데 내가 탄 배는 그 중 큰 것이었다.

 

2.

소삼협은 장강보다 좁아서인지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 바람이 꽤 쌀살하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고 서안 병마용에서의 가을 점퍼입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단단히 무장을 했다. 파카, 솜바지, 장갑, 귀덮는 모자, 실크 목도리 결과는 성공이었다. 배의 관람갑판이 앞쪽에 있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맞바람에 추워서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할때 갑판 한쪽에 서서 소삼협의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가다보니 구멍들이 나있었는데 저것이 소삼협에서 유명하다는 잔도, 제갈공명이 촉나라의 험준한 지세에서 만든 수송로로 절벽끝에 말뚝을 박고 그것을 받침대로 내무토막을 깔고 길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저 구멍이 잔도의 흔적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했다. 배는 약간 빠른 속도로 소삼협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어떤 호기심이 세찬 강바람에도 나를 계속 서있게 했다. 더 협곡 다음은 그 다음은 어떤 모습일까?

 

소삼협배표. 내가 탄 배도 이 모양이었다

소삼협 지도. 이렇게 거슬러 올라갔다

 

3.

배는 소삼협 끝부분에서 정박하고 더 작은 모터보트로 소소삼협에 들어갔다. 구명조끼를 입게 되어있었다. 나무에 원숭이들이 눈에 띄고 배치해 놓은듯한 중국소수민족 사람들이 우리가 지나가면 노래를 부른다. 어부로 분한 4명, 빨래하는여성 1명, 지게를 매소 염소를 몰고 있는 1인등이 그들이다. 다시 소삼협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중국인 선생 두 분과 갑판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광저우로 간다하니 한 군데를 꼭 가보라한다. 화장지에 중국 간체자로 그 지명을 썻는데 바로 잊어버렸다. 소삼협 배에서 내려 도시락을 하나사서 강산8호에 올랐다. 삼협의 두 번째 협곡인 우 협곡이 시작된다. 내 느낌으로는 여기가 가장 좋다. 오른쪽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갖가지 모양의 봉우리들 그 밑에 거침없이 흐르는 장강, 산수화의 한 장면이었다.

 

5.

세번째 협곡인 시링협곡은 낮잠자느라 보지 못했다. 80키로의 완만한 협곡이란다. 저녁 쯤 되니 무슨 문화기념관에 정박한다. 속는셈치고 30원이란 돈을 내고 가이드에게 표를 사 입장하려 하는데 기념관과 그 일대가 모두 정전이다. 그런데도 매표원은 그냥 입장시키려 하고 사람들은 항의하고 되돌아가고 결국 그 표는 환불받았다. 저녁에 다시 가이드가 와서 삼협댐 버스투어라면서 120원짜리 표를 내민다. 난 삼협 볼만큼 보았고 안간다고 했다. 내 밑 자리 좋은 인상의 시골아저씨는 결국 표를 샀다. 이창에 밤 10시 도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삼협댐 버스투어가 생겨서 새벽 5시에 도착한단다. 슬슬 걱정이 밀려왔다. 새벽 5시, 여관가기도 그렇고 어떻게 하나? 결국 장강삼협크루즈 여행은 3박 4일 57시간의 긴 코스였다. 장강관광지도를 보면 티벳 곤륜산맥에서 시작된 물이 흘러흘러 지류가 합쳐져서 상하이까지 흐르는 6000여 킬로의 강의 일부를 나는 본 것이다. 장강은 흘러가고 나도 이렇게 흘러가고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자.

 

* 041219(일) 여행24일차

 

(잠)

(식사) 점심 도시락 390원 (3원)

          저녁 사발면 650원 (5원)

(입장,이동) 소삼협배 23,400원 (180원)

                 소삼협절 1040원 (8원)

(간식) 오랜지 2개 260원 (2원)

.............................................총 25,74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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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8 14:55 2004/12/28 14:55

1.

새벽 5시 가이드가 방문을 두드린다. 장강삼협코스의 첫번째로 근처에 악마가 산다는 구이청에 배가 정박했다. 입장료만 60원이고 새벽부터 나설 일이 없다는 생각에 난 신청하지 않았다. 방의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고 좀 더 잠을 자다가 일어나 찬물에 머리를 감았다. 방 입구에 있는 세면실겸 화장실은 그냥 참을 만한 수준이었다.

 

2.

9시경 사람들이 돌아왔다. 알고보니 스무명남짓한 한 중학교의 선생님들이었다. 첫날에는 그 얼굴들이 도저히 선생으로 생각되지 않았지만 이틀째 보니 그럴 것도 같다. 나 학교 다닐때도 얼굴들이 산도적 같은 선생도 있고 다 틀리지 않았나. 이 선생님들과 한 두 마디 주고 받다가 오후에 옆 방에서 몇 년전에 영어선생 했다는 사람이 불려왔다. 자기들은 시안 바로 위에 있는 통찬이란 곳의 중학교 선생들이란다. 통찬중학교는 한국의 어느 중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한국에서 자기 중학교에 방문도 했단다.

 

오후에 올라간 석보채. 좁은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3.

점심쯤 되어 배는 다시 정박한다. 장강삼협크루즈는 서서히 이동했다 정박했다를 반복한다. 석보채로 바위위에 지어진 절에 오른단다. 나도 20원을 내고 올랐다. 절 한쪽에는 댐이 건설되었을때 수위를 빨간색 띠로 표시한것이 있었다. 여기는 섬이 된단다. 배안의 식당은 비싸고 혼자 먹기도 뭐하고해서 내려서 감자꼬지 2개 사먹고 도시락도 하나 샀다. 저녁때는 장비사당에 정박했다. 여기는 표를 사지않고 근처를 구경했다. 1원에 찐계란 두개를 사 먹었다. 내일은 장강삼협크루즈의 하이라이트인 삼협이 시작된다. 그래고 작은 배로 갈아타서 소삼협에 가게 된다. 처음 인천에서 24시간 배를 탔을때 길게 느껴졌었는데 장강에서 24시간이 지난 지금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내가 먼가 새로운 리듬에 적응하고 있는건가?

 

 

* 041218(토) 여행23일차

 

(잠)

(식사) 점심 도시락 밥위에 야체 몇가지 390원 (3원)

          저녁 볶음밥 도시락 390원 (3원)

(입장) 석보채 2600원 (20원)

(간식) 과자 650원 (5원)

          감자꼬치 260원 (2원)

          찐계란 130원 (1원)

.........................................총 4,4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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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8 14:41 2004/12/28 14:41

청도에서 충칭가는 고속버스표

 

1.

중국기침약을 먹어서인지 기침이 반으로 줄었다. 목사님은 한 달동안 중국의 세지역을 옮겨다녔는데 그때마다 감기에 걸린적도 있단다. 어제 훠궈 대접받은 걸 간단한 아침식사 대접으로 대신했다.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만두나 밥을 먹을때 김치가 없어 아쉬웠었는데 파오차이가 중국 김치란다. 그냥 무를 무치는 수준이지만 있으면 훨씬 좋다.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2.

49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내려 바로 옆 터미널에서 충칭행 고속버스를 탔다. 기차보다는 충칭가는 고속버스가 훨씬 빠르단다. 표의 내 좌석자리는 3번이었는데 타보니 어디가 3번인지 표시가 안되어 있다. 그냥 관례대로 맨 앞 오른쪽 자리에 앉았는데 운전기사가 내 표를 보더니 왼쪽 두 번째 자리로 가란다. 10시쯤 출발한 버스는 한 320키로를 달려 3시가 좀 넘어 충칭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동안 다녀본 도시들은 거의 평지였는데 여기 충칭은 높은 언덕에 집들이 지어져 있다. 인구 3000만명이 넘는 중국의 직할시인 충칭은 2차 세계대전때 중국 공산당 대표부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3.

택시를 탔다. 지오탠먼 부두에 가자고 했다. 택시는 한 강가 건물입구에 내려준다. 이곳이 장강삼협크루즈타는 매표소인가? 생각보다 허름하다. 입구에 경비로 보이는 사람이 여기가 맞다고 나를 사무실로 안내한다. 아무리 봐도 사설 여행사다. 나중에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이런 여행사들이 즐비하다. 이창까지 장강삼협크루스 승선료는 4명이 타고 시설이 좀 나은 2등석이 600원, 3등석 2층침대의 2층이 270원이란다. 고심하다 600원은 너무 비싼거 같이 3등석으로 하기로 했다. 침대가 8개라 하는데 좀 부담은 되지만 중국 사람과 어울릴 기회라고 생각하자. 소삼협과 사찰을 중간중간에 도는데 추가되는 총 비용이 300원이라 한다. 그건 타서 생각하기로 하고 거절했다. 잘한 일이었다.

 

 

충칭에서 이창까지 장강으로 가는 배표

 

4.

주변에서 밥을 먹고 강가를 둘러보았다. 호화로운 배부터 고기배같은 배까지 다양한 크기와 수준의 배가 여기저기 선착장에 있다. 대기소에서 기다리다 한 여행사 직원에게 인계되어 배에 올랐다. 내가 탄 배 이름은 강산 8호, 비교적 큰 배였고 시설도 좋아보였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다행히 6명이 묵는 방이었다. 나는 한 20원 싼 2층 침대의 2층이었는데 이도 2층 침대에 누워서 창을 보면 강물도 보이고 전망이 더 좋다. 내가 처음에 가려했던 목적지인 웨양까지는 댐 건설과 겨울 물때때문에 가지 않는 것 같다. 작은 배들은 웨양까지 가는 모양인데 여하는 이창에 내려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한다.

 

5.

중국에서 황하와 함께 2대 큰강인 장강. 양쯔강으로도 불리우는 장강은 수 많은 지류들이 모아져서 강을 이룬다한다. 삼국지의 영웅들은 이 장강을 무대로 지략을 펼치고 음모에 죽고 죽이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이 장강에서 펼쳐졌다. 장강삼협크루즈의 출발지인 충칭강변은 수 많은 백열가로등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전기세는 많이 들겠지만 아무튼 멋지다. 고질적인 홍수 피해와 전기와 물을 얻기위해 어마어마한 규모로 건설하는 삼협댐이 2008년 완성되면 강의 수위가 150미터가 올라가고 수 십만 중국인의 터전이었던 집이 수몰된단다. 더구나 옛 중국 역사의 무대였던 거침없이 흐르던 삼협의 물줄기가 그 기세를 잃고 완만해진다 한다. 그때도 유람선은 다닌다 하지만 그 느낌은 없을 것이다.

 

6.

밤 8시, 강산 8호는 출발했다. 6인실인 내가 묵는 방은 선물꾸러미를 잔뜩 든 시골아저씨, 그리고 4명의 패키지 중국여행객들이다. 처음으로 중국인들과 같이 자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놀라면서 여기 한궈랜이 왔다며 옆방의 같은 일행에도 말한다. 중국인 특유의 이목구비가 뚜렸한 한 여자도 와서 인사했고 메모지에 자기 이름을 써주었다. 이름이 시웬보다. 큰배라 그런지 흔들리지도 않고 유유자적하며 물길을 헤쳐나간다. 배 뒤쪽 갑판에 나가 물살과 풍경을 바라보았다. 처음 인천에서 출발했을때의 그 풍경과 물살, 이 만큼 와서 또다른 풍경과 물살을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

2층 침대는 내키에는 좀 좁은 길이다. 약간 몸을 대각선으로 누인다. 밤이 깊어간다. 장강의 물은 흐르고 나는 잠에 빠져든다.

 

* 041217(금) 여행 22일차

 

(잠)

(식사) 아침 1300원 (10원)

          점심 1720원 (14원)

(이동) 청두 시내버스 130원 (1원)

          청두-충칭 고속버스 13910원 (107원)

          충칭-터미널 택시 1690원 (13원)

          충칭-이창 장강페리3등석 35100원 (270원)

(간식) 라면 과자 1170원 (9원)

.......................................................총 55,0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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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8 13:49 2004/12/28 13:49

1.

새벽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방을 놓고 나갔다. 아침에 다시 들어오길래 내가 니하오 하이라고 인사를 하니 나에게 한국분이세요? 라고 묻는다. 한 40대중반으로 보이는 중국에는 91년도 부터 오기시작해 이번에도 한 석달 묵을 예정이란다. 중국여행에서 처음으로 대화하게 된 한국사람이었다. 자기는 청두가 가장 마음에 드는 도시란다. 청두는 제갈량이 세운 도시란다. 마오쩌둥 동상을 중심으로 팔방진을 펼치듯이 도시가 형성되어 있단다. 현지중국인들과 만날 약속들이 되어있단다. 중국인들하고 문화대혁명이나 정치에 대해 대화해 보았냐고 물어보았다. 문화대혁명을 기억하는 사람은 50대는 넘어야 한단다. 젊은 사람들은 천안문사태도 모른다고 한다. 대학의 교수를 만난 적이 있는데 문화대혁명을 기억하고 싶지않은 사건으로 그는 말했다고 한다. 자기가 만난 중국사람들은 국민당 정부가 중국을 통치했다면 중국이 지금보다는 더 잘 살았지 않았겠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2.

내가 그제 먹은 샤브샤브 얘기를 했더니 그것 훠궈가 아니란다. 자기가 훠궈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단다. 같이 버스를 타고 사천대학 북쪽 근처에 있는 깔끔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제 먹었던 육수와는 달리 이건 거의 검은 색깔이고 사천고추인가 고추알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 집의 좋은점은 넣고 끓일 메뉴를 직접 보면서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이 끓어 재료를 넣고 한 번 먹어보았다. 훠훠할 정도로 맵다. 한번 이걸 먹으면 이 맛을 못잊는다 한다. 알고보니 이 분은 해외전도 목사였다. 10년전에 전도지로 중국을 선택했을때 사람들이 말렸는데 지금은 잘 한 선택이란다.훠궈는 처음에는 무척 매웠는데 점점 먹을 만하다.

 

3.

목사님 추천으로 두 군데의 청두 유적을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헤어져 우허우츠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무후사라는 이름의 이 사찰은 삼국지의 영웅중 하나인 제갈량을 기리는 곳이란다. 그의 별명이 우허우란다. 사찰에 들어섰다. 이 곳 안에는 제갈량만이 아니라 유비 관우 장비 기타 많은 삼국지 인물의 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삼국지를 한 번 더 읽고 올걸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제갈량은 왜 조조가 아니라 유비를 선택했을까? 20대부터 총명함을 떨치던 조조가 아니라 40이 넘어서야 겨우 지역에서 한 자리 확보한 유비를 말이다...


제갈량과 유비를 모신 우허우츠

 

3.

이 곳에서의 의회의 수확은 한쪽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중국 경극과 더불어 사천성의 볼거리는 변검공연을 보았다는 것이다. 입장료는 차와 해바라기씨를 시키면 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노래와 춤이 이어지고 하이라이트로  마스크를 쓴 4명의 남녀가 춤을 추면서 순식간에 얼굴의 마스크를 바꿔치기 한다. 아무리 눈여겨 보아도 어떤 원리인지 알 수가 없다.

 

4.

두보의 초당은 5시가 넘어가서 택시를 타고 갔다. 8세기때의 시인인 두보는 정치시인이었단다. 봉기를 일으킨 반란군에게 체포되었다가 도망을 쳐서 이곳 청도의 집에서 4년동안 머무르면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을 시로 노래했단다. 두보가 살았던 곳을 재현해 놓은 곳도 있었다. 그보다는 넓게 조성해놓은 대나무와 분재 정원이 볼 만했다. 한 미술관에서 두보의 시와 어우러진 풍경 산수화는 실제 경치만큼이나 신선함이 있었다. 마당 한 쪽에선 초등학교 아이들이 경극 경연대회를 하고 있다. 한 꼬마아이가 능청스럽게 시를 읊고 있다. 두보가 어째서 정치시인이었는지 돌아가면 두보 시집을 읽어봐야 겠다.


두보 초당

 

5.

초당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이곳 두보 초당에서 내가 묵고있는 신남먼까지 가는 두대의 버스가 있다. 지도를 보니 죽 강길이 이어져 있다. 강길로 한 번 걸어보자. 강은 한강처럼 넓지는 않지만 좀 더 사는 공간과 가깝다고나 할까. 운치가 있었다. 강 양옆으로 저층 아파트와 호화로운 불빛의 식당들이 이어진다. 한 한 시간 남짓 걸어 숙소 입구에 도착했다. 식당에서 볶음밥과 스위트야체무침을 시켰는데 무침이 달긴 달다. 오늘 청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훠궈, 우허우츠, 두보초당, 도심거리, 공원의 여유있는 풍경들 청도의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다. 목사님 말로는 청도 사람들이 놀 줄 아는 여유가 있다 한다. 친구가 마작을 두자하면 시간을 내어 둘 수 있는 여유가 북경이나 서안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숙소에서 내가 기침을 계속하자 자기가 먹고 있는 중국 기침약을 준다. 대신 이약은 먹으면 잠이 쏟아진단다. 감기는 정점에서 내려오는 중이다. 모든 일의 진행에는 흐름이 있다. 시간만 지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흐름을 잘 맞추어 나가면 삶의 부피는 늘어날 것이다.

 

 

* 041216(목) 여행21일차

 

(잠) 3900원 (30원)

(식사) 저녁 1430원 (11원)

(입장) 우허우츠 3900원 (30원)
          우허우츠 옆 공원 260원 (2원)

          두보초당 3900원 (30원)

          변검공연 3250원 (25원)

(이동) 버스 130원 (1원)

          택시 1430원 (11원)

................................... 총 18,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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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7 13:52 2004/12/27 13:52

1.

오늘은 도심을 가볍게 돌면서 중국인이 들어가는  피씨방인 방빠를 찾아보자. 그동안 여행일기도 밀려있고. 청두 중심지를 걸어가다 육우면 작은사발하나를 먹었다. 이 면은 칼칼한 맛이다. 지도에 표시된 왕빠위치에 가 보니 왕빠는 없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옆에있는 룽청공원에 들어섰다. 꽤 한적하고 사람들이 넓은 야외찻집에 차를 시켜놓고 유유자적하며 신문도 보고 담소도 나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마작하는 할머니들인데 황학동에서 4만 5천원인가 했던 마작세트를 못산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걸 사서 배웠더라면 어떻게 좀 껴서 할머니들하고 마작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  공원을 나와 청두의 가장 중심지인 마오쩌둥 상 쪽으로 향했다. 사천 미술관에 들어가 5원을 주고 미술관람을 잠깐하고 모택동 상 앞에 도착했다.

 

2.

동상의 키는 한 15미터 될려나. 동상 앞쪽 광장은 대형공사를 한다고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중국은 어디 도시를 가도 공사 또 공사다. 먼가 변모해가고 있다는 건데 여행자로서 방해가 크다. 모택동 상 뒤편으로는 큰 상가가 있다.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사람들이 양손에 한아름씩 물건꾸러미를 들고 있다. 상점 창문으로는 모택동 동상의 뒷모습이 보인다. 뭔가 처량해 보이는 거도 같다. 뒤로 술술 새어나간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사람들은 소비에 열중한다. 이것이 그가 꿈꾸었고 실현하려고 했던 세상인가?

 

3.

중국의 큰 상가의 화장실은 지역에따라 유료인 경우가 있는데 0.5원의 돈을 받는다. 화장실을 찾아 또 다른 큰 상가로 들어갔다. 여기와 그제 갔던 중심가와 이어진다. 사천에 왔으니 변검공연을 봐야지. 한참을 물어 물어 찾은 변검공연하는 극장은 그제 갔던 길에서 한 20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초라한 간판이다. 매표구에는 아무 사람도 없고 썰렁하다. 하기야 서울에서 국악하고 창하는 극장 찾으라면 나도 모르는데 여기 사람들도 그렇겠지. 포기하고 인터넷빠를 찾아서 또 물어물어 광장 옆 3층 피씨방으로 가니 주로 오락하는 젊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 윈 2000시스템인데 제어판으로 들어가 언어 설정을 하니 시스템 씨디를 넣으란다.

결국 실패하고 그냥 숙소 1층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숙소 앞 레스토랑에서 5원짜리 볶음밥을 먹고 5시간동안 그 동안의 일기를 올렸다. 여긴 스케너도 있다. 스캔비를 반으로 깎고 겨우 마치고 숙소로 올라와 잠자리에 들었다.

 

 

041215 (수) 여행20일차

(잠) 교통빈관 3900원 (30원)

(식사) 아침 면 390원 (3원)

          저녁 볶음밥 야체무침 1430원 (11원)

(입장) 룽청공원 260원 (2원)

          사천미술관 650원 (5원)

(간식) 빵 200원 (1.5원)

         고기넣은빵 390원 (3원)

         센베이과자 130원 (1원)

(기타) 중심지 인터넷 1300원 (10원)

         숙소 1층인터넷 스캔 7800원 (60원)

 

------------------------------- 총 16,150원


사천미술관입장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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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7 13:31 2004/12/27 13:31


 

 

러산 대불입장권. 하체가 튼튼한 모양이었다.

 

* 12월 27일 홍콩 중앙도서관에서 올리는 것임

 

1.

일어나 세면을 하고 카운터로가서 아침식사를 제공하냐고 물었다. 저쪽에 레스토랑이 있단다. 가서 내 방 키를 보여주니 이 방은 제공이 안된단다. 우유 한 잔, 계란 프라이, 토스트, 중국야체무침을 시켰다. 먹고 바로 건물 옆에 있는 터미널로 들어갔다. 오늘은 2시간 거리에 있는 러산대불을 보러 간다.90년 동안 만들었다고 하는 거대한 불상, 키는 71미터이고 엄지 발가락만 8.5미터라는 대불을 기대하면서... . AD713년 하이퉁이라는 승려가 만들기 시각했다한다. 하지만 하이퉁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단다.

 

2.

버스 티켓에는 2원의 외국인여행자보험이 추가되었다. 사천성의 특징인데 예전 사천성 북쪽 유명한 자연지구인 쥬자이거주에서 버스 사고로 한 일본인이 죽었는데 일본인 가족이 중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이후부터 시작되었단다. 버스는 만석이다. 중국인들에게도 대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나보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순간 차가 막혔다. 사고가 났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고속도로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한 방송사에서 나와 취재를 한다. 사고, 안개, 혹 고속도로 점거 시위? 버스로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한 시가 좀 넘어 러산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침 먹은 걸로는 부족해서 한바퀴 돌다가 사천식 백반, 밥과 순두부 그리고 고기볶음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선착장을 해메다 한 곳에 내려갔다. 팻말에는 3시 30분 출발인데 2시인 지금 출발한단다. 요금이 6원이다. 대불관광은 우선 배를 타고 대불 앞 강에서 대불을 본 다음 오른편 절에 내려 도보로 대불로 향하는 것이다. 30원 50원짜리 배는 동력을 이용하여 한 10분 대불앞에서 서서 관람하게 하는데 내가 탄 6원짜리 배는 그냥 쑥 지나쳐버린다. 갑판에는 나와 중국인 일행 4명이 함께 했는데 한 50대쯤 되어보이는 푸근한 아줌마와 인사하게 되었고 할아버지 두 분과도 인사했다.  


 

 

 

 

절입구에서 폴라로이드 사진 한장

 

3.

절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대불까지 전체표를 끊고 올라갔는데 중국가족은 매표소에서 절구경은 그냥 올라가라고 한다. 큰 국화꽃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나중에 중국인 가족과 합류해서 절을 둘러보았다. 중국인 가족은 천천히 걸으며 담에 먼가 먹을 풀을 따서 연신 비닐봉지에 넣고 있다. 창동에서 사는 고모님과 아저씨가 생각났다. 예전에 의정부 산 어딘가를 가서 직접 캔 나물로 밥을 해 주시던 기억이 난다. 재배한 나물과 비교할 수 없는 고소한 산나물의 맛. 한 정자에 앉아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일과 관련해서 아줌마가 계속 먼가를 물어보신다. 알고보니 내가 얼마를 버냐는 질문이었다. 기차에서 한 5000원(65만원)정도 번다는 기억이 나서 그렇게 말했더니 놀라는 눈치다. 한국은 물가가 비싸 이걸로는 먹고 입고 자는데 빠듯하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4.

고속도로 봉쇄로, 중국 가족일행과 함께 다니느라고 시간이 많이 흘러가서 중국인 가족에게 먼저 대불로 가겠다고 하고 인사하고 바삐 걸었다. 드디오 대불의 머리 부분에 도착했다. 페키지 여행온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대불의 오른편으로 가파르게 내리막 길이 있다. 내려가니 발 밑이다. 대불도 대불이지만 안개에 싸인 붉은 태양과 강의 모습도 상당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저 너머가 알 수 없는 안개싸인 강, 묵묵히 강을 응시하는 대불. 대불하나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 나는 나의 열정을 제대로 모아내고 있는가? 시계가 5시를 넘어간다. 서둘러서 강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한다. 티켓 뒤 지도에는 다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한 30분이면 걸어갈 것 같다. 다리로 걸어가는데 한 자전거 택시 아줌마가 계속 타란다. 다리도 아프고 해서 10원에 탔다. 그런데 이 아줌마 좀 가다가 이쪽 길에서도 청두 가는버스 탈 수 있다고 계속 말한다. 그렇게 할 거 였으면 출구 나오는데 청두가는 버스 타라고 할 때 탔을 것이다. 저건 틀림없이 완행이고 더군다나 정류장도 내 숙소옆이 아닐거야하며 타지 않았는데 다리도 안나오고 그래 완행도 한 번타자. 청도가면 거기서 버스를 타든 걸어가든 하지뭐. 버스가 왔다. 역시 완행버스다. 버스 앞자리가 짐을 놓을 수 있게 넓다. 맨 앞자리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면서 갔다.

 

5.

이윽고 청도 표지판이 나온다. 이게 왠 일 차가 종점에 도착하는데 여긴 청도 시내도 아니고 입구 어딘가 보다. 길이 비포장이다. 큰 슈퍼 달랑 하나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깜깜해서 어디가 어딘지 방위도 알 수 가 없다. 일단 호객꾼들은 뿌리치고 슈퍼로 들어가 녹차한병을 사고 물어보았다. 이때 나를 끝까지 쫒아온 아줌마가 신남먼정류장까지 25원에 가잔다. 그러자고 하고 아줌마 뒤를 쫒아갔다. 차를 보니 남편이 운전하는 사설 택시였다. 차는 티코만한 크기였는데 부부가 앞쪽자리에 타고 내가 뒤에 탔다. 차가 비포장길을 통과하는데 차가 막힌다. 그래서 다른 샛길로 갈려고 하다고 덤프트럭 3대와 좁은 길에서 정면으로 마주처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오늘은 차막히는 날인가 보다. 한 10분 넘게 있으니 겨우 차가 빠져 나간다. 상당한 거리를 달려 숙소 바로 옆 신남먼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사설택시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았다.

 

6.

청도에는 샤브샤브같이 큰 양철그릇에 육수를 끊이고 채소 고기등을 넣어서 건져서 먹는 음식점이 많이 보였다. 이게 사천성 청도의 유명한 훠궈요리인가. 1인당 16원하는 집에 들어갔다. 혼자면 20원이란다. 부폐식으로 가져다가 먹는 방식인데 생선머리부터 고기 창자 각종 부위까지 없는게 없다. 야체와 버섯위주로 먹었는데 배가 부르다. 버섯을 마음껏 먹었다는데에 만족감이 생긴다. 숙소로 오니 방에 새로운 외국인이 있다. 네덜란드 학생인데 참해 보인다. 컴퓨터 공학이 전공인데 소림사에서 한달동안이나 무술을 배우고 왔단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수련프로그램이 이어지는데 무척이나 힘들었단다. 중국에 5개월째 있는데 비자연장받으러 공안국 외사과에 가야한단다. 이 빈관에는 여행 좀 해본 사람들이 많이 묵는거 같다. 방에는 세면실이 없고 복도 한 쪽 편에 샤워실이 있다. 시설은 나무랄 때가 없다. 샤워기에서 뿜어나오는 따뜻한 물을 어께에 적시며 오늘 하루 몸의 긴장을 풀어본다.

 

 

041214 (화) 여행19일차

(잠) 3900원 (30원)

(식사) 아침 숙소옆식당 1170원 (9원)

         점심 사천식백반 780원 (6원)

         저녁 샤브샤브 2600원 (20원)

(이동) 청두-러산 4810원 (37원)

          배 780원 (6원)

          자전거 택시 1300원 (10원)

          러산-청두 4550원 (35원)

          청두-신남먼 택시 3250원 (25원)

(입장) 러산대불통합입장료 9100원 (70원)

(간식) 녹차 390원 (3원)

          귤 130원 (1원)

(기타) 폴라로이드 1950원 (15원)

------------------------------------총 34,710원 

 

 


 

사천성 외국인 여행자 보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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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 23:41 2004/12/15 23:41
  1. 사막은
    2004/12/20 20:50 Delete Reply Permalink

    살아 있수? 이제 인터넷은 영 힘든가? 글이 멈췄다.



청두행 딱딱한 침대 기차표. 유스호스텔에서 48원을 대행 수수료로 챙겼다

 

1.

9시가 넘어 청두역에 도착했다. 옆자리 아줌마가 아침에 사과하나를 준다. 같이 사과를 먹었다. 아침사과는 금사과인가. 내릴때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준다. 덕담같다. 역을 나와서 젊은 아줌마와 아침을 먹었다. 아줌마이름이 이진이다. 고기야체볶음, 마파두부, 감자채볶음요리를 시켰다. 내가 조신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핀잔을 준다. 그리고 터프하게 먹는 모습을 보인다. 먹으라며 고기야체볶음의 고기를 골라 내 밥위에 모두 얹어준다. 성의가 고마워서 억지로 삼켰다. 내가 묵을 숙소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중국 젊은 아줌마와 헤어졌다. 엽서 보내기로 했는데 중국어로 어떻게 편지를 쓰지?

 

2.

내가 찾던 교통빈관은 버스 종점 바로 앞에 있었다.3인 도미토리가 40원인데 겨울이라 30원으로 할인받았다. 키를 받고 419호에 들어갔다. 25살 이스라엘 남자 한 명이 있다. 다른 한명은 쿤밍으로 오늘 떠났단다. 이 이스라엘인은 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싱가폴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중국으로 왔고 내일 태국으로 간단다. 처음으로 열차에서 하루밤을 자서인지 피곤에 조금 낮잠을 자고 샤워를 하고 거리로 나섰다. 바로 앞 진강은 별로 깨끗하지는 않았다. 주로 어른들이 쉬고 계셨는데 주로 침을 맞고 있었다. 강을 건너 뒤쪽 골목으로 들어가자 사천대학 분교쯤 되는 학교캠퍼스가 나왔다. 식당에 들어가보았다. 메뉴의 가짓수가 놀라웠다. 한 200가지 쯤 되보였다. 가격은 우리돈으로 100원 남짓. 학생마다 충전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먹을 음식앞에 바코드를 찍었다. 청두에 오래 머물렀다면 매 끼니 여기와서 먹겠구만.

 

3.

걷다보면 어느순간 피로가 풀리고 좀 더 힘이나는 때가 있다. 좀 더 도심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화려한 네온사인 중심거리를 들어섰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젊은이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데 남경대학살로 30만명이 죽었다. 잊지말자 일본군 만행. 등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젊은 사람들이 시민단체 같이 이런 피켓을 들고 있을까? 동원된 것은 아니어 보인다. 중국의 물질만능에 대해 도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발상일까? 청두라는 도시는 파리등 유럽도시를 모델로 만들었단다. 중앙 모택동 탑을 중심으로 방사선 형태로 구성되었는데 실제 번화가 중간중간 베이징 낙양 서안에 없는 밴치들이 많았다. 야체빵 하나를 사먹었는데 사천성 음식 특유의 강한 향신료 맛이 느껴졌다. 중국 음식중 상차이와 더불어 쉽게 익숙해지기 힘든 재료가 사천후추란다. 아주 매운 야체빵이었다.

 

4.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이스라엘인과 잠깐 음악얘기를 했다. 조금 있으니 외국인 하나가 들어오는데 잉글란드 인이다. 중국 10대 학생들에게 영어로 화학을 가르친다는데 선생같아 보이질 않는다. 내가 인도를 간다하니 바리나시가 가장 좋았단다. 난 밀린 일기를 쓰느라 대화에 간혹 끼는 수준이었는데 이 두 여행 베테랑이 만나니 말들이 빨라진다. 참 남자들의 대화라는게 소재가 세계공통이로군. 이스라엘인이 중국에서 일제 일랙트릭 기타를 친다. 먼저 음악얘기다. 레드제플랜 굿. 핑크 플로이드 나도 고등학교때 열광했었는데. 거기서 넘어가 중국여자가 몸매가 죽인다며 몇 명을 만나보았냐, 거기서 더 나가 난 안젤리나 졸리가 색시하다 난 케터린 제타 존스다, 다시 축구로 넘어가 어제 첼시가 어찌어찌해서 2대 1로 이겨 프리미어리그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 티비에 중국인들의 영어 발음이 어찌이리 웃기냐 저 뉴스 중국여성앵커가 이쁘다며 계속 둘이서 킥킥킥킥댄다. 내가 이런 수준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듣고 있자니 못 바줄 일이다.

 

5.

기침의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약도 먹고 더운 차도 연신 들이키지만 어쩔 수 없다.시간이 지나야 된다.

 

041213 (월) 여행 18일차

(잠) 교통빈관 3인실 도미토리 3900원(30원)

(식사) 아침 2470원(19원)

(이동) 버스 2번 390원(3원)

(간식) 만두 130원(1원)

          야체빵 260원(2원)

          맥도널드콘 260원(2원)

(기타) 손전등 520원(4원)

          숫자형자물쇠 1690원(13원)

          인터넷 30분 650원(5원)

..................................................총 10,2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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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 23:33 2004/12/15 23:33
  1. 고양이
    2004/12/16 10:46 Delete Reply Permalink

    바리나시가 아니라 '바라나시'라고 하죠. 동생이 그 근처에서 5년 있다가 왔잖아요... ㅋㅋ 좋겠다. 부럽구만. 근데 카메라 잃어버렸다면서 어케 사진을 찍었지?

  2. 사막은
    2004/12/16 13:48 Delete Reply Permalink

    사진 프래임을 보니 아마도 즉석사진, 폴라로이드 사진이 아닐까? 그거 스캔받아서...오늘 힘기관지를 보니 여행기가 실리던데... pc방 그게 어디까지 있을까..암튼, 감기 빨리나으시고.

  3. 살아있었네
    2004/12/18 01:58 Delete Reply Permalink

    인제 좀 능숙한 여행자가 돼가나보네요.
    여행기 잘 읽고 있으니 계속 수고

  4. kanjang_gongjang
    2004/12/19 19:33 Delete Reply Permalink

    안식년 해외여행 가긴 갔군요.
    돌아오면 소주나 한잔 합시다. 김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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